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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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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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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동킥보드는 술 먹고 타도 되나요?

DUMMY

코나 차주는 당황스러웠다.

BMW차주가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망을 간 것이다.


'아니, 왜 도망을 간 거야?'


그녀의 나이 올해로 26살.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만으로는 24살이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도 넘지 않았으니, '사고(事故)'에 대한 경험 역시 부족할 터.

주위에서 사고가 나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으니 삶의 지혜가 되는 유익한 경험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런 무지의 결과가 낳은 이 상황을, 코나 차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한 줄기 빛과 희망이 있었으니.


"걱정하지마세요."


바로 유스티오였다.

그는 정중재를 코나 차주 옆에 붙여준 후,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걱정 말고, 여기서 이 녀석하고 기다리고 계세요. 걱정마십시오."


이미 코나 차주는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유스티오가 무어라 하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충격에 빠져 멍 때리고 있었을 뿐이다.

만약 정중재가 그녀의 곁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코나 차주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코나차주가 정중재의 부축을 받아 겨우 바닥에 주저앉았을 무렵. 황금마티즈를 끌고 달려가던 유스티오는 BMW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멀리 도망가진 못한 모양이었다. BMW는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아마 복잡한 골목에서 좀 더 잘 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그냥 날 잡아잡수- 하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구만."


그런 BMW차주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차주가 끌고 있는 BMW는 7시리즈. 디젤 신형이자 대형세단이다.

골목길이 괜히 골목길이겠는가. 좁으니까 골목길이지.

이렇게 좁은 길에 대형세단을 끌고 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심지어, 양 옆으로 불법주차차량이 한가득이라면? 어떻게 돌릴 것인가? 돌다가 차 긁지 않겠는가?


"그래. 어디 나갈 수 있나 보자."


이미 BMW는 갇힌 상태였다.

뒤에는 유스티오가 있었고, 양 옆에는 불법주차차량이 있다.

심지어 불법주차차량들은 펠리세이드와 렉스턴 스포츠 칸이었다.

하필이면 큰 차량들이 양 옆을 가득 채우니, 더욱 돌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래도 우회전을 하려는 모양인데, 과연 나갈 수 있을까?


유스티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BMW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이미 빌런은 유스티오의 그물에 잡힌 채다. 급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유스티오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물고기가 잡힌 그물을 언제 건질 것이냐는건데.


부욱-


드디어 그물을 건질 때가 되었다.

BMW가 오른쪽에 있던 렉스턴 스포츠 칸에 긁힌 것이다.

곧 BMW의 브레이크등에 불이 들어왔고, 차주가 차에서 내렸다.

유스티오 역시 차에서 내렸다.


"아니, 이게.... 이게......!"

"이제 다 도망가신 겁니까?"

"이이....! 너,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차주가 유스티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머리를 잡고 흔들 생각인 것이다.

물론 키 차이가 있었기에, 코나차주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머리를 잡아뜯진 못했다.


"당신이 남의 차 긁어먹은 게 왜 저 때문입니까?"

"네가, 네가 쫓아오니까 내가 당황해서 긁은 거 아냐!"

"예? 제가 쫓아왔다고요? 저는 그냥 여기 골목으로 들어오려고 한 것 뿐인데요."

"날 왜 괴롭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그여자 때린 것도 아냐! 게다가 나도 사고 피해자란 말이야! 그런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꽥꽥, 차라리 오리 100마리가 단체로 우는 게 좀 더 아름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유스티오는 BMW차주의 개인사정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지요."


뭐, 굳이 알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건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재판을 시작한다.


*

*

*


BMW차주의 재판은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품고 있던 마력덩어리는 딱히 강한 것도 아니었고, 3등급 상급사제로 진급한 후부터는 어지간한 마력덩어리와 마인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딱히 즐겁지 않은 경험이긴 했지만, 부산에서 있었던 그 일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 것 만큼은 분명하다.


- 정말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BMW차주는 5억원 상당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차주를 코나 차주에게 데려가 사과하도록 했다.

재판의 방에서 호되게 혼난 BMW차주는 무릎이 닳도록,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코나차주에게 사과했다. 물질적, 육체적 피해를 입은 코나 차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냥 처음부터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면 금방 끝날 일을, 왜 굳이 더 키우는 것일까. 작은 불은 미리 꺼야지, 내버려두면 더 큰 불이 되어 주변까지 집어삼킨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왜 잊는 것일까.


BMW차주는 코나 차주뿐 아니라, 렉스턴 스포츠 칸 차주에게도 보상을 해야만 했다.


'아까 보니까 엄청 긁혔더만.'


뭐, BMW7시리즈 끌 정도면 10억 가까이 벌금 물어도 별 문제 없겠지.

어쨌거나 며칠 후. 나와 피죤은 차를 끌고 도로 위를 순찰하고 있었다.

우린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고 있었는데, 양 옆에 킥보드를 탄 성인 남성 두 명이 보였다.


한 킥보드에 두 명이 탑승한 것이다.

안전모라던가, 안전장치는 쥐뿔도 착용하지 않은 채였다.

하긴, 애초에 안전을 생각하는 인간들이었다면 킥보드에 두명이 한 번에 탑승하진 않았겠지.


아무튼 어린이보호구역인지라, 나는 단속구간을 지나 시속 40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 아오씨!


킥보드가 갑자기 내 차 앞으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부딪히진 않았다. 애초에 부딪힐 만한 속도도, 거리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지는 의문이긴 하다만.


- 쟤들 왜 저러는거냐구구?


피죤 말대로, 당시 킥보드 빌런 두명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헐리웃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부딪힌 것처럼 꾸며대다니. 게다가 여긴 어린이 보호구역 아니던가. 잘못하면 내가 옴팡 뒤집어 쓸 텐데.


- 얼씨구, 저 두 사람 지금 당장 탈춤추러가면 딱이겠다구구.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사람이 있었다면, 누가봐도 내가 가해자인 것처럼 보였겠지.


일단 난 차에서 내렸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엎어진 젊은 남자들 중 한명이 나에게 소리쳤다.

동공이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느다란 눈을 지닌 놈이었다.


-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나 저 소리 며칠 동안 골백번은 들은 것 같은데. 이젠 하나의 레퍼토리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왜 빌런들은 하나같이 저 소리를 하는 거지? 어디서 과외라도 받고 오니?


- 왜 멀쩡히 지나가던 사람을 쳐요?!

- 제가 언제 사람을 쳤다는 겁니까?

- 이거 봐, 이거 봐! 운전자 새끼들 하나같이 저 모양 저 꼴이라니까! 여기 어린이보호구역인 거 몰라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그렇게 빨리 달려오면 어쩌잔 겁니까?


시속 30km 단속구간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또한, 아무리 단속구간을 지났다고 해도 저 남자 말대로 나는 이곳이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속구간을 지났어도, 시속 40으로 천천히 가고 있었단 말이다.


아, 물론, 40으로 달려도 사고는 날 수 있지. 오죽하면 시속 20으로 빌빌 기어가는 운전면허학원 기능시험장에서도 사고가 나겠느냐고.


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확실한 건 우선 첫번째. 나는 천천히 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번째.


나는 저 새끼들을 친 적이 없다.


애초에 저 새끼들이 문제였다.

도로 위에서 신나게 킥보드 이리저리 굴려가는 저 새끼들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 킥보드를 탄 것도 문제인데, 더 심한 건 역주행이었다.


그래.

똑바로 가도 문제가 될 판국에, 역주행이라니. 지들이 역주행하다가 넘어진 걸 왜 내 탓을 하냐고.


- 말은 똑바로 합시다. 저는 당신들을 친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먼저 역주행하다가 넘어진 것을 가지고 왜 저를 탓하는 겁니까?

- 와, 지금 사람 쳐놓고 발뺌하는 거 보소.

- 인터넷에 올릴 겁니다. 킥보드 탑승자 역차별이라고요.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그래 어디 한 번 인터넷에 올려 봐라. 누가 욕 먹나. 너희들이 인터넷에 올리면 나는 못 할 줄 아는 거냐.


아무튼, 이런 시덥잖은 새끼들을 상대해 줄 인내심이 당시의 내겐 없었다.


- 그래요, 인터넷에 올리세요.

- 진짜 올릴 겁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과속하던 20대 남자가 정방향으로 잘만 킥보드 타고 가던 두 사람 쳤다고요!

- 예, 그렇게 올리십시오. 저도 올릴 테니까.

- .....뭐요?


빌런 짓을 하려거든 똑똑하게 해야지. 멍청하게 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단 말이다.

도둑질을 하려거든 애매하게 구멍가게 털지 말고 당당하게 은행 금고를 털란 말이다.


...물론, 진짜 은행을 털란 얘긴 아니고.


- 지금 당장 경찰 부르는 게 어떨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두 남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지들도 말이 안 되는 걸 아는 게지.

그리고 그 새끼들, 술 냄새가 훅 끼쳤었다.


자, 어린 애기들이 타는 수동킥보드가 아닌 전동킥보드는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운전면허가 없다면 오토바이라도 몰 줄 알아야 탈 수 있는 법.

다시 말해서, 전동킥보드 역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단 소리다.


- 두 분이서 어디 좋은데 가셔서 시원하게 한 잔 걸치신 듯한데. 어디, 두 분의 아름다운 추억이 촬영된 제 블랙박스 영상을 좀 확인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 놈이 하는 짓거리를 보아하니,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누구 하나 저승길로 보낼 판이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사고를 피해간 모양이다만, 언제까지고 행운의 여신이 빌런들과 함께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 저기, 경찰 부를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우리끼리 원만하게 해결하죠.

- 맞, 맞습니다. 우리끼리 해결합시다. 그냥 치료비만 주시면 됩니다.


음주운전하는 새끼들은 인간으로 보고 싶지 않다.


- 치료비요? 제가 왜요?

- 우릴 쳤잖아요?

- 우리 쳤으니까, 당연히 치료비를 줘야죠. 신고 안 하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아야죠.


너희가 술에 취하긴 취한 모양이구나. 정신을 덜 차린 걸 보아하니.

어쩔 수 없지. 빨리 끝을 내야지.


- 으아아아아아악!

- 사, 살려줘! 아아아아악!


나는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을 재판의 방으로 데려갔다.

죄인들은 재판의 방에 오는 것 만으로도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죄인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한다-]


빌런 두 놈에게는 각각 7천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기한 내에, 그러니까 3일 내에 벌금을 상납하지 않으면 놈들은 더 큰 벌을 받게 될 터.


{별 멍청한 놈들 다 본다구구.}


어쨌거나 재판을 마친 후, 나와 피죤은 다시 황금마티즈를 끌고 도로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던 그때였다.


띠리리리리리-


{전화왔다구구!}


전소준, 그러니까 에이레네교의 사제인 퀴에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


에이레네교의 사제, 아모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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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영원한 건 절대 없다 24.02.15 11 1 13쪽
117 술 처먹고 뺑소니 하지 맙시다 24.02.14 12 1 11쪽
» 전동킥보드는 술 먹고 타도 되나요? 24.02.13 11 1 12쪽
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114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이거? +2 24.02.11 17 2 12쪽
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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