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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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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83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05 03:56
조회
143
추천
2
글자
12쪽

부패

DUMMY

팔을 들어 목과 얼굴을 가렸다.


블러드 하운드와 부딪히자 몸이 기울었다.



'죽는 건가···'


눈을 감았다.



퍽.



얻어맞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어깨를 붙잡히고 질질 끌려갔다.


어리둥절하고 있자, 잭이 말했다.



"어이, 포기하지 말라고. 넌 중요하거든."


블러드 하운드는 있었다. 다만 위치가 달라져있었다.


멀리 날아가서 배를 까고 뒤집어진 상태였다. 죽거나 기절한 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얻어맞은게 아니라는 걸 의식했다.


소리가 하도 커서 내가 맞은 줄로만 알았다.



퍽.


퍽.



이어서 비슷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잭이 철창 안으로 뛰어드는 블러드 하운드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힘들어 죽겄네! 빨리 닫어!"


쾅.



철창들이 흔들리며 문이 닫혔다.


날아간 블러드 하운드들은 잠시 정신을 잃은듯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네 발로 일어섰다.


날아가지 않은 몇 마리가 철창을 씹어먹을 기세로 물어댔다.


그러나, 제아무리 마수라 할지라도 딱딱한 철을 이빨로 끊지는 못했다.


잭은 블러드 하운드의 지능은 낮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철창을 끊지 못한 블러드 하운드들은 이빨을 감추고 위를 향해 달려갔다.


적막이 우리 안에 차올랐다. 질량이 있었다면 질식을 해도 충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이윽고 천장에 닿았다. 그것은 환호와 웃음으로 폭발했다.



"서, 성공이다!"

"와아아아!"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땅에 누워있었다.


일어설 힘과 다시 한 번 똑같은 짓을 할 용기를 충전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잭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그의 무용에 대해 찬사들을 풀어놓았다.



"정말 용감하시더군요!"

"존경합니다!"

"그겁니까? 소매치기들만의 숨겨진 비술!"


어안이 벙벙했다.


잭이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줬다니.


그동안 의심하고 있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라면 분명 나를 버리고 다음 사람을 준비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것보다, 저 사람들. 영웅을 눈에 담은 어린 아이들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확실히 잭은 대단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않았다면 그들처럼 동심 가득한 눈길로 잭을 바라봤겠지.



"잘 돼서 다행이군. 안 그래?"

"에?"


얼떨결에 삑사리를 내버렸다.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목을 긁으며 솟구쳤다.


잭은 넌지시 창피라도 주려는듯 배까지 부여잡고 깔깔 웃어댔다.

이번에는 위화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비웃음.


헛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아하하, 하하, 아, 뭐, 그렇죠. 다행이죠."

"다음도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당체 속내를 알 수 없는데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복잡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잭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재미없는 농담과 괴팍한 웃음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만큼 다른 일들을 잊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재도전할 기백을 되찾았다.



"그럼, 다시 갔다오겠습니다."


발소리를 죽이고 나아갔다.


풀려난 블러드 하운드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음 우리에 도착했다.


이번 녀석들도 문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어서 나의 목을 찢어먹어주겠다고 협박했다.


살벌함이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거리는 조금 더 멀어졌으나, 나에게는 부러진 의자 다리라는 무기가 있다.


게다가 블러드 하운드들을 손쉽게 날려버리는 듬직한 잭도 상시대기 중이다.


망설이지 않고 자물쇠를 풀었다.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캉.



문을 날려버릴 기세로 뚫고 나온 블러드 하운드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


잭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제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방금 같은 상황이 재발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도 대강 생각해두었다.


실행으로 옮기기만 하면 됐다.


고개만을 돌리고, 의자 다리를 휘둘렀다.


몸의 전체를 쓰는 것이 아니라, 팔만을 휘두르는 것이어서 위력은 미약하지만 노림수는 타격이 아니다.


목덜미의 대체품을 물려주는 거다.



콰드득.



의자 다리가 처참히 부숴지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몸을 날렸고, 철창 안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철컹.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내가 손쓸 필요도 없었군."


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웃었다.


거기서부터는 순조로웠다.


요령을 터득한 나는 여분의 의자 다리를 가져왔다.


이렇게 하면 더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겠지.


자그마한 실험이지만 도박은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문을 열지만 않으면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왜 들고 오셨습니까?"

"이걸 물려주고 도망쳐나오면 되지 않을까, 해서요."


남은 우리의 수는 세 개.


사람들은 우리를 옮겨서 내가 최단거리로 도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블러드 하운드들이 쪼르르 달려와 컹컹 짖어댔다.


철창을 물어뜯는 녀석들의 입에 의자 다리를 내밀었다.


쿡쿡 찌르자, 신경질이 났는지 마구 부서뜨렸다.


연달아 두 마리, 세 마리 물려주었다.


전부 물려주지는 못했지만 맨 뒤에 자리잡은 두세 마리 정도는 괜찮겠지.



철컹.



자물쇠를 풀었다.


다시 달렸다.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라는 경고조차 날아오지 않고 끝났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벽에 기댔다.


하이파이브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맞춰주었다.


지친 기색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초췌했다.



"나머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맡겨주시죠."


검술학원 학생과 농부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의외였다.


기대도 안하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마저 무시하고 원성을 내는 그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도와주긴 하는구나, 하고 좋을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뒤틀려 있었다.


저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행위에서 찾아온 무기력함을 떨쳐내고 싶었을 뿐이다.


안전하게 해결할 방법이 생겨났으니 이때다 싶어서 나온 거겠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던 한 노인을 떠올렸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따듯한 불과 맛좋은 꼬치구이를 대접했다.


무언가를 받는 걸 거부했고, 대가없이 웃어주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있다.


바뀌는 사람도 있다.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저들을 믿어보자.


인간은 이기심만으로 이루어진 생물이 아니라고.


믿는 거다.



철컹.



덜덜 떨던 학생이 성공적으로 귀환했다.



철컹.



주저하던 농부가 소리를 지르며 도착했다.



"끝이다아···!"


일을 무사히 마쳤다.


남은 기력이 없었고, 조마조마 했던 마음은 풀어졌다

환호성을 지를 목소리도, 껴안고 방방 뛸 다리도 지금은 없었다.


해이하게 바닥으로 스며들듯 자빠졌다.


본격적인 탈출은 이제부터였다.



"으, 으악!"

"거기 조···! 아악!"

"도와줘!"


개소리가 사라지자, 소란스러움이 윗층으로 달려갔다.


여러 종류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우리 안의 몇몇 사람들은 귀를 막고 죄책감에 벌벌 떨었다.


나는, 뭐랄까.


마비되어 있었다.


마비, 라고나 할까.


조금 달랐다.


말로 잘 설명하진 못하겠다.


적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뜻한 것 같았다.


복수심이 해소되며 불러일으키는 쾌감까지 느껴졌다.

위에서는 사람이 죽고 있는데.


묘하게 안심됐다.


잭이 있어서 그런 건가.


그는 혼자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죽고 있다는 현실로부터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사라졌다.



"슬슬 때가 됐군."


잭이 무릎을 짚고 "읏쌰"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일어섰다.


나 또한 벽을 짚고 반쯤 기대어 일어섰다.



"끝난 겁니까?"


감옥으로 돌아가자, 안색이 나아진 마법사가 반겨주었다.


그가 철창을 열고 나오자, 시계장인과 다른 팀원들도 함께 나왔다.


잭은 곧바로 시계장인에게 시간을 물었다.



"2시 3분."

"빡빡한 걸···"


잭이 중얼거렸다.


엿들은 제빵사가 "뭐가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하하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돌아온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사료를 먹고 있었던 나는 그 대화를 무심결에 흘려들었다.


중요한 대화는 아니었겠지.



"이제 올라갑시다."


내가 사료를 삼키자, 마법사가 일어섰다.



"마력중독은 이제 괜찮습니까?"

"움직일 순 있게 됐습니다."


짝.



경쾌한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가보자고 친구들."


잭이 선두에 서서 계단에 올랐다.


순서대로 나, 제빵사, 농부, 학생. 마법사 조는 잘 모르겠지만, 지친 마법사가 제일 뒤에 서있었다.


내가 두 번째인 이유는 뭘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내가 두 번째여야 한다는 느낌이 되어있었다.


생각해도 쓸모는 없겠지.


집중하자. 냉정해지자.


단말마가 끊기는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하자.


블러드 하운드가 모든 조직원을 몰살했거나, 조직원이 블러드 하운드를 몰살했거나.


둘다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테지만 양쪽 다 괴멸이라는 이상적인 상황은 가능성도 희미하고 위험이 없으니 생각할 필요도 없다.


추가적인 증원이 올 가능성은 있을까.


배제해서는 안 되는 가능성이다.


인간족의 도시에서 마법사라는 존재까지 고용하는 놈들이다.



"이봐요, 마법사."

"뭡니까?"

"추적 마법은 얼마나 쓰기 어렵습니까?"


나의 팔을 찢어버린 블러드 하운드의 이빨에 추적 마법이 부여되어 있었다고 단테가 말했었다.


그렇다면 그 추적 마법의 까다로움이 조직의 규모나, 자산들을 추측할 단서가 될 거다.



"추적 마법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긴 합니다만, 가장 쉬운 걸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닐 겁니다."


무언가 부족하다. 더 파고들어야겠다.

어중간하게 알아서는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꼴이다.


섣불리 추측해서는 단서가 아닌 독이다.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단테의 말을 가까스로 떠올려냈다.



『블러드 하운드를 알고 있나? 너의 팔을 물어뜯은 마수이다. 그것의 이빨에, 상급 추적 술식이 부여되어 있었다.』


상급 추적 술식 부여.


그래, 정확히는 이렇게 물어봐야 했다.



"상급 추적 술식의 부여는 얼마나 어렵죠?"

"네?"

"마수에게 상급 추적 술식 마법을 부여하는 건, 얼마나 어렵습니까?"


마법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불길한 예감.


이대로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잭의 웃음을 어설프게 따라했다.



"하하, 그냥 호기심이 돋아서요. 저도 마법에 관심이 좀 있거든요."


이런, 실수했다.


흐름이 부자연스러웠다.


갑자기 마법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나, 어설프게 웃으며 호기심이라고 변명하질 않나.


누가봐도 수상쩍다.


그의 얼굴에 폭포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의문이 펄쩍 뛰어올랐다.


그는 유심히 뜸을 들이다가 나하고는 별 상관없겠지, 라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상급, 게다가 부여. 심지어는 부여의 대상이 생물체라면···"


아마.



"왕실 마도사단 급은 되야 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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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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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100 4 12쪽
24 목적 20.09.12 110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8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3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7 4 14쪽
19 학살 20.09.06 119 4 13쪽
» 부패 20.09.05 144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9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1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7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5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5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6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9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1 7 11쪽
6 이별 20.08.10 295 4 12쪽
5 간병 +1 20.08.07 415 5 11쪽
4 만남 20.08.05 49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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