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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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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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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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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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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DUMMY

“<C-POP Artist season 5> 4라운드 매치 오디션! 이제 재대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먼저 미션을 정해야겠죠? 재대결 참가자들은 모두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영기의 말에 따라 여우비를 비롯한 재대결 참가자 열 팀이 모두 무대로 올라갔다.

재대결 참가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전대결에서 회사 대표로 나섰던 팀 중 ADHT만 생방송에 직행했고 선우예린과 블루스톰은 여기에 있다. 회사 대표가 조 꼴찌로 탈락한 일은 이전까지 없었는데, 이번 시즌에서 처음으로 솔베이지가 탈락하는 이변이 나왔다.

영기가 참가자들을 에둘러 바라보다 마이크를 들었다.


“시청자 분들도 아셨겠지만 <C-POP Artist>에서 예상과 제일 많이 다른 결과가 나온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거기다 이번에는 지난 시즌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는데요, 마지막 조 경연 끝내고 바로 재대결 미션을 정해야 하는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많이 갈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재대결 미션을 제가 정했습니다.”


무대뿐 아니라 객석에 있던 참가자들의 눈도 모두 동그래졌다.


“조별 경연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참가자들은 특히 이번 재대결에 남다른 각오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영기의 말에 무대의 참가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고, 서희는 생방송 진출자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던 정완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미션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대한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 각 팀마다 동일한 페널티를 두 가지씩 주겠습니다. 미션지를 따로 드리지 않으니 잘 기억하세요.”


영기는 다시 한 번 참가자들을 본 후 말을 이었다.


“먼저 재대결에 나설 사람부터 호명하겠습니다. 팀에서 한 명이니 솔로는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죠. 먼저 파파라차에서는 최혜주 양이고, 하소연에서는 연준식 군, 여우비에서는 강서희 양···.”


솔로가 아닌 다섯 팀에서 노래할 사람이 호명되었다.

여우비뿐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모두 서브보컬들이 나서게 되었다.


“지금 호명된 그룹 팀 참가자들은 전부 같은 미션을 수행합니다. 자신의 성과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솔로 또는 그룹의 기성곡을 부르는 겁니다. 이를테면 파파라차의 혜주 양은 남성 솔로 혹은 남성 그룹의 노래를 불러야겠지요. 혼성팀 노래는 안 됩니다. 다들 아셨나요?”

“예.”

“솔로인 윤도진 군과 선우예린 양, 양미란 양, 설진아 양, 함윤명 군 역시 자기와 반대의 성을 가진 가수의 기성곡을 부릅니다. 다만 이 팀들이 부를 노래는 댄스곡만으로 한정하겠습니다. 춤을 추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여기서는 어떤 팀도 거부권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셨죠?”


영기의 말에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인길이 곧바로 마이크를 들었다.


“와아. 이거 전부터 영기 씨한테 맡길 걸 그랬네요. 생각해 보니까 저 솔로 팀들은 지금까지 댄스곡을 부른 적이 없어요.”

“네. 규칙이 단순하면서도 아주 절묘합니다.”

“저도 가수고 이 프로만 5년째 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않겠습니까.”


영기는 인길과 여원의 말에 간단히 대꾸하고 참가자들을 보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3시 35분입니다. 4시 10분에 재대결 시작하지요.”

“4시 10분에 녹화 재개하겠습니다.”


손봉규 PD의 사인과 함께 녹화가 멈추었다.

은별이 서희의 손을 잡았다.


“하아. 진짜 이렇게 됐네요.”

“···.”

“장보리 주제가나 <눈물>(리아) 부르면 무조건 붙을 텐데. 언니는 남자 노래 안 좋아하잖아요.”

“괜찮아.”

“<이방인>(전람회) 어때요? 그건 언니가 불러도 정말 좋던데.”


한 제작진이 무대 한끝에서 연주자 필요한 참가자 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서희는 짐짓 미소까지 띠며 그쪽을 바라보다 말했다.


“우리 정말 떨어져도 괜찮지?”

“네.”

“뭐 부를지 정했어.”

“뭔데요?”

“객석에서 들어. 준비하러 갈게.”

“네.”


서희는 은별의 손을 꼭 잡아준 후 제작진에게 갔고, 은별은 짧은 한숨을 쉬고 객석으로 올라갔다.





4시 10분. 손봉규 PD의 사인과 함께 재대결이 시작되었다.


“재대결에 나설 열 사람이 지금 무대 위에 있습니다. 이들은 아까 제가 정한 범위에 해당하는 한 곡을 부르고, 심사위원들께서는 이 중 네 팀을 합격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사전대결에서 우승한 KP의 하인길 심사위원이 한 팀을 지목합니다. 매치 오디션에서 조 1위를 한 팀들과 합하여 이렇게 열 팀이 1월에 있을 생방송 무대에 나서겠습니다.”


영기의 설명에 스튜디오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순서는 이 자리에서 정하죠. 누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영기의 말에 나란히 서 있던 서희와 미란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맞춘 후 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리고 미란의 등을 쓸어주었다.


“같은 회사의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는데 강서희 양이 바로 내렸어요. 양미란 양이 먼저 하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저쪽으로 자리하시죠.”


재대결의 첫 순서로 나선 미란은 인피니트의 노래 <Destiny>를 불렀고, 뒤이어 나선 블루스톰의 서브보컬 심민철은 인디뮤지션 프롬(Fromm)의 <달의 뒤편으로 와요>를 불렀다.

서희는 세 번째 순서로 나섰다.


“서희 양. 제일 먼저 하려고 했는데 순서가 밀렸어요.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재대결 노래 선정은 어렵지 않았나요?”

“미션 듣자마자 떠오른 노래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세요.”

“감사합니다.”


서희는 인길과 대화를 마친 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마지막일까?

안 할 수만 있었음 안 했을 거야.

은별이를 위해서라도 노래해야겠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

그 사람은 들을 테니까.

언젠가 분명히 들을 테니까.


내가 못해서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만나서 얘기할 수는 있을까?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 만나면 어떡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네.

그래도 가고 싶어. 붙든 떨어지든 갈 거야.

꼭 찾아낼 거야. 이 노래처럼.


그 사람은 들을 거야.

언젠가 내가 꼭 들려줄 거니까···.


은별은 꽤 오랫동안 감정을 잡는 서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별 씨.”

“네.”

“서희 누나가 무슨 노래할까요?”

“···.”

“누나가 은별 씨한테도 얘기 안했어요?”


은별의 옆에는 3조 1위로 생방송에 직행한 KP의 EDM 작곡가 전민재가 앉아 있었다.

은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뿐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서희의 선곡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서희는 굳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다 뒤를 돌았다.

자신에게 예쁘다고, 언니가 부르는 노래를 연주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수줍게 말했던 음대생, 이하은 연주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은이 메이저 코드를 동시에 쳤다.


“넌 언제나.”


노래의 제목인 인트로를 듣자마자 여원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 것은 선곡이 매우 적합해서일 테고, 서희의 고음을 들은 지노의 눈이 커진 것은 서희의 가창력이 지금 이 순간 한 단계 올라섰기 때문이리라.

피아노 반주의 전주가 나오자 서희는 다시 한 번 목을 가다듬었다.





<넌 언제나> 원곡 : 모노(MONO)


하루하루 늘어갈 뿐이야. 널 향한 그리움은

아픔은 늘 새롭지만 넌 너의 길을 가네.

원한다면 기다릴 수 있어. 난 그대로인 거야.

떠난 건 너 혼자였으니 그대로 돌아오면 돼.


내 잘못을 탓하는 것이라면

돌아온 후에도 늦지 않아

아직 시간이 있는데.


네가 떠난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을 거야.

더 이상 거짓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진 않아.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어. 다시 널 찾을 거야.

이제야 너를 위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


(간주)


원한다면 기다릴 수 있어. 난 그대로인 거야.

떠난 건 너 혼자였으니 그대로 돌아오면 돼.


내 잘못을 탓하는 것이라면

돌아온 후에도 늦지 않아

아직 시간이 있는데.


네가 떠난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을 거야.

더 이상 거짓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진 않아.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어. 다시 널 찾을 거야.

이제야 너를 위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





“하아.”


은별은 1절이 끝나고 간주가 나오자 가벼운 한숨과 함께 긴장을 풀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해의 가요를 찾아보다 <넌 언제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서희와 이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고, 정완의 입에서 이 노래가 언급된 적도 없었다.

그 말은 서희 스스로 이 노래를 알아내었다는 뜻이다.


“누나 실력이 아까랑 달라요. 저 무대에서 분명히 성장한 것 같습니다. 누나 노래인 것처럼 들려요.”

“지금은 저 노래가 언니 노래 맞아요.”

“예?”


은별은 서희를 향한 환한 미소로 민재의 반문에 답했다.

원곡 가사의 단 한 글자도 바꿀 필요가 없는 선곡과 연습한 성과 이상을 토해낸 가창력, 지금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된 감성까지.

은별의 말대로 이 곡은 지금 서희의 노래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언니보다 훨씬 못했을 거예요.”

“설마···.”

“지금이 아니거나 다른 노래라면 몰라도 지금 저 노래는 그래요. 지금 언니는 여러 가지가 완벽해요.”

“여러 가지요?”


은별은 민재의 질문에 또 침묵했고, 잠시 후 서희의 노래가 끝났다.

여원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서희가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마이크를 잡았다.


“아! 서희 양, 정말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서희는 객석을 향해 천천히 인사한 후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설핏 물기가 고였다가 사라졌다.


‘넌 이미 무기가 많아. 그리고 강해. 네가 아직 다 모를 뿐이지.’


서희는 정완이 말했던 무기를 알아냈고 그가 없는 무대에서 썼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또다시 가슴이 싸해져 있었다.

반면 여원은 다른 심사위원들을 보며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서희 양을 캐스팅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다들 아셨죠?”

“예.”

“여우비에서 서희 양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은별 양보다 못했어요. 첫 경연 때부터 가창력 차이가 있었고, 저희 회사에 와서 서희 양이 연습 많이 했지만 은별 양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 무대만큼은 그게 아니었어요. ···아. 내가 감정이 제어가 안 되네. 죄송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지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변죽을 울렸다.


“제 예상을 아주 훌쩍 넘어섰어요. 팀의 메인보컬이나 솔로 보컬리스트도 가능할 정도까지 느껴졌으니까요. 저는 더 말 못하겠어요.”

“감사합니다.”

“담여원 심사위원이 못한 이야기를 제가 해야겠네요.”


지노가 뜻 모를 미소로 고개를 저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부르죠···.”

“와아!”


지노 특유의 멘트에 객석에서 함성이 나왔다.


“서희 양이 전주 나오기 전에 ‘넌 언제나’를 부를 때 이미 끝났어요. 이 노래는 기술적인 면에서 지적할 게 없겠다···. 저렇게 가성도 아닌 진성으로, 밀어 올리지 않고 때려서 고음을 크지 않게 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근데 듣다 보니 더 신기했던 게, 아까 <여우비>보다 방금 부른 <넌 언제나>가 더 서희 양 노래 같았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아까 서희 양한테 가사가 완전히 자기 이야기여야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세 시간 만에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부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여우비>보다 이 노래의 가사가 서희 양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는 결론이 나오죠. 아까 지적의 원인이 컨디션이었다면 지금 노래도 힘없이 들려야 하는데 아니었고요.”

“예. 제가 잘못 봤습니다.”


수휘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자 지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마무리했다.


“시청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넌 언제나> 아주 명곡이니까 원곡도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서희 양,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인길이었다.


“결승전에서 저렇게 불렀으면 저는 아마 95점 이상 줬을 겁니다.”

“와아!”

“지노 심사위원도 말했지만 <넌 언제나>는 리메이크 곡도 많이 나왔고 전부 좋습니다. 서희 양은 그것까지 다 듣고 싶게 만들었어요. 다른 할 얘기 없습니다.”


수휘의 심사 역시 길지 않았다.


“서희 양은 확실히 싱어송라이터 맞아요.”

“감사합니다.”

“이 노래를 듣다보니 <비 오는 아침>이나 <나의 아리랑>, 물론 아주 잘 불렀지만 배우가 연기하듯이 노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희 양의 과거 이야기나 상상 속 이야기여서겠죠. 그런데 <그대에게 옮은 감기>는 그냥 현재의 이야기였어요. <넌 언제나>도 그렇고···.”


수휘의 말에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에게 옮은 감기>를 이번 경연에서 불렀다면 조 1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건 그만큼 자작곡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을 텐데, 서희 양은 그거 말고도 기성곡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불러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서희 양에게 좋은 일들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밝은 노래도 듣고 싶다는 뜻이에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서희가 인사하자 영기가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자! 지금까지 여우비 강서희 양의 무대였습니다. 다음은 누가 하시겠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하소연의 연준식 군, 자리하시죠.”


연준식이 앞으로 나서자 서희는 무대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준식이 <미스코리아>(이효리)를 시작하고서야 서희는 객석의 은별을 보았다. 은별은 그때까지 그녀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았지?’

‘네, 언니. 정말 잘했어요.’


서희는 한참 고개를 끄덕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혔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남은 건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난 여기까지야. 끝장을 봤으니 이제 가야겠어.

언제 가지? 오늘? 내일?

아니야.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갈 수 있잖아.

그러려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만한 사람부터 찾아야 하고···.


서희는 조금 전까지의 고민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희망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이 경연이 끝난 후 생각하기로 단단히 결심하여 억지로 미뤄둔 고민이었다.


사내 뮤지컬 배우 중에 그분을 아는 분이 있다고 했어. 큰형님이나 다름없는 분의 아내라고.

근데 배우들 거의 다 만났지만 하정완이나 정한울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어.

아리 말로는 회사를 옮기거나 뮤지컬을 그만둔 분들도 있다고 했지. 그 사람들 중에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정한울 씨 연락처 알아놓을 걸 그랬어···. 아!


서희가 한울을 본 건 <망한 하루>의 피처링 때문에 한울이 인디펜던트 학원을 방문했을 때였고, 당시 정완은 그를 막내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전, 정완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가슴을 파고들었던 순간 그는 막내 형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희의 눈이 빛났다.


‘은평구 쪽에서 스마트폰 사설수리 매장 한다고 했어!’


서희는 정완과의 여러 대화를 떠올리며 정보를 엮어냈다.


‘막내 형님이 오전에 일이 있어서 매장 봐주러 간다고 했지. 은하수 폰은 구형밖에 못해봤어도 사과나 좁쌀은 개잘한다고···. 개잘한다고 할 때 되게 웃겼는데.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해서.’


서울 전체도 아니고 은평구 정도라면 하루 이틀쯤이면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완이 쓰던 스마트폰이 기억났다. 제품을 눈여겨봤다가 검색해본 결과 3년 전 출시된 중국산 기기였다.

그 후 서희는 낡고 액정이 깨져있던 그의 스마트폰을 볼 때마다 새것으로 바꿔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매장은 구도심보다는 유입 인구가 많은 곳에 있어야지 않을까? 은평구면 뉴타운? 구파발 쪽부터 찾아봐야겠어.’


서희는 당장이라도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이 대기실에 있는 게 아쉬웠다.





재대결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최종 결과를 종합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는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서희와 은별은 뮤컬트 팀원 대기실에서 만났다.


“언니 고생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응.”


은별은 담담하게 대답하는 서희를 보며 그녀가 조금 전 무대에서 뭔가를 느꼈다고 생각했다.


“언니 지금 좋아 보여요.”

“그래?”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이제 언니 하고 싶은 거 해요.”

“응.”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다 화제를 바꾸었다.


“끝나고 바로 들어가?”

“네?”

“같이 밥 먹을까? 내가 숙소까지 태워다줄게.”

“···.”

“왜?”


은별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그게, 저 이따 약속이 있을 것 같아서.”

“무슨 약속?”

“민재 씨가 녹화 끝나고 저녁 먹자고 했는데···.”

“민재 씨?”

“아직 답은 안 했어요.”


서희가 고개를 갸우뚱하다 눈이 커졌다.


“KP 전민재?”

“네.”

“전민재 너보다 어리지 않아? 내가 알기로 지금 애들 중에 93년생은 없고 너보다 오빠인 애는 솔베이지 성윤이밖에 없는데.”

“한 살 어린데, 그 사람이 처음부터 저한테 은별 씨라고 불러서 저도···.”

“그럼 너도 걔한테 존댓말 쓰는 거야?”

“처음엔 저보다 위인 줄 알았어요. 하는 행동이 좀 그래서···. 오늘 알았는데 이제 와서 누나라고 부르라기도 그렇고.”

“헐.”


서희는 오늘 처음으로 ‘헐’을 말하다 눈을 빛냈다.


“걔가 처음부터 작심하고 접근했네. 사전대결 때도 경연 중에 네 옆에 슬금슬금 오더니. 그래서 아까 나 재대결할 때 나란히 앉았던 거였어?”

“···.”

“걔 속으로 나 엄청 씹었겠는데?”

“아니에요.”

“내가 네 옆에 계속 붙어있으니까 너한테 밥 먹자고 말도 못했을 거 아니야.”

“···.”

“밥 먹어.”


은별이 서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맨날 나랑 있는 것보다는 분위기 바꾸고 좋은 사람한테 존중받으면서 시간 보내는 것도 좋지.”

“···.”

“즐거운 시간 보내.”

“언니는 뭐하려고요?”

“이제 생각해 봐야지. 근데···.”

“네.”


서희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제작진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참가자들 지금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예!”


서희는 입을 닫고 은별의 어깨를 두드린 후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은별은 서희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언니 때문에 억지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괜찮은가 궁금해진 것뿐이지.”


만약 은별이 민재와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면 서희에게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서희도 알 테니까 은별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재대결했던 열 팀이 모두 무대에 서자 녹화가 재개되었다.

영기가 말했다.


“자. 심사위원들께서 생방송에 진출할 합격자를 모두 결정했습니다. 하인길 심사위원님. 발표해 주시죠.”

“예. 발표하겠습니다.”


인길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곧바로 4라운드 합격자를 발표했다.


“재대결 결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 합격자는, 여우비, 함윤명, 선우예린, 그리고 블루스톰입니다.”

“와아!”

“그리고 사전대결 1위였던 저희 KP에서 합격자로 추가 지명하는 팀은 하소연입니다. 축하합니다.”

“와아아아!”

“합격한 팀 축하합니다. 재대결한 열 팀 모두 대기실에 자리해 주십시오.”


객석의 참가자들이 연신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서희와 은별은 뮤컬트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하트헤르를 제외한 네 팀이 여기에 있었고 운명은 정확히 두 팀씩 갈라놓았다.


“미란아. 고생 많았어.”

“흑!”

“안타깝다. 진짜 잘했는데···.”


미란이 녹화가 멈추자마자 눈물을 쏟았기에 서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생했어.”

“고마워요, 누나. 제 실력이 여기까지인 거죠. 이것도 넘쳐요.”


은별의 말에 답하는 도진은 미란과 다르게 아주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누나 오늘 민재랑 저녁 먹어요?”

“어?”


생각해 보니 민재와 도진은 이따금 반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거기서 알아차렸다면 민재에게 반말을 쓸 수 있었을까. 은별은 아마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응. 그러려고.”

“그 녀석이 부럽네요. 생방송 간 것도, 누나랑 밥 먹는 것도···.”


도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생방송에 가고 민재가 못 갔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싶었다.


“그놈이랑 알고 지낸 게 오 년쯤 됐는데, 그놈 좋은 놈입니다.”

“···.”

“갈게요.”


도진은 은별 옆에 선 서희에게 인사한 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서희가 비싯비싯 웃으며 말했다.


“애기들이 아주 귀엽게 노네.”

“···.”

“쟤까지 생방송 갔으면 셋이서 밥 먹었으려나?”


은별은 고개를 저었다.


“도진이는 안 돼요.”

“왜? 쟤 착하고 괜찮던데.”

“쟤는 저랑 잘돼봤자 우리 엄마한테 주스 맞을 거예요.”


서희는 커진 눈으로 기운 빠진 표정의 은별을 쳐다보았다.





4라운드 녹화가 모두 끝난 후 참가자들은 다시 회사별 대기실로 내려왔다.

여원이 아까보다 펴진 얼굴로 대기실 가운데에 앉았다.


“다들 고생했어.”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여원은 팀원들을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번 시즌의 3라운드까지 일곱 팀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다섯 팀은 모두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들은 각자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생방송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 시즌처럼 확실하게 가늠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만을 생방송에 보냈던 지난 시즌에 비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기에 그녀는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탈락한 팀원들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다.


“도진이랑 미란이한테 미안하다. 내가 더 많이 체크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아닙니다.”

“다른 팀들은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생방송에 진출한 하트헤르와 선우예린, 여우비 역시 이 자리에서는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열흘간 휴가야. 그 전까지는 되도록이면 회사 오지 말고 음악 생각하지 마. 특별한 일정 없음 집에 가서 부모님 뵙고 와.”

“예.”

“12월 11일에 출근하면 되는데 그날은 트레이닝 없어. 오후 4시까지 나와서 송년특집 상의하고 고기나 먹자. 알았지?”

“네.”

“회사로 갈 사람들은 주차장으로 오고, 다른 애들은 여기서 헤어지자.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여원이 나가자 서희가 다른 팀원들에게 인사했다.


“다들 고생했어. 난 여기서 따로 갈게.”

“언니 뭐하게요?”

“집에 들렀다 대전 가려고.”

“서울엔 언제 와요?”

“글쎄···.”


은별의 말에 서희는 멀뚱히 대답하면서 자기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늦어도 수요일 점심때는 와 있을 거야. <베아트리체> 공연 준비해야지.”

“알겠어요.”

“넌 내일부터 뭐하게?”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려고요.”

“응.”


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기실을 나섰는데 바로 앞에 민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아까는 정말 멋···.”

“나한테도 한 번 서희 씨라고 해보지? 어떻게 되나.”

“···.”


민재의 말을 자르고 무표정한 눈으로 날린 서희의 말에 민재는 말을 못했고 뮤컬트 팀원들은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얘랑 정말 맛있는 거 먹어. 어?”

“예.”

“갈게. 휴가 잘들 보내!”

“네, 언니.”


서희는 은별과 팀원들을 뒤로 하고 자가용에 탑승하여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은 후 대전의 본가에 가기로 했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님부터 뵈어야 한다.


6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다.

서희는 어머니에게 10시쯤 집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문자를 보낸 후 입을 꾹 다물고 차를 출발했다.


작가의말

이 연재분이 2권의 마지막입니다.

미리 공지했듯이 일주일간 휴재하고자 합니다.

다음 권부터는 분위기가 많이 바뀝니다. 그래서 검토해야 할 게 많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6월 25일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다들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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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Audition) 2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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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4 21.09.08 68 5 33쪽
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7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8 5 26쪽
51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0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5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4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3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9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6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7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6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4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3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59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7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6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3 8 26쪽
35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69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6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1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8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8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6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6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6 10 29쪽
»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5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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