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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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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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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DUMMY

12월 16일, <C-POP Artist season 5> 3라운드 첫 방송에서 여우비가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후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정완이 프로듀서로 공채 입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우비의 3라운드 무대를 본 시청자들은 은별이 <Fire>에서 감정조절을 실패한 점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의 긴장은 더 커지고 전에 본 적 없었던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원이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후 캐스팅했던 점에 대해 그녀의 별명처럼 또 ‘암사자’를 했다고 했고, 여원의 손길로 그 부분이 보완된 은별의 모습이 궁금하다고도 했다.

그 외에 여원이 은별을 울렸다는 점에 대해 ‘한 번만 더 은별이 울리면 뮤컬트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든 건물이든 폭파시켜 버릴 거다’라는 협박성(?) 글도 눈에 띄었다.


한편 <C-POP Artist>의 마니아들은 서희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 프로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참가자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은별은 시청자들로부터 실수만 없으면 완성된 보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서희는 임팩트를 갖고 있고 실수가 적은 대신 실력으로는 저평가되어 있었다. 랩과 노래 둘 다 일반인의 수준은 아니지만 프로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희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프로그램 밖에서 바뀌기 시작했고, 순정남녀의 대타로 나섰던 행사의 영상이 올라간 후 완전히 뒤집혔다.

정완과 함께 부른 노래를 들은 시청자들은 자작곡의 완성도나 가창력, 듀엣의 조화 등의 면에서 순정남녀에 뒤지지 않는 팀이 나왔다고 이야기했고, 여기에는 메인보컬이었던 서희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3라운드 경연에서 그녀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어 기량 향상을 확인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뒤집힌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서희의 기량이 급상승한 계기나 시기를 궁금해 한 시청자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답은 정완이 <순정남녀의 편안한 밤>에 출연하여 내놓았다.

서희의 실력 향상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3라운드 녹화 이후 나왔던 <그대에게 옮은 감기>부터인데, 정완은 여우비가 캐스팅된 후 계약이 끝났고 50일 후에야 서희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서희는 정완과 함께한 행사에서 부른 <사랑나무 아래 소녀>와 <결혼할까요>에서 완벽한 기량을 뽐냈고, 뒤이어 등장한 <소녀 나타샤>로 정점을 찍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서희가 그 50일간 감기 정도가 아니라 심하게 앓았고, 정완을 만나 연인이 되면서 정반대의 감정, 즉 행복에 취한 상태임을 알았다.

그녀가 그 기간을 전후하여 자기감정을 그대로 노래에 담아내는 방법을 깨달았기에 전과 비교 불가능한 노래가 나왔다고 본 것이다.


향후 있을 방송에서 서희의 노래가 궁금한 이들도 있었지만, 여우비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청자들도 생겨났다.

은별은 솔로 보컬리스트로 가능성이 충분하고, 서희는 여우비에서보다는 정완과 함께했을 때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여우비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 역시 HAP가 쥐고 있다. 그가 마음을 바꿔 강서희와 듀엣으로 활동한다고 하면 여우비는 더 이상 존립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여우비가 아닌 강서희와 민은별 개인의 미래만을 생각한다면 두 사람은 언제든 웃으며 서로를 떠날 수 있겠지.’, ‘불화로 찢어지는 것도 아닌데 둘 다 응원하면 된다.’와 같은 글이 다른 데도 아니고 여우비 팬카페에 올라왔는데, 그 글을 읽은 팬들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다.

사실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은별만의 고민이기도 했다.



***



송년특집 공연 전 마지막 전체 미팅이 있었다.

오후 트레이닝이 끝난 후 도진은 대학가 공연 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퇴근했고, 야간에 트레이닝이 예정된 서희와 은별은 미란, 예린과 함께 식당에 갔다.

정완은 테이블 저쪽에서 유문갑 PD 및 주성락 보컬트레이너와 식사하고 있었는데, 서희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 생긋 웃고 수저를 들었다.


“다음 화요일엔 트레이닝 없죠?”

“없대. 크리스마스잖아.”

“에이! 그냥 트레이닝이나 하지. 이 썩을 크리스마스, 이딴 거 없었음 좋겠어요.”

“응.”

“누가 선거 때 크리스마스 없애버린다고 공약하면 찍어줄까 봐요.”


예린이 씩씩거렸고 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별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인인 민재와 함께 강화도로 1박 2일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민재는 이미 KP와의 전속계약을 확약 받았고 프로듀서 업무를 배우는 중이다. 그는 작곡가이지만 프로듀서 경험이 없기에 배워야 할 게 많은데다가, 자신의 송년특집 공연 및 생방송 경연까지 준비하는 중이라 매우 바쁘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렵게 얻은 연휴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반면 서희는 뭘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상의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정완 역시 크리스마스까지 쉬지만 모레인 이브에 여러 회의가 있어 출근해야 하고, 내일은 뮤지컬 배우 홍설하를 만날 예정이다.

서희는 자신이 쉴 때 일해야 하는 그가 안타까운 한편,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이브에 회사에 있으려 한다. 물론 일이 없는 시간에는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희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여행 등 특별한 일보다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

한강공원이나 쇼핑몰, 푸드코트, 극장과 커피숍 등 정완과 함께 가면 좋을 만한 장소는 주변에도 널려 있다. 집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보드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

뭘 하든 함께라면 좋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사람 많은 곳에 다니는 일도 정완과 함께 있으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집 근처 커피숍에 마주앉았는데 자신에게 온 학생에게 흔쾌히 사인해 주기도 했고, 또래 여자들에게 덕담을 듣고 고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서희의 미소 띤 시선이 뭔가를 말하고 밥을 먹는 정완의 모습을 훑고 지나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밥 먹는 모습마저 멋있다니, 제가 생각해도 자신이 조금 웃겼다.


예린이 그 모습을 보다 말했다.


“PD님이랑 언니는 다른 사내커플들이랑 달라요.”

“뭐가?”

“회사에서 같이 자주 있지도 않고, 밥도 둘이 안 먹고.”

“단둘이 먹으면 PD님이나 나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시간이 줄고, 자기가 여기 끼면 너희들 소화 안 될 거래.”

“아아.”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을 거야. 저분은 밥 먹는 것도 일이라니까.”

“그래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둘 다 되게 좋아하잖아요. 그게 좋아서 자주 안 보는 것 같아요. 쉬는 날에도 만나죠?”

“응.”

“PD님은 우리 트레이닝 끝나면 어떻게 알고 커피 두 잔 뽑아서 나오고 있다니까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루 종일 그 시간만 기다렸던 것처럼.”

“어, 응.”

“그러니까 언니 조심해요. 아무래도 PD님이 언니 스토킹하는 것 같아요.”

“풉!”


예린의 말에 은별이 웃었고 미란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가 미란에게 말했다.


“PD님이 너보고 6시 반에 보자고 전해 달랬어.”

“절 왜요?”

“노래 때문에 상의할 게 있대.”

“노래 더 이상 고칠 것도 없는데···. 알았어요. 작업실로 가면 되죠?”

“응.”

“언니 노래 정말 좋던데요?”

“나도 그래.”


예린의 말에 미란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미팅 후 미란은 노래가사를 써왔고 정완은 이틀 후 곡을 내놓았다.

미란은 이 곡의 이름을 <마지막 꿈, 첫 꿈>으로 정했다.


가이드 노래도 만족스러웠지만 정완은 미란에게 가이드 노래와 같은 화음에 비슷한 흐름으로 여러 번 노래하도록 했고, 그렇게 나온 여러 버전을 함께 들으며 곡과 가사를 보완했다.

시간이 있는 팀원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꿈, 첫 꿈>을 완성하고 있었다.


모든 팀원들이 이 곡에 대해 만족했지만 누구보다 만족한 사람은 미란 자신이었다.

음정에 신경 쓰지 않고 불렀는데도 여원으로부터 노래가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을 만큼 그녀는 이 노래에 동화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뭘 더 바꿀 게 없는데.”

“그 노래 때문만은 아니랬어. 어쨌든 가 봐.”

“네.”


서희는 정완이 미란을 찾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었기에 그저 생긋 웃을 뿐이었다.





“찾으셨어요?”

“응. 앉아.”


정완은 창가 테이블의 서희가 앉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란은 자연스레 맞은편, 즉 정완이 앉던 자리에 앉았다.


“수요일까지는 휴가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때 뭐해?”

“크리스마스날 밤에 카페 공연 말고는 딱히 계획 없어요.”

“본가에 다녀오거나 할 생각은 없고?”

“하루 정도 가려고 하는데 다른 일 있으면 안 가도 돼요. 가평이라 아무 때나 갈 수 있어요.”


미란은 정완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이런 걸 왜 묻나 싶었다.

정완도 그걸 눈치 챈 듯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며 본론을 말했다.


“나한테 괜찮은 후배가 한 놈 있는데 네가 만나봤으면 좋겠다.”

“네?”

“그놈이 너 때문에 간만에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걸 꼭 줘야겠대.”

“아!”

“한때는 지 잘난 맛에 살았는데 그만큼 실력이 있었지. 마음을 많이 다쳐서 그렇지 착하고 배려도 깊어.”


정완은 눈이 커진 미란에게 자신의 후배 이은호에 대해 설명했다.


은호는 대학교를 자퇴한 후 서울 대학가에서 인디밴드 ‘D-Major’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다 입대했으며, 제대 후 작곡가로 돌아다니다 몇 달 만에 인디 신을 떠났다.

그는 정완과 대학교와 학과, 전공까지 모두 같지만 3년 후배여서 대학교에서 본 적은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된 건 밴드 활동을 할 때였다.


“그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라드만 팠어. 남자 노래고 여자 노래고 오로지 발라드만. 근데 자기 곡에 대한 존심이 워낙 세서 어지간한 보컬들한테는 곡 안 줬지. 내가 달라고 했는데도 깠어.”

“그럼 지금 음악 안 하는 거예요?”

“응. 당시에 인디 신에는 작곡 하나만 믿고 까부는 놈은 설자리가 없었으니까. 음악 그만두고 공부해서 신촌 쪽 대학교 들어가서 지금 3학년이야.”

“본인이 노래하면 될 텐데.”

“걔 노래 못해. 어쨌든 그놈이 너한테 곡을 꼭 주고 싶다는 거야. 자기가 애타게 찾던 보컬이라고···. 내가 깜빡하고 번호 바뀐 걸 오늘에야 알려줘서 아까 전화 받았지. 욕 한 바가지 먹었어.”


미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넌 보컬리스트 겸 작사가로 그대로 가도 되겠어. 혁민이도 그러더라. 조금만 다듬으면 정말 좋은 가사 쓸 거라고. 네가 작사하고 그놈한테 곡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놈 실력이랑 창의성은 내가 잘 알아.”

“PD님이랑 서희 언니처럼요?”

“그것도 좋고 이문세님이랑 이영훈님 같은 관계? 너한테는 네 보컬이랑 가사, 마음까지 공감하고 거기 맞는 곡을 써줄 사람이 필요해. 서로 소통하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

“네.”

“그놈이 만든 곡이 정규앨범 두 개 정도 채울 만큼은 될 거야. 그놈도 보컬 찾다 포기하고 마음고생 많이 했지.”


미란은 생방송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이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정완이 작곡가를 붙여준다는 건 앨범 하나는 낼 수 있다는 뜻, 혹은 앞으로 더 성장하여 음악을 계속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이 프로듀서는 여전히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믿으며 그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심지어 머지않아 회사를 떠날 빈조마저도 성장시키려고 노력했다.


“지금 걔한테 전화하려는데 괜찮아?”

“네.”

“한 단계 거쳐서 듣는 것보다는 이 녀석 생각을 직접 듣는 게 나을 거야. 스피커폰으로 할 테니까 듣기만 해.”


미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완은 곧바로 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님!]

“그래, 은호야. 나 정완이다. 바쁘냐?”

[아니요. 자취방이에요. 밥 먹고 있었어요.]

“요새 일이 너무 많아서 너한테 연락처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어. 미안했다.”

[일도 일이지만 형수님한테 푹 빠져서 그러신 거 아닙니까?]

“···.”

[정말 잘됐습니다. 형님이 그렇게 행복해 하는 걸 처음 봤어요.]

“고맙다.”

[근데 형님이 뮤컬트 가셨다는 거 알고 기분 째져서 전화했는데, 번호가 없대서 제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십니까?]

“미안해.”

[아니에요. 근데 양미란 씨한테 제 얘기했어요?]

“그래. 조금 전에 했다.”

[뭐라고 했어요? 이왕이면 좋게 해주지.]

“키보디스트였고 발라드만 파는 작곡가다. 웬만한 보컬들은 전부 까서 자기 음악도 제대로 못 보여줬다. 그런데 네가 먼저 미란이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정도.”

[미란 씨는 뭐라고 해요?]

“별 말 없었어. 그 말만 듣고 답하긴 어렵겠지. 근데 공부만 하던 놈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곡 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저 작곡 그만둔 거 아닙니다. 저도 제가 만든 노래 누가 불러줬으면 좋겠다고요.]

“네가 보컬을 하도 깐깐하게 보니까 그런 거 아니냐.”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저는 형님처럼 못해요.]

“뭘?”

[보컬 수준에 맞춰서 노래 못 만들어요. 형수님이나 민은별 씨도 깔 수밖에 없다고요.]

“네 곡에 안 맞으니까?”

[예.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제 곡에 안 맞으면 안 되는 걸 어떡합니까. 그리고 은별 씨는 몰라도 형수님은 솔직히 형이 포텐을 발바닥까지 뽑아낸 거잖아요.]


미란은 발바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는 은호가 노래와 가수를 보는 자기만의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오랜만에 전화했더니 말에 필터가 없네.”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작곡가에 프로듀서에 보컬트레이너에 사랑하는 남자까지. 형님한테 이 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형수님 노래 그 정도 아니었을 걸요?]

“뭐 인마? 푸후후.”


정완은 너털웃음을 쏟고 말했다.


“넌 존심 때문에 그 고생을 해놓고도 아직도 이러냐?”

[존심 때문에 고생한 건 형님이 더하잖습니까.]

“끄음.”

[전 이제 상관없어요. 정 안 되면 개발자로 살죠 뭐.]

“그럼 굳이 미란이 소개 안 시켜줘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지금은 더더욱 아무나 안 한다는 거지,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미란은 전화에서 전해지는 은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완이 왜 그를 가까이 두고 있는지를 알았다.

은호 역시 실력과 함께 타협하지 않는 자존심을 가져 제 뜻이 꺾이고 음악계를 등진 사람이었다. 정완을 비롯하여 홍태나 봉길, 소향과 같은 부류이겠지만 그들과 달리 음악으로 인정 한 번 받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그런데 타협하지 않는 자존심의 소유자가 자신을 찾고 있다.


한편으로 미란의 머릿속엔 은호의 나이가 자신과 세 살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있었다.


“근데 왜 미란이한테만 곡을 주고 싶다는 거야?”

[미란 씨는 유니크한 보컬입니다. 음색이랑 분위기, 감정 표현이 딱 제가 찾던 스타일이라고요.]

“걔 노래 많이 들었어?”

[방송이야 폰이 고장 날 정도로 봤죠.]

“걔 노래 어떤 것 같아?”

[<검은 하늘>은 잘 불렀지만 그건 기본기가 뛰어나서 커버가 된 거지 그분이 가진 분위기랑 안 맞았습니다. 그분 노래는 맞지만 앨범에 올라가면 타이틀곡이 될 수준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별의 상처>는 곡이 한두 번 듣기만 좋지 오래 들을 노래는 아니에요. 아무나 대충 불러도 그냥저냥인 노래로는 그분의 개성을 반도 못 살릴 거예요. 그래선 인디에서도 어려워요. 생방송 가긴 더 어렵겠죠.]

“그럼 어떤 노래가 좋겠냐? 네 노래 말고.”

[제 생각엔 <알고 싶어요>(양파)를 약간 편곡해서 부르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미란의 눈이 커졌다.

정완이 내주었던 과제곡을 부르다 정완과 자신 모두가 가장 만족했던 노래가 바로 <알고 싶어요>였다. 그런데 은호는 방송 영상만 보고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안 그래도 그거 해봤는데 정말 잘 어울리더라.”

[예. 그분한테는 이별이나 어둠보다는 희망이 있고 밝은 걸 꿈꾸는 노래가 좋을 겁니다. 러블리한 노래도 좋을 거고요. 하얗고 귀여운 분이 왜 어두운 노래만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어?”

[2라운드에서 <바라보기>(아이유) 부를 때 그랬어요. 특히 처음에 ‘모올라요, 몰라요’ 부르는데 눈 밑에 뭐라고 하죠? 왼쪽 광대뼈 그쪽에 주름? 보조개? 아무튼 웃을 때 거기가 살짝 파이는 게 정말 귀엽더라고요.]


은호가 마지막에 한 말에 정완이 미란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미란은 시뻘게진 얼굴을 홱 돌렸다.


“어어, 알았다. 내가 어떻게 해 줄까?”

[가이드 녹음된 곡 세 개 보낼게요. 미란 씨한테 들려주세요.]

“그래. 빨리 보내. 노래 들어보고 상의하고 전화할게.”

[예. 전화 기다리겠습···.]

“잠깐만요!”


미란의 외침에 작업실이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그녀가 아직도 빨간 얼굴을 정완의 스마트폰에 가까이했고 정완은 고개를 뒤로 꺾었다.


“은호 씨. 저 양미란이에요.”

[예? 아! 미란 씨. 뵙고 싶었어요.]

“네. 죄송한데 통화 다 들었어요.”

[예에?]

“은호 씨가 궁금해서 그런데, 만나서 노래 듣고 얘기하는 건 어떠세요?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예? 예! 좋아요. 그렇게 해요. 감사합니다.]


정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너 알바하는 학원에서 보는 게 좋겠다. 노래 들어봐야 하니까.”

[거기 8시면 비어요. 그때쯤에 오실 수 있어요?]

“된다. 나한테 위치 보내. 내가 얘 데리고 갈 테니까.”

[예. 바로 보낼게요.]

“끊자. 이따 봐.”

[예. 미란 씨 감사합니다. 이따 봬요.]

“네.”


정완과 미란은 전화를 끊자마자 휴게실 쪽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정완의 전화로 은호가 일하는 학원의 위치가 전송됐다.


“30분이면 가겠네.”

“그럼 7시 반쯤 출발하세요?”

“혹시 모르니까 7시 20분에 출발하자.”

“네. 저 숙소 다녀올게요. 주차장으로 바로 오겠습니다.”

“어, 그래.”


서희와 은별, 예린이 휴게실에서 나오다가 숙소로 뛰어가는 미란과 마주쳤다.

서희가 미란의 뒷모습을 보다 정완에게 물었다.


“후배 작곡가랑 연락했어요?”

“응. 이따 8시에 만나기로 해서 7시 20분에 출발할 거야. 늦을 것 같으면 문자 보낼게.”

“근데 쟤는 숙소에 왜 가요? 시간도 얼마 없는데 여기서 쉬다 가지.”

“어? 그게, 푸후후. 쟤가 내 말을 안 들었어.”


정완은 피식 웃으며 조금 전 은호와의 통화를 세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서희는 통화를 들으며 형수님이란 단어에 미소 짓다 마지막에 눈을 번쩍 떴다.


“헐! 이거 뭐야? 대반전이네?”

“이거 작곡가 미팅이 아니라 그냥 소개팅 아니에요? 쟤가 저번에 그랬잖아요.”

“자기 좋다는 작곡가 있음 예뻐할 거라고?”

“네. 쟤 분명히 은호 씨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숙소에 뛰어갔구나. 예뻐하려고.”


은별의 말에 서희가 답하며 정완을 빤히 보았다.

정완은 그녀의 시선을 황급히 외면했다. 하얗고 귀여운 사람이 미란만은 아니었지만 여기엔 다른 사람들도 있다.


“아티스트 모자란 거 채워주겠다더니, 하다 하다 이젠 소개팅까지 해주는 거예요?”

“아니 이게, 어휴. 이럴 줄 몰랐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사랑을 느꼈네요.”

“풋!”


은별이 <눈물>(리아)의 가사를 엉뚱하게 말하자 서희가 웃었다.

그런데 예린이 쌍심지가 돋은 눈으로 뇌까렸다.


“미란이 언니가 광주미녀였구나. 하얗고 귀엽고.”

“광주미녀? 쟤 집 경기도 아냐?”

“광대뼈 주름이요. 근데 이 작곡가는 미란이 언니를 되게 디테일하게 귀여워하네요?”

“어?”

“하아. 그나마 미란이 언니라도 있어서 괜찮았는데, 언니마저 크리스마스 코앞에 소개팅이라니. 그것도 뭐든지 다 잘하는 분이 해주는 소개팅!”

“그런 거 아니야. 이제 트레이닝하러 가야지.”


예린은 정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PD님!”

“왜?”

“저도 남자친구 없어요.”

“나도 후배가 없다.”

“이이. 커플들은 크리스마스에 눈 맞으러 나가서 우박이나 처맞아라!”


예린의 절규 같은 외침에 서희가 고개를 돌렸고, 은별은 ‘눈은 이미 맞았고.’라고 대꾸하려다 참았다.

정완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크게 외치면서 표현하는 것도 좋아. 근데 예린아.”

“네!”

“미안하다.”

“네?”

“정말로 후배가 없어. 그렇다고 너한테 선배를 소개해줄 수는 없잖아.”

“아, 아니에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정완은 서희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세 사람을 올려 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가의말

글이 참 마음대로 안 되네요. ㅠ

그래서 요새는 독자분들께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제 스토리의 80% 이상 펼쳐놨는데 남은 게 왜 이렇게 멀어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늘 그렇지만, 그래서 이 작품에 애착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휴재하더라도 연재만 쉴 뿐, 제 글쓰기를 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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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3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6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7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7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5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59 8 22쪽
»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8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6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3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69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6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1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8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8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7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6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7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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