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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05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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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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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사기?

DUMMY

휴게소 화장실로 달려갔던 천지연은 한참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죽는 줄 알았네.'


급똥은 부처가 와도 못 말린다고, 갑자기 신호가 오면 인간 존엄성이고 나발이고 다 내던져 버리게 되는 것이 바로 급똥이다.

하물며 운전 중에는 오죽할까. 전신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핸들을 잡고 있는 양 손은 벌벌 떨리고, 머릿속에는 오직 '화장실'밖에 떠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집에 가야지......'


화장실 변기를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일까. 천지연의 얼굴이 핼쓱해보인다.

그녀는 어쩐지 헐어버린 것 같은 엉덩이를 붙잡고 어기적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이 모습, 어디서 꼭 본 것 같은데. 어쩐지 기시감이......'


순간 천지연의 머릿속에 유스티오가 떠올랐다. 햄버거가게 화장실을 나와 엉덩이를 붙잡고 어기적거리던 그의 모습.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역시 화장실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던 것이다.


'...진짜 힘드셨겠네.'


삐빅,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운전석에 앉았다. 제대로 앉기 힘들었다. 엉덩이가 헐은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까."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잊고 있는 거지?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않았나?

그게 무슨 일이었더라?


*

*

*


며칠 뒤.

천지연은 알바를 마친 후 자취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으나,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것 신경쓸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따라 손님들이 많았는데, 특히 단체주문 손님이 있었던 것이다.


'죽겠다.'


심지어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100개 넘는 햄버거를 주문한다고 해도, 메뉴를 통일하면 좀 괜찮으련만.


'단체주문은 대체로 메뉴 통일하던데.'


덕분에 천지연의 가녀린 팔만 혹사되었다.


"으으."


전신이 비명을 내지른다. 내일 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려울 정도다. 이 정도면 분명 내일 큰 후폭풍을 맞이하게 될 터.


스윽-


침대에 엎어진 천지연이 이불을 더듬거리더니,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던 스마트폰을 잡았다.


'그러고보니 슬슬 방송할 시간이지.'


천지연은 바탕화면에 있는 빨간색의 어플을 터치했다. 곧 라이브방송 알림이 도착했다.

바로 정중재의 라이브방송이었다. 예전에는 운전관련 유X브를 좀처럼 시청하지 않았었는데, 운전을 시작한 후로는 그녀의 알고리즘은 온통 '운전관련 컨텐트'들 뿐이었다.


-자, 그럼 오늘의 첫번째 영상을 다함께 보실까요?


채널 구독자들인 일명 '빠방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 정중재는 능숙한 솜씨로 첫번째 영상을 켰다. 그의 구독자 중 한 명이 제보한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영상이 재생되기 전, 정중재가 간단한 설명을 했다.


-제보자님께서 간단한 설명을 써주셨습니다. 영상 재생하기 전에 이 부분을 읽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어디 보자, 아. 고속도로에서 위험한 운전을 하는 분이 계신답니다. 그렇죠, 고속도로. 고속도로에서 평범하게 운전해야지, 이상하게 운전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죠. 자기만 죽으면 또 모를까, 다같이 죽으면 안 되잖습니까? 어쨌든 제보자님께서 우리 빠방이들한테 부탁을 하셨습니다. 영상을 보고 판단해 달라고 하네요. 제보자님 말고, 상대 차량이 뻔뻔하기 그지없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다.


-한 번 봐봐요. 우리가 판단해줌.

-고속도로 칼치기충인가?

-빨리 재생해요!


댓글을 읽으며 구독자들과 잠시 간단한 소통을 하던 화면 속 정중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재생합니다!


곧 영상이 재생되었다. 제보자의 말대로 배경은 고속도로였다.


-1차선, 추월차선이죠? 추월차선에서는 정속으로 달리면 안 되죠. 지금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차가 하나도 없고 텅텅 비어있다면 더더욱. 추월차선에서 정속으로 달리는 것도 단속에 걸리거든요. 이거 혹시 모르시는 분 있다면 주의하셔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알아두시는 게 좋아요. 그런데.....


정중재의 시선이 영상 속 어딘가에 꽂힌다. 천지연은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기에,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제보자님은 80으로 달리고 계신 거죠? 앞에 차량이 있는 건가요? 제가 못 본 건가요? 어? 75로 줄었네요?


그때, 힘없이 축 늘어진 강아지마냥 누워있던 천지연이 고개를 들어 화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정중재가 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블랙박스 화면에 찍힌 속도계였다. 해당 영상의 제보자가 탑승한 차량에 '헤드업디스플레이'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정중재 말대로, 제보자는 추월차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속 70에서 80사이로 달리고 있었다.


-아, 추월차선에서 75라...... 일반 국도에서도 이 정도로 달리거든요. 안 막히면 80 이상도 밟을 수 있죠.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75? 심지어 차량도 없는데? 음, 좀 이상하네요.


댓글들 역시 난리가 났다.


-정속충이네.

-위협운전은 지가 하는 거 아님?

-지금 조금 전까지 75이었는데 갑자기 60으로 줄어듦. 브레이크 밟은 거임. 뒤에 오던 차량 있었으면 백퍼 사고 남.

-제보자님 운전습관이..... 좀...... 고치시는게......


정중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쨌든 영상을 계속 보도록 하죠. 네, 제보자님이 잘 앞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 레이네요! 레이가 제보자님을 추월해서 갑니다. 여러분, 지금 보시면 알 수 있으시겠지만, 추월차선에는 차량이 없구요, 2차선부터 4차선까지는 차량이 있긴 합니다. 막히진 않지만, 있는 거죠. 네. 레이가 제보자님을 추월했고. .......어라?


정중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레이가 제보자 차량을 추월한 것 까지는 좋았다. 당연히 추월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제보자차량이 갑자기 2차선으로 냅다 차선을 옮기더니, 레이앞으로 달려들었다. 심지어 속도까지 줄이면서 말이다.


-아, 이건 아니죠. 제보자님. 이거 진짜 아닙니다. 지금 설마 레이차주분이 위협운전을 했다고 제보하신 건 아니겠죠? 빠방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이차주분이 위협운전을 하신건가요?


댓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절대 아님. 애초에 지가 잘못해놓고 남한테 개지랄.

-제보자님, 추월차선에서 정속으로 가는 건 불법입니다. 그거 알고 계시나요?

-오히려 제보자가 위협운전 한 것 같은데. 2차선으로 깜빡이도 안 켜고 냅다 가고, 갑자기 추월차선으로 들어와서 레이 막았잖음. 게다가 추월차선으로 들어올 때 브레이크 밟고 오는 새끼가 어딨음? 저건 제보자가 잘못한 거. ㅇㅇ


댓글을 읽으며 구독자들과 소통하던 정중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러분. 이건 말이 안 되죠. 아무리 제보자님께서 제 채널 구독자님이라고는 하지만..... 글쎄요, 이건 제가 쉴드를 못 쳐드릴 것 같습니다만.


그때였다.

무수히 올라오는 댓글들 중, 유독 화가 난 듯한 댓글이 하나 있었다.


-이 씨발놈이.


바로 제보자였다.


-미친새끼야,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후원한 돈이 얼만데 그딴 식으로 은혜를 갚아?

-아니;; 님이 좋다고 후원해놓고서 왜 그러세요;; 막말로 저분이 후원하라고 칼들고 협박이라도 했나요???


댓글창에서 제보자가 난리를 피우자, 구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중재를 보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보자의 화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 씨발놈아, 나 너 누군지 알아. 너 내 눈에 띄기만 해 봐라. 넌 나한테 뒈진다. 알겠냐, 씨발아?


*

*

*


험악했던 방송 분위기를 겨우 진정시키고, 우여곡절끝에 라이브방송을 마친 후.


"표정이 왜 그러냐?"


유스티오가 정중재의 집으로 찾아왔다. 정중재의 어머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채였다.


"형님......!"


정중재가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유스티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들려주었다.


"그래?"


정중재의 설명을 들은 유스티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영상 좀 보여줘봐."


제보 영상을 확인하는 유스티오에게, 정중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제보자가 갑자기 절 찾아오진 않겠죠? 제 얼굴을 구독자님들이 다 알고 계시기는 한데, 제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시거든요."


아까 제보자가 적은 댓글의 살벌함을 다시 떠올리며, 정중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송일 하면서 별의 별 인간군상 다 마주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살해협박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솔직히 좀 무섭긴 하네요."

"내가 처리해 줄게."


블랙박스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유스티오가 말했다. 정중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정말이십니까 형님?"

"그래."


유스티오가 화면 속 레이를 가리켰다.


"내가 이 레이 잘 알거든."


*

*

*


방송이 종료되고, 아니 첫번째 제보영상이 끝나자마자 천지연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영상 속의 그 레이, 그것은 바로 천지연의 차량이었다.

영상을 보니 잊고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아우디 A7. 그 놈이 제보한 것이다.


"미친 거 아냐?!"


천지연은 어이가 없다 못해 가출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댓글들이 욕해주고 있긴 했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신고를 할까? 보복운전으로? 위협운전으로? 성립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추월차선에서 정속으로 달리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처벌 가능하지 않을까? 사고도 날 뻔했는데?


'......괜히 신고했다가 해코지 하진 않겠지?'


A7차주는 분명 천지연의 얼굴을 목격했다. 블랙박스 영상까지 있으니, 천지연의 번호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을 터.


'아까 살해협박까지 했잖아.'


요즘은 경찰에 신고 한 번 하기도 무서운 세상이다. 잘못 신고했다가 상대가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나중에 와서 해코지까지 하곤 하니까.


'.....그냥 넘어갈까.'


고민스럽다.

동시에 서러웠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당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게 과연 정상일까. 왜 피해자가 고개를 숙이고, 가해자는 저토록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때였다.

문자가 도착했다.


띠링-


무거운 마음으로 문자를 확인해보았다.

010으로 시작하는, 처음 보는 번호였다. 늘 그랬듯이 스팸문자인가 보다, 하고 차단하고 넘기려고 하는데.


[아우디 A7차주입니다.]


A7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차단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췄다.

A7이라면, 분명 그놈이다.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발 돈을 받아주십시오.]


천지연은 당황스러웠다.

혹시 신종 스팸문자인가? 아니면 사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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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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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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