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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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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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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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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스틱스강에 맹세

DUMMY

{포, 포세이돈님!}


어류가 소리쳤다.

포세이돈이 우리의 청을 들어준다는 말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녀석이 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포세이돈님, 디케교는 포세이돈교와 전혀 상관없는 곳입니다. 괜히 도와주었다가 일에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내가 그리 생각이 없는 신 같으냐?}

{ㅇ, 예?! 아니, 그게 아니옵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도록.}


순간, 포세이돈의 눈이 번쩍였다. 푸른빛의 안광이 어류를 향하자, 발끈하던 녀석이 금세 잠잠해졌다. 역시 신은 신이다. 아무리 가짜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위엄은 결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럴 줄 알았지.

절대로 그냥 들어줄리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예상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신이라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변덕이 심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청을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다고 해도,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끝까지 가지 않은 한, 최대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씀하십시오.}

{이곳 한국에 위치한 넵투누스신전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나의 소중한 신전일세.}


생각해보면 넵투누스신전은 본래 동양에 없었다. 아마 시간이 흘러 포세이돈교가 기울자마자, 소수의 신자들이 겨우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게 틀림없다.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광에 비해서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신전이 남은 게 어딘가.

디케교는 모든 신전들이 다 파괴된 상태지 않던가.


{나는 그대들을 돕겠지만, 내 신전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할 걸세.}


그야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어류의 말도 틀린 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디케교와 포세이돈교는 전혀 다른 종교다. 그러니 굳이 남의 종교의 일에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불교 신자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 것처럼.


포세이돈이 우릴 돕는 이유는 단 하나. 디케여신님이 포세이돈의 형제, 제우스의 고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제우스가 고모랑 애를 만들었다는 소리 아닌가? 뭐 이딴 막장이 다 있지?

모르겠다. 일단 그건 넘어가자. 지금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세이돈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애초에 나는 넵투누스신전에 피해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쳤다고 남의 신을 모시는 신전에 피해를 주겠는가? 만약 어떤 방식으로라도 피해를 준다면, 그건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마신이 '미친놈'인 이유도 이와 같다.

놈이 저지른 짓이 비윤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마교와 디케교 역시 서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남남이란 말이다.

지들끼리 치고받는 거야 뭐,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 왜 남의 종교를 굳이 파괴하려 드느냐, 이 말이다.


{저와 유덱스, 그러니까 저희 디케교 사제들은 당신의 힘을 잠시 빌리는 동안 넵투누스신전에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스틱스강에 맹세할 수 있는가?}


......스틱스강이라고?

포세이돈, 진심으로 자기 신자들과 신전을 지키고 싶은 모양이군. 이해는 간다.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에 비해 신자들의 수는 초라할 정도로 줄어들은 상태니까. 나름 신인데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원래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자들은 그 영광을 잊지 못해 평생을 갈구하는 법이니.

그건 그렇고 스틱스강까지 들먹일 줄이야. 그냥 약속 조금 하면 될 줄 알았건만.


-조심해.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유덱스가 내게 속삭였다.

아니, 속삭인게 아니었다. 녀석은 다양한 신성마법 중 하나인 전음(傳音)을 사용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는 함부로 하는 게 아냐. 신들도 어길 수 없는 맹세라고.


나도 알고 있다. 녀석이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을 해보자.

만약 내가 넵투누스신전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을 스틱스강에 대고 맹세한다면?

아주 만약에, 내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신전에 피해를 준다면? 신전의 시동이나 누군가가 사망한다면? 포세이돈 신전의 사제인 어류가 다친다면?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네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한다면, 넌 죽어.


그렇다. 난 죽게 될 거다.

그렇다면 확신할 수 있을까? 넵투누스신전에 그 어떠한 피해도, 최소한의 피해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확신은 불가능하지.'


{스틱스강에 맹세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들을 도와줄 수 없네.}


어쩐지 순순히 요구를 들어준다했지. 저 야비한 새끼가 그럴리가 없는데.

하여간 제우스고 포세이돈이고 하나같이 인성이 글러먹은 새끼들이지. 조금만 수틀려도 벼락내리고 10년 동안 고행하게 만들고 툭 하면 인간들을 별자리로 만들질 않나, 독수리에 뜯어먹히게 내버려두지를 않나.


.....됐다. 그만두자. 제우스든 포세이돈이든 욕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아니야. 그래도 빡치네.

지가 자식 교육도 똑바로 못 시키니까 자식들도 하나같이 망나니새끼들인 거 아냐? 저 새끼 자식들 때문에 지금까지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젠장할. 뒤끝도 구린 새끼 같으니라고.


......그래.

나도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맹세하겠습니다."


-유스티오!


{정말이냐?}

"그 대신, 당신 역시 스틱스강에 맹세해주십시오."

{무례하다! 감히!}


어류가 소리쳤지만, 포세이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좋다. 맹세하도록 하지.}

"저는 상급마인과 싸우는 동안 넵투누스신전에 그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을 것을 스틱스강에 맹세하겠습니다. 또한 당신 역시 저에게 마인을 무사히 처리할 수 있도록 당신의 힘을 빌려줄 것을 맹세해주십시오."


포세이돈이 흥미로운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놈이 푸른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다. 맹세하도록 하지. 자네들이 마인을 죽일 수 있도록, 나의 힘을 빌려주도록 하겠네.}

"상급마인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어야만 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그럼 이제 맹세를 하도록 하지.}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를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입으로만 '맹세합니다'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준비되었는가?}

"준비됐습니다."


-유스티오......


나와 포세이돈은 서로를 마주본 채 섰다. 우리 둘의 양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유덱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걱정하지마.

-그래도, 함부로 맹세를 하는 건......

-진짜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날 믿어.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나는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준 후, 포세이돈을 마주 보았다.

포세이돈의 두 눈을 마주하자니, 전신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짜 모습이어도 이 정돈데, 만약 진짜를 마주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죽었겠지. 디케여신님의 진짜 모습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신의 모습을 마주한 인간, 혹은 사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멜레다.

그 여자는 인간이었는데, 멍청한 제우스가 '스틱스강에 맹세하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마'라고 그 여자한테 약속한 것이다.

곧 여자가 진짜 신의 모습을 보여달라 청했고, 제우스는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여자는 타죽었지만.


'후우.'


천천히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긴장하지 말자.

내 눈앞에 있는 저 존재는 분명 신이지만, 쫄따구 신이다. 찌질한 신이다. 쫄 거 없어.


{디케교의 사제, 에르마노 유스티오사제여.}


나와 포세이돈의 중앙에 서있던 어류가 엄숙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대는 상급마인과 싸우는 동안, 넵투누스신전에 그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을 것을 스틱스강에 맹세하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만약 맹세를 어길 경우, 그대는 사제직을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맹세합니까?}


다행히 죽진 않는 모양이군.


"맹세합니다."

{포세이돈교의 위대한 신, 포세이돈이시여. 당신께서는 디케교의 사제들이 상급마인을 죽일 수 있도록 당신의 힘을 빌려줄 것을 스틱스강에 맹세합니까?}


포세이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하지.}

{만약 맹세를 어길 경우, 향후 10년간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맹세합니까?}

{맹세한다.}


나와 포세이돈의 대답을 들은 어류가 양 손, 아니 지느러미를 뻗었다. 놈의 지느러미는 우리 둘이 들고 있는 단검을 가리키고 있었다.

굳은 맹세의 의미로, 각자의 피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들고 있는 단검으로 왼쪽 팔뚝을 조금 긁자, 곧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포세이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흘러나온 내 피에서 반투명한 실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포세이돈의 팔뚝에서 나타난 실과 한데 묶였다. 묶인 실은 마치 춤을 추듯이 이리저리 흩날리더니, 곧 사라졌다.


어류가 말했다.


{이로써,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맹세는 유효합니다.}


맹세가 이루어진 후, 포세이돈이 나에게 자신을 상징하는 삼지창, 즉 '트리아이나'를 건네주었다.

창은 제법 묵직했는데, 나름 들만했다.


{본래 신의 무기는 일개 인간이나 사제 따위가 사용할 수 없는 법이다.}


포세이돈의 말에 놈의 뒤에 서있던 어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다 보인다, 이 새끼야. 표정 풀어라. 이미 맹세까지 했는데 뭔 짓이냐.


아무튼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신의 무기는 인간들은 물론이요, 사제들도 사용할 수 없다.

진짜인지는 내가 신이 아니니까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신의 무기에는 '생명'이 깃들어있다고들 하니까. 충직한 개가 자기 주인 외에는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듯이, 신의 무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인이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전능한 권능으로 인하여, 그대가 상급마인과 싸울 동안 그대는 나의 트리아이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포세이돈의 저 말은 진실일 것이다.

만약 저 말이 거짓이었다면, 트리아이나는 내 손에 들려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침입자라고 여기고 공격했겠지. 아니면 멀리 던져버렸던지.


{본래는 신전의 병력을 그대에게 빌려주려고 했었지. 그러나 부끄럽게도 현재 신전의 병력은 초라한 수준이네.}


당연히 그렇겠지. 포세이돈교가 우리 디케교처럼 마교에 의해 망한 건 아닐지라도, 세월을 이기진 못했을 테니까.

솔직히 요즘 누가 포세이돈교를 믿겠는가? 차라리 금붕어를 키우고 말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대에게 나의 트리아이나를 빌려준 것일세. 그리고......}


포세이돈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게 말했다.


{그대는 신이 아닌 사제에 불과하다. 아무리 신성력을 품고 있다고 한들, 그대는 결코 신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내 힘을 자네 수준에 맞도록, 트리아이나가 조절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아이나는 신의 무기. 그러니, 그대가 트리아이나의 힘을 제대로 조절하거나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뭐, 예상한 일이다.


{신의 힘이 그대의 몸속으로 잘못 흘러가게 되면 폭주할 수도 있다네.}


-......유스티오, 내가 할까?


걱정이 되는지 유덱스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충고 감사합니다, 포세이돈이시여."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마인을 처리하고, 당신께 트리아이나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부디 행운의 여신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빌겠네.}


포세이돈이 인자한 표정으로 신전을 빠져나가는 나와 유덱스를 배웅해주었다.

저 새끼, 착한 척 하면서 가증스러운 짓을 하는 것 좀 봐라.

진짜 속셈이 뭔지, 내가 모를 것 같나?


'지 형 제우스랑 허구한 날 싸워대서, 제우스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호라이여신들을 싫어하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고.'


저 거지같은 새끼, 에이레네여신에게 한 두번 추파를 던진 게 아니다. 이 빌어먹을 막장신 같으니라고.

지 형 제우스 때문에 디케여신님도 싫어했었지.

그러니까, 저 포세이돈은 내가 맹세를 어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지금.


'나와 유덱스가 중급사제에 불과하니까, 지 트리아이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아마 신전에 피해가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도 했을 거고.'


내가 맹세를 어기게 되면, 나는 사제직을 박탈당하게 되니까.

포세이돈은 그걸 원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유덱스."

"응."

"밖으로 가자."


네가 원하는 대로 절대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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