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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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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7
추천수 :
623
글자수 :
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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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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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DUMMY

2월 6일 밤 10시 30분, 서희와 은별이 라이브 카페 <베아트리체>에서 공연 중이다.

두 사람은 10시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여우비의 듀엣곡과 서희의 솔로곡까지 다섯 곡을 쉼 없이 불렀다. 은별이 일부러 이렇게 계획한 것이다.


“지난번에 제가 아파서 여기 못 나온 날 서희 언니가 HAP PD님이랑 공연했지요. 그때 일도 있고 해서 오늘 언니 노래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해요.”

“예?”

“제가 여러분께 꼭 선보이고 싶은 게스트가 있어서요. 그러니까 서희 언니는 이만 쫓아내고 이제부터 저와 그 게스트가 이 무대를 꾸며도 될까요?”

“예에!”


은별의 말에 손님들이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하자 서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나랑 상의도 없이···.”

“아까 사장님한테도 말씀드렸어요. 손님들도 지금 허락해 주셨죠?”


서희가 조그맣게 물어본 것과 달리 은별은 마이크에 대고 손님들이 다 듣도록 말을 이었다.


“제가 요새 언니를 많이 부러워했어요. 저도 할 수 있는데 언니만 많이 해서 솔직히 눈꼴시었다고 해야 하나.”

“어?”

“손님 여러분. 여기서 EDM 불러도 될까요?”

“와아아!”


게스트의 실체를 안 손님들의 함성이 높아지자 서희가 고개를 팍 젖혔다.

은별이 마이크를 끄고 서희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언니 이제 가요. 가고 싶잖아요.”

“그래도···.”

“세 곡 준비했어요. 손님들 더 즐기시게 할 테니까 걱정 말고 가요.”

“하아. 알았어.”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다 마이크를 잡았다.


“당황스럽긴 한데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EDM이랑은 안 맞아요. 은별이가 저와 함께할 때와 다른 무대 보여줄 테니 기대해주세요.”

“예!”

“그리고 게스튼지 뭔지는 제가 정신교육하고 올릴게요.”

“정신교육이요?”

“걔는 녹화 때 제가 자리 비우면 은별이 옆에 와서 수작을 부렸는데, 나이도 얘보다 어린 게 처음부터 은별 씨라고 했지 누나라고 절대 안 했어요. 그래서 얘도 민재 씨라고 부르고 서로 존대하고···.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요.”

“와하하!”

“감사합니다.”


서희는 폭소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무대 뒤로 나왔다.

민재가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누나. 안녕하세요?”

“너 하루 종일 일한 거 아냐? 안 피곤해?”

“괜찮습니다. 은별 씨랑 무대에서 노래해서 좋죠.”

“그래. 잘 부탁해.”


서희는 민재를 올려 보내고 카페 직원들과 인사한 후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은별은 서희가 GF 밴드의 첫 공연을 보러 가길 바라서 자기 연인까지 끌어들여 일을 벌였다.

그래서일까. 서희는 이틀간 만나지 못한 제 연인이 더 보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의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니 미란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밴드 공연의 장소와 함께 서희의 자리도 예약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희는 은별과 미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마음이 급해졌지만, 이럴 때 서두르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호흡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차를 출발했다.





서희는 11시가 조금 넘어서야 GF 밴드가 공연하는 록클럽 <자유도시>에 도착했다.

모레 공연할 <수선화>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기에 그녀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입구에서 예린이 손짓했다.


“어? 너도 왔어?”

“희아 언니까지 다 왔어요. 선생님이 시간 되면 가보라고 하셨거든요. 조금 전에 첫 곡 시작했어요.”


서희는 예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공연하는 라이브카페보다 어두운 조명 속 테이블에 손님들이 빈틈없이 있었다. 앉은 이들도 있었지만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GF 밴드는 첫 곡으로 김종서의 노래 <플라스틱 신드롬>을 부르고 있었고, 테이블의 손님들은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했다.


서희가 앉을 테이블에는 최근에 뮤아트 레이블에 입사한 희아를 비롯하여 지혜와 유찬, 미란이 있었다.

이들의 손에는 모두 맥주가 들려 있었고 예린 역시 노래를 따라하다 맥주를 들이켰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선화>나 <베아트리체>에서도 술을 마시는 손님이 있었지만 서희는 거기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아마 노래의 차이 때문이리라.


“와아아!”


노래가 끝나고 나온 함성 속에서도 정완의 기타는 징징 소리를 내며 앰프를 울렸다.

그 소리마저 멈추고서야 봉길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천재적인 바보들의 밴드 GF입니다.”

“와아아!”


함성이 가라앉자 홍태와 봉길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수요일, 여러분 많이 피곤하시죠?”

“저희도 직장인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출근해야죠. 우리 은호는 대학생이라 내일 쉬는데 부러워 죽겠습니다.”

“와하하!”

“그래서 저희도 여기서 땀 쫙 빼고 스트레스는 놓고 갈 겁니다.”

“나쁜 건 여기 두세요. 갈 때는 기분 좋게 가셔야죠.”

“스트레스 빼면 남는 게 없다고요? 제가 장담합니다. 저희가 다 빼드립니다. 기어나가실 힘만 남겨드리죠.”

“준비되셨죠?”

“예에!”


맨 앞에 서있던 홍태가 베이스기타를 세워 들며 농구선수가 스핀무브하듯 정완을 축으로 돌아 뒤로 갔다.

이번 노래는 정완이 부른다는 것을 안 서희의 눈이 빛났다.

정완이 한 발 앞으로 나서자 봉길이 스틱을 탁탁 때리며 외쳤다.


“바보야, 가라!”

지지지, 지지지, 지잉.


짧은 기타 전주에 이어 정완의 노래가 시작되자 테이블의 손님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방방 뛰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자리의 누구나 학창시절에 들었을 노래였다.





<질풍가도> 원곡 : 유정석 / ‘쾌걸근육맨 2세’ OST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그래 이런 내 모습

게을러 보이고 우습게도 보일 거야.

하지만 내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에

나는 다시 태어나 싸울 거야.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세상에 도전하는 게 외로울지라도

함께 해줄 우정을 믿고 있어.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하아아. 죽을 뻔했네.”

“선배님들 무대 장악 장난 아니시네요.”


노래가 몰아칠 때 자리에서 방방 뛰던 희아는 노래가 끝나자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미란 역시 간신히 한 마디 해놓고 맥주로 모자라는지 물까지 마셨다.

서희도 미란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흔들며 물을 마셨다. 그녀도 맥주가 당겼지만 차를 가져왔기에 마실 수 없다.

<베아트리체>나 <수선화>의 손님들은 음악을 들으며 기분이 좋아져 술을 즐겼고, 여기 손님들은 감정을 끓이며 음악을 즐기다보니 목말라서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영상 찍고 있어?”

“아뇨. 여긴 끝나고 사진만 찍을 수 있대요.”

“그렇구나.”

“근데 PD님은 서희 언니랑 노래할 때랑은 또 다르네요.”

“미투리 밴드 때보다 노래 더 잘하시는 것 같은데, 직접 들어서 그런가?”

“멤버들 실력 때문일 거야. 저분들은 악기를 보컬에 맞춰서 연주하신대. 그러니까 더 멋있게 들리는 거지.”

“여기 안 왔음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러게. 진짜 많이 배워야겠다.”


희아와 미란, 예린이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GF 밴드의 노래가 또 시작되었다. 이번 곡은 조만간 완성될 이들의 앨범에 수록될 노래다.

서희는 말없이 눈을 빛내며 확 잔잔해진 노래를 들었다.





<덮일 기억> 작사 : HAP / 작곡 : 이은호


말라비틀어진 풀잎 숲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겨울의 흰 눈.

아직은 오지 않을 것 같던 새하얀 종이 위

드문드문 보이는 저 빛은 세상을 가리고.


지금껏 걸어온 길 내 커다란 발자취도

고양이가 남겨놓은 조그만 발자국도

하얀 하늘은 누구 것일지도 모르게 덮어놓네.

내가 오래도록 나아갈 길도 언젠가 덮이겠지.


저 하얀 종이에 내 무엇을 새겨놓아도

언젠가 돌아보면 그걸 다 기억할까.

오랜 시간 후 내게 남을 건 그저

지금껏 걸어온 길 위로 덮인 기억뿐이겠지.


하지만 먼 훗날 덮일 기억이라도

내 몸엔, 내 마음엔 남아있겠지.





GF 밴드는 한 시간 공연에서 자작곡 네 곡과 기성곡 다섯 곡을 선보였다.

팀원들이 카페나 클럽에서 7~8곡을 부르므로 이미 그보다 많이 부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작곡 <힘들어도>를 마쳤을 때는 이미 11시 50분이 넘었다.

이제 공연을 마쳐도 누가 뭐라 하지 못할 시간이었지만 손님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잠시 후 정완이 다른 멤버들에게 뭔가 이야기하고 앞으로 나섰다.

홍태는 자신의 베이스 대신 정완의 기타를 잡았고 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태블릿 PC에서 정완의 신청곡 악보를 찾아냈다.


“홍태 형은 오늘 힘듭니다. 앙코르로 제가 한 곡 부를게요. 장르가 달라서 분위기 팍 떨어질 겁니다.”

“예!”

“저희 오늘 첫 공연한다고 뮤아트 레이블의 식구들이랑 친척들, 그러니까 뮤컬트 엔터의 가수들이 와 있죠.”

“와아아!”


정완이 서희 등이 앉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가리키자 함성이 쏟아졌다.


“으음, 제 여자친구 이틀 만에 보는데 한 곡 불러주고 싶네요.”

“꺅!”

“근데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그건 안 되겠습니다. 선우예린, 잘 들어.”


정완의 난데없는 말에 서희가 고개를 숙였고, 예린은 특유의 성량으로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멀뚱해졌다.

손님들은 웃다가 정완의 말이 이어지자 금세 집중했다.


“GF 밴드의 공연을 보러 와주신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시고,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정완이 간단히 말하고 신호를 보내자 은호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테이블의 사람들은 피아노 전주를 듣다 눈이 커졌고 정완이 노래를 시작한 후 입을 벌렸다.


예린은 오그라들었던 손발을 펴고 노래에 집중했다.

저 노래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 저 곡은 잘 들으라는 말이 없었대도 잘 들어야 할 노래였다.

그녀는 정완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의 사람들 중에 저 노래를 가장 잘해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자신이었다.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원곡 : 거미


벌써 넌 내가 편하니. 웃으며 인사 할 만큼.

까맣게 나를 잊었니. 네 곁에 있는 사람 소개할 만큼.


견디긴 너무 힘든데, 자꾸만 울고 싶은데

내 옆이 아닌 자리에 너를 보고 있는 게

왜 그게 행복한 걸까.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모두 다 잊고서 다른 사람 만나는

널 보아도 슬프지 않게.


그저 바라보고 있었어.

한참동안 네 옆에 그 사람까지도

잠시라도 더 보려고.


다시 혹시라도 널 보게 되면

그땐 모르는 척 해볼게.

웃어도 볼게 지금의 너처럼.


눈 감지 말고 보낼 걸

가는 널 꼭 지켜볼 걸

차가운 너의 걸음에 마지막 내 눈물도

묻혀서 보내버릴 걸.


너무 모진 너의 모습이 미워져버렸어.

다른 사람 만나는 널 보아도 슬프지 않게.


그저 바라보고 있었어.

한참동안 네 옆에 그 사람까지도

잠시라도 더 보려고.


다시 혹시라도 널 보게 되면

그땐 모르는 척 해볼게.

웃어도 볼게 지금의 너처럼.


차라리 잘된 것 같아.

다시 널 또 한 번 미워할 수 있을 테니.


혹시 아직 너도 나처럼

편해지지 못하고 아파만 하는 거니

애써 너도 참는 거니.


혹시 네가 다시 돌아올까봐

나의 곁은 아직 그대로

비워져 있어 너의 자리라서.





“예린이 멘탈 나갈 뻔했어요. 어떻게 PD님이 자기보다 소울을 더 잘 부르냐고.”

“딱 한 번 불러봤다고 했으면 아주 기함을 했겠네.”

“언제 불렀는데요?”

“보컬트레이닝할 때. 수강생 중에 소울 보컬이 있었어.”

“노래방 같은 데선 부른 적 없어요?”

“없지.”


서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정완을 보았다.

정완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운전하며 말했다.


“요새 주위에서 자꾸 우승후보니 뭐니 그러니까 애가 노래에 통 집중을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노래할 때 집중하라고 했더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 거예요?”

“뭐 그냥 초심을 일깨워준 정도지. 생방송 갈 정도면 대충 던져줘도 알아서 잘해.”


조금 전 정완은 예린에게 자신만큼 집중하면 자신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말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숙소에 사는 팀원들을 제 차에 태워 보냈다.


“오늘 보니까 예린이는 우승 욕심이 분명히 있고, 하트헤르 애들은 지난주 저희들 같더라고요. 잡생각 다 놓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응. 지혜는 어차피 떨어질 거라 부담이 안 든다고 그러던데, 그래도 좋은 무대 보여줘야 한다고 했어. 순정남녀처럼 고정 팬 확보하려면 라이브 무대에서 최대한 잘해놔야 하니까.”

“애들 새 프로그램 하면서 안 힘들어해요?”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더 열심히 하던데.”

“와아. 사악해. 그렇게 말하면 힘들다고 말도 못하잖아요.”

“말하지 말란 뜻이야. 아무리 회사 이미지 어쩌고 해도, 성과 나오면 제일 좋은 건 걔들이니까.”


서희는 눈을 찡긋한 후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정완이 그녀를 보며 눈이 마주쳤다.


서희는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우진 씨랑 특별공연은 얘기했어요?”

“다 정했어. 그놈이 자작곡 썼더라고.”

“노래 좋아요? 들어보고 싶다.”

“미안한데 그 노랜 방송 전까지 어디도 공개 안 하기로 했어. 내가 제수씨한테도 참아달라고 부탁했어.”

“왜요?”

“노래가 대중성이 전혀 없고 무거워.”


차가 뜸한 한밤의 강변북로에서 정완은 속도를 높이지 않고 끝 차선에서 차를 쉬엄쉬엄 몰았다. 오랜만에 보는 연인과 눈을 맞추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희는 휴가 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근데 PD님은 어떻게 노래를 잘하게 됐어요?”

“어?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야.”

“그렇게 잘하는 거 맞아요. 회사 트레이너님들이랑 아티스트들도 다 인정하는데.”

“···.”

“PD님도 보컬트레이너 했잖아요. 근데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콩쿠르도 우승했고 기타는 독학하다 대학에서 배웠다 쳐도, 노래는 가르치는 방법을 배운 거지 PD님이 전문적으로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적은 없지 않아요?”

“전문적으로 배웠어.”

“힘들게 살았잖아요. 아버님도 편찮으셨고···. 보컬트레이닝 받을 형편이 안 됐을 텐데.”

“마음만 먹으면 형편은 문제 아냐.”


정완이 도내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피아노를 멀리했을 때였다.

그는 소설가 故 김소진의 작품과 그에 관한 일화를 읽다 그가 습작 시절에 신경숙 등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필사(筆寫)하여 어휘력과 문장력을 향상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눈을 번쩍 떴다.

당시 기타리스트로 록밴드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기타와 노래 모두 잘하고 싶어 했는데, 그 해답을 김소진 작가에게서 찾은 것이다.


“노래나 기타나 독학이었지. 기타는 몇 가지 주법이랑 기초만 책으로 익히고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구해서 똑같이 쳤어. 다른 사람 지도 없이 들은 대로 치다보니까 주법이 이상하긴 하지. 어지간한 곡은 문제없지만.”

“노래도 그렇게 했어요?”

“응. 대학 가기 전까지 이선희 노래만 연습했어. 당시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부르려고 했지. 녹음해놓고 비교하면서 고치고 그랬어.”


정완은 피아노를 칠 때도 음정과 박자에 맞는 정확한 연주가 바탕이 되어야 곡에 깔린 감성이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으며 기교나 개성표현은 그 다음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그 역시 아무리 어려운 곡도 우선 정확하게 연주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런 관점으로 여러 노래를 듣다가 ‘음정과 박자에 맞는 정확한 연주’에 가장 적합한 가수가 이선희라고 생각하여 그의 노래를 필사하듯이 연습했다.


“이선희님이 뭘 불러도 죄다 멋있는 게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야. 기본기가 되니까 분위기가 알아서 만들어지는 거라서 소울이냐 알앤비냐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어.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지금 내가 대부분 장르를 흉내 낼 수 있게 된 게 그분 노래로 연습해서일 거야.”

“흉내 수준이 아닌데요? 그렇게 했으니까 여자 노래를 그렇게 잘했던 거네요. 대단해.”


서희는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자신을 트레이닝할 때 같은 노래만 계속 부르게 하고 녹음하여 듣게 했던 게 이해되었다.

기타와 노래를 독학으로 익히던 시절 정완은 공부로도 전국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그 이유 역시 자신만의 실력 향상 방법을 찾아내어 흔들림 없이 적용해서였음을 서희는 알았다.


차가 큰길을 빠져나와 회사로 향하는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이윽고 정완이 신호등도 사람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웠다.


“서희야.”

“네.”

“보고 싶었어.”

“네?”


서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 역시 그런 말을 생각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틀 동안 못 만나서 예전으로 돌아간 듯 어색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연인이 된 후 만나지 못했던 게 이번 이틀뿐이었다.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정완은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이며 다시 출발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갑작스러웠지?”

“···.”

“너 놀랠 생각은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널 보니까 이 말밖에 생각이···.”

“아, 아니요!”


서희가 정완의 말을 끊었다.

이대로 대화가 끝나버리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니 저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지금 누구한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 사람한테 전화 오면 놀라는 거요.”

“응.”

“그래서 그런 거예요. 오해하지 마요.”

“그럼 오늘 같이 있을 수 있어?”

“네.”


정완의 얼굴이 펴지자 서희는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너랑 같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정말 좋아. 어제 그제 많이 아쉬웠거든.”

“네.”

“다음 날 눈 떴는데 너한테 안겨 있으면 하루가 다 좋더라. 일할 때도 더 즐겁고.”

“저도 그래요.”


두 사람은 하루의 마지막에 아쉬움이 남을 정도의 스킨십을 나눈 후 손을 잡고 잠을 청하는데,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정완은 서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잠을 자고 깨어보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서희는 아침인 듯 정완을 품고 잠을 청해보았는데, 그녀는 불편했고 정완은 도저히 못 자겠다고 하여 그만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서희는 또 정완을 품은 채 눈을 떴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새벽 서희는 본가의 방에서 자신의 품안이 휑한 느낌에 깨어났는데, 함께했을 때의 따스한 기억이 어느 새 버릇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푹 자요. 내일도 애들 잘 봐줘야죠.”

“내일은 오늘보다 확실히 잘 봐주겠네. 일 끝나면 너랑 놀 수 있으니까.”

“네.”


미소 띤 두 사람의 눈에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의 건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주말이라 한 편 올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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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8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8 5 26쪽
»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1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6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4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3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7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8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7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5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60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8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7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4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70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7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2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9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9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7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7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7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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