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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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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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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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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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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Encore. 복수의 시간

DUMMY

송년특집 공연의 마지막 순서였던 TYK의 슬립리스까지 무대를 마치고 나자 영기가 무대 중앙에 섰다.


“<C-POP Artist season 5> 송년특집! 이로써 모든 순서를 마쳤습니다. 시간 관계상 일부 편집될 부분이 있을 텐데, 이 부분이 궁금하신 시청자께서는 <C-POP Artist> 홈페이지와 동영상 사이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무대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참가자 여러분, 그리고 시청해 주신 여러분과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관객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와아!”


영기의 클로징 멘트와 함께 녹화가 끝났다.

손봉규 PD가 슬레이트를 치자 스튜디오가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기가 다시 무대로 올라와 한 손을 누르는 시늉으로 객석의 함성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아이고. 올해 관객 분들은 저한테 한숨 돌릴 시간도 안 주시네요. 앙코르 원하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하죠! 안 외쳐주셨으면 서운할 뻔했습니다. 올해는 미리 준비했답니다.”

“와아아아!”


함성이 스튜디오를 들썩이듯 높아졌다.


“지금 제가 아는 사실은 각 회사별 한 팀씩 모두 네 팀이 준비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회사 참가자들끼리 연합하여 팀을 만들었다는 것뿐입니다. 누가 올라올지 몰라서 저 역시 기대가 큰데요, 먼저 인디밴드연합에서 준비가 됐다고 합니다. 큰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주시죠.”

“와아아!”


앙코르 공연의 첫 순서는 인디밴드연합의 여성 듀엣 파파라차와 5인조 록밴드인 블루스톰의 연합 팀이었다.

두 팀의 메인보컬인 남윤지와 송남수가 무대 맨 앞에 섰고, 파파라차의 또 다른 멤버인 최혜주는 기타를 들고 블루스톰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섞였다.

이들이 ‘좋아서 하는 밴드’의 <신문배달>을 부르기 시작하자 객석은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호응해 주었다. 그리고 이때 뮤컬트 팀원들에게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GF 밴드의 소향이 무대 뒤편 대기 장소로 걸으며 <신문배달>을 따라 부르다 정완에게 말했다.


“에이. 수휘 오빠 센스 하고는. 인디연합이라고 인디 노래만 시키면 돼? 저거 정말 좋긴 한데 관객들이 많이 모르지 않아?”

“그렇겠죠.”

“너라면 저 노래 안 골랐겠지?”

“아무래도 그랬을 겁니다. 관객들이 많이 아는 노래가 좋으니까요.”

“하긴. 넌 노래든 가수든 이슈 될 만한 노래만 하더라. 관객들 시선을 끌어야 해서 그런 거지?”

“그렇죠.”

“내가 여기 오다보니까 얘네들 했던 게 궁금해서 지난 방송도 다 봤잖니. 근데 너 이번에 애들이 전에 했던 거랑 많이 다른 거 시켰던데.”

“예. 이 친구들 자기 분야 아니어도 잘하는 거 많아요. 그거 찾아내는 게 제 일이고.”

“그렇다고 여우비가 걸그룹 노래를 할 줄은 몰랐지. 예린이한테 김연아 노래를 시키지 않나···. 근데 그게 되게 좋았어. 신기하게.”

“전에 했던 거랑 달라도 잘했으니까 더 눈에 띄었겠죠. 일회성 이벤트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 진작 PD 하지 그랬어.”

“뭘요.”

“근데 여기서 인디 노래만 해야 한다면 너 뭐 고를 거야?”


GF 밴드의 멤버들뿐 아니라 뮤컬트 팀원들도 소향과 정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소향의 마지막 질문에 정완이 무슨 답을 내놓을지도 궁금했다.


“<아메리카노>(10cm)나 <위잉위잉>(혁오 밴드) 같은 거? 그건 유명하잖아.”

“아니요. <지금부터 끝까지>(럭스) 했을 겁니다.”

“뭐어?”

“와아. 센데요?”


은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정완이 말한 노래는 대한민국 인디밴드의 역사를 10년 이상 후퇴시킨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진짜 이슈 메이커 맞네. 인정.”

“그 노래 가사처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죠. 그 좋은 노래가 성기노출사고로만 기억되긴 아까우니까요.”

“네가 인디의 역사를 그 시절로 되돌려놓겠다?”

“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이윽고 봉길이 무대를 주시하다 멤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런두런 나누던 대화가 끊어지고 무대 뒤편이 침묵에 휩싸인 반면, 무대 위의 박수와 영기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다음은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노래로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요? 밴드 악기가 줄줄이 세팅되는 걸 보니 GF 밴드가 나오나보네요? 큰 박수로 맞아주시죠.”

“와아아!”


봉길이 ‘홍영기가 벌써 우리를 알아주네?’라며 씩 웃자 GF 밴드의 다른 멤버들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함성과 함께 무대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밴드 멤버들이 무대 중앙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한 후 각자의 위치에 자리했다.


봉길이 메트로놈을 귀에 꽂고 심벌과 스네어를 박자에 맞춰 치자 뮤컬트 팀원들이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왔다.

팀원들이 모두 무대 중앙에 서자 본격적인 전주가 시작되었고, 봉길의 인트로 드럼에 이어 은호가 귀에 익숙한 피아노 전주를 시작하자 함성이 확 높아졌다.

첫 소절을 맡은 미란이 은호를 바라보며 노래를 시작했다.





<Butterfly> 원곡 : 러브홀릭스(Loveholics) / ‘국가대표’ OST


(미란's song)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누에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도진's song)

겁내지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예린's song)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은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도진)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간주)


(서희's song)

꺾여버린 꽃처럼 아플 때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도

너를 믿어. 나를 믿어.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어.


(유찬's song)

심장의 소릴 느껴봐. 힘겹게 접어놓았던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지혜's song)

벅차도록 아름다운 그대여.

이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은별)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유찬)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합창)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Butterfly>는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탄생과 성장을 그린 영화에 삽입되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고 대중의 찬사를 받았던 노래로, 나온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의 성장이나 성취가 이루어지는 과정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래서 올 초에 있었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 무대에서 이 노래가 공연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지금도 많다.


정완은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팀원들의 송년특집 무대 기획업무를 파악하자마자 <Butterfly>를 앙코르 무대의 곡으로 결정했다.

이후 그는 이 노래를 중심에 놓고 팀원들의 상황과 각자의 음악적 특징 및 장점 등을 파악하여 선곡을 주도하고 공연 준비를 이끌었다.


특히 정완은 팀원들 노래의 키워드를 ‘겨울’과 ‘새로운 시작’, ‘성장’으로 정했는데, 그것 역시 <Butterfly>가 이 키워드를 모두 잘 담아낸 노래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Butterfly>를 팀원들의 공연을 집약하는 노래로 먼저 뽑아놓고 다른 무대를 거기 맞추어 준비한 것이다.


“와아아아!”


노래가 끝나자 기나긴 함성이 스튜디오를 가득 울렸다.

팀원들은 심사위원석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각자의 부모님과 지인들 쪽을 향해 손을 흔들다 영기가 무대에 올라오자 뒤편으로 퇴장했다.


“정말 멋있었죠?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의 참가자들이 함께 부른 <Butterfly> 잘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자! 다음은 KP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한데요, 박수로 맞아보시죠.”

“와아아!”


악기가 부리나케 치워지며 무대가 깔끔히 정돈되었다.

이윽고 KP의 남성 듀엣 트로피카나와 솔로 댄서인 최명재가 마치 한 팀이었던 듯 칼군무에 맞추어 <와요! 와요!>(OPPA 007)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하인길님은 옛날 댄스곡 너무 좋아한다니까. 여름이었으면 쿨 노래 했으려나?”

“신나니 좋네.”


소향의 말에 봉길이 영혼 없이 대꾸하고 GF 밴드 멤버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다. 특히 은호, 들어오자마자 공연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잘했어.”

“아닙니다. 좋았어요. 선배님, GF 밴드에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누나.”

“예? 예, 형.”


홍태의 말에 은호는 생긋 웃으며 호칭을 고쳤다.

홍태는 멤버들끼리의 호칭에 ‘님’을 빼고 형이나 누나로 통일하라고 말했다. 거리감을 줄여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회식하고 싶은데 오늘은 다들 일이 있지? 우리도 그렇고···. 그래도 공연했는데 회식 없이 넘어갈 수 없지. 시장에서 우동을 먹더라도 회식은 꼭 할 거야. 그리고 정완이 고맙다.”

“예?”

“이런 방송 무대는 전성기 때도 못 해봤는데.”

“그래. 박수도 많이 받았고.”


봉길과 홍태의 말에 정완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무대는 마지막일 수도 있죠. 근데 우리 전성기 이제 시작 아닙니까?”

“하긴. 직장인 밴드가 방송 무대를 서봤는데 뭘 더 바라겠어. 그냥 즐기는 거지 뭐.”

“어쨌든 형은 연습실 알아봐 주세요. 그건 리더가 할 일이니까요.”

“어? 어!”


이때 무대에서는 TYK의 솔베이지와 신우리, 구성진 등 4명이 마지막 앙코르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그런데 박수가 잦아들며 제작진들이 나오려는데 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강서희 나와라! 형님! 나타샤 불러주세요, 나타샤!”

“와아아!”


객석이 순식간에 HAP와 서희를 연호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퇴장을 안내하려던 제작진이 제지할 틈도 없었다.


이윽고 <C-POP Artist>의 메인 작가인 방혜아가 뮤컬트 대기실에 뛰어 들어왔다.


“저기 HAP 씨, 서희 씨랑 지금 무대 올라갈 수 있어요?”

“예?”

“지금 관객 분들이 두 분 올라오라고 난린데.”


서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완이 말했다.


“올라가겠습니다. 근데 세 곡 해도 됩니까?”

“세 곡이요?”

“저희 노래 두 곡이랑 신곡이요.”

“아, 네. 알겠어요. 제작진한테 악기 주시고 준비되면 바로 나오세요.”


혜아가 무전기를 켜고 뭔가 말하며 뛰어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정완과 서희에게 모였는데, 서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신곡 같은 거 없잖아요.”

“시간이 왔어.”

“시간이요?”

“복수의 시간.”

“아!”

“자신 있지?”

“네.”


서희가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다른 이들은 멀뚱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정완은 뒤이어 들어온 제작진에게 제 키보드를 넘겨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들어달라고 말한 후 서희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다행이네.”

“뭐가요?”

“아까 서준 씨한테 부탁했거든. 앙코르 끝나면 소리 좀 쳐달라고.”


정완의 말에 서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가수를 하든 안 하든, 이런 무대는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될 거야.”

“네.”

“그러니까 즐기자. 너는 노래, 나는 너.”

“네? 네.”


키보드가 무대 한가운데에 놓이고 정완과 서희가 자리하자 함성이 더 커졌다.

소리가 잦아들자 정완이 먼저 말했다.


“저희를 무대에 불러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프로듀서 HAP입니다.”

“여우비 강서희입니다.”

“먼저 두 곡 이어서 부르겠습니다.”

“저희 노래인 <사랑나무 아래 소녀>와 <소녀 나타샤>예요.”

“와아아아!”


정완과 서희는 두 사람의 노래를 연이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서희가 두 손바닥을 아래로 연신 내리며 환호를 가라앉혔다.


“하나만 더 불러도 될까요?”

“와아아!”

“허락하신 걸로 알고 새로운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이건 저희 노래가 아니라 순정남녀의 미발표 곡이에요.”

“앗!”


정완과 서희의 말에 관객들의 눈이 커졌다.


“이 노래는 재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우진이랑 아리 씨가 이 프로 참가자였을 때 만들어진 것 같은데, 노래가 정말 좋고 리듬이랑 가사가 재미있어요. 저는 순정남녀가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기를 바랍니다. 들어보시면 저와 같은 생각이 드실 거예요.”

“언젠가 무대에서 꼭 불러보고 싶었는데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노래 제목은 <D&L Girl>입니다.”

“이 사람이 우진 씨의 파트, 제가 아리의 파트를 할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제가 부르는 부분이 분명히 아리의 파트입니다. 기억해주세요.”


서희가 당연한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자 관객들이 멀뚱해 했다.

정완이 키보드에 저장한 드럼 비트를 재생한 후 거기에 피아노 소리를 얹으며 전주를 시작하자 서희가 몸을 흐느적흐느적 흔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서희가 손을 번쩍 들며 랩을 시작하고서야 놀랐다.

서희가 랩을 하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부르는 부분이 분명히 아리의 파트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 곡의 원곡에서 아리가 랩을 했다는 뜻이다.


뒤이어 관객들은 서희가 흐느적거리며 랩을 하는 이유와 노래 제목의 의미도 깨달았다.

서희에게서 술에 취했는데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이 보였다.





<D&L Girl> 작사 : 매아리 & 서우진 / 작곡 : 서우진 / 노래 : 순정남녀


(서희's rap)

여기! 여기여기여기!

여기! 여기여기여기!


(HAP's song)

너의 여기에 내가 들어섰을 때

술 냄새 안주 냄새 속 너의 공기

네가 내게 여기를 외치는데

나의 지금 여기는 너만의 향기.


(서희's rap)

너 되게 빨리 왔다?

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HAP's song)

들켰네. 나 빨리 오고 싶었어.

환히 웃는 너의 눈 보고 싶어서.

취해서 흐느적대니 더 귀여운 너

이럴 때 나를 불러 정말 고마워.


(서희's rap)

머리 아픈가? 아닌가? 아픈가? 아닌가?

으응. 나 괜찮거든? 걱정 뚝! 알겠지?


(HAP's song)

그래. 너 잘 깨는 거 알고 있는데

푹 자면 괜찮을 거 나는 아는데

그래도 걱정되니 약 먹고 가자.

너의 소중한 내일 힘들지 않게.


(서희's rap)

나 예쁘다며? 나 귀엽다며?

업어 줘. 업어 주세요! 응?


(HAP's song)

응. 너 지금 제일 예뻐 정말 귀여워.

그럼. 너 업어야지. 사랑스러운데.

매일 매일 업어도 늘 고마울 너

언제나 내가 먼저 하고픈 얘기.


(서희's rap)

이랴! 가자! My handsome boy.

My only 호구!


(HAP's song)

힘든 하루 끝에서 너를 업은 나.

그래. 이건 네 호구가 꿈꾸었던 일.

You’re so drunken and lovely girl.

널 업고 걷는 길은 우리의 꽃길.





이 노래는 재작년, 우진과 아리가 <C-POP Artist season 3>에 함께 참가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묘한 설렘을 즐기던 때에 만들어졌다.


어느 늦은 밤 아리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우진을 불러냈는데, 당시 안 좋은 일이 많아 늘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녔던 우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술자리의 일까지 녹음했고 여기에 아리의 주사(酒邪)가 생생히 기록됐다.

이후 우진은 리드미컬한 곡을 고민하다 아리의 술 취한 목소리를 샘플링하고 거기에 제 노래를 넣어 <D&L Girl>을 만들었다.


아리는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길길이 날뛰며 우진에게 지워버리라고 말했다.

우진은 처음엔 조곤조곤 설득하다 나중에는 작곡가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라며 되레 제가 화를 내어 아리가 말을 못하게 했다.


정완은 프로듀서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우진의 컴퓨터를 사용하다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재미있는 곡이다 싶어 복사해 두었다.

며칠 후 그는 아리의 부탁을 받고 <순정남녀의 편안한 밤>에 출연한 자리에서 서희에 대해 난감한 질문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복수하고 싶다던 서희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서희는 노래를 듣다 ‘우진 씨가 가사 신경 많이 썼나보네요. 라임까지 다 맞췄네?’라고 말하며 방긋 웃었다.


서희는 취한 듯 새는 발음에 혀 짧은 음색으로 랩을 읊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정완의 등에 달라붙어 그의 뒷덜미를 잡고 말고삐를 당기는 시늉까지 하며 필름이 끊어졌던 아리의 당시 모습을 나름대로 재현해냈다.


관객들은 <D&L Girl>을 들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저 노래가 왜 지금껏 발표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고, 정완과 서희가 순정남녀에게 저 곡 공개를 허락받았을 리가 없으니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란 사실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정완과 서희는 함성을 길게 뿌려준 관객들과 피식피식 웃는 부모님, 엄지를 치켜든 서준을 향해 인사한 후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의 팀원들과 밴드 멤버들 역시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두 분 멋있었어요. 잘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어. 근데 우진이가 그런 노래도 만들었어?”

“저도 듣고 놀랐어요. 홍태 형은요?”

“먼저 갔어. 근처 걸으면서 마음 좀 정리하겠대.”

“수휘 선배 때문에요?”

“응. 수휘 오빠 좀 전에 왔어. 사과하려고.”

“선배가 사과를 했다고요?”

“홍태 오빠가 못하게 했어. 사람들 많은 데서 사과하는 건 수휘답지 않다고. 쓸데없는 데 힘쓰면 정상에서 미끄러진다나?”


정완과 서희가 재앙코르 공연을 하는 동안 수휘가 뮤컬트 대기실에 찾아왔다.

수휘가 팀원들까지 다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려는데 홍태가 그를 제지하며 이따 시간 있는지 물었고, 수휘는 자기 팀원들 퇴근시키고 전화하겠다고 했다.


사정을 들은 정완은 ‘아, 그걸 내 눈으로 봤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 스마트폰을 꺼내 예전에 수휘가 자신에게 휘민락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던 녹음파일을 지워버렸다.


이윽고 여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짐짓 미소를 보이면서도 묘한 표정이었다.


“정완이랑 서희, 재앙코르 무대 잘했어. 순정남녀 노래 재미있더라. 아무래도 걔들 그거 음원 내야겠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GF 밴드, 고생 많았어. 너희는 조만간 나랑 밥이나 먹자.”

“네.”

“근데 천재적인 바보가 뭐야. 그거 네가 지었지?”

“예. 아들 바보, 강서희 바보, 발라드 바보, 저는 그냥 바보요.”


봉길이 멤버들을 가리키며 닉네임을 말하고 픽 웃자 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태도 있어?”

“베이스 바보요.”

“리더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만, 그거 너 빼고 다 이상해.”


이 말에 밴드 멤버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여원은 정완을 힐끗 본 후 모두를 에둘러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이번엔 우리 회사 애들이 제일 잘했대. 개별 무대도 그랬지만 앙코르도. 특히 미란이랑 도진이 정말 잘했어.”

“감사합니다.”

“수휘는 우리 애들 무대 보다가 자기 회사 애들한테 미안했다더라. 인디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답시고 애들을 너무 방치했다고···. 지노는 도진이 무대에 충격을 받았대. TYK에 펑키 하는 애들 있잖아? 걔들한테서 못 들어봤던 걸 도진이한테 들었다는 거지.”

“···.”

“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게 중요하지만 오디션에서 그러긴 힘들어. 미래가 불안한데 진심으로 즐거울 수 있겠어? 근데 도진이는 진심으로 즐겁게 놀았고, 지노는 그게 부러웠다는 거야.”

“감사합니다.”

“다른 애들은 인생을 걸고 덤볐지. 그러니까 멋있게 나올 수밖에 없었어. 다들 잘했어.”


여원은 일부러 틈을 두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우리가 이겼다고 인정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은 좋은데, 솔직히 난 지금 좀 묘해. 아무리 이게 오디션이라도 이기는 게 다가 아니구나 하는 느낌?”

“···.”

“무대는 최고였어. 그렇다고 너무 잘해버려서 다음에 더 못할까봐 걱정되는 것도 아니고···. 생방송 가는 애들이든 안 가는 애들이든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길 바란다.”


평소 팀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말하던 여원이 눈을 내리깔고 혼잣말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예전에 우리 씨바가 어렵게 공부해서 석사학위 받아놓고 좋아하질 않길래, 안 좋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 음악을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음악을 많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서 석사가 된 것 같다고···.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래. 그 인간이 왜 지금까지 키보드 끼고 사는지 이해가 돼 버렸네.”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수요일까지는 일정 없어. 되도록이면 회사 나오지 말고, 연말연시니까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 술 너무 퍼마시지 말고. 알았니?”

“예.”

“오늘은 회사 들어갈 애들 없지?”

“네.”

“그래. 간다!”

“감사합니다!”


여원이 나가자 GF 밴드의 멤버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봉길과 소향은 부모님께 한소리 들은 후 아들 현민을 데려와야 한다. 팀원들의 부모님들은 스튜디오 앞에서 이들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정완과 은호도 각각 서희와 미란의 부모님과 식사할 예정이다.


봉길이 다소 급한 목소리로 밴드 멤버들에게 말했다.


“연습실이나 회식 같은 건 정해지는 대로 단톡방에 올릴게.”

“예.”

“어서 가세요, 형, 누나.”

“너 지금까지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냐? 갈게!”


봉길이 정완을 툭 치며 말하고 소향과 함께 부리나케 나갔고, 은호는 미란에게 부모님께 먼저 가 있겠다고 말하며 나갔다.

팀원들의 시선이 정완에게 모였다.


“왜?”

“한 말씀 하셔야죠.”

“내가?”


함께 했던 2주 동안 팀원들은 정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완은 선곡이나 자작곡의 구성, 멤버들끼리의 조화 등에 대한 발전에 집중했고 무대에서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했다. 개인의 음악적 성향을 존중하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저께 유찬은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완에 대해 ‘그분은 다 잘하지만 프로듀서가 맞나 봐요.’라고 말했고, 다른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정말 잘했다. 내가 봤던 것 중엔 최고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너희들의 베스트는 아닐 거야. 너희들은 아직 꽃봉오리지 꽃은 아니니까.”

“예.”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무대였다. 그러니 마음껏 뿌듯해해. 여유 있을 때 이 기분을 충분히 즐겨라. 목요일에 보자.”

“감사합니다!”

“먼저 갈게.”


정완과 서희는 팀원들을 뒤로 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서희가 정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근처에 맛있는 갈빗집 있어요. 소갈비 먹자고 할 건데 어때요?”

“나야 뭐든 좋은데 왜? 너 돼지고기 더 좋아하지 않아?”

“배고파서 빨리 익는 거 먹고 싶어요. 어차피 우리 아빠 돈 많아요.”

“푸후후. 너 갑자기 좀 무섭다.”


정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차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정완과 서희는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을 보낸 후 잠시 한강공원을 걸었다.

이후 두 사람은 한참을 운전하여 도착한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다가 차 안에서 마셨다. 트레이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단둘이 멈추곤 했던 그곳, 즉 서희가 <눈물>(리아)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장소였다.


“서울 거래처에 오면 커피는 늘 여기서 마셨어.”

“거래처가 이쪽에도 있었어요?”

“아니. 너 생각하고 싶어서.”

“저도 자주 왔는데 아깝네요. 새벽에 왔으면 봤을 텐데.”


서희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시각을 보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어? 지금 라디오 할 땐데.”

“제수씨?”

“네.”

“줘. 넌 입 틀어막고 있어.”


정완은 서희의 스마트폰을 빼앗듯 건네받고 스피커를 켰다.


“제수씨, 접니다.”

[어? 아, 아주버님?]


아리는 정완이 전화를 받을 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물론 정완은 아리가 라디오 하다 말고 전화한 이유가 짐작되었기에 제가 전화를 받고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서희는요?]

“잠깐 화장실에요. 근데 제수씨 지금 라디오 하실 때 아닌가요?”

[네? 네.]

“저한테 얘기하세요. 전할게요.”

[아주버님 혹시 오늘 서희랑 저희 노래 부르셨어요? <D&L Girl>이요.]

“예? 아아, 그랬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급하게 올라가느라 전화를 못했네요. 그리고 지금은 라디오 할 시간이라···. 제수씨도 알겠지만 그 노래가 좋잖아요.”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픽 웃었다. 자신이 이 전화를 받았다면 아리에게 앞뒤 없이 크게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다급한 아리의 목소리와 달리 느긋하게 너스레를 떠는 정완의 모습이 웃겼다.


“오늘 온 관객이 라디오 게시판에 올렸나보네요? 그거 아직 올리면 안 될 텐데.”

[그걸 왜 부르셨어요?]

“제수씨랑 협의 없이 일 하나만 벌여도 된다기에 벌였습니다.”

[네?]

“제수씨 마음엔 안 들겠지만, 프로듀서로서 제 감각은 이 노래가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우진이도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기부할 돈 좀 벌어야죠.”

[네. 저어 아주버님, 죄송한데 광고가 끝나가서···.]

“예. 방송 잘하세요.”


서희는 전화를 돌려받으며 픽 웃었다.


얼마 전 정완이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아리는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정완은 사과하려는 아리에게 서희와 이야기해보라고 말했고, 서희는 아리와 같은 방법으로 협의하지 않은 일 하나만 해서 상쇄하자고 했다.

물론 아리는 이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안 하는 아리가 라디오를 진행하다 말고 광고 나가는 짧은 시간에 전화했을 정도이니 복수는 대성공한 셈이다.

그녀는 아마 청취자 게시판에 올라온 노래 제목을 보고 기함했을 것이다.


“아! 시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송에는 방송.”

“풋! 사이다 원샷한 것 같아요.”

“라디오 들어볼까? 그 노래 얘기하나 안하나.”

“안할 거예요. 방송 전까지 거기서 있었던 일 얘기하면 안 되니까. 아니, 지가 창피해서 말 못할 거예요.”

“푸후후.”

“갈게요.”


서희는 차를 출발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작가의말

저는 내년 초까지 많이 바쁠 것 같습니다.

틈 날 때마다 쓰고 있지만 지금도 쓰는 속도가 연재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네요.. ㅠ

아무튼 이 작품은 완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힘 닿는 데까지 쓰겠습니다.


즐겨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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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4 21.09.08 68 5 33쪽
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7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8 5 26쪽
51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0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5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4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3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6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7 6 30쪽
»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7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5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59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7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6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3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69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6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1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8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8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6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6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6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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