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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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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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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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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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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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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학살

DUMMY

왕실 마도사단.

기사단에 비하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한 명의 인간이라면 결코 몰라서는 안 될 이름이기도 하다.



인간족은 마법이 발달하지 않았고, 종족 자체가 마법에 특화되어있기는커녕 퇴화되어 있는 탓에 어지간한 인간들은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인간족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마법의 수재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 수재들을 한데 모아 고위의 군직을 부여한 것이 바로 왕실 마도사단.




'그 잘난 사람들이 어째서···'


어째서 범죄조직에게 손을 빌려주고 있는가.



뇌물을 받은 건가. 아니면 마약에 찌들은 건가. 혹은, 이 범죄조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가.



경위가 어찌되었든 간에 만만치 않음을 넘어서서 치명적인 전력이다.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밖으로 빠져나간 다음에 생각하자.



거기서부터 고안해나가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찰박.




바닥에 흩뿌려진 피들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발을 올렸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형체를 잃어버린 시체로부터 검을 빼앗아들었다.



손잡이가 피에 젖어 질척질척했지만 그 외의 감상은 없었다.



내 몸을 지킬 수단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우욱···!"


비위가 약한 몇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신물을 토해냈다.



바닥에는 찢어진 피부와 혈관, 내장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비위가 약하지 않더라도 보통 사람에게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살풍경이다.



직시하고, 직감하기 위해서는 소모되는 정신력이 상당하겠지.



하지만 인간이란 생물이 으레 그렇듯, 자꾸만 보다보면 적응해버리기 마련이다.



잭은 그걸 알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적응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역시 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군."


잭이 히죽거리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평범한 인간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었을 뿐이죠."

"평범이란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건가."


온전히 부정할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입을 다물었고, 침묵을 택했다.




"되도록 자기 몸은 자기가 간수하자고."


잭은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소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흥건한 무기들을 집어들었다.




"소매치기 씨는 안 쓰시는 겁니까?"

"나는 그런거 안 써. 전용이 하나 있거든."


그에게 말을 건 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 어디에도 무기라고 부를만한 쇳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코트 안에 숨겨두기라도 한 걸까.




"대체 어디있다는 겁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학생이 의문을 입에 담았다.



잭은 씨익 웃어보이며 천장을 가리켰다.




"저기 있지."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있었다.



사람들은 '아아, 그래. 이 녀석은 원래 머리가 좀 이상했어.'라는 생각이 엿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납득했다.



잭의 그런 엉뚱한 발상과 행동이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주는데에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의 농담과 허세에 불만이나 짜증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을 보고 특별하다고 하는 거겠지.



약간의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을 되새기며 정비를 마쳤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무기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투준비는 얼추 완료되었다.



무기를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임시방편으로 테이블을 쪼개 만든 방패와 의자 다리 검을 만들어 잡았다.



이제부터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가 자각하고 있는 현실이었기에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죽을 놈은 죽는다는 것도 모두가 깨닫고 있었기에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갇혀있기를 택했다면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짐승처럼 싸워야했을 테고,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탈출했고, 블러드 하운드를 풀었다.



죽는다고 한다면 블러드 하운드에게 물리거나, 블러드 하운드를 물리친 조직원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어느 쪽이 더 낫냐고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자신이라고 확정되지 않은 1명이 확정적으로 살아남기보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불확정적으로 살아남는 것을 택하는 건 당연하다.



1대1로 1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보다 다수 대 다수로 보장없는 전쟁을 치르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홍일점의 행방을 쫓아가자고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생기면 그만큼 자신이 죽을 확률은 줄어든다.



홍일점네의 인원수는 3분의 1에 가깝다.



즉, 죽을 확률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겠지.



단순히 그들이 걱정된다는 상냥함에 나선 누군가도 있기야 하겠지만 의견을 제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버리는 편이 좋을 거야."

"그래도 사람이 한때의 정이 있지 어떻게 그냥 갑니까? 나는 그냥은 못갑니다."


여태껏 조용하던 마법사 팀의 약쟁이가 말했다.



그의 말이 차라리 위선으로 점칠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능은 없었다. 독심술 같은 편리한 재주가 있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겠지.



다만, 이번만큼은 꿰뚫어볼 수 있었다.



약쟁이의 입에는 진심도, 위선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조차도 알아볼 수 있는 반듯한 이기심만이 유일한 구성성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기심이란 존재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파멸로 이끄는 독이다.



그러나, 독은 잘만 쓰면 약이 되기도 한다.



이기심도 그러하다.



한 명의 이기심이 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



다수는 한 명의 이기심에 동조한다.




"맞습니다, 매정하게 버리다니 말도 안 됩니다."

"같은 사료밥 먹고 지낸 사이잖슴까?"

"그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겠지요."


나는 이때. 널브러진 잔해들보다 역겨운 추악함을 눈에 담았다.



담아버리고 말았다.



충격적이었다.



목구멍에서 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를 강하게 얻어맞은듯해서 자칫 쏟아버릴 뻔했다.



동시에 나는 동조되어갔다.



입을 열었고, 잭에게 말을 토해냈다.




"잭,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결정인가. 내키지는 않는다만··· 시계장인, 지금 몇 시지?"

"2시 14분."


쯧.




잭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리고는 즉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어. 블러드 하운드들이 저 녀석들을 모두 먹어치우면 다음은 우리니까. 조직 놈들이 늘어나는 것도 싫고 말이야."


그의 돌발적인 출발은 익숙해진 참이어서 뒤따라붙기까지 걸린 시간은 5초를 넘기지 않았다.



이윽고 모퉁이를 돌았다.




퍽.




그런 소리가 울려퍼졌다.



모퉁이에서 기습한 블러드 하운드를 잭이 때려눕히는 소리였다.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어마무시한 반응속도였다.



발을 들고, 축을 회전시켜서 블러드 하운드의 복부를 강타. 그대로 벽에 꽂아넣는 동작의 속도와 위력까지.



정보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했다.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려면 저정도는 되야하는 건가.



정보상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듯하다.




"마무리는 부탁하지."


잭의 부탁에 나는 검끝을 쓰러진 녀석의 목에 단숨에 쑤셔넣었다.



블러드 하운드는 부르르 몸을 경련하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목적을 위해 생명을 죽인다는 행위가 자연스러웠고, 살을 꿰뚫는 감각이 익숙해져버렸다.



성장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뜻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좋지 않은 쪽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벌어지는 상황들이 방향을 바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어···'


아루아를 구해내기까지 앞으로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한다.



차라리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이건가."


잭이 찢어진 옷의 주머니로부터 열쇠를 주워들었다.



앞에는 창고를 가로막은 철문이 보였다.



문의 잠금장치가 완고했다.



홍일점은 이곳에 도달하지 못했던 건가.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간 거지···?'


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철컹.




딱 들어맞은 열쇠가 견고한 철제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문이 열렸고, 탐욕스런 풍경이 펼쳐졌다.



골드가 가득한 방이었다.



우리들의 싸움을 내기로 삼아 걸린 돈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다.



산처럼 쌓인 골드들을 보자 여러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훔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피해보상이다.



잭도 킥킥 웃으며 골드를 챙겨넣었다.




"다 챙겨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주머니가 작은게 원망스럽군."


동감이었다.



골드를 이런 식으로 손에 쥐는 날이 오다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 돈만 있다면 어머니를 대신 보살펴줄 가정부를 고용하고도 남았다.



집을 사고, 땅을 사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도 보낼 수 있을거다.



실력이 좋은 의사를 불러서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마음도 함께 두둑해지는듯했다.




"챙겼으면 냅다 튀자고."

"여기에는 돈만 있군요."

"그런 것 같군. 홍일점네는 그걸 알고 다른 창고를 찾으러 갔을지도 모르겠는걸."


제각기 탐욕을 충족시킨 사람들이 다시 이성을 찾아갈 때쯤이었다.




터벅.




문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즉시 뒤를 돌아 검을 겨누었다.




"이야, 살벌한걸!"


품안에 목걸이와 반지 같은 것들을 한가득 껴안은 여성이 깔깔 웃고 있었다.



그녀도 잭을 닮아가는 건가.




"홍일점···?"

"무사히 돌아왔어."


그녀가 귀환하자, 다른 사람들이 기뻐했다.




"어서와!"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구!"

"넌 우리들의 영웅이야! 홍일점!"

"수고했어!"


졸렬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탓일까.




"사상자는 몇이지?"


잭이 다가와 물었다.




"둘. 오다가 녀석들에게 들켜서 죽어버렸어."

"무슨 일이 있었지?"

"운이 나쁘게 들켜버렸거든. 그래서 적당한 곳에 문을 막고 숨어있었지. 그런데 누가 타이밍 좋게 블러드 하운드들을 풀었더라고."


예정에는 없었던 쾌거였다.



인원수는 늘었고, 사람들의 소중한 물건도 되찾았다.



잭이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눈치를 챈 홍일점이 나를 보고 윙크했다.



뭐야 저거. 느끼해.




"이 검은 누구거야?"


따라들어온 남자가 심각하게 녹슨 검을 낑낑대며 끌고 왔다.



나는 손을 들었고, 그가 건네준 검을 받아들었다.



오다가 주운 여분의 검집에 넣어봤다.




'헐렁하긴 하지만 들어가긴 했으니 괜찮나···'


빡빡해서 넣기도 뽑기도 힘든 것보다야 이게 낫긴하다.



그리고, 이 검이 있으면 묘하게 진정된다.



보이지 않는 않지만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등을 맡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영을 고치는 편이 좋겠습니다."


마법사의 의견에 리더들이 모여들었다.



합류한 홍일점과 소매치기, 마법사가 한데 모여서 작전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그들의 곁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좋은 보물은 없을지 궁금해하며 골드의 산을 뒤적였다.



누군가는 집문서를 찾기도 했고,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찾기도 했다.



골드만 있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챙길만큼 챙기고 만족한 나에게는 현재 휴식이 더 중요했기에,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았다.



눈을 감고, 리더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지금은 잭이 말하고 있었다.




"그럼 홍일점이 맨 뒤에서 봐주···"


뚝 하고 끊겨버린 대화.



눈을 뜨는 시간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깨졌다.




"숙여!"


그런 소리가 났다.



한순간이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보다도 뜬금없었다.



반응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의 머리를 찍어눌렀고, 나는 앞으로 꼬꾸라져 넘어졌다.




서걱.




이어서 그런 소리가 났다.



깔끔하다고 하면 깔끔한 소리였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깔끔하지 않았다.



끔찍하다.



그것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감정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다.



표정을 짓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목을 잃어버린 시체들만이 순서대로 쓰러졌다.



기울어서 쓰러지고, 주저앉고, 넘어지고.



어떤 것은 심지어 선 채로 죽어있었다.




"두 명···"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인을 찾았다.



목없는 시체들의 건너편.



그곳에는 백발의 여성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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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목적 20.09.12 110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8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3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7 4 14쪽
» 학살 20.09.06 119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9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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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전(連戰) 20.08.28 155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5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6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9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1 7 11쪽
6 이별 20.08.10 29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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