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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55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21 16:22
조회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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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보이지 않는 한 가지

DUMMY

마을 사람들은 친절했다. 나의 목에 현상금이 걸려있다는걸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나를 반겼고, 대가도 없이 만찬과 잠자리를 내주었다.

친절한 촌장님의 말씀은 잠을 자는 와중에도 잊혀지질 않았다.


『이런 외딴 마을에 나그네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요즘 같은 세상일지라도 역시 착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덕분에 나는 내일도 용기를 쥐어짜낼 수 있을 것이다.

배도 부르고, 침대는 푹신하고, 이불은 따듯하다.

잠을 자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시기이다.

그렇게 여기며 수마의 달콤한 속삭임에 몸을 맡겼다.


-쾅!


얼마나 잤을까.

침대가 흔들리고 창밖에서 폭음이 휘몰아쳤다.

눈을 뜨자, 계단 밑에서 가쁘게 올라오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우리 아빠가··· 우리 아빠가···!"


울먹이고 있다.

어째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추스려라.

이유가 어찌됐건, 방금 들려온 폭음은 마물이 없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날 법한 소리가 아니었다.

위험한 무언가가 이 마을을 습격했다.

창문을 열었다. 몸을 불쑥 내밀어 밖을 둘러봤다.

처음에는 거대한 마수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혹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물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내가 세운 가설은 모두 부정당했다.

아니, 어쩌면 부정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법으로 인간을 학살하는 인간을 나는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건 마물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무기들을 챙겼다. 창과 할버드 녹슨 검을 메고, 검 두 자루와 대거들을 챙겼다.

무기가 많아서 무장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어쩔 수 없다. 나라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전부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내가 강자를 상대로 1초라도 더 길게 발버둥치기 위한 생명선들이다.

질척하게 내려앉는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에서 주렁주렁 열리는 눈물들을 받아내지 못하고 훌쩍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형이 열심히 해볼게. 너는 뒷문으로 나가서 열심히 도망쳐. 칼슨 씨네 목장에 개집이 하나 있지? 그 개집의 입구가 난 방향으로 달려."


그곳에는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또 다른 마을 하나가 있다. 가는 동안 마수와 마주칠 일도 없을 테고, 산적에게 붙잡히지도 않을 거다.

촌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봐두기를 잘했다.

이걸로 한 명은 구할 수 있다.

내가 나가고 40을 센 뒤에 달리라고 지시했다.

남자아이가 알겠다고 대답하기까지 확인한 다음,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나, 나그네 님···"


밖으로 나가자마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엎어져 흙을 손잡이 삼아 힘겹게 도망치고 있었다.

달려서 도망친다는 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듯했다.

피가 솟구치는 절단면을 바라본 나는 심호흡을 시도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하반신이 없었다.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쏟아지는 내장과 피, 그럼에도 살려달라 울부짖는 발악.

그러나 그의 단말마는 신에게 닿지 못하고 기적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후우···"


감정을 죽였다.

이제는 간단했다. 심호흡을 한 번. 그걸로도 안 되면 두 번하면 대다수의 감정들이 침묵했다.

이윽고 세 번째는 생존본능과 살의만을 남겨놓게 한다.

내가 감정에 시달리는 동안, 구해낼 수 있었을지 모르는 누군가가 죽어간다.

사사로운 감정에 시달려서 좋았던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다.

그러니 감정이라는 일부를 불필요하다 느끼게 되는 건 틀리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한손검치고는 무겁지만 녹슨 검의 무게에 익숙해서 문제없이 휘두를 수 있다.


"하나만 묻자. 왜 죽였어?"


마도사단의 제식 군복을 입은 은발의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제대로된 대화가 가능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단지, 줄곧 궁금했을 뿐이다.

저들이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인정받을만한 빼어난 능력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택받을 어여쁜 외모도, 나라를 바꾸고 업적을 이룰 권력도,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게 하는 재산도 없는.

평민들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어떤 존재로서 살아왔던 걸까.

평민치고는 복에 겨운 나날들을 보내왔지만, 죄없는 서민들을 학살하고 미소짓는 저 귀족 새끼한테 감히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루아가 했더라면 사랑스러웠을 그 행동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으응? 그 얼굴은! 재의 귀인 아니십니까!"

"왜 죽였냐고."

"네? 죽이다니요? 당치도 않죠! 처리했을 뿐입니다만?"


재의 귀인. 언제부터 이런 괴팍한 별명으로 불리게 된 거지.

오해인 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저 남자의 목적은 처음부터 나로 정해져있었다.


-짝!


남자는 손뼉을 쳤다. 주의를 모을 생각이었으나,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생명은 나밖에 남지 못했다.

모두, 죽었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채 굴러다니는 촌장의 머리가 남자의 발에 걷어차였다.


"지저분하군요. 아주 역겨워요."


대거를 던졌다.


"와우! 기습!"


그러나 남자의 손에 붙잡혀 어떠한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아! 이런이런! 실례!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바로! 마도사단의! 마도솨!"


남자는 품격있게 허리숙여 인사했다.


"게르트란 에라우 사레이스입니다. 저와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팔과 다리는 반납하고 말이죠."

"좆까."


대거를 날렸다.

막힌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녀석이 막는 동안 한 쪽 손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카페를 운영하던 때,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던 마법사가 해준 마법 이야기를 떠올렸다.

현대 마법에서는 마력이라는 필기구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 원하는 술식을 발동시킨다고 들었다.

내가 가진 마법적 지식이 아직도 현대에 해당한다면 저 녀석의 손을 묶는 것으로 마법 하나를 봉인하는 셈.

검을 휘둘렀다.


"어이쿠."


몸통을 노린 칼날은 공기를 베어내며 빗나갔다.

달리면서 휘두른 검은 나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이 느낌은 이미 익숙하다. 단테에게 달려들고 나자빠지기를 반복하며 습득했다.

검은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왼손으로 쥔 검을 휘둘렀다.

첫 번째 일격이 맞지 않고, 나의 중심을 기울어질 거라고 예상해두었다.

성공했을 때가 아닌 실패했을 때를 생각하는 건 내 많지 않은 특기 중 하나이다.

그래봤자 흔해빠진 특기지만, 미리 다른 검을 뽑아두는 준비성은 누가 뭐래도 완벽하다.

오른 검으로 땅을 짚는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앞꿈치에 힘을 실어 몸을 돌린다. 허리를 뒤틀고, 도약한다.

단 한 번의 회전. 이것이 끝나면 바닥에 꼴사납게 내동댕이 쳐진다.

상관없다.

손에 쥔 검은 두 자루.

한 번일지라도 두 번 베어낼 수 있다.

얕게나마.

희미하게나마.


"리 알라이트···"


사레이스가 허공에 경이로운 속도로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나의 검이 그를 향해 다가가는 속도를, 그가 주문을 읊는 속도가 아득하니 웃돌았다.


"크리셰이트."


마법진이 완성되자, 땅바닥이 불쑥 솟아났다. 날카롭고 뾰족한 흙의 창들이 나를 꿰뚫으려 날아들었다.

나는 마도사를 얕보지 않았다. 1초도 얕잡아보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입을 열고 영창을 시작한 순간부터 멀쩡하게 일격을 먹이리란 생각은 버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입은 늦지 않게 닫혔다.


"첫 번째."


이렇게나 빠르게 사용해야 할 줄은 생각치도 못했다.

하레니아의 가호.

그것은 나의 두 검에 깃들었다.

찰나에 불과했으나, 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이 푸른 불꽃에 휘감겼다.

휘두른다고 생각하며 손목을 미동했다.

주의깊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눈치채지도 못할 미세한 움직임.

그러나 푸른 불꽃은 감지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를 희생한 일격이라고.


-화르륵!


푸른 불꽃이 하늘로, 대지로 뻗어나가 뒤덮었다.

공중을 돌아가는 두 팔에 맞추어 화염의 폭풍을 일으켰다.

어느 것에도 닿지 못한 불꽃들은 금새 사라졌으나, 어느 것이라도 닿는데에 성공한 불꽃은 얼어붙었다.


"윽···!"


땅에 고꾸라지듯 굴러넘어지고 마법으로 생성된 흙창들을 시야의 구석으로 바라보았다.

불에 닿은 흙창은 타오르고, 타오른 끝에 얼어붙고, 바람의 칼날에 난도질당해 산산히 부숴졌다.

대단하지 않은 인간이 극상위 영령의 힘을 휘둘렀다.

그 대가는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한 가지를 잃어버리는 것.


"커헉···!"


뱃속이 뒤틀렸다. 각혈하고, 간신히 일으켰던 몸을 다시 쓰러뜨린다.

검 한 자루를 깊숙이 박아 처박히려던 머리를 지탱했다.

내장이 찢어지는듯한 고통이다.

뜨겁다.

뱃속을 불로 지지고, 마구 비틀어대고 있다.

가위로 잘리고, 바늘로 찌르고, 망치로 짓누르고 있다.


"아아악···!"


배를 움켜쥐고 쏟아지는 피를 폭포처럼 쏟아냈다.


"허억···! 허억···!"


보이지 않는 한 가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장이다.

내장 하나가 사라졌다.

움직일 수가 없다.

일어서지도 못한다.

죽어가고 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레, 니아···! 두, 번째···!"


푸른 불꽃이 검을 휘감았다. 검은 땅에 깊숙히 박혀있었다. 생겨난 불꽃은 땅속으로 들어가며 일대를 뒤덮었다.

꽃잎들이 아른거렸다.


"어이! 쿠! 위험! 하잖아요!"


죽음이란 대가를 치렀음에도 푸른 불꽃은 사레이스의 발끝에도 닿질 못했다.

어금니를 강하게 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죽는다.

기왕 한다면 확실하게.

아픈 꼴은 겪을대로 겪었다.

내장이 사라지는 것보다, 신체의 일부를 잃고, 영혼에 상처입는게 덜 아프다.


"세, 버···"


-푹!


날아든 얼음조각이 목을 꿰뚫었다.


"그만! 하세요! 추하! 니까요!"


장난스럽게 히죽거리는 사레이스를 노려보며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얼음조각은 두껍지 않았다. 길지도 않았다.

목젖을 뚫린 고통은 형용할 수 없으나, 산 채로 내장이 떨어져나간 지금 보다 아픈 고통을 찾기는 힘들었다.

날카로운 얼음조각이 손바닥을 베어냈다.

떨어지는 선혈이 땅을 차지한 푸른 불꽃에 의해 타들어갔다.


'아아, 너무 늦었나···'


팔이 얼어붙었다. 바람의 칼날이 수없이 분열하여 얼어붙은 팔을 눈송이보다 작게 깎아냈다.

두 번째 댓가. 나 자신의 일부가 산산히 조각나는 것.

이어서 땅바닥을 사로잡은 푸른 불꽃이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대지를 따라 불어온 바람이 퍼져나가고, 칼날이 되어 부숴뜨렸다.

장판 위에서 불타가던 나는 새까맣게 되어버렸다가 얼어붙은 새싹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이럴! 수가! 재의! 귀인!"


사레이스가 억지로 절망에 찬 표정을 연기하며 비웃었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잡으려고 했던 걸까.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잠재우지 못할 증오가 남아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의말

문장 사이에 한 칸을 띄어쓰는 편입니다만, 안 그러는 편이 좋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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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한 가지 +1 20.09.21 95 5 11쪽
31 가호 +1 20.09.20 99 3 13쪽
30 외면했던 과거 20.09.18 128 3 12쪽
29 각성의 탑 +1 20.09.18 101 5 12쪽
28 채점 +1 20.09.16 89 4 12쪽
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26 악역등장 20.09.15 98 2 12쪽
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24 목적 20.09.12 109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4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0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6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4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4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2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4 4 12쪽
5 간병 +1 20.08.07 413 5 11쪽
4 만남 20.08.05 49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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