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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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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9
추천수 :
623
글자수 :
659,060

작성
21.09.08 01:39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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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33쪽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DUMMY

정완과 서희, 은별이 탄 차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반대쪽 차선은 정체에 걸린 듯 불빛이 모여들고 있었다.


“2차 예선 때랑 같은 길로 가는 거죠?”

“응. CBC 원주에서 가까워.”

“늦지는 않겠죠?”

“은별아 잠깐만. 말시키지 마.”


정완은 아까 간식시간에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모두가 저녁을 안 먹은 상황에서 긴장이 풀리자마자 팀원들이 간식을 흡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희는 아까 샀던 김밥을 한 조각씩 떼어 운전 중인 정완의 입에 넣어주었다.

은별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 뭐하는 거예요? 첫날은 하객들 앞에서 물 먹이고 오늘은 내 앞에서 김밥이에요?”

“배고프면 안 돼.”

“와아. 나중엔 스테이크까지 썰어서 먹여주겠네. 정말 못 봐주겠어요.”

“그럼 보지 마. 너도 남친 데려와서 먹이면 되잖아. 있는 애들이 더하다니까.”

“안 그래도 10시쯤에 온다고 했어요.”

“민재가 너 태우려고 원주까지 온다고?”

“네. 강릉 가기로 했어요. 그 사람도 내일 쉬는 날이라.”


정완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또 예린이었다.

오늘 밤 <순정남녀의 편안한 밤>에 나가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세 번이나 얘기하던 게 불과 15분 전이었다.

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완의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고 가운데에 놓았다.


“예.”

[PD님. 저 예린이예요.]

“또 왜?”

[이따 <순밤> 나가서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몰라서요. 저 뭐라고 얘기해야 돼요?]


예린의 말에 차 안의 세 사람이 모두 웃음을 삼켰다.


“야. 너 거기 나가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 적 없어? 오늘 아니면 다음 주인 건 예정돼 있었잖아.”

[그래도 이런 데 출연하는 게 처음이라···.]

“TV 생방송까지 완벽했던 애가 뭔. 나라고 뭐 알겠냐? 우진이랑 제수씨가 알아서 잘해줄 텐데 뭐 걱정이야.”


예린이 답이 없자 정완이 또 말했다.


“네가 주인공이니까 아무렇게나 말해도 돼. 재미있을 필요 없고 거짓말만 안 하면 되니까, 선생님을 씹든 나를 씹든 하고 싶은 얘기 맘껏 하고 와.”

[···네.]

“정 모르겠으면 내가 제수씨한테 얘기해놓을게. 방송 전에 라디오 스튜디오 가서 제수씨랑 제작진들하고 상의해. 근데 네가 주인공이라는 건 꼭 기억해. 사람들이 너한테 맞출 테니까.”

[네. PD님이 아리 언니한테 부탁 좀 해주세요.]

“알았어. 근데 너 지금 어디야?”

[집이요.]

“나영 씨 그쪽으로 보내라고 할 테니까 불안해하지 마. 그리고 이제 전화 그만해. 이 일은 내 권한 밖이고 나 이따 공연이야.”

[네.]


정완은 전화를 끊자마자 서희에게 아리와의 통화연결을 부탁했다.


[네. 아주버님.]

“제수씨 바쁠 텐데 미안해요. 지금 통화 괜찮아요?”

[이동 중이라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예린이가 이따 <순밤> 출연 때문에 걱정하고 있어서 전화했어요. 씨팝 말고는 처음이라 그러나···. 제수씨가 걔 먼저 만날 수 있을지 해서요.”

[그렇게 할게요. 저희 지금 스튜디오로 가거든요. 예린이 불러서 미리 맞춰볼게요.]

“걔 지금 집에 있다는데, 차나영 씨 보낼 수 있어요?”

[네. 걔네 집으로 보낼게요. 근데 아주버님 9시에 재능기부 연주회 있다고 들었는데.]

“가고 있어요.”

[아주버님 공연 잘하시고요, 요번에 진짜 고생하셨는데 휴가 때 푹 쉬세요. 예린이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제수씨.”


정완이 전화를 끊자 은별이 농담조로 말했다.


“와아. 아리 언니한테 철저하게 제수씨라고 하네요?”

“동생 아내를 제수씨라고 하지···. 근데 은별아.”

“네?”

“예린이한테 전해. 나한테 자꾸 이상한 거 물어보면 여우비보다 늦게 데뷔한다고.”

“풉! 우리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데요?”

“언제가 됐든 그것보다 늦는다고.”


정완은 오늘 서희와 은별이 부를 노래를 틀어놓고 운전했다.


차가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정완은 현식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현식은 이 연주회의 관객이 음악 쪽으로 진학하고 싶어 하는 보육원생 서른 명쯤이며, 대중음악이나 실용음악에 관한 질문을 할 수도 있으니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클래식 전공은 없나보네요? PD님 거기서 피아노 연주할 건데.”

“그쪽은 현식이가 알아서 할 거야. 입시음악 학원 선생님이니까.”

“애들이 뭐 물어볼까요?”

“글쎄. 대학 어떻게 가고, 가면 뭐하나 그런 건가···.”


8시 50분. 차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 건물에 도착했다.

현식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정완의 주차 위치를 유도해주고 그를 반겼다.


“야아! 정말 오랜만이다. 얼마 만에 보는 거냐?”

“5년은 넘었지.”

“어쨌든 고맙다. 바쁜데 일 끝나자마자 여기까지 와주고, 공연 펑크 나나 걱정했는데 덕분에 살았어.”

“고맙긴 뭐. 시간 있고 뜻 좋은 공연이니까.”

“흐흐. 새끼 여전하네···. 어, 아, 안녕하세요?”


현식은 상스런 단어를 쓰다가 반대편에서 내리는 서희를 보고 움찔했지만, 두 여자와 활달하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 옆 대기실로 세 사람을 안내했다.

서희와 은별이 공연하는 카페의 대기실보다 넓었지만 공연장을 볼 수 있는 모니터는 없었다.


“저쪽에서 연주 들어도 될까요?”

“예. 의자 갖다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가져올게요.”

“고맙습니다.”

“가 봐. 나 정각에 올라가면 되지?”

“응.”


현식은 방금 연주를 마친 연주자를 만나기 위해 반대편 복도로 뛰어갔고, 은별은 빈 의자를 출입문 앞에 가져와 서희와 함께 앉았다.

9시 정각. 정완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출입문을 열어 젖혔다.


“어? 앗!”

“와아아아!”


객석에 앉은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완은 기타를 멘 채 무대 맨 앞에 서서 학생들을 향해 깊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피아노를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하정완입니다.”

“와아아!”

“선우예린 우승하는 거 안 보고 공연 갔다더니 여기였어?”

“딱 서울에서 여기 오는 시간인데.”

“그럼 여우비도 같이 온 거야?”

“대박이네.”


인사를 마친 정완은 무대 한쪽에 기타를 세워두다 앞자리 학생들이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이크를 켰다.


“씨팝 보신 분들도 계시네요. 뮤컬트 엔터에서 제 역할은 프로듀서,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라갈 때까지가 제 일입니다. 선우예린 양이 마지막 곡을 마쳤을 때 출발했죠. 주현식 피아니스트와 약속도 지키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여러분을 보고 싶었으니까요.”

“와아아!”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이런 연주회에는 음대 졸업생이나 재학생쯤 되는 분이 오셔야 하는데 저는 고등학교까지만 피아노를 해서 여러분이 배울 게 없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고마워요. 실수해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안 봐주시면 저랑 같이 온 사람들 여기 안 올립니다.”

“예!”

“근데 여러분, 세트리스트는 받으셨나요?”


정완의 난데없는 질문에 학생들이 잠깐 멀뚱해했지만 곡 목록은 입장 전에 받았다.

그의 뒤에 온 현식은 정완의 의도를 간파했다.


“또 리스트에 없는 곡 하고 싶나보네. 한 자리 비워둔 걸로 모자라냐?”

“생각난 곡이 있어서.”

“그래. 시간 많은데 해라, 해.”


현식이 정완을 향해 툭 내뱉은 후 객석을 향해 말했다.


“하정완 피아니스트는 즉흥연주를 좋아합니다. 정규 연주회에서는 이럴 수가 없죠. 여러분들은 이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예!”

“오랜만에 학생 음악인들을 보니까 여러분 나이 때 제가 쳤던 곡이 생각나서요. 시작하겠습니다.”

“무슨 곡이에요?”

“들어보세요.”


현식이 물러나자 정완은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첫 연주곡은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서곡인 <지옥의 갤럽>이었다. ‘캉캉’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곡은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처음으로 피아노로 편곡한 곡이기도 하다.

서희와 은별은 곡이 시작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와아. 저것도 피아노가 되네?”

“저 요새 저 곡 율동 연습해요. 우리 회사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캉캉춤은 춰야한대서.”


아까까지의 엄숙한 분위기와 달리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연주를 즐겼고, 정완은 박수의 박자에 맞추어 템포를 유지하며 연주를 이끌어 나갔다.

곡은 길지 않았다.


“와아!”

“감사합니다.”


정완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고 1때 저는 악보대로만 치는 게 지겹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악보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곡들을 피아노로 변주해봤습니다. 이 곡이 첫 번째였죠.”

“아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걸 많이 해봐서 프로듀서가 됐나 싶습니다. 작곡과 쪽으로 가고 싶은 학생들은 이런 연습이 도움 될 겁니다. 녹음도 좋지만 채보는 반드시 해두세요. 같은 악보 같은 연주자여도 연주곡은 매번 다르다는 거, 아시죠?”

“예!”

“이제 세트리스트에 나온 거 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즐겨 연주했던 위대한 작품, 쇼팽의 <녹턴> 중 세 곡이에요.”


정완은 준비한 쇼팽의 <녹턴> 2번과 8번, 20번을 연주했고, 서희는 <녹턴>을 들으며 인디펜던트 학원으로 출근할 때처럼 마음을 가라앉혔다.

학생들은 곡이 연주되는 동안 눈을 빛내거나 눈을 감은 채 감상했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쳐 주었다. 함성은 20번 곡이 끝나고서야 나왔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이제 빈자리 채울 차례죠. 조금 전에 <녹턴> 연주하면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무슨 곡이에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시작할게요.”


학생들이 반응을 토해낼 새도 없이 정완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서희와 은별도 정완에게서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익숙한 멜로디였기에 귀를 세우고 음악을 즐겼다.


“클래식 피아노곡도 듣기 좋다.”

“남친이 연주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기도 하겠지만 곡 자체가 그냥 좋아. 언제 클래식 공연 가자고 해야겠어.”

“이다음에 언니죠?”

“질문 먼저 받겠지.”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 새 곡이 끝났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9시 40분. 연주회의 준비된 공연은 모두 끝났다.

현식이 정완의 귓전에 ‘한 명만 질문 받아줘.’라고 말하고 들어갔다.


“저한테 질문하고 싶은 분이 있다고요?”

“예! 접니다.”

“네. 질문하세요.”


앞줄 두 번째 앉은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정완은 무대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미투리 밴드 때부터 HAP님의 팬입니다. 질문은 아니고 고민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민도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저는 다른 보육원 애들과 만나다가 거기서 뜻이 맞은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연습하는데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인디밴드가 되고 싶고 GF 밴드를 목표로 연습하고 있는데, 밴드 애들이 다 같이 갖고 있는 고민 말씀드리려고요.”

“밴드 멤버들 다 여기 있나요?”

“예!”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이 손을 들자 정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갑니다. 근데 수업은 못 알아듣겠고 공부도 못하다보니까 학교생활에서 큰 의미를 못 찾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 패스하고 서울로 가서 음악 배우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으음.”

“밴드 연습하는 시간이 제일 좋고, 저번엔 공연도 했는데 정말 행복했고요. 밴드 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서 고민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의미가 없게 느껴져서 그래요.”

“활동이란 건 앨범 내고 대중들 앞에서 공연하는 걸 말하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학생 음악인 여러분. 용기 내서 고민을 얘기한 친구들에게 박수 쳐 주세요.”

“와아!”


정완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박수와 함성을 울려주었고, 밴드 멤버들은 일어서서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박수가 잦아들자 정완이 말했다.


“얘기하죠. 답이 길어질 것 같은데 혹시 녹음할 수 있어요?”

“예! ···준비됐습니다.”


질문한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시작하자 정완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먼저 고맙습니다. 저랑 우리 밴드를 좋아해주어서요.”

“예! 감사합니다.”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혹시 학교에서 부당한 일, 그러니까 체벌을 당한다거나 교우들에게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한다거나 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거라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학교 당장 그만둬도 됩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이랑 친구들은 다 좋아요.”

“그게 아니라면 편하게 얘기해도 되겠네요. 밴드 멤버들의 마음에는 안 드는 말일 겁니다. 학교 그만두면 안 돼요. 절대.”


질문한 학생의 얼굴이 다소 굳어졌다.


“학교나 보육원 선생님들께도 같은 걸 여쭤봤는데 다들 반대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그분들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으니까 저한테도 묻는 거겠죠?”

“예.”

“대학가 카페나 클럽 등에서 공연하면서 정규앨범을 두 장 이상 낸 인디밴드 기준으로 얘기하겠습니다. 학생은 혹시 멤버들의 가창력과 연주 실력만 좋으면 그렇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의 얼굴이 다소 멀뚱해지자 정완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GF 밴드의 민홍태 형이 한 말이 있습니다. 밴드 멤버들은 제가 하는 말 큰소리로 따라하세요. ‘밴드는 자기 음악을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밴드는 자기 음악을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학교 동아리나 직장인 밴드처럼 자기만족이나 지인들을 초대한 공연만 한다면 기성곡도 자기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목표하는 밴드는 아닙니다.”


정완은 마지막 말에 힘주어 말한 후 또 한숨을 돌렸다.


“예를 들게요. 제 팬이면 제가 신수길이랑 친한 것도 알죠? S-Road 연주 들어본 적 있어요?”

“예.”

“S-Road 멤버들은 전원 실용음악학과 나왔고 같은 악기 전공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뛰어났죠. 우리 GF 밴드랑 연주로 맞짱 뜰 정도는 될 겁니다. 제가 수길이보다 기타를 못 쳐서 그렇지만.”

“아닙니다!”

“어쨌든 그만큼 연주 실력이 독보적이었으니까 수휘 형님 눈에 띈 건데, 그것도 오디션장에서 수휘 형님이 연주를 꼼꼼하게 보셨으니까 그런 거죠. 근데 그 친구들 첫 앨범 빼고 실적은 좋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첫 앨범에는 서우진이 만든 곡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HAP님이 만드신 노래도 나왔어요. 그건 차트에도 들어갔는데요.”


멤버들의 말에 정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진이가 만든 <별을 향해 걷다>랑 <눅눅한 고시원에서> 있고, 제가 줬던 <그런대로>도 있었네요. 그거 말고 S-Road의 노래 중에 아는 거 있습니까?”

“···.”

“저도 그 팀을 좋아하지만, 대중에게 각인시킨 자기들만의 노래가 없으니 팀의 개성이 안 보인다고 할 수밖에요. 뒤집어 말하면 이건 프로 수준의 실력은 필수지만 손가락 안에 들 정도는 아니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아아.”

“그 반대가 휘민락입니다. 수휘 형님이 곡을 잘 만들죠.”


정완의 말에 또 힘이 들어갔다.


“휘민락은 이따금 멤버가 바뀌고, 특히 메인보컬이 바뀔 때마다 기수가 바뀝니다. 우리 밴드의 홍태 형이 4기 메인보컬이었고 지금은 6기죠. 보컬이 바뀌면 노래가 완전히 달라지는데도 팬층이 꾸준한 게 휘민락이라는 팀의 개성 때문이고, 그게 수휘 형님의 힘입니다. 20년 동안 좋은 곡을 꾸준히 만들었으니 이야깃거리가 많고, 휘민락 팬들은 주말드라마 보듯이 그걸 즐기는 거죠. 밴드는 자기 음악을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뜻 알겠습니까?”

“예.”

“인디 신에 데뷔하는 건 막말로 돈만 있어도 가능합니다. 모든 곡을 사서 앨범 만들면 그만이죠. 녹음실에서 보컬이랑 연주도 돈으로 때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데뷔만 해가지고는 금방 끝납니다. 꾸준히 활동하려면 결국 밴드 안에서 팀의 개성이 담긴 노래를 만들어야 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고 노래에 담을 줄도 알아야 해요.”

“예.”

“그럼 작사 작곡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멤버가 질문하자 정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론 공부도 필요한데 꼭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동영상 사이트만 찾아봐도 잘 나와 있죠. 작사는 책을 많이 읽어서 지식을 채우면서 글을 많이 써봐야 합니다. 이걸 하기에 제일 좋은 데가 학교죠. 지식을 얻기 쉬우니까요. 여기서 지식은 크게 문학, 사회, 역사 정도지만 다른 분야도 많이 알수록 좋습니다.”

“예.”

“민망한 얘기지만 저는 공부 많이 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그때 공부했던 지식 중에 노래 만드는 데 불필요한 건 없었어요. 성적이 꼭 좋을 필요는 없지만 어느 분야의 뉴스든 뜻을 이해할 수준의 상식은 있어야 합니다.”


정완은 겸연쩍은 표정을 가라앉히고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노래를 만들고 발표했는데 인기가 없으면 안 되겠죠. 그러니까 최근 3년간 인기 있었던 곡을 월별로 뽑아서 듣고, 인기가 많았던 이유를 시대 상황에 맞게 파악해 보세요. 음원 1위나 인디음악 차트 1위 노래 말하는 거지 내 마음속 1위 아닙니다. 가사의 이야기가 왜 이때 사람들에게 공감이 됐을까, 곡의 어느 부분이 좋게 느껴진 걸까 등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예.”

“그리고 작곡 잘하고 싶으면 편곡부터 해보세요. 인기곡을 밴드 멤버들끼리 연주하는 겁니다. 아이돌 노래가 더 좋을 거예요. 밴드 음악으로 바꾸기 어려운 노래를 바꿔보는 게 실력향상에 좋으니까. 이거 1년 하고 나서 그 뒤에는 멤버들의 취향에 맞는 노래 고르세요. 그때부터 곡 쓰고 밴드 멤버들과 연주하면서 바꿔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냉정하게 평가도 받아보세요. 그 평가 없으면 자기들이 만든 노래 좋다고 거기에만 빠져있게 됩니다. 물론 성장은 거기서 멈추고 경쟁은 못하겠죠.”


질문한 학생과 밴드의 멤버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완의 말을 경청했다.


“하루 종일 연습? 비효율적이에요. 팀 연습은 한 번에 서너 시간씩 주 3일이면 충분하고 개인 연습은 매일 한 시간만 꾸준히 해도 돼요. 남는 시간에 공부하고 책 읽으세요. 피곤하면 자도 되고 운동도 좋습니다.”

“예.”

“직업 밴드는 먹고 살려고 연습하는 겁니다. 즐거워서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근데 여러분 지금 직업은 학생이죠. 학교에서 힘들었다가 밴드 하니까 좋은 거지, 학교 그만두고 매일같이 연습만 하면 학교만큼 힘들 때가 옵니다. 그러다 보면 쉬자는 소리 나오고, 연습 당장 안 해도 아무 일 없고 연습하라고 다그칠 사람도 없으니 더 안 하게 되겠죠. 그럼 하루 전체가 의미 없는 시간이 됩니다.”

“···.”

“그러니까 학교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배우세요. 그러고서 밴드에 와서 멤버들끼리 대화하면 노래의 소재도 많아집니다.”

“예.”

“이제 냉정한 얘기로 답변 마무리할게요. 제가 앞 얘기를 한 이유입니다. 경고로 생각해도 돼요.”


정완은 얼굴을 확 굳히고 말을 이었다.


“우리 GF 밴드 멤버들은 실력도 출중하고 곡도 잘 썼지만 다들 개고생했습니다. 형님들은 보컬과 드럼으로 당대 신에서 톱이었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3년간 쓰리잡 뛰었고, 이은호는 실용음악학과 갔다가 수능시험 다시 보고 공대 다녀요. 그러니까 학생 밴드 분들은 GF 밴드랑 같은 길을 가면 안 됩니다.”

“예?”

“여러분은 유복한 집안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른 밴드보다 출발점이 훨씬 뒤에 있단 뜻이에요. 그래서 실패하면 안 됩니다. 한 번의 실패만으로 재기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객석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남은 2년 동안 학교와 연습실을 오가면서 밴드로 활동하기 위한 기초를 탄탄하게 쌓으라는 겁니다. 가창력과 연주 실력, 작사를 위한 지식, 인기곡을 파악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까지 배워야 할 게 많아요. 2년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서 뮤아트 레이블로 오세요. 준비 잘됐는지 제가 검증하겠습니다.”

“앗!”

“요약할게요. 보컬이나 연주는 연습으로 되지만 작사 작곡은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게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데뷔하면 실패할 것이고 재기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

“여기까지 얘기하겠습니다. 질문에 답변이 되었나요?”

“예! 충분히 됐습니다.”

“HAP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완은 학생 밴드 멤버들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다 기타를 집어 들었다.


“이제 공식적인 순서는 끝났습니다. 근데 여러분, 시간 있죠?”

“네에!”

“지금까지가 여러분에게 배움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즐기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먼저 한 분 모셔보겠습니다.”

“와아!”


서희가 등장하여 정완의 옆에 앉을 때까지 함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강서희입니다.”

“와아아!”


함성이 가라앉자 정완이 말했다.


“우리 서희 양은 여우비로 노래할 때랑 저랑 같이할 때가 다릅니다. 은별 양도 그렇죠. 그게 팀의 개성입니다. 그걸 잘 보세요.”

“예!”


서정적인 전주와 함께 <사랑나무 아래 소녀>가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금세 노래에 집중했다.

노래가 끝나며 은별이 등장하자 박수와 함성이 높아졌다.


정완은 다시 피아노로 자리를 옮기고 민요조 곡을 연주했다.

<나의 아리랑>이 끝나자 대기실에 있던 현식이 정완의 키보드를 들고 나왔다.

정완이 장비를 세팅하는 동안 서희가 말했다.


“학생 밴드 분들의 고민 잘 들었어요. 제가 다른 말씀은 드리기 어렵지만 작사하고 싶은 분은 매일 일기를 쓰세요. 제가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정완은 키보드 앞에 앉았고 서희와 은별은 그의 양쪽에 자리했다.

서희가 마이크를 들었다.


“두 곡 남아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랑 은별이는 여우비 만들기 전부터 친했는데 취향은 너무 달라요.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도 다르고, 커피숍에서 같은 걸 먹은 적도 거의 없어요.”

“남자친구 직업은 같네요.”

“와하하!”


은별이 끼어들어 한 마디 하자 학생들이 웃었다.


“근데 한 걸그룹 노래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똑같았어요. 그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어디서나 당당하게. 알겠죠?”


정완은 녹음된 기타 소리에 맞추어 키보드 연주를 시작했고, 서희와 은별은 연주에 맞추어 추임새를 넣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서희가 들을 때마다 힘을 냈던 노래가 시작되었다.





<Pretty Girl> 원곡 : 카라(Kara)


(합창)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안 된다는 맘은 No, no, no, no.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서희's song)

나와 맞는 옷에 또 받쳐주는 말투.

센스 있는 포즈, 그냥 되지는 않죠.


(은별's song)

생활 상식은 기본, 시사 상식은 선택.

다 끊임없는 노력이죠.


(서희's song)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조금도 망설일 것 없죠.


(은별's song)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Girl.

Beautiful, ye, ye, ye, ye.


(서희's song)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그냥 되진 않는 거죠.


(서희's song)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ye, ye, ye, ye.

Common beautiful girl!


(합창)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안 된다는 맘은 No, no, no, no.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서희's song)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조금도 망설일 것 없죠.


(은별's song)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Girl.

Beautiful, ye, ye, ye, ye.


(서희's song)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그냥 되진 않는 거죠.


(은별's song)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ye, ye, ye, ye.

Common beautiful girl!


(서희's song)

마음은 예쁘게 표정은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죠.


(은별's song)

두 눈을 깜박이며 살짝 미소 지으면

이젠 모든 게 완벽하죠.


(합창)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누구라도 될 수 있죠.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ye, ye, ye, ye.

Ye, ye, ye, ye.


Girl. Pretty Girl.

Pretty Girl. 그냥 되진 않는 거죠.

난 Beautiful Girl.

Beautiful girl, Ye!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안 된다는 맘은 No, no, no, no.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감사합니다.”

“와아아!”


정완은 관객들의 함성이 끝난 후 차분히 말했다.


“마지막 곡은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프로듀서의 작품입니다. 이분은 제게 가사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 노래는 저희 셋이 함께 불러요.”

“저희가 여우비가 된 후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이 노래를 끝으로 저희는 물러갈게요. 즐겨주어서 고맙습니다.”


정완에게 있어 이 프로듀서는 제이미에게 故 김광석, 우진에게 故 신해철과 같은 의미를 가진 사람이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은별이 신호를 넣었다.


“하나, 둘, 셋.”

“아앗싸!”


세 사람의 감탄사와 함께 전주가 재생되었고, 정완의 키보드가 얹히며 마지막 노래가 시작되었다.





<빙고> 원곡 : 거북이


(합창)

[Ladies and gentlemen.]

아싸 또 왔다 나. [아싸]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 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HAP's song)

[터]질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이제 또

[맨]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 대로.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

[이]민 따위 생각한 적도 없었고요.

[금]같은 시간 아끼고 또 아끼며 나

[비]상하리라 나, 바라는 대로. [빙고]


(서희's song)

산속에도 저 바다 속에도

이렇게 행복할 순 없을 거야 랄랄랄라.

구름 타고 세상을 날아도

지금처럼 좋을 수는 없을 거야 울랄랄라.


(은별's song)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아싸]

사는 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빙고]


(HAP's song)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북]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빙고]


(합창)

Hey!

아싸!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 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서희's rap)

한 치 앞도 모르는, 또 앞만 보고 달리는

이 쉴 새 없는 인생은 언제나 젊을 수 없음을.


(HAP's rap)

알면서도 하루하루 지나가고, 또 느끼면서 매일매일 미뤄가고.

평소 해보고 싶은, 가보고 싶은 곳에 단 한 번도 못 가는 이 청춘. [빙고]


(서희's song)

산속에도 저 바다 속에도

이렇게 행복할 순 없을 거야 랄랄랄라.

구름 타고 세상을 날아도

지금처럼 좋을 수는 없을 거야 울랄랄라.


(은별's song)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아싸]

사는 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빙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 봐요.

힘들다 불평하지만 말고 [아싸]

사는 게 고생이라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빙고]


(HAP's song)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북]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빙고]


(합창)

Hey!

아싸!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 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빙고!





세 사람은 트레이닝 둘째 날부터 하루 한 번씩 <빙고>를 불렀다.

정완은 이 노래를 최대한 원곡에 가깝게 편곡하는 대신, 가사에 등장하는 팀과 멤버들의 이름 두운(頭韻)만은 더 크게 강조했다.

그것은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정상에 올라섰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거북이의 프로듀서 터틀맨, 故 임성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정완만의 방법이었다.


“와아아!”

“지금까지 여우비와 HAP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완과 서희, 은별은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완과 서희는 은별을 보낸 후 CBC 원주방송국에 왔다.

여기는 <C-POP Artist season 5> 2차 예선 장소, 즉 여우비라는 가수가 세상에 처음 나온 곳이다.

어둠이 깔린 밤, 휑뎅그렁한 주차장 앞에 솟은 건물에 군데군데 불이 켜 있었다.


“벌써 다 왔네? 정말 가깝네요.”

“그러게. 저기 가볼래? 내릴까?”

“아니요.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요.”


서희는 한참 건물을 바라보다 그녀답지 않게 다소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였어요. ···오빠.”

“···!”


정완의 고개가 뺨 맞은 듯 서희에게 돌아갔다. 저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던 데가요.”

“아.”

“그날 그 빵 정말 맛있었어요. 저한테 고맙다고 얘기해줘서 행복했고.”

“그땐 너 생각하면 고맙기만 했어. 지금도 그렇고.”

“그래도 어떻게 딱 이런 날 여기 오게 됐네요. 그땐 은별이도 있었는데 이제는, 오, 빠랑 저만.”


서희가 또 말을 더듬거리자 정완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가락을 매만졌다.


“힘들면 안 해도 돼.”

“싫어요. 저라고 좋아서 PD님이라고 부른 줄 알아요? 오빠는 입에 안 붙을 말도 착착 붙이는데.”

“어?”

“천천히 할 건데 그래도 할 거예요.”

“그래그래. 천천히 해.”

“왜 자꾸 웃어요? 저는 창피해 죽겠는데?”


정완은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또다시 소녀가 되어버린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듯한 눈빛에 창피함마저 풀리며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귀여워.”

“오빠도요.”


짧은 입맞춤이 오래인 듯 지나갔다.

둘은 미소를 담고 눈을 마주치다 시선을 돌리며 서로의 얼굴과 볼을 한참 쓰다듬었다.


“우리 횡성 가요.”

“계곡에?”

“네. 거기 부모님이랑 추억 있다고 했죠.”

“그래. 언제 갈까?”

“모레쯤에요.”


정완은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그가 맡은 일은 대부분 정리된 데다, 무엇보다 그는 회사 설립 이래 최초로 오디션 우승의 위업을 이루어낸 일등공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부모님 계시는 곳부터 가고 횡성 가요.”

“천안에?”

“네. 오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깊이 공유하고 싶어요.”


서희는 서로를 몰랐던 시간에 쌓였던 정완의 아픔까지 제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싶었다.

이것은 지금 말하면 안 된다. 서희는 이따 그를 품에 안고 말하겠노라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하지만 정완은 서희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눈이 마주쳤다.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네.”

“왜요?”

“내가 이렇게 마음씨 곱고 현명한 사람이랑 연인이란 게.”

“아니요. 오빠가 정말로 날 그렇게 본다면 그건 오빠 덕분에 그렇게 된 걸 거예요.”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출발할게.”


차가 원주방송국을 빠져나가 시내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서희의 궁금증이 다 해결된 건 아니었다.


“근데 뭐가 부끄러워요?”

“···어?”

“자랑스러운 이유는 알겠는데 부끄러운 건 얘기 안 했잖아요.”

“그건 안 물어보길 바랐는데.”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어 섰지만 정완은 차를 다시 출발하고서야 말했다.


“나도 이번 휴가 때는 너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깊은 곳을 공유하고 싶었거든.”

“네?”

“그래서 부끄러워. 넌 생각이 깊은데 난 욕망이 깊으니까.”

“···!”


서희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물론 그녀 역시 서로가 더 가까워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오늘 자신의 오디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자신은 연인이 된 첫날부터 그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정완이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와아. 오빠가 이렇게 얘기할 줄은 몰랐네요.”

“아니야. 네가 정말로 날 그렇게 본다면 그건 네 덕분에 그렇게 된 걸 거야.”

“뭐요?”


서희는 눈에 힘을 주었지만 쏟아져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자신의 말을 고스란히 대갚음하는 이 남자가 한없이 귀여웠다.


“오빠 때문에 내가 미쳐. 째려봐야 되는데 눈에 힘이 안 들어가잖아요.”

“오빠란 소리가 입에 아주 짝 붙었네? 천천히 하겠다더니?”

“아, 진짜! 귀여워서 안 때리는 줄 알아요. 가요.”


서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정완의 고개를 툭 밀어 앞으로 돌려놓았다.

행복이 묻어나는 둘만의 새로운 일상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오디션(Audition) 2> 완결.


작가의말

마지막 연재분을 올려보니 

제가 넣고 싶었던 노래는 대부분 들어간 것 같아 뿌듯합니다.

기성곡 중 상당수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분이 부른 노래들이죠..

오늘 연재분에 카라나 거북이도...


어쨌든, 이 연재분을 끝으로

작가 진사로의 여섯 번째 작품

<오디션(Audition) 2>의 완결을 알립니다.


특히 이 작품 쓸 때 독자 분들께 항상 죄송했습니다.

휴재가 너무 많아서죠.. 

지금도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모두 쓰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으니

저는 이제 다시 중세시대의 판타지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오래 걸릴 겁니다.

2016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판타지 <전장의 철검>이 이제 5권째 들어갔고,

이거 쓰다가 다른 작품을 먼저 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쓰든 다음에는 충분히 쓴 후 연재 시작하려고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여기 문피아에서 좋은 작품 많이 읽으시고...

코로나 걸리지 않도록 늘 조심 또 조심하시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진사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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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Audition) 2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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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4 21.09.08 69 5 33쪽
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8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8 5 26쪽
51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1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6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4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4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7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8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7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5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60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8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7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4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70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7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2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9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9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7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7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7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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