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메멘토 모리 (4)
(2231년, 더 월드 - 특수 상해 치료센터 - 5층 510호 입원실)
[콰과광!]
흠칫—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안드로이드 케어 5! 밖에 무슨 일이야?"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지이잉—
{음, 제 안구를 복도에 있는 감시 카메라에 연결해보니 수상한 자들이 보입니다. 총 4명입니다.}
"4명이라고? 누군데? 신원 확인 가능 한가?"
{더 월드에 사는 주민이 아닙니다. 델타도, 베타도, 알파도 아닙니다. 홀로그램 트랜스포메이션 기능을 이용해 알파 계급으로 모습을 감추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잠깐, 지금 홀로그램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했어?"
끄덕—
{그렇습니다 김진수 환자분.}
"그 기술은 알파 계급 밖에는 사용할 수 없어. 나한테 외부인들 얼굴을 좀 보여 줘봐! 영상 띄워봐!"
{알겠습니다. 영상을 송출합니다.}
지이이잉—
"저놈들은..."
{아는 분들이십니까? 김진수 환자분의 지인이라면 적으로서 대하지 않겠습니다.}
"빨리 여기로 들어오라고 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배짱 좋게 쳐들어와? 저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빨리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복도로 영상과 김진수 환자분의 방금 전 녹음 된 말씀을 송출하겠습니다.}
움찔—
"뭐, 뭐 임마? 내 목소리를 녹음했어? 내 허락도 안 받고 언제 녹음했어?! 이거 불법아니야?"
{비상사태법에 의하면 정신이 불안정한 환자에 관한 녹음은 합법입니다.}
"비상사태법이라고?"
{네. 비교적 최근에 통과된 법인데,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젠장... 내 목소리를 감시해서 어디다 쓰려는 거야?"
{만일을 위한 조치입니다. 호문쿨루스님께서 직접 저희 안드로이드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환자, 특히 정신 이상 환자에 관한 녹음을 철저히 하라고요.}
버럭—
"됐고! 빨리 복도에 있는 버러지들 들어오라고 해! 빨랑!"
—
(채널 - 메모리아)
흠칫—
"방금... 뭐였지? 한박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나?"
"아저씨는 뭐야잉?"
살금살금—
"여긴 왜 왔어잉?"
"널 데려가려고 왔다."
"날 데려가잉? 어디루?"
"재미있는 곳으로."
"재미있는 곳? 그게 어딘데잉?"
"네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곳이지."
"진박사! 자네가 여길 왜 온 건가!"
휙—
"아, 김박사. 자네 차례는 곧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지금은 요 꼬맹이랑 저 남매를 처리해야 해서 말이야."
"자네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이런 이런... 김박사. 당을 배반하더니 상황 파악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나 보군.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던데."
훗—
"맞아. 내 상황 파악 능력은 사라지진 지 오래지. 그래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하! 주제 파악은 잘 하는 군."
"데우스와 마키나, 그리고 찼수는 내가 지킬 것이야. 진박사 자네는 이 셋의 털끝도 못 건드려."
"음, 김박사..."
철컥—
"과연 그럴까?"
타앙—
텁—
"뭐, 뭐야?! 총알을 잡아냈어...? 기, 김박사... 자네는.... 대체....?"
"내 하드 디스크를 발견했지?"
"......"
"분명... 발견하자마자 백업을 해 뒀겠지. 자네는 원래 모든 것을 백업해 두지 않나."
"......"
"내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더 월드 수석 박사 자리를 지킨 이유가 뭔지 알고 있나?"
"......"
"자네 말대로, 난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다, 닥쳐!!"
타앙—
텁—
"뭐, 뭐야...!!"
"내가 하드 디스크의 비밀번호를 뚫었겠지. 하지만... 자네는 내 하드 디스크에 보관된 내용의 절반도 알아내지 못했어."
"절반......?"
"내가 자네가 쏜 총알을 이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는 게 궁금한가?"
"자네.... 대체..... 무슨 짓을......?"
"100년 이상 채널을 연구해온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네의 큰 착각일세."
—
(채널 - 폐허가 된 템플)
{도착했습니다 이민준님! 저 고블린이 이민준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스르륵—
드라코랜드를 빠져나왔다.
디바인은 죽었고, 호문쿨루스는 쉽게 회복하지 못할 큰 상처를 입었다.
호문쿨루스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상처는 처음이다. 이렇게 큰 고통은 처음이다. 회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할짝—
내 상처부위를 열심히 핥고 있는 유일하게 남은 채널 속 드래곤, 게코.
예전에 박수진과 조준이 이 드래곤을 타고 나에게 날아왔었지.
할짝—
드라코랜드의 같은 드래곤종족들이 모두 멸족했다는 걸, 이 녀석은 알고 있을까.
할짝—
녀석을 비돔에 두고 왔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아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넌 예전에 오세훈이 채널 속 존재들을 모두 학살할 때 어디 있었던 거냐?"
할짝—
"도망친 거야?"
끄덕끄덕—
"오세훈이... 널 발견했었어?"
끄덕끄덕—
"그런데 용케 살아남았구나."
할짝—
"살아남아줘서 고맙다."
"이봐, 이제 남은 건 그 고양이 녀석 뿐인가?"
팔에 난 상처를 감싸기 위한 붕대를 찾아온 임정연이 말했다.
템플이 비록 파괴가 되었지만, 구석 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는 물품들은 존재했다.
"어떻게 할 거야? 그 고양이 녀석."
"글쎄..."
"호문쿨루스가 저렇게 큰 상처를 입었으니, 당분간은 함부로 나대지 못할 거다. 우린 지금 시간을 번 거야. 지금부터는 네 상처 회복에나 신경을 쓰도록 해. 호문쿨루스가 낸 상처가 깊은 것 같으니까."
스르륵—
{이민준님!}
약을 구하겠다고 떠났던 고블린이 돌아왔다.
{슬픈 소식입니다.}
슬픈 소식?
{깨비가... 죽었습니다.}
"뭐?"
{깨비가 더 월드에 있는 가디언즈 본부를 파괴했습니다. 한박사도 죽었습니다.}
"...깨비의 시체는?"
{찾지 못했습니다. 발견한 건 이것 뿐입니다.}
고블린이 내게 구슬 하나를 건넸다.
푸르고 작은, 아주 예쁜 구슬이었다.
"...이게 뭐지?"
{깨비의 구슬입니다.}
"무슨 구슬인데?"
{저희 도깨비불은, 이민준님같은 인간이 갖고 있는 영혼이 없는 대신 구슬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슬이 일종의 영혼인 셈이군.
{인간이 영혼을 밖에 내놓고 다니지 않듯이, 저희 역시 구슬을 밖에 내놓고 다니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 도깨비불이 판단할 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긴급한 상황이라고 여겨질 경우 구슬을 내놓고 최후의 힘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됩니다.}
최후의 힘?
{그 힘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입니다.}
—
(2231년, 더 월드 - 폐허가 된 가디언즈 본부)
{......}
"저... 호문쿨루스 각하?"
{......}
"지금 당장 공사용 안드로이드들을 부르겠습니다."
{가디언즈 본부는 박살이 났고, 타운A도 절반이 파괴되었네.}
우물쭈물—
"고, 공사용 안드로이드들 중에서도 가장 최상급의 안드로이드들을 부르겠습니다. S급으로 부르겠습니다! S급이라면 4,5달이면 충분히 완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대근 부대장.}
"예! 각하!"
{진짜 세계를 조종하는 건물도 파괴되었네.}
흠칫—
"ㅇ, 예...?"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디언즈 본부를 파괴하고, 타운A를 절반이나 날려 보냈어.}
"......"
{심지어는, 타운A에 있는 진짜 세계를 조종하는 건물도 파괴해 버렸어.}
"범인을 꼭 색출해내겠습니다!"
절레절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예..?"
{그냥 다 죽여버릴 거다. 애초에 지구로 온 게 잘못된 것이었어. 내 병력의 절반을, 아니 메카닉족의 절반을 잃어버렸어.}
"가, 각하......"
{이젠 인간을 모조리 다 학살해 버릴 거다. 인간에게 메카닉족의 영광스러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니, 이런 식으로 날 능멸하다니... 이민준과 그 놈의 일행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라!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천천히 죽여줄 테니까!!!}
휘청—
"가, 각하! 조심하십시오!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난 멀쩡해!}
퍼억—
"크윽!"
{난 메카닉족이다! 종이 한 장에 손가락을 베이는 나약한 인간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죄송합니다 각하!"
{진박사가 메모리아에 있다.}
"......"
{진박사... 모든 건 네 놈에게 달려있다.}
—
(2231년, 더 월드 - 특수 상해 치료센터 - 5층 510호 입원실)
"여긴 왜 왔냐 버러지들아?"
"뭐? 버러지? 이봐 김진수! 함부로 말하지 마!"
흥—
"정지희, 네가 아직도 더월드 최고 수석 박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한테 명령하지 말란 말이야!"
"멍청이!"
"뭐야?!"
"넌 친형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냉혈한이야! 몸 속에 피가 흐르긴 하냐? 어?"
울컥—
"내가 언제 눈 하나 깜짝 안 했다는 거야?!"
"널 키워준 칠형제도 아무렇지 않게 죽였잖아!"
"내가 죽인 게 아냐!"
"네가 죽였잖아!"
"아니라니까!!"
콰앙—!
"내가... 내가 죽인 게 아냐... 그건....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래요, 김진수군. 당신이 죽인 게 아닙니다."
저벅저벅—
"김진수군의 몸 속에, 호문쿨루스의 계혼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죠. 김진수군은 칠형제가 죽었던 그때 호문쿨루스에 의해 마인드 컨트롤을 당했던 것일 뿐입니다."
"이, 이하응?"
"하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봤을 땐 죽인 건 죽인 것이죠.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해 타인을 살해했다고 한들, 죽인 게 죽인 게 아니게 되는 법은 없으니까요."
꿀꺽—
"뭐야, 너희 네 명 다 날 힐난하러 온 거냐? 그런 거라면 사양하겠어. 난 지금 아파. 환자복 입고 있는 거 보면 몰라? 어?"
"미안하지만 널 비난할 여유 따위는 없다."
휙—
"비형랑?"
"나는 널 찾기 위해서 내가 가장 아끼는 동료까지 잃었다. 동료까지 잃으면서 널 비난하려고 애를 썼을 것 같냐? 그 정도로 우리가 멍청해 보이더냐?"
쳇—
"그럼 용건을 말해!"
"당신이 필요합니다."
"......넌 누구였지?"
"조준입니다."
"아~ 백도 조준? 그 조준이었지? 그런데 내가 왜 필요한데?"
"당신 그 자체, 당신의 육체가 필요합니다."
헉—
"설마... 날 그런 용도로 쓰려고?!"
"저희에겐 그런 상스러운 취미 따위 없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몸 속에 있는 호문쿨루스의 힘을 연구하는 것 뿐입니다."
"......연구?"
"당신이 허락한다면, 당신을 김박사에게 데려가고 싶습니다만."
—
(채널 - 메모리아)
퍼억— 퍽—
"커흐윽!"
"진박사... 자네는 날 이기지 못한다네. 내가 괜히 수석 박사였던 것이 아니야."
"크으윽.... 이 재수 없는....."
"내가 자네보다 잘나서 질투가 나는가?"
울컥—
"뭐? 질투? 내가?"
"살다 보면 말이야, 나보다 잘난 사람 수두룩해. 분명 이 분야에서 만큼은 내가 최고라고 믿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나보다 잘난 놈들 아주 많거든."
"끄응....."
"자네의 무모함 만큼은, 날 뛰어넘는 것 같네. 아주 칭찬해."
퍼억— 퍽— 퍽—
"푸허억!"
"오, 이런. 입이 부서진 건가? 자네는 입도 의체로 만들었나? 왜 멀쩡한 이를 뽑아버린 거야?"
"으어어! 어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는군."
"어어! 어!"
"자네와의 추억을 생각해서 라도 자네를 살려주고는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난 지금 상황 파악을 잘 하지 못하는 멍청이거든."
"으어어! 으어!"
프슈우우—
"뭐지?!"
프슈우우—
"진박사!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김박사님! 어디 계십니까?"
"데우스? 자네는 어디 있는가?"
"마키나와 함께 있습니다!"
"연기 때문에 자네가 보이지 않아! 찼수를 지키게! 마키나도!"
"마키나는 제 곁에 있는데, 찼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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