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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신교 소교주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민낯
작품등록일 :
2020.03.09 18:40
최근연재일 :
2020.04.13 23:19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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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93
추천수 :
1,304
글자수 :
194,641

작성
20.04.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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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4화. 사일검법.

DUMMY

34화.


서화영이 표정을 한껏 일그러트렸다. 콧잔등에서 시작된 주름이 눈가까지 씰룩이며 이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심장은 빠르게 쿵쾅이고 있었고, 치솟는 열기는 이성을 어지럽게 했다.


‘···낯선 사람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저자가 할아버지를 죽이러 온 흉수였다니! 도대체 왜 아무 죄 없는 우리 가족을···.’


문득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까지 죽여놓고서, 이제는 노쇠한 할아버지의 목숨까지 빼앗으러 오다니.


옆을 보니, 가여운 할아버지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화영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더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어. 내가 지켜낼 거야.’


서화영이 이를 아득, 악물었다. 그러고는 앞을 주시했다. 종남의 검객이 눈에 들어왔다.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자세.


놈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눈을 한 번 끔뻑이면 검이 출수하고 있을 것 같았다는 말이다.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먼저 움직인 것은 뜻밖에도 서화영이었다.


“숙여요!”


그녀는 별안간 외치면서,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화로 속, 쇳물이 가득 담긴 통을 지탱하는 고정쇠였다.


빠각.


그것이 부서지면서 쇳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였으나, 쇳물이 한 번 바닥을 훑고 지나간 후에는 크게 달라졌다.


쇳물이 적당히 식으면서 급한 경사의 비탈길이 생겼고, 그 위를 다시 쇳물이 빠르게 미끄러졌다. 마찰은 없는 것과 같았다.


푸시식.


그리고 쇳물은 열기를 식히기 위한 웅덩이의 물과 만났고, 수증기를 뿜어내 자욱하고 뿌연 연기를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시야는 바로 코앞도 살피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이미 서화영은 달리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일문소를 거칠게 안은 그녀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아아악!”

“할아버지, 쉿! 제발, 조금만 참아요!”

“···그, 그래. 알았다.”


고통을 호소하는 일문소를 조용하게 만들며 서화영이 출구로 향했을 때였다.


안개가 빠져나가는 그곳으로, 언뜻 조금 짙은 형체가 보였다. 사람의 형상. 그것은 아마도 종남의 검객이었다.


파천성은 서화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무엇보다 먼저 출구부터 점한 것이다.


안색이 어두워진 서화영. 그녀가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다른 출구는 없어요?”

“···열을 가두려고 다른 출구는 만들어 놓지 않았다.”

“이럴 수가.”


서화영은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수를 낼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러야 하나?’


이미 소란이 충분히 났지만, 소리를 내지르면 인파가 더욱 빠르게 몰려들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냉큼 달려와 봤자, 무공을 모르는 대장장이들.


“···이길 수 있을까.”


남은 것은 파천성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뿐이었기에, 자연히 그러한 속마음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서화영의 중얼거림을 들은 일문소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다.”

“네? 방법이 있어요? 어떤?”


서화영이 놀라서 고개를 돌렸는데, 어쩐지 일문소의 얼굴은 전에 없던 악독함이 서려 있었다.


*


안갯속의 파천성은 기감에 집중했다.


이미 탈출로는 봉쇄한 상태. 이제 어디서든 적들이 뛰쳐나온다면 단숨에 베어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귀찮게 되었군.’


서화영의 난입.


그것이 파천성에게 부담이 되었다. 그냥 죽여버리면 편할 것이었으나,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서갈혁의 존재가 눈에 밟힌 것도 있었으나, 이미 약속을 해놓고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말을 바꾸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았다.


“···.”


그때, 파천성의 예민한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속였어요. 원기가 상했다는 그 사람의 말이 맞았어요, 그래서 진기가 이어지지 않았던 거라고요.”

“이런, 배은망덕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불처럼 화내는 일문소의 고함. 그것에 충격을 받은 듯, 잘게 떨려오는 서화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죽인 종남파에게 복수를 하자고, 그러셨잖아요···.”


얼마 간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있던 파천성은 그것으로 대강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매화검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화산의 심법을 수련한 사람이 진원진기를 검에 쏟아붓는 것에서 시작된다.


본인의 무공과 수명을 대가로 하여.


지금 둘이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종남파를 부모님의 원수라고 속여, 핑계 삼아 매화검을 만들어냈던 모양이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겠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눈속임을 하여 서화영을 속였을 것.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매화검이 있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보다 더한 것.


아마도, 파천성을 상대하기 위해서 아예 정말로 검에 진원진기를 모조리 쏟아부으라는 주문을 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서 서화영은 일문소가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고.


‘다행이군. 일이 잘 풀리겠어.’


파천성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도 둘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위치를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파천성이 다다르자, 둘은 즉각 대화를 멈췄다. 딱히 발걸음 소리를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탓이다.


“노, 놈이다, 놈이 왔어!”


파천성이 사일검법을 펼쳐내려는 순간, 서화영이 그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파천성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봤다.


이미 서화영은 제 목숨을 대가로 검을 벼려낸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런 와중에도 저렇게 말다툼을 하고있는 것일 텐데.


“왜 막으시오? 일문소가 소저한테 저지른 행동을 확인하지 않았소?”

“···그래서요? 할아버지를 당신께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인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소저의 조부는 따로 있소.”


서화영에게는 충격적인 발언이겠으나, 파천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비키시오.”


서화영이 황당해 하는 틈을 타, 파천성이 크게 일 보를 내디뎠다. 검이 뽑히고, 무언가 번뜩이는 순간.


“안···.”


서화영이 급히 움직였으나, 이미 출수된 파천성의 검을 막아낼 정도의 실력은 물론 아니었다.


그랬다면 일문소와의 말다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파천성의 검은 공간을 압축시키며 일문소의 목을 꿰뚫었다.


검속이 어찌나 빨랐던지, 일문소는 제 죽음을 의식하지도 못 하고, 그저 서화영에 대한 분노로 물든 표정이었다.


일문소의 죽은 몸뚱아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서화영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할아버지!”


파천성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이었다. 배신을 당해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다는 것일까.


서화영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파천성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애처롭게 보였다.


전력을 다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한테 이렇게 아무렇게나 덤벼드는 것은 자살을 시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파천성은 슬쩍 피한 뒤에, 그녀를 잡아채고는 바닥에 패대기쳤다.


“···끄으.”


머리에 충격을 받은 서화영이 입을 떡 벌린 채로 정신을 놓치고 혼절해버렸다. 치아가 부러진 것인지 피가 실처럼 이어졌다.


-사 대주! 화산의 무인들이 그곳으로 향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들려오는 주예설의 전음.


-도주해야 하니까, 이제 나오셔야 해요. 어? ···어어? 어, 어디로 가십니까? 그쪽은 화산의 무인들이 오는 방향이라고요!


파천성은 반복되는 주예설의 전음을 무시했다. 화산의 무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


“잘 됐어.”


언제 화산의 제자들을 더 죽일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이번 기회에 최대한 적의 전력을 깎아 놓는 수밖에.


게다가 사일검법까지 익혔으니, 적들을 교란시키기에 아주 충분했다.


파천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신형을 쏘았다.


‘두 명이로군.’


기감에 감지되는 기는 둘. 제법 정심한 기운이었지만, 파천성이 감당하지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저 멀리서 하얀 무복을 차려입은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파천성은 즉시 경공을 멈추고, 단조롭게 걸었다.


“잠깐! 안쪽에서 누가 나오는데?”

“누구시···.”


서로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고. 파천성은 그들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공했다.


두 명의 적.


파천성이 가진 이점이라면, 선수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적은 파천성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불리한 점이라면 상대가 둘이라는 것과 파천성이 쓸 수 있는 무공이 사일검법으로 한정된다는 것일 터.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니까.’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파천성이 검을 출수했다.


“···끄으윽.”


가래 끓는 소리. 녀석은 제법 고련을 거친 무인인 터라, 검끝을 본 듯했다. 완벽히 피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목이 꿰뚫린 이상, 죽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벌써 한 명이 죽었다.


“···.”


적이 가진 이점은 사라졌다.


둘은 하나가 되었고, 파천성이 사일검법에 매료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놈! 감히 우리 사형을···!”


남은 다른 무인이 검을 펼쳤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검공이었다. 이른 봄에 꽃이 한가득 만발하는 느낌.


하지만 화려하기만 한 검법은 결국 번뜩이는 쾌검에 갈가리 찢겨버렸다.


*


주예설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임무는 성공적이었다.


본래의 목표인 일문소는 물론이고, 그를 마중하러 온 화산의 제자들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안 그래도 원래 골이 깊었던 화산과 종남이다. 주예설은 이번의 사건으로 그들의 불화가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잖아.’


파천성의 공이 컸다. 앞뒤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면이 의외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주예설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킬 때였다.


툭.


뒤에서 들린 인기척에, 주예설이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죽였어? 확실히 처리했겠지?”


우당탕.


대답 대신에, 무언가가 날아와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것은 잘게 몸을 떨더니 곧 기절했다.


주예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날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녀의 수하였던 것이다.


“너!”

“누굴 죽인단 말이오?”

“···!”


발끈하여 일어났던 주예설이 상대를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사, 사대주?”

“서화영은 건드리지 마시오.”

“···그녀는 지금 혼절해있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일 수 있을 거예요. 아주 쉬운 일이 될 거에요.”


파천성과 상의하지 않고 움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주예설은 잠시 찔끔하였지만, 의문을 담아두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가 종남파의 제자인 줄로만 아는 사람이오. 그니까 사일검법의 흔적 말고도, 중요한 증인이 될 터.”

“···.”

“우리가 화산과 종남의 반목을 위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아, 알았어요.”


주예설이 대답했다. 전적으로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사일검법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고.


한 번 실수를 경험한 주예설은 어떻게든 변수를 줄이고 싶었다.


“내버려두시오.”

“···알았다고요.”


재차 말을 반복한 파천성이 사라지고, 다른 수하가 조심스레 주예설에게 물었다.


“어쩔까요?”

“···.”


어쨌든 이곳에 파견된 무력대는 이 대였고, 그들은 주예설의 명령만을 따른다.


잠시 고민을 하던 주예설이 입을 열었다.


“···그냥 냅둬.”

“존명.”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뱉은 말. 그런 주예설의 눈에는 살짝 질린 기운이 내비쳤다.


그동안의 행적으로 보건대, 파천성은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괜히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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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화. 화산파, 장공잔도. +3 20.04.13 884 23 12쪽
» 34화. 사일검법. +3 20.04.12 985 20 12쪽
34 33화. 일문소. +1 20.04.11 1,085 21 14쪽
33 32화. 서화영. +4 20.04.09 1,255 24 14쪽
32 31화. 비무, 환검. +2 20.04.08 1,318 28 13쪽
31 30화. 수난의 연속. +3 20.04.07 1,494 29 12쪽
30 29화. 도박장. +2 20.04.06 1,526 28 12쪽
29 28화. 청무문주. +2 20.04.05 1,650 31 11쪽
28 27화. 노인과 제자. +3 20.04.04 1,695 31 12쪽
27 26화. 만상무극불사공. +2 20.04.03 1,779 29 12쪽
26 25화. 흑혈수 장굉. +2 20.04.02 1,672 35 12쪽
25 24화. 천마신교의 손님. +2 20.04.01 1,698 34 12쪽
24 23화. 취장호. +2 20.03.31 1,753 28 12쪽
23 22화. 주예설. +2 20.03.30 1,830 33 13쪽
22 21화. 귀천대도. +2 20.03.29 2,036 32 12쪽
21 20화. 화월루. +2 20.03.28 1,988 33 13쪽
20 19화. 사 대주. +2 20.03.27 2,101 31 13쪽
19 18화. 섬서지부. +2 20.03.26 2,180 36 12쪽
18 17화. 적염혈기공. +1 20.03.25 2,232 35 13쪽
17 16화. 주인을 몰라보는 미친개. +1 20.03.24 2,251 31 13쪽
16 15화. 새로운 다짐. +2 20.03.23 2,241 39 13쪽
15 14화. 파천성이 잘하는 방식. +3 20.03.22 2,280 41 13쪽
14 13화. 내기를 제안하다. +2 20.03.21 2,246 39 14쪽
13 12화. 무영신투 서갈혁. +2 20.03.20 2,308 41 13쪽
12 11화. 날아드는 생사첩. +1 20.03.19 2,304 38 12쪽
11 10화. 명령에 불복하면 죽음뿐이다. +2 20.03.18 2,478 44 12쪽
10 9화. 흡성대법. +2 20.03.17 2,444 41 12쪽
9 8화. 삼관에 입관하다. +2 20.03.16 2,567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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