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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01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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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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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왜 갑자기 빵 먹이고 그러세요?

DUMMY

{끄아아아아악!}


마개를 뽑자 물살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우리를 가둘 것처럼 단단해 보이던 물감옥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내 몸에 남아있는 산소를 모두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치겠네.'


물론, 그만한 댓가는 치뤄야 했다.

산소가 바닥나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지금 겨우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버티고 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정신을 놓게 된다면 유덱스와 피죤처럼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고 말 터였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마인이 비명을 내지른다.

놈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물감옥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이 보인다.

물론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내 정신머리는 저 멀리 가버린지 오래였으니까. 시야가 흐릿했다.


{그, 그런 식으로 하면 너도 무사할 수는 없을 텐데! 너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아아아아아아아악!}


물 감옥이 완전히 무너졌다.

쓰러진 나와 기절한 피죤, 그리고 유덱스는 물감옥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바닥에 쓰러져 거친 호흡을 내쉬는 나의 흐릿한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마인이었다.

놈의 진짜 모습이었다. 일체화마법이 드디어 풀린 것이다.

놈의 진짜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는 별 거 없었다. 가시처럼 마른 몸에 보잘것 없어 보이는 삐들삐들한 얼굴.

누가봐도 영락없는 하찮은 중급마인이다. 운 좋게 일체화마법을 부릴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 내 손에 죽었을 놈.


{끄아아아아! 살려줘! 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일체화마법이 풀렸기 때문이 아니다.

사용하던 마법이 풀린다고 해서 마인이나 사제가 큰 고통을 받지는 않는다. 그냥 마법이 풀렸을 뿐인거지.

저놈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고, 눈과 코, 입과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계약 위반.

놈은 그로인한 패널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그그그그긁!!}


마인이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놈은 발작하듯 전신을 기괴하게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계약 위반.

단순히 인간들 사이에서의 계약 위반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사제나 마인들 사이에서의 계약 위반은,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 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자랑하니까.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 마인이든 사제든 그 계약서에 즉시 구속된다.

다시 말해, 구속된 자가 계약을 어길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


마인의 눈동자가 뒤집힌다. 놈의 거친 입에서 기다란 붉은색 혀가 쑥, 튀어나온다.

죽은 것이다.


"커헉, 쿨럭!"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무슨 힘이 남아있다고 마인이 있는 곳까지 기어간 것일까.


"쿨럭, 쿨럭!"


좀비처럼 기어간 끝에 겨우 마인의 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죽은 마인 옆에는 검은색의 마력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주웠다. 숨이 차오른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 아니, 폐가 쪼그라드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물 속에서 나오니 산소가 풍부해서 조금은 살 것 같기는 한데.......


'유덱스... 피죤......'


그 녀석들은 어디로 갔지.

녀석들이 괜찮은지 찾아봐야...... 하는데......


*

*

*


눈 떠보니 침대 속이었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는 유덱스와 피죤이 있었다. 둘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일어난 거냐구구!}

"괜찮아?"


유덱스한테서 저렇게 다정한 말투가 튀어나오다니. 아무래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뺨을 한 번 쳐볼까나.


"뭐 하냐? 너 안 죽었어."

"억!"


내가 내 뺨을 톡톡 건드리자, 유덱스가 대체 뭘 하는 거냐고 투덜거리더니 강하게 내 뺨을 후려쳤다.

아주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래도 내가 죽진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얼얼한 강스매쉬를 날리는 여자라면 유덱스밖에 없지.


"...이빨 몇 개 뽑힌 거 같은데."

"사제들은 이빨 뽑혀도 안 죽어."

"...인간들도 이빨 뽑힌다고 죽진 않을텐데."


됐다. 의미없는 얘긴 그만하고.


"그런데, 여긴 어디지?"

{퀴에스사제의 집이다구구!}


퀴에스사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당한 크기와 아늑한 분위기의 방. 아무래도 퀴에스는 아파트에 사는 모양인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기억 안 나나? 하긴, 기억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유덱스사제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퀴에스였다. 그의 손에는 쟁반 하나가 들려있었는데, 그 안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백반이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된장찌개인가?


"좀 드시죠. 회복하는데는 한식 만한 것이 없지요."

"...감사합니다."


나는 쟁반을 받아들었다. 음식을 마주하고 있자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갓 지은 듯한 따듯한 쌀밥 한 숟가락과 네모난 두부가 들어있는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한 입 하고 나니, 피로가 순식간에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는데. 밥 말아 먹어야겠다.


"그런데, 유덱스가 퀴에스사제님을 불렀다고요?"


밥을 찌개에 말며 내가 묻자, 퀴에스가 대답했다.


"예. 신장동에 있는 그 국제시장 있잖습니까. 유덱스사제님이 말씀하신 그곳으로 가보니, 유스티오사제님께서 쓰러지신 채였더군요. 몸이 아주 차가우셨습니다."


애호박도 맛있군.


"하지만, 유덱스도 당시 기절했었을 텐데요."

"아, 유덱스사제님은 깨어나신 채였습니다. 알고보니 유스티오사제님께서 유덱스사제님과 피죤에게 신성마법을 걸어두신 것 같더군요. 덕분에 그 두 분은 크게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지요."


...그러고보니까 내가 둘한테 신성마법 걸어뒀었구나.

맞다. 그 마법 쓰느라 산소를 좀 소모하긴 했었지. 그땐 정신이 없어서 내가 뭘 어떻게 한 건지 제대로 인지도 못했었는데. 다행이네.


"참고로 현재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제법 인기가 높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요."

"......죽은 사람들은....."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유덱스도, 피죤도, 퀴에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인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다.

퀴에스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죽은 인간들의 시체들은 마인이 부린 일체화마법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죽은 인간들의 유가족들이 난리가 난 상황이지요. 물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인간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인간들 눈에는 그런 장면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

*

*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후 얼마 뒤.

유덱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 순간부터 녀석에게서 연락이 오기만 하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이번에 온 연락은 좋은 소식이었다.


"아모르가 완전히 회복했다고?"


다리만 좀 나았지, 아직 퇴원은 하지 못한 아모르였다.

나는 유덱스와 함께, 아니 김건우도 함께 아모르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퀴에스도 와 있었고, 정중재도 함께였다.


"드디어 완벽하게 회복을 했군?"

"헤헤, 모든 게 다 사제님 덕분이지요."


아모르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었다. 당장 죽은 시체처럼 푸르딩딩한 빛을 띄던 피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한 혈색으로 돌아와있었고, 좀비처럼 뒤틀렸던 기괴한 하체가 원래의 훤칠한 다리로 돌아온 것은 물론이다.


"의사는 이틀 뒤에나 퇴원하라고 했는데, 제가 오늘 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사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을 보니, 회복하긴 회복한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틀 정도 더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퇴원 기념으로, 제가 고기 사겠습니다! 소고기로!"


....하긴, 젊고 건강한 사내놈이 그 정도 회복했으면 된 거지. 뭘 또 회복해?


*

*

*


유스티오가 차돌박이로만 벌써 10인분을 넘게 먹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냉면 다섯 그릇과 꽃등심 7인분에 등심 3인분, 부채살과 살치살을 각각 4인분씩 더 시켰을 무렵.

천지연은 고속도로에 있었다.

그녀는 본가인 대전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천지연. 위로도 아래로도 형제나 자매가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

부모님께서 늘그막에 겨우 얻은 자식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 그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란 결국 부모를 떠나는 법. 부모 입장에서야 하나밖에 없는 딸 옆에 두고, 어디 나쁜놈이 잡아가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맛있는 밥이나 해주고 싶은 법이건만.


-친구들 다 독립해서 자취한단 말이야!


대학 입학하고 20살 딱 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자취하겠다는 것이었으니.

자식 하나 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늙은 부모님에게는 상당한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천지연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일주일 넘게 앓아눕고 말았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셨다.


-나도 자취할거야! 내가 알바해서 월세 낼 테니까 말리지마!


어쨌거나 천지연은 독립을 했다.

물론, 아직 정식적으로 돈은 벌지 못하는 휴학한 대학생에 불과하긴 하지만.


-좀 자주 오고 그래!

-아, 알겠어!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너희 엄마 저러다 흰머리 생기겠다 이 녀석아!

-그만, 그만 잔소리해!


아빠가 차도 사줬겠다, 정기적으로 본가에 내려와야 할 거역할 수 없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민트색의 레이. 아빠는 우리 딸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외제차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천지연이 한사코 거절했다.


-됐어. 그거 살 돈으로 엄마아빠 맛있는 거 사먹어. 외제차는 관리나 어렵지!

-하지만.....

-괜찮다니까? 그냥 레이나 사줘. 난 그게 편해.


민트색 레이가 고속도로 2차선을 달리고 있을 무렵.


"윽!"


전 세계 모든 운전자들의 공포 중 하나인 '급똥'이 발생하고 말았다.

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해도 '급똥'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할 뿐.


"으으으으으!"


아랫배에 힘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똥'의 기운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최대한 가까운 휴게소로 이동하기 위해 추월차선으로 차선을 바꾸었다.

그런데.


"왜 안 가, 임마!"


분명 추월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아우디 A7은 정속주행을 하고 있었다.

앞에 차도 없는데, 몇으로 달리는 거지? 70? 80? 70이면 정속도 아니지 않나?

A7같은 좋은 차 사놓고서 뭐 하는 거지?


"으으, 진짜!"


화가난 천지연은 2차선으로 이동하더니, 아우디를 추월해 다시 추월차선으로 복귀했다.

바로 그때.


빵! 빵!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우디가 천지연을 향해 위협적인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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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영원한 건 절대 없다 24.02.15 11 1 13쪽
117 술 처먹고 뺑소니 하지 맙시다 24.02.14 1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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