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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14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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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앵무새

DUMMY

BMW차주의 억지부리기는 감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이가 없었는지 정중재가 가뜩이나 동그란 두 눈을 치켜뜨며 무어라 항의를 하긴 했는데, 차주의 뻔뻔함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그쪽이 먼저 방향지시등을 켜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뭔 소립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십쇼, 우리가 멈춰줬잖아요? 가던 길 갔으면 된 거 아닙니까? 왜 이상한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까?"

"그런 식으로 가만히 있으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니, 그쪽이 계속 직진 중이었잖아요. 그럼 당연히 우리가 멈추겠죠!"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예요! 어떻게 할 건지 방향지시등으로 알려줘야죠! 그런 것도 안 알려주고 가만히만 있으면 내가 뭘 어떻게 알아요? 면허 딸 때 방향지시등 쓰라고 안 배웠어요? 무면허예요, 당신?"


정중재가 뒷목을 잡았다. 지켜보는 나도 뒷목이 저절로 땡길 정도인데 직접 상대하는 넌 오죽하겠냐.

차주가 말을 이었다.


"이건 당신 때문에 난 사고니까, 당신이 책임지세요."


왜 우리가 책임을 져? 우린 이 사고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정중재가 인상을 구겼다.


"제가 왜 책임을 집니까? 사고는 당신이 냈잖습니까?"

"거기서 길을 막고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당연히 사고가 나지 그럼 안 나요?"


진짜 개소리네. 개소리도 저것 보단 훨씬 더 논리정연할지도 모른다.

저 소리를 들을 바에야 차라리 지나가던 똥개랑 구구단이나 외는 게 훨씬 정신건강에 이로울지도. 바닥을 기어가던 개미랑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토론하는 게 훨씬 더 쉬울지도.


"이봐요, 저분이 뭘 잘못했다는 거예요?"


코나에서 차주가 내렸다. BMW와 마찬가지로 여성이었는데,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잔뜩 화가난 표정의 코나 차주는 그나마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있는 모양인지, BMW차주에게 말했다.


"저분은 정지상태였어요. 우리가 오는 걸 보고 멈춰 주신거라고요. 그럼 쭉 가시면 될 것을 왜 갑자기 후진해서 제 차를 박고 그러세요?"


BMW차주는 지지 않았다.


"나는 좌회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 차가 방향지시등을..."

"애초에 여긴 일방통행 길이에요. 좌회전하는 길이 아니라고요. 저쪽으로 가시고 싶으시면 애초에 돌아서 가시면 되잖아요? 길이 막혀있는 것도 아니고."


앵무새마냥 '방향지시등'을 되풀이하는 BMW차주에게 코나차주가 논리적으로 화를 내자, BMW차주는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지금 어른한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거예요? 어?"


이런, 슬슬 반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줄 알아야지. 그런 식으로 굴면 나중에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게 될 걸, 너?"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제 차 보험처리 해주세요."


다행히 코나차주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뭐? 보험처리?"


BMW차주가 코웃음을 쳤다.


"뭔 사고가 크게 났다고 보험처리를 해줘, 내가? 내가 왜?"

"여기 보세요. 제 차 앞부분이 긁혔잖아요. 새로 뽑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 찬데."


진짜였다.

아까 BMW가 너무 급하게 후진을 하는 바람에, 코나와 제법 세게 부딪혔던 것이다.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차주의 마음이야 어디 그런가? 내가 내 배 아파 직접 낳은 새끼는 아닐 지언정, 내 차가 다치면 차주의 마음도 다치는 법.


"뭐 얼마 하지도 않는 차 가지고 되게 유세부리네."

"풀옵션 다 땡겨서 가격 꽤 나가거든요? 그리고 자꾸 논점 흐리시는데, 지금 차 가격 같은 게 중요한 건가요? 애초에 그쪽에서 먼저 사고를 냈잖아요?"

"내가 왜 잘못한 거야? 내 잘못은 없어! 저 남자가 방향지시등을 켰어야지! 법대로 하자고! 법대로!"

"진짜 법대로 해볼까요?"


계속 잠자코 있던 내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BMW차주가 고개를 잔뜩 치켜들더니 말했다.


"그래! 법대로 하자고!"

"저희 차량에 블랙박스가 달려있습니다. 그걸 보면 상황을 알 수 있죠. 경찰한테 그 영상을 넘기면, 이 사건도 금방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경찰'이라는 말에 BMW차주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뭐, 굳이 경찰을 부를 게 있나? 이건 간단한 사건이야. 네가 먼저 방향지시등..."

"그러니까요. 경찰을 부르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 경찰들은 도로교통법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논점을 흐리시고 방향지시등 얘기만 하시는데....."


이번 사건의 중요 포인트는, BMW차주가 난데없이 후진을 해서 코나를 박아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BMW차주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정확히는 정중재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아서 자기가 사고를 낼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저희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신이 사고를 낼 수 밖에 없었던 거라면, 당신에게도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겁니다."

"뭐? 나한테 책임이 있다고? 무슨 책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차주가 인상을 구겼다.

나는 말을 이었다.


"저희가 있는 쪽으로 오고 싶었다고 하셨었죠? 좌회전을 할 생각이셨다고 했잖습니까?"

"그래! 난 좌회전 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갑자기 멈췄잖아! 방향지시등도 안 켜고!"

"그럼 당신도 방향지시등을 켰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나를 향해 침을 튀겨가며 삿대질을 하던 BMW차주가 순간 굳어버렸다. 당황한 듯한 눈치였는데, 차주는 재빨리 평온을 되찾더니 소리쳤다.


"난 켰어! 좌회전 표시 했다고! 그런데 네가 무시한 거잖아!"

"그래요? 그거 좀 이상하네요. 저흰 차주님이 방향지시등 켜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아냐, 켰어! 난 좌회전 할 거라고 표시했다고!"

"아줌마 안 켰어요!"


코나차주가 소리치자, BMW차주가 그 여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콱!


코나차주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어잡고는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네가 봤어? 네가 봤냐고! 막말로! 내가 후진한 게 아니라 네가 브레이크에서 엑셀 떼서 나한테 와서 박은 거면 어쩔 건데?!"

"으아아악!"

"그만! 그만하세요!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정중재가 겨우 뜯어말렸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코나차주의 머리카락은 뭉텅이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BMW차주는 척 보기에는 깡말라 보이는데, 저 괴팍한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금 저한테 뭐 하신 거예요?!"


다행히 머리는 뜯기지 않았지만, 정신머리가 뜯길 뻔한 코나차주가 울먹이며 항의했다. BMW차주는 뻔뻔했다.


"이 여우같은 년이 어디서 거짓말이야? 어? 지가 먼저 잘못해 놓고서 나한테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만하세요!"


BMW차주가 또다시 코나차주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정중재가 몸으로 막았다.

아무리 BMW차주가 괴팍한 힘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정중재를 이기긴 어렵지. 저 녀석 요즘 들어서 완전 근육질 몸이 되어버렸으니.


"그만 억지부리십시오."


나의 말에 BMW차주가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저희 차 블랙박스에 다 찍혀있습니다. 거짓말은 이제 그만하세요. 저 코나차주님 블랙박스에도 찍혀있을 겁니다."

"하지만 방향지시등이..."

"지금 당장 경찰 불러서 확인해 볼까요? 경찰분들하고 다함께 블랙박스 영상 확인해볼까요? 인간은 거짓말을 해도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그쪽이 잘못했는지 아닌지 제대로 알려줄 텐데 말입니다. 어쩔까요."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112를 입력한 후, BMW차주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경찰 부를까요? 사고 났다고? 아, 폭행사건도 있었다고 해야겠군요. 다행히 차주님께서 코나차주님을 제 차 블랙박스 앞에서 폭행하셔서, 아마 영상에 다 찍혔을 겁니다."


흠칫, BMW차주의 몸이 떨려온다. 이제서야 정신이 좀 든 모양이지.


"폭행사건에 교통사고까지. 트리플크라운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중처벌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저기. 미안해요!"


당황한 것일까. 아니면 '폭행죄'라는 사실에 겁을 먹은 것일까.

BMW차주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지는 명확히 알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차주의 정신머리가 돌아왔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는 게 중요한거지.


"내, 내가, 좌회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티즈가 떡 하니 있길래, 순간 당황해서, 그래서 기어를 잘못 넣고 갑자기 후진을 해버렸어요. 사고를 내려고 낸 건 아닌데, 너무 당황해서, 내가."


좌회전을 할 생각이 맞긴 했나보군. 그러니까 아까부터 계속 방향지시등을 가지고 물고 늘어진거지.


"저희한테 사과하실 건 없습니다. 저 코나차주분께 사과하셔야지요."

"미, 미안해요 아가씨!"


BMW차주의 날카로운 손톱 때문에 코나차주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꽤나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인데, 생채기가 잔뜩 났으니 제법 속이 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잘못했어."

"보험처리 해주시는거죠?"

"으, 응?"

"보험처리요. 해주시는 거죠?"

"여, 연락을 줄게요. 버, 번호가 뭐죠?"


코나차주가 BMW차주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교환을 마친 후, BMW차주가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탔다.

음? 전화번호만 교환하는 거야? 바로 보험처리 안 하고? 아니, 왜?

......

잠깐만, 설마?


"정중재! 저 여자 잡아!"

"예?!"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젠장할. 이미 늦었다. BMW가 튀었잖아.

저 인간, 튀는 건 드럽게 빨리 튀네.


"차주님."


나는 코나차주에게 물었다.


"번호만 교환하신 겁니까? 바로 보험처리 안 하셨어요?"

"저 아줌마가 보험처리는 바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이런.

코나차주는 제법 똘똘한 줄 알았는데, 사고처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하긴,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사고처리를 해본 적이 있을리가 없지.

그래도 그렇지, 면허 따기 전에 이런 것도 필수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호구처럼 당하면 안 되잖아?


"아까 BMW차주가 번호 줬죠? 한 번 전화해 보십시오."

"갑자기? 뭐.... 알겠어요."


코나차주가 BMW차주에게 전화를 했다.

물론.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어, 어, 이, 이게 뭐지? 왜 없는 번호라는거야?!"


뻔하지.

BMW차주의 번호일리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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