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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20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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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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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이거?

DUMMY

워터파크(water park).

붉은빛이 도는 수영복 반바지를 입은 유스티오가 워터파크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사제로서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사제들이 머무는 세계에는, 이런 곳이 없으니까. 아니 수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신기하군."


그래서일까, 유스티오는 괜히 얼굴이 후끈거렸다.

옛날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전신을 꽁꽁 싸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헐벗은 인간들이 많이 모여있는 건 처음 봤으니까.


게다가.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뭐라고 해야 할까.

노란색의 수영복을 입은 천지연의 모습은,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아뇨, 괜찮습니다."


눈을 둘 곳이 없네.


"그나저나 저 어때요? 괜찮아요?"


괜찮으냐고? 붉어진 귀를 숨기느라 고개를 돌렸던 유스티오가 천천히 천지연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해 이동하는 시선을 애써 위로 옮기며, 유스티오가 힘겹게 웃어보였다.


"예. 너무 예쁘네요. 그 수영복 잘 어울려요."

"...정말요?"


부끄러운 듯 천지연이 미소지었다. 그 숨막힐 듯한 모습에 유스티오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이미 상대가 예쁜 건 알고 있긴 한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어느날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올 때.

오늘따라 유독 더 예뻐 보이는,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날.


'정신 차려라. 유스티오.'


유스티오는 속으로 자신의 뺨을 두어 번 세게 후려쳤다.

지금 네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그저 천지연이 수영복을 입고 있기 때문인 거야. 그래. 헐벗고 있는 사람이 앞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순간적으로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이건 가짜 감정이다. 불경, 불경을 외자. 애국가를 부르자. 마음을 진정시키자. 이건 어차피 일회성 감정일 뿐이다.


'...게다가.'


유덱스가 이미 말했듯이, 사제와 인간은 교제할 수 없다.

과거 헬리오스교의 남성 사제 하나가 그리스에 사는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들은 결국 금기를 어겼고, 안타깝게도 사제와 교제하던 해당 인간은 불에 타 죽어버리고 말았다.

신과 인간이 교제할 수 없듯이, 사제와 인간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사제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래. 쓸데없는 감정이다.'


그러나 마음은 결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법.

유스티오는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을 애써 억눌러야만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긴 아는데, 본능이라는 것은 거스르기 참으로 어려운 놈이었다.


"괜찮으세요? 어디 아파요?"


유스티오의 표정이 굳어졌는지, 곁에 있던 천지연이 바싹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녀가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유스티오의 탄탄한 오른쪽 팔에 그녀의...


"아, 아뇨!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그보다!"


...무언가에 닿는 물컹한 느낌이 들자마자, 유스티오는 화들짝 놀라며 워터파크의 실내를 가리켰다.


"저, 저기 매점 가서 뭐라도 좀 먹죠. 배, 배가 고프네요."


앞장 서서 달려가는 유스티오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천지연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

*

*


수영장을 다녀온 다음 며칠이 지났을 때.

천지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이 여자가 내게 왜 이런 문자를 보냈느냐 하면, 이유는 있었다.

며칠 전 수영장에 갔을 때, 우리 둘은 간식으로 핫도그를 먹은 후 워터슬라이드를 타러 이동했다.

해당 슬라이드는 꽤나 거칠어 보였는데, 천지연이 입은 끈수영복이 풀릴 것 같을 정도로 험해보였다. 실제로도 험했고.

단순히 미끄럼틀 같은 게 아니니까.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끈 같은 건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진짜 당황했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천지연의 윗 수영복 끈이 풀리고 만 것이다.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왔을 때 겨우 상황을 파악하더니, 놀란 천지연은 재빨리 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눈치를 챘던 나는 서둘러 물 속에 빠진 그녀의 수영복을 붙잡았고.


-수영복 못 찾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었어요.


그녀에게 수영복을 건네주었다.

......

맹세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진짜로. 최대한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니까.

......

아니, 사실 고개를 돌릴 때 어쩔 수 없이 보긴 봤는데, 맹세하지만 기억 안 난다. 본 것 같긴 한데, 기억 안 난다. 진짜로!


-별 거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별 거 아니긴요. 너무 감사해요.


그때, 이미 천지연의 수영복이 풀렸다는 것을 눈치챈 몇몇 사내놈들이 흘끔흘끔 시선을 옮기고 있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남들 앞에서 맨몸을 보인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같은 인간... 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저기, 겨울에는 스키장 가실래요?


스키장?


-혹시 가보셨어요?


내가 가봤을리가 있나.


-아뇨, 가본 적 없습니다. 지연씨는 가보셨나요?

-친구들하고 몇 번 가봤어요. 안 가보셨으면 올해 저랑 같이 가요!


"......그래서, 그 여자분하고 또 약속을 잡았다는 겁니까 형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천지연과의 문자를 끝낸 후, 나는 정중재와 함께 황금마티즈를 타고 이동중이었다.

녀석이 한 번 황금마티즈를 끌어보고 싶다고 하길래, 운전석을 내주고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피죤은 집에 둔 채였다. 피죤은 전날 뭘 잘못 먹었는지, 화장실을 붙잡고 늘어져 있었다.


-나, 이러다 죽을 거 같다구구.

-배탈나서 죽는 경우는 없어.

-너무한 거 아니냐구구! 내가 이렇게 아픈데!

-걱정하지마. 죽으면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줄게.

-구구구구구구!


"형님."


전방에 정지신호가 뜨더니 차가 멈추었다. 전방을 주시하던 정중재가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 여자 맘에 들죠?"

"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형님, 유덱스사제님과 썸 타시던 거 아니셨습니까?"

"뭔 개소리야."


내가 정색을 하고 녀석을 노려보자, 녀석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가만 보면 유덱스 사제님과 형님은 꼭 노부부마냥 투닥거리는 것이, 뭐랄까, 동갑커플만의 그런 게 있다고나 할까요."

"전혀 아니야. 내가 이 얘기만 몇 번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좀 더 귀여운 타입이 취향이야. 걔는 너무 왈가닥이라고."

"그럼 그 여자분은 형님 취향이신겁니까?"


...분명 천지연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겠지.

취향이느냐고 묻는다면, 그래. 맞다. 취향이긴 하다.

사실 처음봤을 때도 그렇고, 얼마 전에 수영장에서 봤던 그녀의..... 됐다, 그만두자. 이건 됐고.


어쨌거나 그녀는 인간이고, 나는 사제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정중재에게는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나는 해야할 임무가 있는 사제야. 사랑놀음 따위에 정신팔 이유가 없어."


물론, 빈말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내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연애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이 땅에 아무것도 안 남는단 말이다. 모든 것이 멸망할 테니까.


"하긴, 그렇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엇?!"


녀석이 대답하자마자 사고를 치고 말았다.

교통사고를 냈다는 건 아니고, 길을 잘못든 것이다.

우린 한 아파트로 진입하게 되었다. 뭐, 이미 핸들 완전히 꺾어버린 거 후진하기도 애매하니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어우, 죄송합니다 형님. 잠깐 정신을 논 사이에 이런 멍청한 짓을......"

"그럴 수도 있지. 상관없어, 괜찮아. 운전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뭐가 되었건 간에 사고만 안 내면 된다.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이상한 곳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 또 늦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는 거다.

제일 중요한 건 사고만 안 내면 되는 법. 누가 뭐라 해도 '무사고'가 가장 좋은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내일 모레도. 언제나 무사고 길만 걷자.


"여기 완전 옛날 아파튼가 봅니다. 터가 무진장 넓네요."


정중재 말대로 아파트 터는 꽤 넓은 편이었다.

신축 아파트도 터는 넓지만, 옛날 아파트 그 특유의 느낌은 결코 나지 않는다.

우린 지상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좌측과 우측에 위치한 지상주차장에 가득찬 차들 사이로 우린 이동중이었다.

그때 우리 차가 직진하는 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차 두대가 오고 있었다.


끼익-


정중재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한 것도 없으니까, 일단 저 차 두대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 나았다.

한 대는 BMW신형전기차였고, 다른 한 대는 H사의 코나였다.


어차피 저 두 차량은 계속해서 직진할 수밖에 없다. 길이라고는 직진 방향과 우리가 서 있는 좌회전 방향 뿐인데, 저 차량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우리가 있으니 좌회전을 할 수는 없을 터.

게다가, 아파트 노면 바닥에 써있는 표시들이 사실이라면, BMW와 코나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좌회전 해서 올 경우 '역주행'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끼이익-


쭉 갈 것 같던 BMW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 바람에 코나 역시 멈추었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두 사람 역시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후진을 하면 되긴 되는데,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상 주차장에서 굳이 후진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BMW가 왜 멈춘 거지?

왜 하필 저기서 멈춘 거야? 나랑 코나 오도가도 못하게!

정중재가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앞에 길이 막힌 걸까요?"

"그럴리가 있냐. BMW는 그냥 쭉 가도 돼. 오는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왜 우리 차 앞에서 멈춘 거죠?"

"그건 나도 모르지...... 어?"


그때였다.

BMW가 후진을 하기 시작하더니.


콰앙!


코나와 박아버리고 말았다.

어이없는 사고였다.

아니, 이걸 사고라고 봐야 할까?

그냥 BMW의 정신나간 짓거리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저, 저 BMW가 미쳤나? 형님, 보셨습니까?!"

"...봤다."


똑똑히 눈 앞에서 봤지.

BMW 운전석 문이 열렸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BMW의 긁힌 뒷부분을 확인한 여자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있었다.


실수였겠지.

가끔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사고 내는 경우도 있긴 하니까.

......

아니지.

애초에 왜 후진기어를 넣고 있는 건데? 이 상황에서 후진을 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


똑똑-


BMW 차주가 정중재가 앉아있는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왜 우리한테 오는 거야?


지잉-


정중재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차주가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예?"


정중재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자, 차주가 다시 소리쳤다.


"당신 때문에 사고 났잖아요!"


예? 나도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고 싶어졌다.

어이가 없어진 정중재가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자, 기세가 등등해진 차주가 자기 차를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당신이 방향지시등을 안 켜서 사고가 났잖아요! 내 차 어떡할거야, 저거! 하이브리드로 새로 뽑은 건데!"


도대체 이게 뭔 개소리야?

내가 너무 멍청한 새끼라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가?

내가, 아니, 우리가 잘못한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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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갑자기? 24.02.16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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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술 처먹고 뺑소니 하지 맙시다 24.02.14 13 1 11쪽
116 전동킥보드는 술 먹고 타도 되나요? 24.02.13 11 1 12쪽
115 앵무새 24.02.12 14 1 11쪽
»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이거? +2 24.02.11 18 2 12쪽
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4 2 13쪽
112 어쨌든 약속은 지켰잖아? +2 24.02.09 14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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