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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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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09.12.1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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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로라시아 연대기 - 8.왕족의 식사(1)

DUMMY

프레이르는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연회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마법에 의해 공중에 걸려 있는 연회장에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을만한 거대한 식탁이 놓여져 있었다. 식탁을 중심으로 연회장 곳곳에서는 은은한 용연향 향기가 났는데 아마도 강한 음식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놓은 듯 했다. 식탁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왕족들이 철저한 서열에 따라 앉아 있었다. 프레이르는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입학사도 읽었던 그였지만 처음 만나게 될 가족들 앞에서는 웬일인지 몸이 굳어졌다.

‘이들이 나의 가족이다.’

그는 왕족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코라와 메르센은 항상 그에게 ‘왕족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가족’이라고 누누이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피를 나눈 의좋은 형제자매이지만 뒤로는 왕관을 위해서 서로 칼날을 갈고 있는 것이 바로 왕의 가족들이었다. 그는 연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했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는 몇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포르테빌과 시종장에게 식사 중에 지켜야할 수십 가지 기본적인 예절 사항을 다시 암송해 본 프레이르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프레이르가 연회장에 들어서자 시종이 큰 소리로 프레이르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 소리에 식탁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들은 입구에 서 있는 프레이르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이르를 반기기 위해 다가왔다.

가장 먼저 프레이르에게 온 것은 한 귀부인이었는데 프레이르는 그녀가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이미 짐작이 갔다. 이제 그의 어머니가 될 엘리스 에인절이었다. 엘리스 에인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귀함이 묻어 나오는 진정한 카시네예프 귀부인이었는데 과연 한 나라의 왕비로서의 기품이 있는 여인이었다. 도도함과 우아한 맵시, 그러면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며 프레이르는 순수하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상상해 왔던 싸늘한 계모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는 잠시 동안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것이 무례에 해당한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눈을 내렸다.

“프레이르 전하.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녀는 따뜻함이 녹아 있는 웃음을 지으며 프레이르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우아한 동작이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았고, 공손했지만 지나치지 않은 인사였다.

이에 답례하기 위해서 프레이르는 자신의 모자를 벗은 다음 일전에 포르테빌 대공이 가르쳐 준 대로 반대편 어깨에 모자를 얹으며 공손히 인사 했다. 비록 프레이르는 왕위 후계자였지만 상대는 자신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 인사가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기를 빌며 머리를 들었다. 다행히 포르테빌의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은 것을 보니 못 배워먹은 평민의 티를 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프레이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엘리스에게 답례인사를 했다. 이것 또한 포르테빌이 일러준 것이었다.

“제게 말을 놓으십시오, 어머님. 저는 분명히 어머님의 아들이니까요. 비록 피를 나눈 모자 지간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머님에 대한 저의 존경과 애정은 친어머니만큼이나 깊습니다.”

프레이르의 이 다정한 말에 엘리스는 더욱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프레이르에게 다가와 그 뺨에 입을 맞추었다. 프레이르는 그녀의 입술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따스한 느낌에 그는 루크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프레이르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그녀는 가족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프레이르의 이복동생인 아르첼을 소개했다. 정감 있게 11살의 왕자를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프레이르는 그녀가 굉장히 아들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포르테빌 대공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한 뒤 가장 뒤에 서 있던 인물을 위해 조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프레이르와 적대를 하게 될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이 분은 리처드 대공이십니다. 국왕 폐하의 두 번째 동생이자 프레이르에게는 삼촌이 되시는 분이시지요.”

리처드 대공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프레이르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프레이르를 긴 시간 동안 포옹한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프레이르에게 말을 건넸다.

“살롱에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프레이르 전하를 직접 뵙게 되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군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인사였다. 루크의 경고 때문에 리처드 대공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있는 프레이르는 이 말에 숨은 의미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유감스럽게도 깊은 뜻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살롱에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이렇게 치켜세우시니 조금 쑥스럽군요.”

프레이르는 조금 어색한 말투로 리처드에게 대답했다. 프레이르의 말에 리처드는 씩 웃었다. 분명히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한 웃음이었지만 프레이르는 왠지 그 웃음이 싸늘하다고 느꼈다.

“저도 살롱에서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은 그다지 훌륭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제거리라는 것은... 그, 뭐랄까... 제가 와인을 마시면서 주로 먹곤 하는 굴 같은 것이지요.”

‘굴’ 운운하는 것이 뭔가 미묘하게 신경에 거슬렸지만 프레이르는 깊은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전하께서는 굴을 좋아하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전 좋아하는 편이지요. 굴은 나름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단단한 껍질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꽤 단단하지요. 생각보다 깨부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굴을 싫어하곤 하죠."

리처드 대공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 좀 취향이 독특합니다. 오히려 그 단단한 껍질을 부수는게 더 재밌더군요. 나이프나 작은 해머를 이용해 굴을 부수고 그 알멩이를 와인과 함께 먹는건 정말이지......"

리처드 대공이 씩 웃었다.

"기분 좋은 일입니다. 굴에게 교훈을 준다는 느낌이거든요."

"무슨 교훈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뭐, 대단한 교훈은 아닙니다."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모든 생물에겐 각자 위치가 있다는 것 말이죠. 제아무리 노력을 하고, 제아무리 변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자신에게 흐르는 피 말입니다."

리처드 대공은 여기까지 말하며 프레이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리처드 대공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낀 엘리스가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폐하께서는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마치 변명하듯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시종장이 폐하를 모시러 갔으니 곧 오실 겁니다. 그 때까지 서 있기도 힘드니 프레이르도 우리와 자리에 앉아요.”

그녀는 일행을 식탁으로 데려가며 부드럽게 프레이르에게 권유했다. 이 정중하지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그 권유에 프레이르는 리처드에게서 등을 돌려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종장에게 셀 수 없이 많이 자리에 앉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이 거대한 식탁 앞에 서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시종장은 ‘전하께서는 폐하의 다음 가는 분이시자 오늘의 주인공이시니 폐하의 정면에 앉으시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라는 설명을 해주었는데 지금 이곳에는 샤를이 없었다. 그는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앉아야 할 자리를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프레이르에게 리처드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엘리스의 대각선 정면이자 대공의 옆자리의 의자를 프레이르에게 빼주었다.

“아직 예법을 다 익히지 못하신 것 같군요. 이곳이 전하의 자리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리처드 대공.”

프레이르는 리처드가 빼준 의자에 가서 앉았다. 엘리스는 포르테빌이 빼준 의자에 앉았는데 포르테빌과 엘리스 사이의 빈 자리가 샤를의 자리인 것 같았다. 프레이르의 왼쪽에는 아르첼이, 오른쪽에는 리처드 대공이 자리 잡았다.

5명의 일행이 모두 착석하자 시종들이 다가와 나이프와 포크, 접시 등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나이프와 포크는 개인마다 7쌍씩 놓여 졌는데 프레이르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격식 있는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식기의 숫자만으로도 질려버리고 말았다. 시종장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호사스런 왕족의 결혼식의 경우 12쌍까지 식기가 늘어난다고 했다. 그 때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비웃었는데 그 말이 사실로 밝혀지자 프레이르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프레이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이프를 바라보고 있자 오른쪽에 앉아 있던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존경하는 전하. 혹시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은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시종장에게 그 순서와 용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간단히 배운 프레이르는 일부러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처드 대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그 레드포드 자작과 함께 지내셨다기에 이것을 모르실까봐 걱정했습니다만 기우였던 모양이군요. 그 레드포드 자작이란 사람은... 음... 조금 예의를 지키지 않는 편이거든요. 혹시 헷갈리신다면 포크와 나이프는 바깥쪽에서부터 사용하는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잊지 않습니다.”

또다시 미묘한 어조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기분이 나빠졌다. 분명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경멸과 조소가 감추어져 있었다. 또래보다 영악한 그는 예민한 감각으로 이 리처드라는 대공이 결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은근히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리처드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고조될 무렵, 샤를이 연회장 입구에 나타났다.


샤를을 처음 본 프레이르의 인상은 아버지를 만났다라는 것보다 이 나라의 국왕을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당당한 얼굴, 고귀함이 묻어나오는 행동거지, 그리고 강한 의지가 묶여 있는 입술은 자신감과 높은 긍지가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프레이르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그의 야심만만한 푸른 눈이었다. 프레이르는 자신과 꼭 닮은 그 눈이 이토록 정열적인 야망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샤를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젊은 국왕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그의 눈으로 뿜어내고 있었는데 프레이르는 그 눈에 압도 당하는 것 같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어렸을 적 샤를을 보았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프레이르는 생각했다. 샤를은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고 왕이 되어야할 존재라고. 샤를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도 운명이라는 신은 그를 국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묻어나오는 야심과 야망, 강철 같은 의지는 이 나라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 했고 그 어떤 이도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 이 나라의 국왕이었다.

샤를은 장중한 걸음걸이로 연회장 중앙으로 다가왔다. 식탁에 앉아 있는 가족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샤를에게 인사했고 그 곳을 지키고 있던 시종들과 시녀들은 모두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여유있는 태도로 그 인사를 받으며 가장 먼저 프레이르에게 다가왔다.

“너의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궁성에서 너를 보게 되니 짐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아벨 신께서 너에게 무한한 축복을 내리시길 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프레이르의 머리를 껴안아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프레이르를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치 프레이르에게서 레아첼의 향기를 느끼는 것처럼... 프레이르는 이 애정 어린 목소리에 퍼뜩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인정할 수 있었다. 자신이 왕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은 이 위대한 국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꽤 긴 시간이 지나고 샤를은 프레이르를 놓아 주었다. 프레이르는 뒤로 물러나 샤를에게 인사했다. 가까이서 보니 샤를의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이 더 강하게 느껴졌지만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봄날의 바다처럼 잔잔해졌다. 그리고 프레이르는 포르테빌이 일러준 대로 답례했다.

“긴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께서 제게 내릴 축복이야말로 아버지께로 돌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다시 한걸음 성큼 다가가 샤를을 꼭 껴안았다. 포르테빌과 시종장은 이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 샤를은 그런 프레이르의 모습을 천진난만한 아이의 행동으로 여긴 모양인지 다정하게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한 광경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15년의 시간을 넘어서 마침내 재회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재회를 바라보며 엘리스는 가슴이 아팠다. 어려서부터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서 이곳저곳에 시집 보내진 가련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이런 쓰라린 감정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가슴에 가시가 박힌 듯 너무도 아팠다.

본래 그녀는 샤를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나 오빠인 레스터 공작에 대한 원망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으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레스터 공작의 여동생인 그녀는 귀족답지 않게 여리고 모질지 못한 심성을 지녔기 때문에 프레이르에게도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었고 최대한 다정하게 그를 대했다. 그러나 전처의 소생인 프레이르에게 보여주는 샤를의 애정표현을 보며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은 질투나 미움이 아닌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었다.

샤를은 그녀의 친아들인 아르첼에게는 결코 저런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샤를은 아르첼의 이마에는 결코 키스하지 않았다. 그녀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샤를이 이미 죽어버린 여인을 살아있는 아내인 자신보다 더욱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성이 유순한 그녀는 그 모든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스스로의 상처를 숨기고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르첼을 외면하며 프레이르를 사랑하는 샤를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총애를 얻지 못해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아르첼을 보며 속으로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어버려 불행한 운명을 살게 될 아르첼을 생각하니 그녀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샤를이 진정한 국왕이었다면 그녀는 진정한 왕비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재회한 이런 경사스런 잔치에서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심을 유지하며 잔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건배하기 위해 잔을 들었다. 아르첼 또한 앞에 놓여져 있는 잔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폐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건배를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엘리스의 말에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족을 위해.”

그녀의 선창을 따라 일동이 복창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그들은 건배하며 함께 와인을 마셨다.


저녁식사가 끝나갈 즈음 한 시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샤를에게 다가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우물쭈물 서 있었다. 샤를이 가족 간의 식사를 방해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프레이르와의 재회로 기분이 좋은 샤를은 너그럽게 그 무례를 용서하며 시종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했다. 시종은 무릎을 꿇으며 샤를에게 보고했다.

“홀트 백작이 국왕 폐하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긴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답니다.”

“그 내용은?”

“프레이르 전하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폐하를 뵐 때 보고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샤를과 프레이르는 ‘프레이르’라는 말에 놀라 시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예상대로 시종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프레이르는 그 시종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캐내는 것을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홀트 백작의 보고로 인하여 결국 오늘의 저녁 식사는 후식을 앞두고 중단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홀트 백작이 저녁 식사를 끊으면서까지 보고해야한다고 여길 정도라면 상당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포르테빌, 자네는 짐을 따라오고, 부인은 프레이르와 아르첼과 함께 식사를 마친 다음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시오. 리처드 자네에게는 부인을 부탁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엘리스는 공손히 샤를에게 대답했다. 리처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샤를은 다시 프레이르에게 다가왔다.

“처음 함께 하는 저녁식사인데 아쉽게 되었구나. 미안하다. 앞으로 자주 이런 시간을 가질 것이니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언제나 폐하께서 초대해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프레이르는 투정을 부리지 않으며 어른스럽게 인사했다. 샤를은 다시 애정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프레이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랜 그는 곧 포르테빌 대공과 함께 홀트 백작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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