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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796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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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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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어떻게든 해결해드립니다

DUMMY

글램핑장사건이 있은 후 며칠 뒤.

나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천지연이 일하는 햄버거가게로 왔다.


-형님 그러다가 혈관 다 막혀서 죽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정중재의 건강을 걱정했었지만, 요즘은 반대가 된 듯하다.

녀석의 걱정이야 고맙게 받는다만, 나는 인간이 아닌 사제이다보니 혈관이 막힐 걱정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혈관이 막히고 싶다면, 햄버거를 먹을 게 아니라 마신과 싸우면 된다. 그러면 바로 막힐 테니까.


그런데.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갔지?'


햄버거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간 거지?


'전화를 해 볼까? 어라?'


설마하니 내가 햄버거 가게 주소를 모를리가 없고.

혹시 몰라 천지연에게 연락을 하려는데, 그녀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글램핑장사건 때문에 한동안 핸드폰을 안 들여다봤더니, 문자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햄버거 가게 사장이 장사 접었다고?'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니, 그럼 내 햄버거는?'


이제 난 어디서 햄버거를 먹어야 하나?


*

*

*


일자리가 없어진 후, 천지연은 자신의 애마나 다름없는 레이를 끌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 사건 때문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남긴 했지만, 다행히 잘 극복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평일 오전 시간대에는 유독 화물차가 많이 보였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거대 화물차량은 제한속도가 있기 마련. 천지연은 시야를 가로막는 화물차들을 요리조리 피해갔다. 뒤에서 달려봐야 좋을 건 없었으니까.


부우우우웅-


화물차가 여러 대 보이긴 했지만, 고속도로 자체에 차량이 많은 건 아니었다. 거의 뻥 뚫려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천지연은 망설임없이 악셀을 밟았다.

곧 계기판의 바늘에 숫자 100을 가리켰다. 제한속도가 110인 것이 아쉬울 정도로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이젠 다른 알바를 구해야 하나?'


전방을 주시하며 천지연은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일자리가 사라졌다. 심지어 사장은 알바생들에게 거의 통보식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다음 알바 자리를 준비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장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준비는 해 둘 필요가 있을 터.

역시 휴학기간 동안 좀 더 벌어놔야겠지.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기는 한데...... 아, 엄마아빠한테 다 썼지 참. 이런.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알바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든데.


"음."


대략 110의 속도로 달려가던 천지연이 답답한듯 중얼거렸다.


"비켜서 가야지 뭐."


그녀는 2차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 거대한 화물차량이 나타난 것이다. 아까까지는 안 보였던 것으로 보아하니, 천지연보다 먼저 출발했던 차량인 게 틀림없었다.

대형 화물차량의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었기에, 천지연의 레이 역시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딱히 욕할 일은 아니었다. 대형 화물차량들에게는 그들만의 속도규정이 따로 있으니까.


'1차선으로 가자.'


좌측 사이드미러를 확인한 후, 악셀을 밟으며 핸들을 살짝 틀었다. 곧 1차선으로 진입했고, 좀 더 속도를 밟은 후에 충분한 거리를 두고 다시 2차선으로 돌아왔다.


'이제 좀 낫네.'


속도가 느리든 어쨌든, 뭐가 됐든간에 앞에 거대한 화물차량이 있으면 운전 시 답답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 천지연의 이러한 행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행위이고, 딱히 불법도 아니다.

만약 천지연이 일명 '칼치기'로 들어왔다거나, 기타 위험한 행동을 했다면 모를까. 이건 욕 먹을 만한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뭐, 뭐야?"


한참 뒤에 있던 대형 화물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며 달려오더니, 레이 뒤에 바싹 붙었다.

백미러로부터 느껴지는 저 거대한 압박.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형용할 수 없는 그 공포감.


"왜 붙는 거야?"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긴 천지연이 서둘러 1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이제야 뒤가 좀 뻥 뚫렸구나, 하며 안심하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대형 화물차가 곧 1차선으로 따라붙었다.


왜 쫓아오는 것일까. 천지연은 다시 2차선으로 차선을 옮겼다.

아니, 옮길 수 없었다.

그녀가 차선을 옮기기도 전에 대형 화물차가 이미 2차선으로 옮겨, 그녀가 차선을 옮기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심지어.


"으아아아!"


뒤를 바짝 붙었던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붙기 시작했다.

현재 레이와 화물차가 달리는 속도로만 따졌을 때, 화물차가 레이랑 살짝만 부딪혀도 레이는 그대로 박살날 것이다. 어쩌면 그대로 밀려나서 빙글빙글 돌다가 다른 차랑 추돌할 수도 있다.


'내가 뭘 잘못했던가? 나한테 왜 저러지?'


사실상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녀는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화물차가 너무 바싹 붙는 까닭에 도망칠 구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핸들을 잡은 천지연의 두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초보였을 때도 안 나왔던 땀이 손에 가득 뱄다.

서울톨게이트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여기서 빠져야 하나? 하지만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가 없잖아!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고 있는데.


부우우우우우웅-


초식동물을 위협하듯 바싹 붙었던 대형 화물차가 청북IC에서 빠졌다.

그제서야 천지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축축하네.'


겨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자취방에 도착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양 손은 물론이고, 옷과 속옷까지 땀으로 푹, 젖어버렸다는 것을.


"으아아아아! 짜증나!"


그대로 침대에 엎어진 채 울분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화가 났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저번에 A7도 그렇고 날 괴롭히는 걸까. 나는 그냥 선량한 휴학생일 뿐인데.


'......제보를 해 볼까?'


고민스러웠다.

전지적 블랙박스 시점에 제보해도 괜찮을까?

제보자의 신상은 철저하게 지켜주신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전지적 블랙박스 시점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전블시에 제보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고.

좀 신기하고 어떻게 된 일인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해결이 된다고.


'.....좋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천지연은, 결심이 선 듯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

*

*


며칠 후.


-그럼 그 다음 영상입니다. 네, 제보자님께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계시네요. 와, 오전시간대인가요? 차가 없네요. 화물차가 몇 대 보이긴 합니다만, 뭐, 오전시간대는 대체로 화물차가 좀 있는 편이긴 하죠.


정중재의 라이브방송이 시작되었다.

천지연은 자취방 침대에 드러누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입에는 달달한 사탕이 물린 채였다.

곧 스마트폰 화면 속에 문제의 대형 화물차가 나타났다.


-제보자님이 화물차를 추월해서 갑니다. 그렇죠, 화물차 뒤에서 달리는 건 그닥 좋지 않습니다. 간혹 초보운전자분들께서 화물차 뒤를 따라가시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고속도로든 일반 도로든 화물차 뒤를 따라달리면 시야 확보가 안 되거든요. 그리고 화물차도 뒤에 차가 따라온다는 걸 인지 못할 수도 있어요. 서로를 위해서라도 화물차 뒤는 따라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게 안전해요. 그런데......


정중재가 말을 늘였다.

그 다음에 나온 장면 때문이었다.


-아, 이건 좀 아니죠. 여러분, 여러분도 보셨죠? 제보자님께서 위험하게 추월한 것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추월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물차가 좀 빡친 모양이네요. 아니 근데 저런 걸로 빡치면 일상생활 가능한가요? 이미 고혈압으로 병원 실려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너무하네요.


천지연은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다.

아직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시청자가 함께 욕을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나름의 위로가 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네, 맞습니다 여러분. 저런 사람은 면허 뺏어야죠. 죽을 거면 자기 혼자 죽어야지 남한테까지 피해를 주면 안 되죠. 하지만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제보자님께서 저 가해차주분께 사과와 보상을 받았다는 거죠.


천지연의 두 눈이 커졌다.

내가 보상을 받았다고? 차주한테도?

안 받았는데요?


-그 가해차주분이 피해자분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 죄송하다고, 심리적, 육체적 피해를 준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고, 제발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합의금을 받아달라고 했다더군요. 합의금 얼마 받았냐고요? 글쎄요, 정확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한 오천 만원 정도였다고 하네요.


댓글들이 난리가 났다.


-오천? 나도 협박해줬으면 좋겠다.

-한 번 협박받는데 오천이면 열 번 도 받을 수 있음.

-난 백 번 가능함.


띠리리리리-


그때였다.

유스티오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김정의]


잠시 스마트폰을 빤히 쳐다보던 천지연이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짧은 통화가 끝난 후, 천지연은 자취방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유스티오가 있었다.

아니, 유스티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남자도 있었다.

나이는 대충 50대 초반이나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평소에 관리를 잘 하지 않는 것인지, 수염이 덥수룩했다. 덕분에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지연 씨!"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길래, 나름 기대했건만.

처음 보는 남자가 있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여기 이 분이, 지연 씨한테 사과하고 싶답니다."

".....네?"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 보는 남자가 나한테 사과를?


"전 저 분이 누군지 모르는데요."

"지연씨가 보낸 영상 있잖아요. 블박영상. 그 화물차 주인입니다."

"예?!"


아니, 어떻게 찾아낸 거지?

구독자들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무슨 사건이든 정중재 채널에 제보만 하면, 무조건 해결된다는 게 진짜였던 건가?


"죄송합니다!!!!"


어리둥절한 찰나, 화물차 차주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는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소리쳤다.


"제가 죽일 놈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당황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바닥에 머리를 찧는 남자를 살펴보니, 여기저기 흉터로 가득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흉터 같기도 했는데, 혹시 머리를 바닥에 자꾸 찧어서 생긴 흉터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좀 어색한데.


"됐어요, 일어나세요."


저러다가는 저 남자의 머리가 터져나가겠다 싶어, 천지연은 남자를 일으켰다.

물론 남자가 자꾸만 '제가 미친놈이었습니다'하며 바닥에 머리를 갈아버릴 기세였기에, 남자를 일으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남자가 바닥에서 겨우 일어나자마자,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천지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봉투는 한 개가 아니었다. 심지어 각 봉투의 두께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상당했다.


"받으십시오! 경찰에만 신고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게 뭐예요?"

"보상금입니다! 원래는 오천 만원 입니다만, 제가 좀 더 넣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일 하면서 모은 돈들입니다!


천지연이 무심코 봉투 안을 살펴보았다.

척 봐도 한 두푼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천지연의 시선이 유스티오에게 향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사과를 받아주시는 건가요, 지연 씨?"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유스티오에게, 천지연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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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해결해드립니다 24.02.26 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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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솔직히 이건 너무했지 24.02.22 11 1 11쪽
124 왜 갑자기 빵 먹이고 그러세요? 24.02.21 13 1 11쪽
123 마개 24.02.20 1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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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영원한 건 절대 없다 24.02.15 1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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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114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이거? +2 24.02.11 17 2 12쪽
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3 2 13쪽
112 어쨌든 약속은 지켰잖아? +2 24.02.09 13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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