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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06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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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상이변

DUMMY

정중재의 채널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니, 어느새 구독자가 100만을 훌쩍 넘어섰다.

구독자가 늘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니 사실 잘 알고 있지만, 정중재의 채널에 제보만 하면 어떻게든 사건사고가 해결된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게 다 누구 덕인데.'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말 까다로운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대다수는 나와 유덱스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조금 과장하자면 콧방귀만 뀌어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구독자 100만 기념, 언박싱 하겠습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 너머 정중재를 보고 있었다. 녀석은 얼마 전에 유X브로부터 골든뱃지를 받았고, 언박싱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댓글들은 모두 정중재를 축하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저거 진짜 금이냐, 구구?}


내 어깨에 앉아 함께 방송을 지켜보던 피죤이 물었다.


"아마 그럴걸?"

{팔면 제법 짭짤하겠다구구.}


비둘기 주제에 물욕이 많군.

어쨌거나 정중재의 방송을 보고 있는데.


띠리리리리-


전화가 왔다.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제주도에서 경찰로 위장한 채 순찰을 도는 에우노미아교의 이노켄시아 사제였다.


"아, 사제님. 무슨 일이십니까?"


예고도 없는 급작스러운 전화에 내가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스피커 너머 이노켄시아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언이 발견되었습니다.


*

*

*


나는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사정상 유덱스는 함께 올 수 없었고, 피죤만 데리고 왔다.


'예언이라니.'


이전에 딱 한 번 발견된 후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예언이다.

그런 예언이 제주도에서 발견되다니.


급하게 오느라 황금마티즈를 가져오지 못했다. 대신 이노켄시아가 미리 준비해 둔 렌트카를 이용해야만 했다.


{오, 벤츠다구구!}


이노켄시아가 준비해 준 렌트카는 다름 아닌 벤츠였다. 그것도 구형이 아닌 거의 최신식으로.


"빨리 가자."


벤츠고 나발이고, 지금은 벤츠를 즐길 시간 따위 없었다. 어서 이노켄시아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이겁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나는 이노켄시아가 지내는 작은 단독 주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주차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아무렇게나 주차한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내게 양피지 조각 하나를 건네주었다.

바로 예언조각이었다.


"제가 알기로, 피데스사제님께서 모이라이로부터 들었던 예언이라고 합니다."


예언은 바로 다음과 같았다.


+

정의란 무엇인가.

옳은 규범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때론 꺾이지 않는 아집이 되고.

옳은 규범은 때론 목을 조르는 족쇄가 되며.

선은 때론 값싼 동정이 된다.


과연 그대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


마스터께서 모이라이에게 이런 예언을 들었다고?


"모이라이가 마스터께 한 예언입니까?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피데스사제님과 저는 제법 친한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였지요.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다 보면,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러고보니 기억이 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름 정기적으로 피데스와 이노켄시아는 따로 만나서 담소를 나누곤 했었으니까.


"모이라이가 피데스사제님께 직접 한 예언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해당 예언은 피데스사제님께서 직접 들으신 것도 아니며, 모이라이가 피데스사제님께 한 예언도 아니에요. 이 예언의 당사자는 바로 프라우스입니다."


...프라우스라고?


"이 예언 말고, 제가 피데스사제님께 들은 또 다른 예언이 있습니다. 이번 예언은, 피데스사제님께서 모이라이에게 직접 들은 예언입니다."

"직접 들었다고요?"

"네. 이번 예언은 피데스사제님께서 모이라이에게 원해서 듣게 된 예언이지요."


또다른 예언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 전, 이노켄시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있었던 큰 사건 하나를 이야기해주었다.

나 역시 알고 있는 사건으로, 바로 [파툼신전 화재사건]이었다.


약 300년 전, 파툼신전에는 큰 화재가 일어났었다. 불길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갔고, 신전의 모든 이들이 사망했다. 범인은 다름 아닌 마신이었는데, 마신은 파툼신전 뿐 아니라 다른 신전들도 멸망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당시 중급사제였던 마스터와 다른 이들이 힘을 합쳐 겨우 마신을 저지할 수 있었는데, 봉인에 성공하진 못했었다.


그 때문일까.


"그 사건으로, 피데스사제님께서는 근심에 휩싸이게 되셨지요. 사실, 피데스사제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어요. 정확히 화재사건이 발생할지는 몰랐지만, 큰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죠."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예언 능력이 있으셨나?"

"아니요."


이노켄시아에 따르면, 화재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스터는 모이라이가 마신에 대해 했던 예언 하나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

저 아래, 이 세상 만물의 모든 고통과 비명, 뼈와 피가 뒤섞인 땅에서 검은 빛이 솓아 나리라.

그 빛은 온 세상을 검게 뒤덮으리라.

저 하늘에 걸린 밝은 별빛도, 찬란히 빛나던 태양도, 모두를 집어삼킬 듯 위풍당당했던 파도도 결국 그 앞에 고개를 숙이리라.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눈부신 별빛이 검게 뒤덮인 하늘을 비추리라.

검은빛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갈지니, 결국에는 사라지리라.

사라진 검은빛은 저 깊은 땅 속에 묻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라.

+


"유스티오사제님도 이젠 예언을 들어보셨으니 눈치채셨겠지만, 모이라이는 마신의 멸망을 예언했지요. 마신 입장에서는 그리 기분이 좋진 않았을 겁니다. 피데스사제님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하셨었어요. 마신이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난동을 부릴 거라는 것을 말이죠."


제일 처음 보았던 예언이 떠오른다.


'세상이 평화를 거부하였다.... 결국 세상은 황폐해지리라.... 그러나 하늘에서 미약한 빛을 지닌 큰 별이 떨어졌으니,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땅은 다시금 생기를 돋우리라....'


머리가 복잡했다. 머리가 아파온다.

이노켄시아가 말을 이었다.


"마신과 프라우스는 서로 제법 비슷한 예언을 각각 모이라이에게 받았어요. 유스티오사제님께서 제일 처음 마주했던 예언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한다. 지금 마침 되새기고 있었으니까.


"그 예언속의 큰 별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당신과 유덱스사제님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피데스사제님께서 파툼신전 화재사건을 겪은 후 모이라이께 직접 들은 예언이죠. 즉, 당신과 유덱스사제님이 디케교에 입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인 겁니다."


그 예언은 정확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어마무시한 전쟁이었으니까.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염려한 피데스사제님께서는, 근심이 가득한 채로 모이라이께 또 다시 찾아갔어요. 그 때가 언제냐고 물으셨던 것이지요. 난리가 일어날 그 때를 물으셨어요. 결국 예언을 하나 더 듣게 되었지요."


+

어느 날 청명한 빛을 품은 자가 황금빛 신전으로 제일 먼저 들어오리라.

그 빛은 누구보다 눈부시리라. 모두가 고개를 숙이리라. 모두가 허리를 숙이리라.

눈부신 빛은 황금빛 신전을 더욱 밝게 밝히리라. 그 누구보다 밝게 밝히리라.


그러나 영원히 타오르는 빛은 존재할 수 없는 법.

눈부신 밝은빛이 황금빛 문을 영원히 닫고 나올 때, 어둠을 비추던 빛이 땅에 떨어지리라.

그 순간 땅이 열리고, 불구덩이가 나타나리라. 떨어진 빛은 그곳에 영원히 갇히리라.


이는 스스로가 선택한 일, 그 누가 안타까워하겠는가? 그 누가 그를 위해 슬피 울겠는가?


떨어진 빛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리라.

떨어진 빛은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리라.

어둡고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히 고통에 울부짖으리라.

+


....설마.

황금빛 신전으로 제일 먼저 들어온다고?


"......프라우스에 대한 예언인 겁니까?"


이노켄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자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언이 정확하다는 가정 하에, 현재는 중간까지 이루어진 셈이다.

황금빛 문을 영원히 닫고, 즉 신학교를 졸업한 후 프라우스는 디케교를 즉시 배신했다.

그런데.


"이 예언을 프라우스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마신과 프라우스가 닮았다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모이라이는 마신과 프라우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한 마신과 프라우스 모두,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면 할수록, 모이라이가 예언한 운명 그대로 움직이는 모순을 보여주었다.


"사제님."


순간,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스쳤다.

예언이 적힌 양피지 조각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어떤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기운이다.


"이 예언, 어디서 발견된 겁니까?"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이노켄시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바닥에 떨어져있었습니다."

{엥?}


피죤의 반응은 정상적이다.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언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말입니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당시 제가 이 예언을 발견했을 때 주변에 있었던 CCTV를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제가 그 구역 담당 경찰이니,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이노켄시아는 거짓말을 할 사제가 아니니까.

그보다, 저게 말이 되나?

양피지 조각을 여 봐란 듯이 바닥에 떨어뜨려놔?


"혹시 양피지 조각이 어디쯤에 떨어져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희 집 바로 앞에 있었어요."

"......!"


역시.

이 예언조각은 우연으로 인해 바닥에 떨어진 게 아니다.

그 놈, 그 놈이 일부러 떨어뜨린 게 분명하다.

그 놈은 이미 예언이 적힌 양피지 조각을 갖고 있었고, 지금은 우릴 놀리고 있는 거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이노켄시아가 어디에 있는지.

유덱스가 어디에 있는지.

피죤은 어디에 있는지.

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사제님."


나는 예언조각을 이노켄시아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렌트카에 오르며 말했다.


"제주도를, 부디 지켜주십시오."


곧, 이 땅에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될 테니까.


*

*

*


그로부터 며칠 후.

물론 당장 무슨 사건이 발생하진 않았다.

원래 사건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평화로운 듯 평소와 다를 게 없지만,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중재, 그리고 피죤과 함께 마트에 다녀왔다. 집에 먹을 게 없었던 것이다.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마트를 나오는 그때였다.

내가 제일 먼저 마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형님? 갑자기 왜 멈추시...... 어어어어어?!"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생긴 듯이,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세기가 어찌나 대단한지, 금세 도로 전체가 물에 잠겼을 정도였다.


"혀, 형님...... 이건......"

{날씨가 분명 정상이 아니다구구.}


맞는 말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빙하가 녹기 때문인가?


아니, 이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다들."


나는 이 비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이건 평범한 비가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먹물처럼 새까만 비.


"준비해."


이 비는, '그 놈'이 만들어낸 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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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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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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