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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812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2.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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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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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가끔은 모습을 숨기기도 해

DUMMY

부우우웅-


여기 한 남자가 운전하고 있다.

나이는 대충 31살. 1월 1일 20살 되자마자 면허를 따고 11년만에 첫 운전이었다.

그 흔한 쏘카도, 렌트카도 빌려 본 적 없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차를 빌려 여행을 갈 때도 운전한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일명 장롱면허.

최근 아버지께 연수 받다가 부모자식의 연을 끊게 될 것 같아 재빨리 그만 둔 후, 학원에서 연수를 12시간 정도 받았다.

어느정도 운전에 익숙해진 것 같기에, 용기있게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로 결심한 이 남자.


남자는 한강 근처에 있었다.

운전한 지 반 년이 뭔가, 한 달도 채 안 된 쌩초보가 차를 끌고 오기에는 조금 벅찰 수도 있는 동네이건만.


부우우웅-


원래 뭘 아는 놈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용감한 법.

알고 있으면 알고 있기에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지만, 뭣도 모른다면 뭐가 겁나겠는가. 아는 게 없는데.


"으으으으으- 서울은 진짜 운전할 곳이 못 된다니까-"


바로 어제 저녁, 남자의 집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 큐에 주차를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번에 주차를 성공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마음속에 헛바람이 불었다. 어쩌다 운 좋게 주차 잘 한 것 가지고 이제 나는 운전왕이고, 나는 운전에 소질이 있고, 재능이 있는 놈이라고 여겼다.


"어으으으으!"


그런 남자의 헛바람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곧 사라졌다.

남자의 집은 사실 서울이 아닌 경기 남부. 고속도로타고 한강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금방 오겠지, 하고 간단히 생각했건만. 서울은 결코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네비게이션 잘 보면서 간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한 길로 들어가질 않나, 이걸 다니라고 만든 길인지 아니면 구경하라고 만든 길인지 모르는 도로까지 있지를 않나.

게다가 차선 바꾸는 건 왜 그리 어려운 건지. 서울에는 차가 뭐 이렇게 많담. 지금 빠져야 하는데. 지금 제일 끝차선, 우회전 차선으로 빠져야 하는데. 그래야 집에 갈 수 있는데.


어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회도 놓치고, 타이밍도 놓치고 모든 것을 놓쳐 결구 차선을 바꾸지 못했다.

이 말은 즉슨.


"안 돼! 고속도로오오오오오오!!!"


그대로 고속도로로 직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을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미 남자의 자동차인 구형 소나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근처에 진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유턴해서 돌아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사고가 날 것이다. 이 정도는 아무리 남자가 생초보라한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흐흐흐흐!!"


결국 톨게이트에 진입했다. 당연히 하이패스는 없었고, 준비한 현금도 없었다. 그 탓에 하이패스 구간을 무단으로 통과해야만 했다. 아마 조만간 도로공사 측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돈 내라고.


덜덜덜덜-


현재 시간은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집에서 출발한 건 오후 3시였는데, 별의 별 짓을 다 하다 보니 벌써 내일이 올 판이다.


덜덜덜덜-


핸들을 꽉 부여잡은 양 손이 덜덜 떨린다. 긴장한 탓에 손이 축축했다. 덩달아 어깨도 경직된 모양이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내일 아침에 침대에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일이면 아마 남자는 근육통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좌측 깜박이를 켠 후 사이드 미러를 확인해 뒤에 차량이 오나 안 오나 잘 보고 들어가면 되건만, 남자는 벌벌 떠느라 좀처럼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들어가긴 했다. 그것도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그나마 지금 시간대에 차량이 많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차들이 많았다면 그대로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 보여!!!"


초보에게 밤운전은 쥐약이다. 심지어 곧 새벽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시간대가 시간대인 만큼 좀 밟아도 큰 문제 없으련만. 남자는 좀처럼 속도를 80이상 내지 못하더니, 겨우 휴게소로 들어갔다.

사실, 휴게소로 차를 옮긴것도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뭐, 뭐야 이거?!"


휴게소에 도착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남자를 반겼다.

바로 주차였다. 지금까지 남자가 해 본 주차는 평범한 전면주차와 후진주차뿐.

헌데 휴게소는 대체로 사선주차다.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건만, 남자에게는 큰 고난이나 다름없었다.

구형 소나타는 그리 큰 차가 아니니, 주차하는 게 어렵진 않을 터.

그러나 남자에게는 아니었다. 소나타는 대형 펠리세이드든 다 똑같이 어렵다고 느꼈으니까.


"어우......"


대충 15분 정도 걸렸을까. 주차를 겨우 완료한 후(기어를 D에 놓고 시동을 끄려고 했다) 겨우 시동을 끈 남자는, 이미 힘이 다 풀려버린 두 다리를 겨우 이끌고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긴 했지만,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이 떨어졌다. 카페가 하면 달달한 음료라도 마셔야겠다.


"......젠장."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고 테이블에 앉는 그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핸드폰 먹통됐잖아.'


바로 핸드폰 배터리가 나 나간 것이다. 요즘 나오는 신형 차량들은 차량 내부에 무선 충전기가 탑재된 경우가 있지만, 구형 소나타에 뭘 바라겠는가.


눈물이 차오른다.

괜히 서럽기도 했다.

오늘만 다른 차량들에게 빵을 몇 번이나 먹었던가.

물론 처음부터 잘 하는 놈은 없다고, 아니 있긴 하겠지만 남자 본인은 아니다.

어쨌거나 모두가 처음부터 잘 하진 않으니, 이런 식으로 빵 먹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나 서럽네.'


서러운 건 서러운 거고, 슬픈 건 슬픈 거다.

사내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고 누가 그랬나? 사내도 인간이다. 슬플 때는 울 수도 있고, 서러울 때는 눈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감정이란 것도 참으면 독이 되는 법이니.


"무슨 일 있어요?"


남자가 자신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맺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만, 대충 젊어봐야 40대 후반, 대체로는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 남자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말을 건 여성은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이었다.


"아, 아뇨. 별 거 아닙니다."


중년인들은 모두 검은색의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고글을 낀 이도 있었다. 체형은 다양했는데,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화장은 어찌나 진하게 했는지, 당장이라도 락 페스티벌에 가야 할 법한 모습들이었다.

남자에게 말을 건 중년여성은 황금빛이 도는 가죽자켓을 입고 있었다.

얼핏 보면 중성적으로 생긴, 제법 매력적인 얼굴의 소유자였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법한 그런 여성.


"별 거 아니기는, 무슨 일 있어요? 왜 혼자서 울고 그래? 여자친구한테 차이기라도 한 거야?"


황금빛 자켓을 입은 여성의 말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양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닭똥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남자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슬픔과 서러움이 너무 커서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인데? 내 아들 같아서 그래. 나도 결혼을 일찍해서 애를 일찍가졌거든."


평소의 남자라면 아마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오는 저 여성들을 '귀찮다'라고 여겼을 터.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지랖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게......."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남에게 말하기 쪽팔리고 창피한 사연이긴 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기름은 이제 아슬아슬하게 남았고, 핸드폰은 먹통에, 설상가상 네비마저 고장났다고.


'젠장, 이래서 중고차는 하나같이......'

"그래? 우리가 도와줄게!"


어서 돈을 벌어 신형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때였다.


"......예?"


도와준다고? 뭘 도와준다는 것인가?

황금빛 자켓을 입은 여성 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뭘 도와주신다는......?"

"차 타! 데려다줄게!"

"예?"


바보같지만, 남자는 '예?'라는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만큼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뭐, 달리기라도 한단 소린가? 뭘 어떻게 데려다 준단 말인가?


"아니, 아주머니들......"


그냥 무시하려고 했지만, 중년여성들의 재촉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휴게소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여성들은 남자의 차가 어디있는지 확인한 후, 남자에게 말했다.


"시동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금방 올게!"

"먼저 가면 안 돼!"


그리곤 어딘가로 사라졌다.

먼저 가면 안 된다니. 오히려 그건 남자가 할 말이었다. 도와주겠다고 해 놓고서 튈 수도 있지 않던가. 상대의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도망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남자의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시동을 켠 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남자의 주변에 무언가 나타났다.


"아, 아주머니들......?"


바로 바이크 부대였다.

중년여성들은 '바이크모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

*

*


부아아아아아앙-


세차를 한 지 오래된 듯한 구형 소나타가 텅 빈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이미 시간은 새벽 12시가 훨씬 지났다. 간혹 차량 몇 대가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으니.


부아아아아아아앙-


휴게소에 올 때까지만 해도 80이상 밟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굴었던 남자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100이상을 밟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벌벌 떨다가 그대로 기절했을 속도.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 남자는 속도를 즐길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용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간지 쩐다.'


남자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나타를 중심으로 앞에 달려가는 오토바이 한 대.

좌우측에 있는 오토바이 각각 세 대.

후방에 있는 오토바이 두 대.


마치 귀빈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이크부대의 아주머니들은, 네비게이션이 망가져버린 남자를 위해 직접 가이드를 자처한 것이다.

네비게이션이 망가져서 길을 잃었지만, 바이크부대가 남자를 이끌어 주고 있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기분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 출구가 나왔다. 수원표지판이 있었다.

남자는 얼른 창문을 내렸다. 후방과 좌우측에 있던 오토바이들이 일제히 전방에 있는 오토바이와 합류했다. 남자는 출구로 가고, 바이크부대는 그대로 쭉 가려는 것이다.


"아주머니들!!!!"


과연 목소리가 들리긴 할까. 바람이 제법 부는 날씨였기에 목소리가 묻힐 수도 있을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소나타가 출구로 진입함과 동시에, 전방에서 홀로 남자를 이끌던 황금빛 자켓 아주머니가 손을 들어보였다. 오른손은 '따봉'을 가리키고 있었다.


'씨발, 간지 미쳤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중년여성을 보고 멋있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었던 남자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떨림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흥분히 가라앉았을 즈음. 남자는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내가 잘못 봤던가?

황금빛 자켓을 입은 그 아주머니, 남자 같기도 했는데?


착각이겠지? 머리가 짧긴 했지만, 뭐 아줌마들 중에 짧은 머리 많으니까. 내 착각이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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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앵무새 24.02.12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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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잊고 있었네요 +2 24.02.10 1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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