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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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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2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0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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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신들의 의리

DUMMY

짜악-


나는 조용히 내 뺨을 쳤다.

오른쪽 볼기가 얼얼한 것을 보아하니 역시나 꿈은 아닌 모양인데.


{왜 갑자기 자학을 하고 그러시나요?}


눈 앞에 있는 이 붉은색의 물고기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본다.

녀석이 조개껍데기 침대 옆에 있는 탁자 위에 가져온 것을 올려놓았다. 신선한 우유와 고소한 빵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닷속에서 빵과 우유라. 굉장히 이질적인데.


"......이봐 물고기, 여긴 어디지?"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의 질문에 물고기 녀석이 둥그런 입을 움직였다.


{제 이름은 물고기가 아닌데요.}

"물고기가 맞긴 하잖아?"

{전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에요. 어족(魚族)이라고요.}


......그게 그거잖아. 물고기나, 어족이나. 다 똑같은 물고기 아냐?

아무래도 아닌 모양인지, 물고기 녀석이 지느러미를 크게 부풀렸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아가미 속 보인다.


{저희 어족은 지성이 있단 말입니다! 기억력이 몇 초 밖에 되지 않는 보통의 무지성물고기들과는 전혀 다르죠!}


그래, 알겠다. 그 작은 머리에 든 조그만 뇌가 얼마나 훌륭한 지성을 발휘할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건 그렇고, 바다에 이런 놈들도 살았었던가?


{아무튼, 제 이름은 어류예요.}


.....어류라고?

'어차피 물고기에유'의 줄임말인가?


"그래, 어류."


뭐, 됐다. 이름이 어류든 지류든 뭔 상관이랴.


"여기가 어딘지 말해줄 수 있나?"


질문하며 탁자 위에 놓인 빵을 씹었다. 고소한 버터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우유도 한 모금 마셨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여긴 넵투누스 신전이에요.}


넵투누스신전?

잠깐만, 그럼 설마?


{포세이돈님을 모시는 신전이지요.}


설마하니 한국에서 넵투누스신전에 오게 될 줄이야. 인생은 모르는 거라더니.


{갑자기 신전 쪽으로 누군가 떨어졌어요. 포세이돈님께서는 우선 신전 안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침입자일지도 모르니 우선 잡아둬야 한다는 얘기잖아.

나름 심각한 상황이건만, 유덱스는 여전히 쿨쿨 잘만 자고 있었다.


쯧, 그보다.

포세이돈이라. 그 신을 잘만 이용하면, 어쩌면......


{포세이돈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참 빨리도 전한다.


{이곳 넵투누스 신전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딱히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오게 될 줄도 몰랐고."


어류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내 말을 의심하는 거냐.

아니, 그 전에 물고기한테 왜 눈썹이 있어? 너네 평생 눈 못 감고 살잖아?


"진짜야."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해야겠는데.

나는 어류에게 부산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밖에는 상급마인이 있고, 마신이 어떤 짓을 하려고 했는지, 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거 심각한 일이군요.}


나의 말을 전부 귀담아 듣던 어류가 지느러미를 꼬며 말했다.


{아무래도, 포세이돈님께 직접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어류는 밖으로 나갔다.

녀석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덱스가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뭐야...... 여기..... 여긴 어디......?"


뭐긴 뭐야. 물 속이다.

유덱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10분이 넘는 시간을 사용해야만 했다.

내 말을 끈기 있게 듣던 유덱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둘 힘 만으로는 상급마인을 상대할 수 없어."


나 역시 유덱스의 말에 동의한다.

최소한 상대가 중급마인이라면 모를까. 하급사제와 중급사제의 격의 차이가 어마무시하듯이, 상급마인과 중급마인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나는 이번에 처음 상급마인을 상대하는 거니까, 더더욱 어렵지.


"포세이돈을 설득해야 해."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나의 물음에 유덱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설득할 수 있을까?'가 아니야. '설득해야'해."


설득이라. 말이 쉽지.

포세이돈이라 하면 올림포스에서 나름 격이 높은 신들 중 한 명이다.

다른 신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이다.

게다가 자존심은 얼마나 드높으신지, 좀처럼 말을 잘 들어먹는 법이 없는 신인데.

그나마 제우스 보다는 상대하기 쉽겠지만, 그래도......


{어서 나오십시오.}


그때였다.

밖으로 나갔던 어류가 돌아왔다.


{포세이돈님께서 여러분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

*

*


밖으로 나와서 본 신전은 거대했다.

사실 디케교의 사제로서 포세이돈 신전에 온 것은 처음이다.

사제들이 다른 신을 모시는 신전에 가면 안 되는 법이 있는 건 아닌데, 굳이 갈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디케교와 포세이돈교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니까.

물론, 제우스를 모시는 주피터신전에는 가본 적이 있긴 있다. 아무래도 호라이 여신들과 제우스는 나름 연결되어있는 사이니까.


"그건 그렇고, 여기 물 속 아냐? 그러니까, 바닷속이잖아?"


신기한듯 주변을 살피던 유덱스가 내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숨을 쉬고 있을 수 있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우린 진작 죽었어야 하잖아?"

"쉽게 말해서 바닷속에 또 다른 도시가 있는 셈이야. 포세이돈이 부리는 마법을 굳이 이해하려고 들진 마. 여긴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어."


물론 나 역시 신기했다. 굳이 티를 내진 않았지만.

유덱스에게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신기하지 않은가? 이곳 포세이돈 신전은 물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쉴 수 있으며, 또한 물 속에서 걷는 것처럼 몸이 무겁지도 않았다. 마치 육지에서 움직이듯 가벼운 몸놀림.

이런 신전을 만들어낸 포세이돈도, 분명 보통은 아닌 신이다.


{만나서 반갑네, 디케교의 사제들이여.}


우리 둘은 어느새 포세이돈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드높은 푸른색의 왕좌에 앉아있었는데, 모습은 마치 인간과 흡사했다.


'가짜로군.'


저 모습은 진짜 '포세이돈'이 아니다. 가짜다.

나 역시 디케여신님의 진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아무리 신성력을 품고 있는 사제라고 한들, '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살아남기는 어려우니까.

그러니 포세이돈은 우리 둘에게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우릴 죽일 생각은 없는 게지.


{무례합니다! 무릎을 꿇으십시오!}


감히 신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류가 우릴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 본래 사제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에게만 무릎을 꿇지. 저들은 디케교의 사제가 아닌가. 내버려 두어라}


아무리 가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역시 신은 신인 모양이다.

포세이돈이 우릴 공격할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을 한 번 내저을 때마다 강한 물살이 느껴졌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그대로 넘어질 것 같았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줘야겠지.}


순간 포세이돈의 눈이 번쩍였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푸른빛을 정면에서 마주한 나는, 순간 발을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는지, 내게 이야기해주겠나?}


말투는 부탁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명령이다.

신들은 절대 인간이나 사제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친절한 듯 굴어도, 그들은 '신'이다. 부탁을 할리가 없다.


...호라이 신전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다 알고 있을테니,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한다.

어차피 신을 속여봐야 내게 좋을 것도 없으니까.


{......그렇군.}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포세이돈이 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의 푸른 안광을 다시 마주하기 전에, 나는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우리는 그대들이 침입자인 줄 알고 처형하려고 했으나, 그대들이 디케교의 사제들이라는 것을 알고 형을 중지했네.}


......인간이었으면 꼼짝없이 목이 뎅겅, 잘렸겠군.

생각해보면 진짜 너무하지 않던가. 남의 땅에 발 좀 들이밀었다고 죽이다니. 인정머리없는 신 새끼들 같으니라고. 하여간 신들은.


{디케교의 사제를 그냥 보낼 수는 없지. 그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라고 내 알리겠네.}

".....포세이돈이시여."


나의 말에 왕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포세이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의문이 가득한 표정. 내가 말을 하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지.


{무슨 일인가, 디케교의 사제여?}

"당신께 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포세이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곁을 보좌하던 어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짜 물고기가 왜 눈썹이 있는 걸까. 아무튼.


{청하고 싶은 것?}


인간이든 사제든, 우리들은 언제나 신에게 '기도'를 한다.

기도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에 대한 찬양, 찬미, 찬가. 혹은.


"예."


부탁, 요청, 소원.

아마 대다수의 인간들과 사제들은 신에 대한 찬미가 담긴 기도보다는, 부탁이나 소원에 관한 기도를 더 많이 할 터.


{......디케교의 사제가 외부의 신에게 청할 것이 있다라......}


조금은 당황스럽다는 저 반응.

포세이돈의 저런 반응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은, 개신교 신자가 뜬금없이 힌두교의 신에게 간청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내가 만약 포세이돈교의 사제였다면, 포세이돈이 저런 반응을 하진 않았겠지.


......아니지.

애초에 내가 포세이돈교 사제였다면 지금 이러고 안 있겠지.

젠장.


{재미있군.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다행히 화를 내진 않았다. 대신 어류의 표정이 일그러졌을 뿐이다.


{내게 무슨 청을 하고 싶은가, 디케교의 사제여?}

"이 바다 위에 상급마인이 나타나 인간들이 사는 땅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래. 그대가 내게 그렇게 말했었지.}

"저 마인을 그대로 두게 된다면, 인간들은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마인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제게 빌려주십시오."

{그대들은 디케교의 사제들이 아닌가? 내 알기로 디케교의 사제들은 무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저희 둘은 중급사제에 불과합니다. 상급마인과 저희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상대하기 버겁습니다."

{흐음......}


포세이돈이 자신의 긴 푸른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신들은 다른 신들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법.}


.....저런 말을 할 것 같았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원래 디케여신에 관한 일은 디케교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법이고, 아테나여신에 관한 일은 아테나교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법이다.

포세이돈교 역시 마찬가지. 굳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디케교에 신경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테미스여신께서는 내 형제의 고모이시지.}


.....테미스?


'아!'


그제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호라이 세 여신들이, 누구에게서 나온 여신들인지.


{내가 어렸을 때, 그분께서는 나를 참 귀여워해주셨지. 내게 있어서는 어머니처럼 가까운 분이셨다.}


테미스.

현재 가장 큰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나신 분.

그러니 포세이돈보다도 더 격이 높은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포세이돈은.


{내 도와주도록 하지.}


나의 청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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