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메멘토 모리 (3)
(채널 - 메모리아)
"아 물론, 김박사 자네에게도 개인적인 볼일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자네와의 즐거운 시간은,"
철컥—
"저 셋을 처리하고 난 뒤에 천천히 즐기도록 하지."
—
(채널 - 드라코 랜드)
호문쿨루스? 호문쿨루스가 채널 속으로 직접 들어올 줄이야.
호문쿨루스 옆에 있는 저 남자는 누구지? 입고 있는 제복으로 봐서는 가디언즈의 부대장 같은데, 호문쿨루스의 힘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인간도 함께 왔다는 걸 감지하지 못했어.
{드디어 만나보는 구나 디바인.}
{......호문쿨루스.}
둘이 목소리가 똑같잖아?
{난 널 만들어내지 않았다 디바인.}
{......}
{나의 계혼을 쪼개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거야.}
{......}
{멋대로, 내 허락도 없이 창조 된 것이다 너는.}
{그게 제 탓인가요?}
{뭐?}
{생명이 탄생할 때, '아 이제 좀 태어나 볼 까나' 하고 탄생하는 생명이 몇 이나 될까요? 아니, 있기는 할까요? 제 생각에는 없다고 봅니다만.}
디바인의 말이 맞다.
우린 모두 우리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세상에 내던져진 것일 뿐이었다. 우리 모두.
{나는 생명을 창조해냈다.}
{아뇨 호문쿨루스. 당신은 생명을 창조한 게 아닙니다. 허상을 창조했을 뿐입니다.}
{뭐? 허상?!}
{더 월드라는 가짜 세계를 창조한 당신은 진정한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진정한 생명의 주인은 가짜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호문쿨루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예전에 귀술사와 함께 봤을 때의 그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귀술사와 함께 봤을 때만 해도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최소한 인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호문쿨루스는...... 그저 검은 덩어리에 불과했다.
{디바인, 너의 허튼 소리도 여기까지다. 그래도 나름 첫 대면식인데 서로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마지막 인사를 해서야 되겠나?}
{절 죽일 겁니까?}
{당연하지. 넌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절 죽이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 겁니다.}
{이민준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깟 희생 쯤이야 뭐 별 건가?}
{...무모해지셨군요.}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얌전해진다고 해. 모험을 싫어하게 된다고 하더군. 하지만 메카닉족은 달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과감해지지.}
슥—
호문쿨루스가 옆에 서 있던 가디언즈 부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검은 덩어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는 것도 한참 후에나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만큼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앞 뒤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기괴했다.
{황대근 부대장, 그걸 준비해라.}
"여기 준비했습니다 총통 각하!"
황대근이라는 남자가 겨우 1cm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얇은 노트북 하나를 들어 보였다.
황대근이 노트북을 열자, 화면 속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코드가 보였다.
내 직감이 정확하다면, 저것은 디바인의 생체 코드였다.
그리고 흰색과 검은색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저것들은... 분명 나와 호문쿨루스의 섞인 코드들이겠지.
{지금부터 디바인의 몸 속에 있는 나의 코드를 삭제해라!}
뭐?
{이민준의 코드는 남겨 놓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
(2231년, 더 월드 - 특수 상해 치료센터 5층)
"스노우! 스노우! 빨리! 빨리 뭐라도 좀 해봐요!"
"기다려봐 정지희! 나도 애쓰고 있어!"
"아니, 그 열추적탄을 어디에 던져버리기라도 하던가! 그걸 들고 우릴 쫓아오면 어떡하냐고요?! 누구 죽으라는 거야 지금?!"
"나도 너희 셋 따라가고 싶지는 않거던?! 내가 니들이 좋아서 쫓아가는 줄 알아?!"
"그럼 좀 어떻게 해보라고요!"
"열추적탄을 놓으면 니들이 죽어! 열추적탄은 니들 셋이 죽기 전까지는 계속 쫓아다닐 거란 말이야! 그나마 내가 열추적탄을 잡고 있어서 너희 셋 목숨을 몇 분이라도 연명할수 있는 줄 알라고! 나한테 감사하란 말이야, 이 여자야!"
휘이이이잉—
"비형랑!"
"......"
"비형랑, 방법이 없을 까요?"
"......"
"이렇게 계속 이 건물을 뛰어다니다가는, 건물이 모두 무너지고 말 겁니다!"
"......있어."
"예?"
"방법이 있어."
—
(2231년, 더 월드 - 가디언즈 본부 - 비밀의 공간)
[아니, 그 열추적탄을 어디에 던져버리기라도 하던가! 그걸 들고 우릴 쫓아오면 어떡하냐고요?! 누구 죽으라는 거야 지금?!]
낄낄낄—
"멍청한 놈들, 너희들이 얼마나 더 도망칠 수 있나 두고 보자고."
낄낄—
[그럼 좀 어떻게 해보라고요!]
"재수 없는 년, 호문쿨루스님의 총애를 받고 감히 더 월드 최고의 수석 박사 자리까지 얻었겠다. 차라리 재수 없는 진박사가 수석 박사를 하는 게 낫지, 저 꼴 보기 싫은 정지희년이 수석 박사 자리에 앉는 꼴은 절대 못 보지. 오늘이야 말로 저 재수 없는 것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야."
[방법이 있어.]
흠칫—
"뭐?"
[나만 믿어.]
"하! 비형랑 저 새끼, 아직도 허세를 못 버렸구만. 오늘이 지 제삿날인 줄도 모르고......?!"
콰과광—!
—
(2231년, 더 월드 - 특수 상해 치료센터 5층)
휘오오오—
"...우리 건물 망가뜨린 거 물어줘야 되는 거냐 비형랑?"
"......"
"우린 그저 김진수를 찾으러 왔을 뿐인데... 너무 많이 부숴버린 것 같어."
"스노우."
"어떡하지? 나 돈 없는데. 하우징한테 빌렸던 돈도 아직 다 못 갚았어. 물론 하우징이 죽어서 탕감되기는 했다만은."
"스노우!"
깜짝—
"왜?"
"진정하고, 김진수를 찾자. 김진수는 510호에 있어."
—
(2231년, 더 월드 - 가디언즈 본부 - 폐허가 된 비밀의 공간)
지지지직— 지직—
"크으윽.....!"
파지지직— 파직—
"으으으! 비형랑 이노옴!!"
파지직— 지직— 파지직—
"감히 열추적탄을 이곳으로 보내?! 이 요망한 새끼가!?"
{케헥! 켁!}
흠칫—
"뭐, 뭐야?! 누구냐?!"
—
(2231년, 더 월드 - 특수 상해 치료센터 - 약 10분 전)
{비형랑님! 열추적탄은 제게 맞기세요!}
'뭐? 네가 무슨 수로?'
{저한테 특수물질이동기능이 있다는 걸 잊으셨나요?}
'......?!'
{열추적탄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게요.}
'하지만.... 그걸 사용하면 넌....'
{모든 도깨비불은 주인인 흑귀를 위해 살고 흑귀를 위해 죽습니다. 이것은 명예로운 일이에요.}
'...내가 거절한다면?"
흥—
{그럼 오늘 만큼은 비형랑님의 말씀을 거역할 겁니닷!}
—
(2231년, 더 월드 - 가디언즈 본부 - 폐허가 된 비밀의 공간)
"깨비라고...?"
{......}
"허어... 비형랑의 도깨비불이라... 왜 내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지?"
{억울하다!}
"뭐 임마? 네가 뭐가 억울해? 네가 내 비밀 본부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잖냐!"
{널 죽였어야 했는데!}
하하하—!=
"안타깝구나, 이 꼬마 괴물아. 넌 날 죽일 수 없단다. 안타깝지만 말이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
스르르륵—
"뭐, 뭐야?! 이게 뭐야...?"
{비상 자폭 장치를 실행합니다.}
"뭐? 자, 자폭 장치라고? 그, 그게 뭔ㄷ......"
콰과과광—!
—
(채널 - 드라코 랜드)
{하하하하! 좋아, 좋아. 디바인의 몸 속에 있는 내 코드를 없애버려라! 단 하나의 코드도 남지 않도록 말이야! 하하하!}
콰직!
퍼억!
{흥, 네가 바로 임정연이었나? 가디언즈의 총대장이었던?}
"크윽.....!"
임정연이 들고 있던 가디언즈 전용 검으로 호문쿨루스의 어깨를(저것도 어깨라고 부를수 있다면) 내리 찍었으나 소용 없었다.
호문쿨루스의 검은 덩어리는, 가디언즈 전용 검 따위로는 베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몸에 저 검을 찌르면 푹 들어가겠지만 호문쿨루스는 아니었다.
그의 몸은 뚫리지 않았다.
"죽어라, 이 못된 새끼야!"
콰지지직—
퍼어억—
너무나 간단하게, 너무나 쉽게 호문쿨루스는 김지호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더 월드에서 직접 개조된 살인 병기였던 김지호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동댕이 치다니.
{귀찮은 벌레 같은 자식들. 내 일을 한 번만 더 방해하면 그땐 죽음 뿐이다.}
{호문쿨루스, 당신의 그 못된 심보는 언제 봐도 정말 가관입니다.}
디바인의 말에 호문쿨루스는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황대근의 노트북만 들여다 보았다.
{못된 심보라, 못되다는 건 아주 주관적인 표현이야.}
{제가 당신을 막을 겁니다.}
{뭐? 네가 날 막아? 이봐 디바인, 자네는 지금까지 몇 백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싸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존재야. 자네가 싸움이라는 걸 알긴 아나?}
호문쿨루스의 말대로 디바인은 이곳 드라코 랜드에서 태어났으며, 드라코 랜드에서 수백년을 살아온 마룡이다.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 존재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일방적 폭력만이 가득한 '싸움'이라는 건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건 단 하나입니다.}
스으으윽—
디바인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디바인이 그의 육중한 몸을 바르게 세우자 그의 머리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디바인의 몸은 아주 컸다.
{바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싸움'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크와아앙—
파지지지직—
디바인이 울부짖자 황대근이 들고 있던 노트북 속의 화면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왜 이래? 이거 비싼 건데에!"
{뭐하고 있는 거냐, 부대장! 어서 계속 해! 내 코드를 지워버리란 말이다!}
"초, 총통 각하! 각하의 삭제되었던 코드가 복구 되었습니다!"
{ㅁ, 뭐?}
"그 대신... 이민준의 코드가 98퍼센트 사라져버렸습니다."
크와아앙—
디바인이 울부짖는다.
그가 울부짖으면 울부짖을 수록 주변에 있던 작은 어린 드래곤들도 함께 울부짖었다.
{저는 이제 떠납니다 창조주님. 그동안 창조주님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고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은 무슨, 함께한 것도 얼마 없는데.
{창조주님을 위한 마지막 선물은, 바로 호문쿨루스의 강한 계혼 두 가지 중 하나인 분노를 파괴하고 가는 것입니다.}
계혼? 분노?
그럼 디바인의 몸 속에 있다는 호문쿨루스의 힘이 호문쿨루스의 계혼이었던건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저는 힘을 모아온 것이지요... 강한 힘이라는 건, 정말 필요한 때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창조주님. 그 강한 힘은 강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
{주책바가지 늙은 용이 말이 많았군요... 그럼 이만.....}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히이익!"
디바인이 죽었다.
디바인이 죽으면서 호문쿨루스는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그의 바로 곁에 있던 황대근은 노트북을 내던진 채 호문쿨루스로부터 멀찍이 도망가버렸다.
{크아아아!}
호문쿨루스의 일부가 죽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나 혼자는 억울하다! 이민준! 너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해! 그래야 공평한 거야!}
온 몸에서 검은 피를 쏟던 호문쿨루스가 내게 소리쳤다.
{아까 황대근이 그랬지, 디바인의 몸 속에 있는 이민준의 코드가 98퍼센트가 사라졌다고! 그럼 너도 2퍼센트의 고통을 느껴야 해! 지금 당장!}
"뭐?"
으윽, 이게 뭐지?
누군가 내 몸속을 낫으로 긁는 기분이야.
{어떠냐, 이민준! 고통스럽느냐? 고통스럽냔 말이다! 고통을 느끼란 말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네 고통은 새발의 피일 뿐이야!}
"크으윽......"
아프다. 정말 아프다.
이런 고통은 생전 처음 겪어본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 당장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호문쿨루스에게 더 이상 말리면 안 된다. 여길 벗어나야 한다.
방법... 방법이.......
"고블린! 고블린! 당장 소환에 응해라!"
스르르륵—
{부르셨습니까, 이민준님!}
"지금 당장 게코를 불러줘! 당장! 김지호와 임정연을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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