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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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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3.0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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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재회

DUMMY

천지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황금마티즈를 타고 있었는데, 운전대는 비둘기가 잡고 있었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을 할 겨를조차도 없었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어이없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비둘기라니. 비둘기가 운전을 해?

아니지. 애초에 가게 앞으로 황금빛 우산을 쓴 채 온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짝짝, 뺨을 두어 번 때려봤지만 꿈은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유스티오가 너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했다구구.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거기도 괜찮은 곳이다구구.}


비둘기가 말을 하고 있다.

이쯤 되니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탄 것쯤이야 별 것도 아닌 일 같았다.

그나저나, 그건 그렇고.


"......유스티오?"

{아, 이젠 상관없으니 말해도 될 거다구구. 너랑 수영장 데이트 한 그 놈이 유스티오다구구.}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둘기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 지경이다.

수영장 데이트라면, 김정의를 말하는 것인가?

그 사람 이름이 유스티오라고?

혹시, 혼혈이었나?

은은하게 이국적으로 생기긴 했지만, 한국말 아주 잘하던데.


'대체 무슨 일이......'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천지연은 몸을 움직여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검은 비가 미친듯이 내리고 있었다. 땅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들이 즐비했고, 자동차들은 형체도 없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사장님.'


아까 비둘기가 도착하기 전에 봤던 사장님의 모습. 땅에 있는 사람들의 죽은 시체와 흡사했다.

혹시 비? 비가 문제인가?

사장님은 비를 맞자마자 목숨을 잃었다.


'혹시 방사능?'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원전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요즘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방사능이라고 해도 비 조금 맞는다고 바로 죽나?

내가 방사능의 위력을 너무 얕보는 것일까?


'잠깐만.'


값비싼 하얀 벤틀리 한 대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천지연은 의뭉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 차는 안 녹지?'


이 의문은 곧 사라졌다.

애초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다. 게다가 그 자동차를 인간 말을 하는 비둘기 한 마리가 운전하고 있고.


'......이상할 것도 없겠네.'


그런 자동차인데, 다른 자동차들처럼 안 녹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다 왔다구구!}


전무후무한 역대급 재앙이 닥친 땅을 내려다보며 비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그때, 비둘기가 말했다.


{네가 본 적 있는 사람도 있다구구!}


어느새 차는 한 대형마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킹마트는 아니었고,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마트였다.

천지연은 당연히 차량이 주차장으로 갈 줄 알았으나, 생각해보니 주차장은 현재 침수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럼 맨 위에 있는 옥상 주차장밖에는 없을 텐데.


{내려라구구!}


왜 공중에 주차를 한 걸까? 나보고 여기서 내리라고?


"내리.....라고요?"

{아, 맞다. 너는 인간이지? 내가 까먹었다구구. 인간은 마법을 쓸 수 없지구구.}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싶은 찰나.


"으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나타난 황금빛의 옅은 바람이 천지연의 전신을 휘감더니, 곧 그녀 주위를 회오리바람처럼 맴맴 돌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는 그 순간,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뜬 천지연은 어느 새 마트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뭐, 뭐야...?'


마트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밖에 있던 비둘기 역시 언제 들어왔는지 천지연의 옆에 있었다. 공중에 둥둥 떠있던 자동차는 사라진 채였다.

아니.


{어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구구.}


비둘기의 손에 들려있었다.

정확히는, 장난감처럼 아주 작아진 황금마티즈가 들려있었다.


".....천지연 씨?"


천지연이 여전히 혼란을 느끼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김정의와 만났을 때, 몇 번 봤던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정중재라고 했던가.


"역시 맞군요."

"다, 다들 왜 여기 있는 거죠?"


정중재가 하늘을 가리켰다.


"비 때문이죠."

"비.....라고요?"

"이미 대강 눈치 채셨겠지만, 저 비는 보통 비가 아닙니다."

"방사능 비 아닌가요?"

"차라리 방사능이면 이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았을 겁니다. 저 비는......"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정중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같은 인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으로 만들어진 비입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천지연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인정을 해야 했다.

아무리 이건 거짓말이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울부짖어봐야, 눈 앞에 닥친 현실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올 뿐.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인간을 죽이고 자동차를 녹이는 검은 비.

말 하는 비둘기와 마법.

그리고.


'유스티오, 라고.....?'


진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

이 모든 일은 그 남자와 연관된 일인 걸까?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중재가 말했다.


"저 비는, 형님과는 상관없는 비입니다. 형님이 한 짓이 아니에요."


천지연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김정의가, 그러니까 유스티오라는 그 남자가 이런 짓을 벌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건데?'


나는 인간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한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결국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


'신?'


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마법사?'


머리가 복잡했다.

도대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정의 씨.'


그분은, 그 남자는 괜찮은 걸까?


*

*

*


지금쯤이면 피죤이 천지연을 데리고 마트로 가 있겠지.


쏴아아아아아아-


비는 여전했다.

더 내리면 내렸지, 덜 내리진 않는다.

이미 거의 대다수는 침수된 상태.

길거리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자동차들 역시 마찬가지. 모두가 녹아내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빗속을 해치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기운, 그 익숙한 기운의 출처를 찾아 달려간다.

전신을 신성마법으로 휘감아 저 검은비로부터 보호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건 아픈 거다. 나는 인간들처럼 전신이 녹아내려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까지는 견딜만한 정도랄까.


'...프라우스.'


아주 오래 전,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 발생한 한 사건이 있다.

예언에도 나왔었다시피, 프라우스는 신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눈에 띄던 존재였다. 외모는 물론이요, 실력이 아주 뛰어났던 것이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다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으니, 그 중에서 프라우스가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


물론 다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나 눈에 띄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바닥을 드러내고 말 거라고. 더 이상의 천재성은 보이지 않을 거라고.


'개소리였지.'


그러나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프라우스의 실력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거나 정체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놈은 새로운 마법을 발견하거나 개발하기까지 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놈이 만들어낸 여러가지 마법 중 몇 개는 디케교의 사제들도 종종 애용하곤 했다. 녀석의 마법 실력은 그만큼 뛰어났으니까.

마법주문 하나를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과 각고의 노력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마스터사제들도 마법주문 하나 만드는 데 최소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프라우스가 얼마나 뛰어난 지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조심하거라, 프라우스.


그런 프라우스에게 마스터께서는 충고하셨었다.


-너의 그 똑똑함이, 너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법이니.


물론 프라우스가 그분의 충고를 들을리는 없었다. 실제로도 듣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프라우스의 마법실력은 그 한계를 모르고 쑥쑥 자라났지만, 그와 함께 자라난 자만심 또한 비례하게 자라나고 말았다.


-인간들을 더 쉽게 심판할 수 있도록 개발한 마법이야.


그것은 사실상 흑마법이었다.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디케교의 사제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프라우스는 저질러 버리고 만 것이다.

놈이 말한 그 심판이란 것도 어이가 없었다. 사실상, 아주 간단하거나 별 거 없는 사소한 죄를 저지른 인간들도 다 죽여버리는 마법이었으니까.


결국 꽤 여러 번 피데스와 다른 원로사제들에게 꾸중을 듣고서야, 그 마법들을 없애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프라우스가 어찌나 울면서 반성하던지, 피데스도 다른 원로 사제들도 프라우스가 다시 선한 길로 들어섰다고 믿었었지.


어리석게도, 나 역시 그렇게 믿었었다.

하지만 믿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반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라우스는 신학교 도서관에 위치한 금서구역에 몰래 들어갔다.

신학생들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건만, 프라우스에게 그딴 시시한 규칙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지.


어쨌거나 그곳에서 놈은 금서 하나를 발견했고, 그 금서를 이용해 만든 궁극 흑마법이 바로 이 '검은비' 마법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은비 마법.

금서를 몰래 읽었다는 것을 들킨 후, 프라우스가 피데스에게 내민 변명은 다음과 같았다.


-이 마법은 인간들이 악에서 벗어나 선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줄 겁니다.

-인간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마법 아니더냐?

-결국 인간들은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놈들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울며 떼스지만, 용서해 줘봐야 결국 다시 죄를 저지르고 말지요. 인간들은 이미 글러먹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도 나약하고 보잘것 없어서, 그들에게 자유의지 따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이 마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더냐?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그냥 인간들을 쓸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이 지상에 있는 악은 모조리 사라지겠지요. 인간들이 죽을 테니까요.

-......인간들이 모두 멸종함으로서 악을 없애버리겠다는 거냐?

-그렇지요, 드디어 이해를 하셨군요! 악을 없애면 선만 남게 되지요. 검은비 마법은 악에 좀 더 손쉽게 대항할 수 있는 혁명적인 마법인 겁니다!


물론 피데스는 물론이요, 다른 원로사제들이 프라우스의 손을 들어줄 리 없었다.

애초에 프라우스의 주장은 궤변,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나 프라우스 역시, 가만히 있을 놈은 아니었다.

결국 놈은 자신에게 벌을 주려는 피데스와 원로사제들을 피해, 어딘가로 사라졌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놈은 마신에게 갔던 모양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신이 디케교에 쳐들어 왔고.

디케교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쏴아아아아아아아-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검은비 마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완전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보긴 봤다. 프라우스가 디케교를 배신하고 떠나기 전에, 놈이 피데스와 다른 원로사제들에게 들키기 전에 나에게 먼저 그 마법을 보여줬었으니까.


-대단하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다. 멍청했다.

조금만 더 솔직해져볼까. 어쩌면 이건 일종의 고해일 수도 있다.

프라우스가 그런 놈이라는 것을 알기 전, 나는 놈을 동경했었다. 이유는 있다. 나는 재능이 없었지만, 놈은 재능이 흘러넘쳤으니까. 군계일학인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놈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보였겠는가.


그래서였나.


-대단해! 이거라면, 재판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역시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나는 놈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너는 왜 나에게 검은비마법에 대해 제대로 안 알려줬던 거지?

나에게는 인간들을 모조리 죽인다고 하지 않았었잖아.

만약 그랬었다면, 내게 네가 솔직하게 말만 해줬더라면.


-마스터, 프라우스의 마법은 혁명입니다! 왜 말리시는 겁니까?

-유스티오.

-마스터께서 나이를 먹어 판단이 흐려지신 겁니다. 왜 어리석은 말씀을 하시고 그러십니까?


내가 마스터에게 그 따위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마스터께 그런 말 하지 않았을 텐데.


"유스티오."


미친듯이 내달리던 내 두 다리는, 어느 새 멈춘 채였다.

사실, 언제 멈췄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 뿐.


"오랜만이야."


바로 프라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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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어떻게든 해결해드립니다 24.02.26 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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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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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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