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The one
보통은 대게 미래에서 온 나 자신이 현재의 나 자신에게 와서 지구를 구하든, 나라를 구하든 하라고 얘기하는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SOS라니, 과거에서 현재로 SOS를 보내서 뭘 어쩌라는 걸까?
내가 이 썩어 빠진 세상을 구할 유일한 '그'라니.
그리고... 내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상이 사실은 가짜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
(2198년, 더월드 - 타운 D지역)
띠리릭 —
[인식되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는 매번 아침마다 이 혈관 인식기에 손목을 갖다 댄다. 혈관 인식기는 델타 계급의 인간들에게만 배포되는 기계다.
아침마다 혈관 인식기에 손목을 갖다 대면 인식기 통에 내 혈액의 일부가 담긴다.
그 혈액으로 나와 같은 복제 인간, 즉 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만드는 건 아니고 당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당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클론들을 군대에 보낸다고 말한다.
인명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고 귀찮은 인권 문제에 관해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 나 뭐라나.
과거 21세기에는 징병제라는 게 존재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델타 계급은 군대를 못 가니까.
지금 당의 눈을 피해 집에서 몰래 글을 쓰고 있으려니 무릎이 저리기 시작하는군.
공책에 쓴 이 글들을 당에서 발견하지 않는 한 미래의 누군 가는 내가 쓴 글을 읽게 되지 않을까?
......
뭐, 어쨌건.
나는 올해로 21살. 이 아파트에 혼자 산다.
이 아파트는 당에서 델타 계급의 인간들에게 일괄 지급한 아파트다.
과거와는 다르게 자신의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월세도 내지 않는다. 당에서 우리에게 대가 없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공짜로 받은 아파트 치고는 제법 아늑하고 깨끗한 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내가 사는 아파트를 한 번 구경했으면 좋겠다.
혹시 당에서 왜 아파트를 공짜로 주느냐 묻는다면... 글쎄, 이게 대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은 늘 옳다.'
예전에 암시장에서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단어를 봤던 것도 같은데. 뭐였더라? 전체... 전체...... 뭐였더라, 전체주의였나?
어쨌든 옛날에야 국가 이름이 다양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부른다.
'더 월드'
과거의 사람들이 정확히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솔직히 암시장에서 본 책들만 아니었더라면 과거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을 테지.
당은 우리에게 공포 통치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유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자유가 없는 건가? 아니면 있는 건가?
내가 5살 때부터 나와 줄곧 함께 지내고는 했던 형이 한 명 있었다.
친형은 아니고, 그냥 아는 동네 형일 뿐이다.
내게 친 형제는 없다. 누나도 동생도 없다.
심지어는 가족도 없다.
더 월드의 지도층들은 델타 계급이 가족을 이루는 것을 싫어한다.
당에서는 델타 계급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를 매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언어인 양 가르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점은, 내가 암시장에서 봤던 책에는 가족에 관해서 당에서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설명이 적혀있다는 것이지.
글쎄...... 어느 쪽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
아무튼, 가족도 없고 뭣도 없는데 혼자 어떻게 사느냐?
그런 것들은 모두 당에서 해결해 준다.
다시 한번 이 쓰레기 같은 소리를 반복하지만, 부디 내 글을 읽게 될 독자 분께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당은 늘 옳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가족도 없고 뭣도 없는데 어떻게 태어났지? 하고.
델타 계급은 기계에서 태어난다.
로봇이라거나, 인공두뇌가 있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21세기 인류의 번식방법과는 조금 다르다만, 어쨌든 우리는 순수한 인간이다.
물론 손목에 인식표가 박혀서 태어나는 것을 보고 기계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모든 건 역시 당이 다 해결해 준다.
가족이 없고 뭐가 없어도 다 해결 가능이다.
'당은 늘 옳다.'
이런, 형 얘기를 하다 딴 길로 새버렸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 분께 미리 죄송한 말씀을 올린다.
내가 5살 때 그 형은 15살이었다.
내가 20살이 되던 작년 2197년에 형이 내게 말했다.
'이민준, 나는 떠날 거야.'
'어디로 떠나시려는 거예요?'
'나는 자유로운 곳으로 떠날 거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일 한 대가를 받으러 갈 거야.‘
이 형의 이름이 뭐였지, 기억이 안 나는군.
분명히 이 형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는데.
'당은 늘 옳다, 민준아. 당은 늘 옳은 게 맞는 말이었어.'
'어디로 가려는 건데요?'
'드림랜드로. 진정한 드림랜드로 갈 거다.'
'예?’
그 대화가 형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당에게 세뇌당해버린 형은 자신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서 곧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말과 함께.
'내가 먼저 가 있을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형?'
'때가 되면 너도 오게 될 거야. 아니, 꼭 너도 왔으면 좋겠다. 우리 드림랜드에서 꼭 같이 살자! 총통 각하의 크신 은혜를 너도 꼭 누려봤으면 좋겠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당의 흔하디 흔한 노리갯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이 미쳐버린 세상을 독재자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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