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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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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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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물고기?

DUMMY

연산교차로 여기저기에 흩뿌려진 인간의 피.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붉은 피가 울부짖는다.

마법진, 그중에서도 흑마법진이 발동하는 것이다.

연산교차로에 있던 이들을 희생제물로 삼아 자신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이었다면, 어째서 부산항대교 위의 사람들을 다 죽여버린 것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하긴, 이놈들에게 이성적이거나 그럴듯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죽이는 것 뿐이다.


그어어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어어어-


시체들이 마치 좀비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나와 유덱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들이 이미 죽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의 얼굴색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저들의 얼굴.

그에 반해 점점 생기를 되찾고 있는 상급마인의 저 얼굴.


인간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있다.

마인은 지금 흑마법진을 이용해 죽은 인간들의 영혼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연산교차로에 있던 인간들이 나의 훌륭한 제물이 되어 주었네.}


이제 바닥에 누운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모든 시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마신님의 충직한 부하들이 될 걸세. 아,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닐세.}


시체들의, 그러니까 좀비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저 상급마인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고 행동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들의 눈빛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일까.


-강한 흑마법으로 인해 억지로 붙잡힌 영혼은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지.


아주 오래전,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다.

마스터께서는 내게 '흑마법'에 관한 이론을 많이 들려주셨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법'에 관한 흑마법이었다.


해당 흑마법은 신들 사이에서도 금기로 통할 정도로 악한 마법이었는데, 그런 금기를 깬 자가 바로 마신이었다.


-죽은 자는 결국 죽은 자들의 나라로 가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흑마법에 의해 강제로 붙잡힌 영혼은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해당 흑마법을 발동한 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붙잡힌 영혼을 겉에서 봤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상급마인에 의해 강제로 조종당하고 있는 좀비들의 공허한 눈빛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그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붙잡혀 노예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곧 부산 전체 인구가 죽을 것이다.}


노예가 되어버린 좀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상급마인이 입을 열었다. 내 곁에 있던 유덱스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산이 전멸하고 나면 경상도 지역과 그 옆의 전라도 지역, 위로 올라가 충청도와 경기도, 서울, 강원도에 있는 인간들도 차례차례 죽게 되겠지.}

"인간들을 모두 죽여서 어쩌겠다는 거지?"


나의 질문에 마신이 피식 웃었다.

물론 나는 놈이 어떤 대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야, 뻔하지 않겠는가.


{죽은 인간들의 목숨과 내가 붙잡은 영혼들은, 위대하시며 전지전능하신 마신님의 부활을 위해 사용될 것이네.}

"그렇게 대단한 마신인데 굳이 피를 봐야 부활할 수 있는 건가? 생각보다 마신도 별 거 없군."


순간, 상급마인으로부터 살기가 느껴졌지만 곧 사라졌다.


{......전쟁으로 인해 마신께서는 힘을 잃으셨네. 또한 그분의 고귀한 육신의 일부가 훼손되었지. 그분께서 큰 부상을 입지만 않으셨어도, 스스로 부활하시어 우리 앞에 강림했을 것이야.}


마인은 못마땅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마신께서는 큰 부상을 입으셨다네. 스스로 부활하시어 이 땅에 강림하시기엔 너무 약해지셨어.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위해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일세.}


쉽게 말해서 마신 하나 부활시키려고 인간들을 죽여 피와 영혼을 빼앗아 마신한테 넘긴다는 것 아닌가. 수많은 피와 영혼의 힘으로 마신의 육신을 재생시키려고.


무슨, 상 또라이같은 새끼들이네.

이미 연산교차로는 거의 떼죽음 상태, 아니 대학살 수준이다.

주변에 살아남은 인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다.

아마 슬슬 주변에 있는 부산 사람들도 연산교차로의 영향을 받게 될 터.

경찰이나 소방관, 혹은 군대가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이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애초에 인간들은, 저 상급마인의 발톱에 붙은 때도 건드릴 수 없으니까.


쾅! 콰콰콰콰콰콰쾅!!!!


폭발소리다.

소리를 들어보니 지상에서 들려오는 건 아닌데.

......그럼, 설마?


{슬슬 시작되는군.}


흡족한 표정으로 마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신 마신의 부활을 위하여-!}


시체들, 아니 좀비들 위해 서 있던 놈이 울부짖는다.

그러자 좀비들이 일제히 괴로운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기괴한 모습이었다.

좀비들의 표정은 무(無), 그 자체였으니까.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괴로움도 그 어떠한 감정도 없는 공허한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친다.


그 끔찍한 모습에, 나와 유덱스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마신을 찬양하라-!!!}


상급마인이 소리치자마자, 또 다시 폭발음이 들려왔다.

지구가 떠나갈 듯한 엄청난 폭발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연산교차로 근처에 위치한 '연산역'이었다.


그러니까,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어찌나 큰 폭발이었는지, 나와 유덱스가 서있던 곳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 지축이 크게 울리며, 순간적으로 중력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껴졌을 즈음.


"유덱스, 조심해!"

"으아아아악!"


발밑이 푹, 하고 꺼지더니 나와 유덱스는 밑으로 떨어졌다.

떨어지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철역에 들어와 있었다.

주변을 굳이 살필 필요도 없었다. 지하철역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아마 연산교차로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을 때 함께 죽었을 터. 조금 전에 울린 두 번의 폭발음은 죽은 시체들을 '노예화' 하기 위한 흑마법진의 발동 소리였다.


지하철에서 사망한 사람들 역시, 지상에 있던 좀비들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떼죽음이다.

저항도, 반항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죽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떼죽음이 아니라 개죽음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유덱스."


더 이상의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충분히 많은 인간들이 학살당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이 상황과 그 어떤 상관도 없는 죄없는 사람들이.


"...왜."

"상급마인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


연산역 여기저기에 쓰러진 수많은 시체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처에 있는 마인은 기괴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시체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유덱스와 나는 싸울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양 손에 황금빛의 단검이 쥐어졌다. 나 역시 장검을 쥐었다.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짜장면이나 실컷 먹고 싶어."


마인이 나와 유덱스를 돌아보았다. 놈이 씩 웃는다.

유덱스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이라고?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냐, 유덱스."


상급 마인이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원래 영화에서 말이야, 그딴 소리 하는 등장인물은 금방 죽거든?"


타앗!


나와 유덱스가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콰아앙! 끝내주는 타이밍이었다. 우리 둘이 지하철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전신에 날카로운 송곳을 품은 상급마인이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조금만 늦게 뛰어올랐다면 나와 유덱스는 놈의 몸에 박힌 송곳에 그대로 찔렸겠지.


{왜 굳이 위로 올라간건가? 여기로 내려오지 그러나?}


아직 연산역에 있던 마인이 지상에 올라온 우리를 보며 이죽거렸다.

미쳤냐, 이 새끼야? 지금 연산역은 파괴되어서 어둡단 말이다. 원래도 지하철은 대체로 어두운 편에 속하지만, 지금은 암흑 그 자체라고.


'마인은 어둠에 익숙하고, 어둠에 유리하다.'


그러니 나와 유덱스가 굳이 연산역에서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해야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할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지상에서 싸우고 싶다면, 그리 하거라.}


슈아악! 콰아악!


...뭐지?

방금, 방금 그게 뭐였지?


"크헉!"

"으으윽!"

{그대들이 원하는대로, 밝은 곳에서 한 번 싸워봐야하지 않겠는가?}


나와 유덱스는 허공에 있었다.

조금 전, 아니 불과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인이 양 손에 우리 둘의 멱살을 각각 붙잡고 하늘로 떠오른 것이었다.


.....놈의 공격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만큼 빨랐다.

이게 바로 상급마인이라는 건가.

그럼 특급마인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우리, 조금 더 재미있게 놀아보는 게 어떨까.}


저 멀리 광안리 해수욕장이 보인다.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모르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인다.


{너희들을 죽여 제물로 바친다면, 마신께서도 기뻐하시겠지.}


멱살을 휘어잡은 마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어찌나 거칠게 잡았는지, 목이 갑갑하다 못해 숨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마신의 영광을 위하여-!}


놈이 나와 유덱스를 던져버렸다. 어디에 던지는 건가 했더니, 바다에 던진 것이다.

젠장할, 조금 전에 부산항대교에서 바다에 빠졌었는데, 또 빠지다니.

아까 회복이 다 되지 않았는데, 이 상태로 바다에 빠진다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게 분명하다.


'머리... 머리가......'


유덱스는 버둥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저 녀석도 물 속에서 그리 자유롭진 못했지.

그나저나 마인은? 마인은 어디있지? 왜 안 보이는 거야?


'...이렇게 죽는 건가? 허무하게?'


마스터와 여신님의 복수를 하지도 못한 채, 바다에 빠져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인가.

......

아, 어지럽다.

숨, 숨이 안 쉬어져.

이러다가는, 이러다가는.......


*

*

*


"흐어억?!"


눈 떠보니 침대였다.

끔찍한 악몽을 꾼 모양이다.

그래, 설마하니 부산이 그렇게 당했을리가 없지. 무슨 한국이 멸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 내 침대가 맞나?

내 침대는 나무침대인데. 그런데 이건 엄청나게 거대한 빛나는 조개껍데기 아니던가.

침대가 무슨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졌냐? 뭐, 편하긴 한데. 조개 특유의 비린내도 안 나고.


'내 집은 아닌데.'


나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내 옆에는 마찬가지로 조개 침대 위에 누워 잠든 유덱스가 있었다.


'...유덱스 집인가?'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굳이 조개껍데기로 침대를 왜 만들었나 싶긴 하지만, 그럴 수 있어.


...잠깐만, 내가 유덱스네 집에서 잤다고?


'정중재가 들으면 기함을 하겠군.'


물론, 나와 유덱스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들으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긴 한데.


끼이익-


그때, 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앗, 일어나셨군요!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먹음직스러운 빵과 우유를 쟁반에 담아온 누군가가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누군가'를 보며,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린 후 내 뺨을 후려쳤다.

얼얼하다. 꿈은 아니구나.


{어이구, 왜 뺨을 때리고 그러시나요? 저런, 역시 아직 상태가 좋지 않으신 거로군요.}


'누군가'의 정체는 바로 물고기였다.

식사할 때 흔히 보는 그 죽은 물고기가 아니고, 말하는 물고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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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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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어쨌든 약속은 지켰잖아? +2 24.02.09 13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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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 +2 24.02.06 1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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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추락 +2 24.02.04 1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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