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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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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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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추락

DUMMY

"미, 미친곳이잖아, 여기!"


조수석에 앉아있던 유덱스가 소리질렀다.

지금에 와서야 겨우 안 사실인데.


"아아아아악!"


유덱스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녀석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귀를 막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밖을 한 번 보라고 했지만 녀석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을 뿐이었다.


"싫어, 싫어!"


유덱스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중재로부터 부산항대교의 악명을 이미 들은 나조차도, 손에 절로 땀을 쥐게 만들었으니까.


'왜 굳이 대교를 이렇게 높이 만든거야? 왜 하필 이딴 식으로 설계한 거야? 좀 더 평범하게 설계할 수 있지 않나?'


부산항대교를 설계한 놈이 대체 누구일까. 아마 사이코패스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즐기는 변태 사디스트겠지.


만약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여길 온다면?

우회할 수 있는 길이라도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여길 절대 못 건널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나는 내 앞에 있는 차량을 따라 천천히 대교를 올라가고 있었다.

빙글빙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기다란 대교. 지금까지 겪었던 부산운전은 과격함, 그 자체였지만 이곳 만큼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과격한 운전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달팽이가 기어가듯 아무리 천천히 움직여도,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최대한 실선만 보고 가는 중이다. 되도록이면 밖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끼익-


내 앞에 있던 하얀색의 신형 캐딜락 차량이 갑자기 정지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꽤나 큰 차량이다.

고속도로나 이런 곳에서는 나쁘지 않을 지 몰라도, 여기서는 뭐랄까.


'왜 멈췄지?'


그 웅장한 크기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다.


벌컥-


캐딜락이 비상깜빡이를 켰다.

운전석 문이 열린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렸다.

남자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였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건장하고 남자답게 생긴 것이 든든해 보였지만, 사실 마음만큼은 가녀린 것일까.


"죄, 죄송합니다!"


내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내게 사과했다. 뒤에 있는 차량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덱스는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웅크린 채였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멈추신 겁니까? 고장난 겁니까?"


내 물음에 남자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울기라도 한 것인지,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고, 고장난 게 아니고, 무, 무서워서."


...무섭다고?

설마.


"제, 제가, 제가, 고소, 고소공포증이, 이, 있어서, 예, 예전에, 군대, 군대에서도, 그것 때문에, 아니, 아무튼."


젠장.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그런 사람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심지어 롱바디 차량을 끌고 여길 와?

SUV는 기본적으로 세단보다 운전석의 시야가 높다.

따라서 운전석에서 운전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남다를 수밖에.

이는 다시 말해서.


"제, 제가, 정말, 죄, 죄송합니다, 이거, 못, 못 가겠는데, 어, 어떻게."


저 남자가 여기서 운전할 때, 마치 허공에 붕 뜬 듯한 공포감을 느꼈겠지. 심지어 고소공포증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강제로 운전하라고 할 수는 없다.

잘못하다가는 남자가 당황해서 차량과 함께 밖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진정하세요. 차분하게, 심호흡하시고."


그러니 내가 도와주는 수밖에.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길은 없다.

게다가 부산항대교로 올라가는 이 미친 커브길은 한 차선 뿐이다. 저 남자가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후진을 하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후진을 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후우, 후우."


다행히 남자는 내 말에 잘 따라주었다. 여전히 전신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호흡이 거칠긴 했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모양이다.


"자, 제가 뒤에서 봐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악셀 밟고 가시면 됩니다."


내가 남자에게 지시할 동안, 뒤에 있던 차량들은 단 한 번의 경적도 울리지 않았다. 아마 이곳이 부산항대교이기 때문이겠지.


"제, 제가, 고소공포증이, 이, 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도와줄 테니까.

물론 운전을 직접 해줄 생각은 없고.


"절 믿고, 일단 가십시오."


호라이의 이름으로 도와줄 수는 있지.

평화의 여신을 모시는 에이레네교의 신자.


"분명 괜찮을 겁니다."


김건우가 내게 주었었던 에이레네교의 동전.

이걸 이용하면 된다.


*

*

*


남자가 너무 당황했던 까닭일까. 그는 내가 자기 옷에 몰래 '에이레네교 동전'을 넣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잘 된 일이다. 동전의 힘이 대단했는지, 남자는 아까와는 달리 부드럽게 부산항대교를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유덱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잘 가는군.'


참으로 길고 긴 커브길이다. 캐딜락에 비해 한참 작은 황금마티즈에 탄 내가 봐도 아찔한데, 시야가 높은 캐딜락을 운전하는 건 오죽할까. 지금의 나도 최대한 밖을 안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니.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

우린 겨우 대교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저 징글징글한 커브길, 다시는 마주치지 말아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수석 창문을 연 남자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얼씨구.'


커브길이 끝나기가 무섭게, 얌전한 강아지 같던 차량들이 순식간에 야생마로 변해버렸다.

이제 위험한 길 끝났다, 이거지. 참나.


부아아아아아아앙!!


누가누가 가장 강하고 힘찬 야생마일까 대결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1차선의 뒤쪽에서 우렁찬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배기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게 뭔 소리야?"


어느새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온 유덱스가 투덜거렸다.

어쭈, 눈가가 붉은데.


"이제 안 무섭냐?"

"뭐?"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잖아? 지금도 봐라, 눈이 시뻘겋네. 울었냐? 쫄았어? 어?"

"아니야!"


유덱스가 소리질렀다. 참나, 무서우면 무섭다고 하지. 자존심 부리기는.


"그냥, 좀, 졸려서 그랬어. 잔거야 잠깐. 피곤했으니까."

"네- 그러시겠지요."

"그건 그렇고 저 차는 대체 뭐야?"


유덱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1차선에서 흥분한 들소마냥 달려오던 검은색의 BMW XM.

속도를 줄이지 못한 차량은 앞에 있던 흰색의 소나타와 부딪히고 말았다. 문제는 BMW가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는 것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놈이 급작스럽게 핸들을 돌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2차선에 있던 G70 역시 사고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BMW가 워낙에 빨리 달려온 까닭에, 소나타와 G70은 앞으로 밀려나며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앞으로 밀려난 두 차량에 의해, 근처에 있던 다른 차량들도 사고에 휘말렸다.


한 마디로, 다른 차량들이 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사고현장이었다. 나 역시 다른 차량들처럼 비상깜빡이를 켠 후 차량을 멈춰세웠다. 애초에 앞으로 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젠장할.'


BMW 때문에 저 멀리 밀려났던 또다른 차량, 푸조 중형 세단이 시멘트 벽을 뚫고 대교 밖으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푸조에 탑승한 운전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보려 애쓰고 있었지만.


쿠궁-


차는 이미 넘어간 뒤였다.

저대로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차량이 박살나는 건 둘째치고 운전자 역시 즉사할 것이다. 전신이 감자처럼 으깨진채로.


"유덱스!"

"알고 있어!"


나와 유덱스는 서둘러 차량에서 내렸다.

나와 유덱스는 신성마법을 이용해 다른 인간들이 우리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어차피 인간들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신성마법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뭐가 됐든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떨어지는 차 위에 마인이 있었다.

느껴지는 이 기운. 놈은 하급마인에 불과했다.


......잠깐, 저 새끼가 왜 웃고 있지?

혹시 다른 곳에 동료가 있는 걸까?


"유덱스."

"왜?"

"내가 저 차를 맡을 테니까, 다른 쪽을 살펴."

"...다른 쪽?"

"저 차량 위에 마인이 있어. 하급마인이야. 다른 동료가 있을지도 몰라. 다른 차량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대한 막고 있어."

"알겠어!"

"잠깐만, 너 고소공포증이 있잖아? 괜찮겠어?"

"...여긴 괜찮아. 아까 거긴.... 미친곳이었어."


유덱스는 믿을 만한 동료다. 그러니 믿고 맡겨도 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녀석이긴 하지만, 아까처럼 창백하진 않다. 하긴, 아까 그 커브길은 정말 미친곳이었지. 설계한 놈 엉덩이 백 대는 때려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할 일을 할 때다.


부웅-


나는 대교 밑으로 몸을 내던졌다. 아까도 느낀 거지만 이 대교, 높이가 상당하다.

차에 탄 채로 볼 때랑 직접 몸을 내던질 때랑은 체감이 확실히 다르군.


{이봐!}


마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놈은 기분나쁘게 실실 웃고 있었다.


{너는 날지도 못하잖아? 어차피 이 인간은 죽을 거야. 넌 헛수고를 하고 있는 거라고.}


맞다.

나는 날 수 없다.

내게는 날개도 없고, 비행기의 엔진도 없으니까. 또한, 내 몸을 공중에 띄울 수 있을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줄도 모르니까.

하지만.


콰악!


날지는 못해도, 어쨌든 마법은 사용할 수 있다.

나는 한 손으로는 부산항대교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떨어지는 자동차를 붙잡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물리적으로는 둘 다 잡고 있지 않았다.

내 양손과 부산항대교, 그리고 자동차는 물리적으로 붙은 상태가 아니었지만, 겨우 마법으로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만약 상대가 최소한 중급마인이었다면, 이 마법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하급마인이다. 그러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붙은 상태가 아닌 것을 억지로 마법으로 붙여 놓은 거니까.

만약에, 여기서 조금이라도 내가 힘을 잃는다면.


{역시, 중급사제는 확실히 남다르군.}


하급마인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푸조 차주는 실신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을 까뒤집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차주가 창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창문이 열려있었다면, 제법 시끄러웠을 터.


{근데 말이야,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상대는 하급마인이다.

충분히 금방 해치울 수 있는 약한 놈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


{친구는 왜 위에 두고 온 거야?}


...친구?

유덱스가 있는 걸 알고 있었나?


{아까 그 친구 말이야, 고소공포증이 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 녀석 말이야, 이 녀석도 고소공포증이 아주 심한 것 같더라고.}


그때였다.

마인이 데리고 있던 푸조차량이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중형세단에 불과했던 차량이 금세 대형 SUV로 바뀌었다.

아까 봤던 그 캐딜락이었다.


.....아. 그런거였나.

그래서 마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가.


그때 마인이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순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잊겠는가.

나의 삶의 터전을, 일상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앗아갔던 그것을.


{디케교의 사제.}


마신의 폭탄이었다.

마인은 부산항대교가 있는 곳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효과는 굉장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우린 이제 작별인사를 할 때야.}


나와 마인, 그리고 캐딜락은 그대로 바다를 향해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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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114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이거? +2 24.02.11 17 2 12쪽
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3 2 13쪽
112 어쨌든 약속은 지켰잖아? +2 24.02.09 13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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