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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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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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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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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DUMMY

12월 11일 화요일 오후.

<C-POP Artist season 5>에서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던 팀원들이 열흘간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출근했다.


“와아. 언니!”

“휴가 기간에 대형사고 잘 봤어요.”

“근데 언니 그 사이에 진짜 예뻐졌네요?”


팀원들은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다 연습실로 이동하면서도 서희를 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무표정이나 울상, 혹은 찡그린 얼굴이었던 카리스마의 여인이 사라진 자리에 상사병에 걸리게 했던 짝사랑에게 고백 받은 소녀가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는 건 들어봤어도 사랑에 빠져서 노래가 늘은 건 처음 봤어요.”

“나타샤 노래 정말 좋더라고요.”

“어어. 그랬어? 고마워. 들어가자.”


서희는 말을 얼버무리며 연습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여원이 들어왔다.


“휴가는 잘 보냈어? 많이들 쉬었고?”

“네!”

“예고했다시피 오늘은 트레이닝 없어. 회사 앞 갈빗집에 여섯 시에 예약했으니까 그때 모여서 고기 먹자. 돈은 CBC에서 주니까 밥이랑 냉면 대신 고기로 배 채우는 거 추천하고, 100인분을 먹어도 되는데 술은 안 돼. 알았지?”

“네!”

“근데 그 전에 할 일이 있고 모레까지 과제도 있어.”


팀원들이 약간 긴장했는데 여원은 은별을 불렀다.


“은별아.”

“네, 선생님.”

“이따 네 폰으로 동영상이 올 거야. 그거 애들한테 뿌려.”

“네.”


여원은 서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서희가 주말에 지 남친이랑 순정남녀 대타로 행사를 뛰었는데, 그냥 뛴 게 아니라 결혼식장을 깨부수고 다녔어. 매니저 얘기 들어보니까 둘이 차 안에서 자작곡 만든다고 꽁냥거렸다는데, 사랑나무 노래는 SNS에서 먼저 떴고 나타샤 노래는 드라마에 나와서 반응이 좋아. 얘들도 그렇고 순정남녀나 하트헤르도 그렇고, 팀 노래는 그렇게 나와야 케미가 살고 귀에 착 감기거든.”

“네.”

“아유! 우리 씨바는 작곡은 잘하는데 노래가 씨바라 듀엣도 못해봤네. 잘생긴 인간이 세수도 안하고 맨날 꾀죄죄한 꼬라지로 골방에 처박혀가지고 와이프 제쳐놓고 키보드만 사랑하고···.”

“···크으.”

“편하게 웃어도 돼.”

“죄, 죄송합니다.”


도진은 고개를 숙였고 팀원들은 편히 웃지 못했다.

여원이 말을 이었다.


“동영상은 정완이, 그러니까 HAP랑 서희가 한 행사야. 의뢰인들한테 받은 거라 화질 음질 좋아. 수익금 좋은 데 쓴다니까 음원은 사서 들어. 그거 잘 보고 느낌을 정리하는 게 과제야.”

“네.”

“거기서 본 게 그냥 사랑에 빠진 남녀, 혹은 좋은 노래 정도면 안 돼. 적어도 그 케미를 바탕으로 둘이 라이브 공연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메인과 서브의 역할을 어떻게 했는지는 봐야 해. 내가 바라는 듀엣의 무대를 둘이 제대로 보여줬으니까 과제로 주는 거야.”

“네.”

“피아니스트들 보면 같은 곡이어도 매번 다른 연주가 나와. 그 순간에 취해든 자기감정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런 건데, 걔 연주가 그랬어. 다만 걔가 취했던 게 감정이 아니라 강서희였던 거고.”

“까르르!”


팀원들이 웃음을 쏟아냈고 서희는 고개를 숙였다.

여원도 빙긋 미소 지었다가 표정을 고쳐먹었다.


“걔 입장에서야 여친이 예뻐 죽겠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런 연주는 피아노에 자신 없으면 엄두도 못 내.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면서도 실수 하나 없이 깔끔하게 쳐냈지? 우리 씨바가 보더니 이건 피아노 하나만 제대로 파서 만든 기본기에 감성이 딱 들어맞은 연주라고 하더라. 악기 하는 애들은 그 부분을 자세히 봐.”

“네.”

“HAP는 서브보컬로 완벽했어. 서희의 보컬에 맞춰 자기 성량이나 세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해서 흐름을 컨트롤했지. 그리고 걔가 두 곡 붙여서 부른 것도 잘 들어봐. 관객들을 자기 쪽으로 완전히 끌어당겨놓고 마무리한 거. 그리고 <Sweet Dream> 노래만 들어보니까 목소리 조금 굵은 여자가 한 것 같더라. 나도 걔가 감성이 좋은 건 알았는데 여자 감성까지 표현할 줄은 몰랐어. 식장 분위기에 맞춘 것 같은데 그것도 자세히 보고.”


여원은 서희에게 시선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근데 보컬은 걔보단 서희한테 배울 게 더 많아. 녹음실이랑 현장은 다르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부르는 건 어느 쪽에서나 통해. 서희는 원래 기본이 잘 됐는데 감기 노래부터 자기감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지. 그게 식장에서 잘 나왔고, 특히 <결혼할까요>에선 나도 몰랐던 서희가 나왔더라. 너희들 다 공연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교보재로 보라는 거야. 많이 들어.”

“네.”

“참고로 내가 느낀 점은 이래. 아, 나도 우리 씨바랑 연애나 몇 달 해볼 걸, 뭐가 급하다고 결혼부터 덜컥 했나···. 나를 가수나 보컬트레이너가 아니라 쭈글이 아줌마로 만들어서 감동시켰던 공연이었어. 너희들도 이런 식으로 각자 느낌 정리해 봐. 알았지?”

“네!”

“그리고 너희 송년특집 공연에 대한 건데.”


여원은 일부러 틈을 두며 팀원들을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어제 우리 회사에 프로듀서 한 명이 입사했어.”

“아.”

“문갑이도 정신없고 우진이는 쓰러졌으니 잘됐지. 그 사람이 너희들 송년특집 공연 준비를 총괄할 거야. 보컬트레이너나 멘토들도 다 그 사람 중심으로 움직일 거니까 그렇게들 알고 잘 따라.”

“네.”

“들어와!”


여원의 외침에 서희는 고개를 푹 숙였고 은별은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여기 들어올 사람이 누군지 아는 이는 이들 둘뿐이었다.


“어? 악!”

“헉!”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피아노는 잘 치는 남자가 들어오자 팀원들이 눈이 함지박만하게 커졌다.

여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완의 어깨를 툭 쳤다.


“얘기 잘하고 다섯 시 반까진 보내줘.”

“예, 선생님.”


여원이 나가고 그 자리에 정완이 앉았다.

은별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이후로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마 그가 달라진 기간은 최근 일주일 동안일 것이다.


SS라는 이름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강렬하고 날카로웠던 기도(氣道)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기운이 풍겼지만, 한편으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건네는 말 한 마디로 주변인들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을 듯한 카리스마도 엿보였다.


‘언니를 많이 닮았구나.’


연애마저 필사적인 저 남자는 한때 자신을 닮으려 노력했다.

이번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서희를 닮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자신과 함께했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있었다.


정완이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반갑다. 나는 어제 뮤컬트 엔터에 공채 입사한 프로듀서 하정완이다.”

“반갑습니다!”


인사와 박수가 잦아든 후 정완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인디 신에서 경력을 쌓았다. 미투리 밴드의 정규 4집이랑 싱글 둘, 다른 밴드 싱글도 여러 번 프로듀싱했고, 최근엔 뭐 다 알겠지.”

“네!”

“잘생기셨어요!”


예린의 외침에 정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뭐 그냥 사람같이 생겼지. 근데, 그렇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그 말은 안했으면 한다.”

“네?”

“나한테 멋있다거나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꺅!”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니까.”


예린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오므리고 소리쳤다가 마지막 말에 멀뚱해했다.


정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한 명에게 다가갔다. 서희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정완은 서희의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저기. 고개 들죠? 나 지금 일하는 중인데 협조 좀 해주세요.”

“···.”


보는 눈이 많은 건 행사 때와 다를 게 없건만 서희는 지금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정완이 제 손에 손가락을 대자 그의 손을 잡았다.


“부탁인데 고개 들어. 네가 이러고 있으면 진행이 안 되니까.”

“아, 알았어요.”

“나 어제 네가 골라준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

“꺅!”


서희는 애써 고개를 들려다가 또 제 얼굴을 가렸고, 예린은 저도 모르게 또 소리쳤다.

정완이 자리로 돌아오며 예린에게 말했다.


“선우예린. 잘했다.”

“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큐걸즈 멤버들하고 비슷한가?”

“네. 98년생이고, 미은이랑 윤지하고 동갑이에요.”

“박유지보다는 한 살 언니네.”

“네.”

“어제 큐걸즈 만나봤는데 박유지 엄청 시끄럽더만. 근데 그거 중요하다.”


정완은 틈을 두고 예린을 향해 말을 이었다.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표현이나 리액션은 바로바로 해라. 넌 그것만 되면 Top 5는 갈 거야.”

“어···.”

“표현 참고 억압하다가 노래할 때 감성을 터뜨리라면 그게 잘 되겠나. 그럼 거짓으로 꾸민 감성밖에 안 나와. 네가 감성이 얕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가 그거야.”

“아!”


예린의 눈이 커지면서 빛났다.


“전까지 너는 그게 부족했는데 여기 와서 많이 좋아졌더라. 다른 데서는 그렇게 감정 표현하기가 어려운 건가?”

“아! 네. 부모님이 감정 표현하는 걸 싫어하세요. 사랑한다고 하면 질색하시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도 뜻이 있으셔서 그러신 거지만 노래에서 그러면 안 돼. 가수한테 노래는 생활이다. 평소에도 감정을 잘 표현해 버릇해야 노래할 때 극대화할 수 있어.”

“네.”

“지난번에 <노래는 거짓말을 못해요>(알리) 잘했고, 사전대결에서 <가을꽃>은 정말 좋았어. 근데 소울 보컬은 그 정도의 노래만으로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화가 나면 소리도 지르고 슬프면 울어. 눈물 나는 영화도 많이 보고 로맨스 소설도 읽어보고, 너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시 같은 것도 베껴 써봤으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저어. 선배님.”


예린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도진이 손을 들었다.

정완은 그를 보며 대뜸 다른 말을 꺼냈다.


“난 우진이랑 입장이 다르다.”

“예?”

“난 아티스트가 아니고 프로듀서고, 너한테 선배라고 불릴 깜도 안 된다. 그러니까 PD라고 불러.”

“예? 예.”


도진은 머뭇거리다 호칭을 바꾸어 말했다.


“PD님.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저에게 기타 좀 가르쳐주십시오.”

“네 실력이 나한테 배울 정도도 아니고, PD가 기타 가르쳐주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이따 얘기하자. 먼저 송년 특집에 대해서 이야기해야지 않을까?”


서희가 붉은 기운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자 정완은 하트헤르를 보며 본론을 꺼냈다.


“먼저 하트헤르, 너희들 뭐할지 생각해 봤어?”

“자작곡을 하고 싶은데 딱히 좋은 멜로디가 안 나와요.”

“<풀밭에서> 같은 노래를 또 만들고 싶겠지.”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비경연인데.”

“어느 무대든 최고로 보여드리고 싶죠. 대형 무대는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요.”

“맞는 말이지만 이번 무대는 너희들한테 모의고사다. 모의고사에 너무 힘 빼지 않았으면 좋겠어. 송년 무대에서 잘해서 극찬을 받았다가 생방송 가서 실망을 줄 수도 있다.”

“이번에 잘하고 다음에 더 잘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다만 꼭 자작곡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물론 내 말이 정답은 아니야. 자작곡이 하고 싶은데 잘 안 풀리면 같이 보자. 혼자 골 싸매고 있으면 쓸데없이 독감이나 걸리고 애먼 사람들이 개고생할 수도 있으니까.”

“까르르!”


정완이 무표정한 얼굴로 동생을 디스하자 팀원들이 웃었다.


“너희 혹시 아직 발표 안 한 자작곡 있어?”

“네. 두 개 있어요.”

“모레까지 녹음할 수 있게 준비해. 들어보고 얘기하자.”

“네.”


정완은 다시 예린을 보았다.


“예린이는?”

“아직 못 정했어요.”

“난 전부터 네가 <Do Me>(샛별)를 부르면 어떨지 궁금했다. 그 노래 혹시 알아?”

“네! 저 그 노래 좋아해요. 지금 불러볼까요?”

“모레 듣자. 오늘은 고기 먹어. 그 노래 때문에 딱히 뭘 준비할 건 없다.”

“네.”

“넌 아까 말했던 거 말고는 괜찮으니까, 모레까지 영화 한 편이랑 시집 한 권 보고 느낀 점 정리해 와. 시집은 서희가 골라줘.”

“시집은 언니가 가야죠.”

“풉!”

“어휴.”


은별의 장난스런 말에 서희가 또 고개를 숙였고 팀원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정완은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새삼 은별이 고마웠다.


“은별이 말이 좀 엉뚱하긴 한데 위트 있었지? 한 단어 바꿨는데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고.”

“네.”

“저런 말을 가사에 넣으면 노래가 산다. 그래서 의견이든 감정이든 기탄없이 표현하는 건 아티스트에게 아주 중요해. 순간순간 떠오르는 말 중에 재미있는 게 나오고, 그런 걸 반영하면 노래가 풍부해지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말고 그냥 다 해. 최대한 받아줄 테니까.”

“네.”

“너희들끼리도 더 많이 소통하고 얘기 많이 하길 바란다. 어쨌든 예린이 과제가 제일 힘들겠네.”


정완의 시선이 서희 쪽으로 돌아가며 저도 모르게 미소가 어렸다.


“여우비는?”

“저번에 PD님이 <소년점프>(마미손) 얘기했는데 이번에 그거 할까 생각했어요.”

“연말에 관객들 모셔놓고 ‘닝기리, 사자, 멍퀴, 벼슬, 악당들아 기다려라’ 이러자고?”

“큭!”


정완이 원곡의 배기성처럼 목소리를 긁어서 심사위원들의 별명을 붙여 노래하자 팀원들이 폭소했다.

<C-POP Artist> 시청자게시판에서 지노는 수휘가 말했던 ‘멍청한 퀴즈왕’을 줄여 ‘멍퀴’라고 불리고 있고, 수휘는 예전부터 시청자들로부터 ‘싱어송라이터가 벼슬이냐’는 말을 꾸준히 들어 왔다.

서희가 말했다.


“원곡이랑 글자 수도 맞고 딱인데요?”

“관객들은 뒤집어지겠지만 선생님들은 기함하시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난 이번엔 은별이가 돋보일 무대가 나왔으면 좋겠어. 최근에 포커스가 서희 쪽에 집중됐고, 은별이 위주로 갔던 경연에서 평가가 조금 떨어졌으니까.”

“네.”

“너희들은 내일 카페 공연할 때 방송에 나온 노래 다 부르고 영상 찍어 와. 그거 보고 다시 얘기하자.”

“알았어요.”


서희와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완은 생각에 잠겼다가 미란을 보았다.


“미란이는 먼저 묻자.”

“네.”

“그간 지적받았던 문제가 음정 실수였지?”

“네. 중음 쪽, 주로 클라이맥스 전에서요.”

“그것도 대부분 플랫이 아니라 샵으로 났던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로 기성곡은 아니었는데 자작곡이었지?”

“네.”

“넌 모레까지 겨울이나 연말연시 관련된 콘셉트로 가사 쓸 만한 얘기 적어 와. 내가 곡 쓸 테니까.”

“네?”


미란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놀랐다.

정완은 <망한 하루>를 제외하고 최근 발표한 노래를 모두 음원 순위 꼭대기에 올려놓은 작곡가다. 그런 사람이 비경연 무대에 내놓기 위해 곡을 주겠다고 먼저 말했다.


“미란아. 냉정한 얘기 좀 해도 될까?”

“네. 말씀해주세요.”

“네 노래 들어봤는데, 내가 보기에 네 문제는 가창력이 아니었어.”

“아니라면···.”

“넌 지금까지 자작곡 세 개를 불렀지만 그 중에 <검은 하늘> 빼고 네 노래는 없었다. 애초에 너는 싱어송라이터로 나오면 안 되는 거였어. 네가 4라운드에서 주저앉은 이유는 그거 딱 하나야.”


미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보컬리스트의 경쟁에 부담을 느꼈던 그녀는 어떻게든 예선을 통과하자는 마음에 작사를 공부하여 싱어송라이터로 참가했고 <검은 하늘>을 받고 연습에 매진하여 칭찬을 받으며 본선에 올랐다.

하지만 두 라운드마다 자작곡을 부르는 일은 큰 부담이었고, 본선을 치르는 과정은 그녀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는 여우비 프로듀싱할 때 자작곡 쓰면 서희 은별이랑 수십 번을 부르고 고쳤어. 문예에서는 퇴고라고 하지.”

“네.”

“네 자작곡에는 그 과정이 없었다. 여기저기 곡 구하러 다니고, 들어보니까 좋아서 받았는데 네가 쓴 가사의 분위기랑 딱 맞지가 않아. 그러면 곡을 고쳐야 하는데 그건 안 되고, 가사를 고치자니 좋은 내용이 안 떠오르고, 시간이 촉박하니까 작곡가가 써준 악보에 네 가사랑 노래의 분위기를 다 못 맞춘 채로 불러. 너는 분위기상 반사적으로 ‘솔’을 치려는데 악보엔 ‘파’라고 되어 있으니 음정이 애매하게 나오고, 그러다가 지적 듣고, 난 왜 이 좋은 노래를 이렇게밖에 못 부르는 거지, 이렇게 돼.”

“하아.”


미란의 머릿속에 <C-POP Artist season 5> 참가 후 있었던 일들이 주르륵 지나갔다.

눈물이 고였기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작사가와 작곡가가 같은 저작권자인 건 곡에 맞게 가사를 수정할 수도 있고 가사에 맞게 곡을 수정할 수도 있어서다. 그리고 둘의 의견이 다를 때 조율하라고 있는 사람이 프로듀서야. 넌 나랑 얘기 많이 해야 돼.”

“네.”

“너는 음색이랑 창법에 개성이 강해서 그 퇴고가 정말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그 개성을 받아줄 작곡가를 물색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정완은 혼잣말처럼 이야기하다 다시 미란에게 말했다.


“곡은 네 이야기 보고 구상할 거다. 그러니까 글자 수니 뭐니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쓰고 싶은 얘기 그냥 아무렇게나 써 와.”

“네. 알겠습니다. 써 올게요.”

“그리고 이수영이랑 양파, 무슨 노래든 괜찮으니까 각각 한 곡씩 부를 수 있게 준비해 오고.”

“네.”


도진은 눈을 빛내며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넌 제일 간단하다.”

“뭡니까?”

“기타 버려.”

“예?”


도진이 놀라자 정완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기타 배우고 싶다고?”

“예.”

“난 예고 피아노과 출신이라 피아노는 좀 쳤지만 기타는 외국 기타리스트 흉내 내면서 내 멋대로 쳤어. 너처럼 어렸을 때부터 레슨을 받으면서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주법이나 이런 게 엉망이야. 그나마 대학을 실음과로 가서 이 정도지.”

“블루스 리듬에서 그루브한 연주로는 당대 신에서 최고였잖습니까.”

“누가 그래?”

“제 귀가 그랬습니다.”

“푸후후. 나 이제 인디 아닌가보네.”


정완은 특유의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고 말했다.


“그 자존심 최대한 지켜. 인디 신에 오래 있고 싶으면 자존심 버리지 마라.”

“예.”

“네 귀엔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귀에 내 기타는 비슷한 흉내일 뿐이었어. 그래도 원한다면 알려줄 수야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정완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PD란 놈이 기타 잘 치면서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보고 기타를 버리라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뭡니까?”

“네 경연 영상 봤더니 정수리가 보이더라. 난 그때마다 저 친구 어디서 틀리는 거 아닌가 했어. 기타 안 본다고 틀릴 실력은 아닌데 버릇인가?”

“예.”

“넌 기타의 기본기는 나보다 위이고, 보컬은 음색도 좋고 안정적이다. 근데 둘이 한꺼번에 나오니까 시너지 효과가 떨어졌다. 보컬 지적받은 것도 기타 때문이야. 넌 기타만 버려도 애매하다는 평가는 안 받을 거다.”

“···.”

“너는 솔로 앨범도 냈지만 무대에는 밴드 기타리스트로만 섰지. 밴드 영상 보니까 정수리는 안 보이던데, 대신 네가 노래하는 파트에서는 꼭 베이스나 세컨 기타 옆에 붙더만.”

“아.”

“너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불안하니까 그런 것 같았는데 밴드 때야 그런 식으로 해소가 됐겠지. 근데 씨팝에선 그게 안 되니까 자꾸 기타를 본 거야. 밴드의 일원으로 무대에 서는 거랑 솔로로 서는 건 느끼는 압력 자체가 달랐을 테니까.”


도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십 년 버릇을 단기간에 억지로 고친다고 금세 좋아지진 않을 거다. 그래서 이번 무대에서는 악기 없이 노래만 했으면 해. 마지막이니까.”

“저는 그게 더 불안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기타 없이 노래만 한 적이 없어서요.”

“노래방에서도 기타 연주하면서 노래했나?”

“···.”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노래를 버리고 기타만 할 수는 없어. 장담하는데 넌 기타 버리는 순간 완벽한 보컬리스트가 된다.”


도진은 생각에 잠겨들어 있었다.


“나도 오백 명 객석의 무대에 선 건 한 번뿐이다. 인디뮤지션에게 이건 다시없을 기회야.”

“그런 데서 MR로 불러가지고는 제가 만족 못할 것 같습니다.”

“MR은 나도 싫어. 밴드 세워줄 수 있다. 부를 만한 노래는 많지만 곡도 써 줄 수 있고.”

“앗!”


팀원들은 정완의 계획을 들으며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도진과 미란은 4라운드에서 탈락했기에 송년 특집이 마지막 무대다. 정완은 이 두 사람에게 집중하려는 것이다.


“일단 과제 알려주마. 목요일까지 연습해 와.”

“예.”

“너 혹시 슈퍼키드(Super Kidd) 선배님들 좋아하냐?”

“<어쩌라고>는 압니다.”

“그건 욕이 많이 나와서 좀 그렇고, <Blondie>란 노래 있어. 드라마 OST인데 너도 분위기 좀 바꿔봐.”

“예. 연습하겠습니다.”

“난 송년 무대에서 네가 그렇게 좀 펑키한 노래 아니면 아예 하드록 쪽을 불렀으면 좋겠다. 자작곡 만들고 싶은데 어려우면 나랑 같이 하든가, 기성곡을 하겠다면 부활이나 넥스트 노래가 괜찮을 것 같다. 뭐 부를지 천천히 생각해. 하루 종일 골 싸매고 있지 말고 공연 열심히 하다 틈날 때 생각해.”

“예.”


정완은 도진과의 이야기까지 마치고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우비나 하트헤르, 예린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너희한테는 무대가 또 있다. 물론 모의고사 잘 봐야 수능시험도 잘 보겠지. 근데 도진이랑 미란이는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네.”

“마지막 무대는 빈틈없고 화려해야 한다. 두 번 다시 못 설 무대니까 후회가 남으면 안 돼. 그래서 이번에는 두 사람한테 조금 더 신경 쓰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네!”

“하나 더.”


정완은 일부러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연말 특집 때는 항상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쳤지. 이번엔 씨팝 제작진에서 아예 회사별로 한 팀씩 준비시켜 달라고 했다.”

“아!”

“네!”

“푸후후. 이거 봐라. 내 이럴 줄 알았다.”


갑자기 초롱초롱해진 팀원들의 눈빛의 의미는 같았다. 어떻게든 프로듀서의 눈에 들어 한 번 더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이다.

정완은 그것을 보고 손을 내저었다.


“이 무대에서는 팀을 합치든 찢든 맘대로 하라더라. 그래서 내가 그 말 듣자마자 확정했어.”

“예?”

“우리 서희나 은별이는 알겠지만 난 이런 부분에 길게 고민 안 해. 그때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거 하고 말지.”


다른 팀원들은 다소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는데, 유독 서희만 제 이름 앞에 붙은 ‘우리’를 알아듣고 배시시 웃었다.

유찬이 물었다.


“어느 팀으로 정하셨습니까?”

“전부 다.”

“예?”

“난 앙코르 무대 끝나면 다른 회사에서는 누가 올라왔는지도 기억 안 나게 하고 싶다. 그러려면 다 올라가서 모두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수밖에.”


정완은 팀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너희들이 함께 부르면 멋있을 만한 노래 있으니까 그거 불러. 뒤에 밴드 세워줄 테니까.”

“뭔데요?”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다. 영화 <국가대표>에 나온 노래 알지?”

“앗!”

“다른 회사에 곡 뺏길까봐 바로 말한 거야. 남자 파트는 1절 도진이, 2절은 유찬이가 하고, 여자 파트랑 화음은 차차 정하자. 가장 높은 부분은 은별이가 해야겠지.”


팀원들은 제목을 듣자마자 소름이 좍 돋았다. 이 노래는 그런 노래였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소름 돋는 노래를 팀원 모두가 한 무대에서 부른다. 미란은 이 생각만으로도 기뻤다.


“너희 일곱 명 구성을 봐. 그 노래라면 다른 어느 회사보다도 너희가 잘할 수밖에 없어.”

“네.”

“어떤 프로듀서도 예측불허의 무대에 자기 아티스트를 올려 보내지 않는다. 고로 태클은 사양한다. 그리고 이건 많이 연습할 필요도 없다. 난 너희가 당장 이 노래를 불러도 무대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고 보니까. 어때?”

“좋아요!”

“오케이.”


정완은 조금 전 제가 했던 말을 수첩에 정리한 후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하트헤르는 트레이닝 20분 일찍 끝날 거야. 그 시간에 나랑 미팅한다. 다른 팀은 나랑 미팅부터 하고 트레이닝 시작하고. 이건 정기 미팅이고,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아무 때나 와서 해.”

“네!”

“나는 여기까지. 너희들끼리 쉬면서 얘기하다가 고기 먹으러 가. 맛있게들 먹어.”

“PD님은 같이 안 가세요?”

“난 또 할 일이 있고, 아티스트 자리에 PD가 끼면 잔소리밖에 안 나와.”

“네.”


서희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그려졌다.


정완은 <C-POP Artist season 5> 팀원들의 공연 기획뿐 아니라 큐걸즈의 싱글앨범 프로듀싱과 빈조(Vinzo)의 정규앨범 수록곡 최종 검토 및 콘서트 레퍼토리 편곡 등을 맡았다.

또한 그는 뮤지컬부에서 기획 중인 창작 뮤지컬의 넘버 관련 회의에도 참여하여 편곡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는 어제 오전에 계약하자마자 업무를 시작했고 팀원들의 경연 영상을 보며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앉은 자리에서 여섯 시간을 보냈다.

입사하자마자 무슨 일이 이렇게 많냐는 서희의 말에 그는 ‘그나마 여기가 분업이 돼 있어서 이 정도지, 조그만 회사 프로듀서는 온갖 잡일 다해.’라고 말했다.


정완은 저녁 늦게 회사를 나와 서희를 만났고 그녀가 골라준 옷을 입으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서희의 집 주변을 거닐다 커피를 마셨고, 현관문 안쪽에서 서로를 안아주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회사가 같아도 일이 다르니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서희는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건 함께 있지 않을 때라는 정완의 말처럼 오히려 마음이 더 깊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 열 번도 볼 수 있는 곳에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다만 자신이 고기를 마음껏 먹을 때 정완은 회사 식당에서 저녁을 후딱 해치우고 또 일에 파묻힐 것이다.

서희는 그게 안타까웠고, 언젠가 제 손으로 고기를 구워 그의 입에 넣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작가의말

화요일 되자마자 하나 올립니다.

몸조심하시며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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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4 21.09.08 69 5 33쪽
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8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8 5 26쪽
51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1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6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5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4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7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8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7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9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5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60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8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7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4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70 7 23쪽
»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6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7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2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9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9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7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7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7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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