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74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10 05:41
조회
127
추천
4
글자
12쪽

독백

DUMMY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한 종이가 맞닿았다.


시간이 되돌아간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겠지만 보다 나은 과거를 원하게 되어버렸다.


후회라는 감정이 있는 존재하는 이상은 관두지 못하겠지.


평화로운 호수를 바라보았다.


나를 격하게 요동치도록 하였던 것들이 잦아드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오면, 고난을 넘어서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호수를 전부 들이마셔서 몸속에 간직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엉뚱함을 발휘할 정도로 나는 차분해져있었다.


검자루를 쥐었다.


이 검의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의문이 들어도 추궁할 대상이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했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 아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병사인지, 아사인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채로 있는 편이 좋았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아들로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발을 옮겨야만 했다.


황혼의 이슬을 잎사귀에 올린 이름 모를 풀들을 사뿐히 밟으며 나아갔다.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루아는 구해내겠다.


아루아만이라도, 구해내겠다.


나에게 온정을 베풀어준 그녀를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려주겠다.


누명을 벗지 못하더라도, 설령 덧씌우는 짓을 하게 되더라도.


두 번 다시는 아침을 맞이하지 못할지라도.


그녀만은 구해내겠다.



'반드시.'


결의로 집념이라는 창을 만들어 나약한 심장을 꿰뚫었다.



...



늦은 시간이었다.


깜깜한 밤이었고, 마차가 다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강제로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던 나는 아루아의 오두막에 또다시 무단침입했다.


전에 왔을 때에 사용했던 덫에는 다른 토끼 한 마리가 걸려있었다.


사용하고 원래대로 고쳐놓기를 잘했다.


만족스런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오두막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기 위함이었으나, 별 수확은 없었다.


아무리 굳건한 각오를 다졌다고 할지라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얼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았다.


현재에서부터 기억나는 과거를 닥치는대로 뒤적거렸다.


얼핏 잭의 말이 사고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특수상업지구로 가라.』


생각의 그물은 그곳에서부터 퍼져나갔다.


첫 번째 의문은 '잭은 왜 그런 말을 하였는가'였다.


가정을 해보자면 크게 두 가지였다.


잭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다. 혹은 내가 잭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다.


둘 다일수도 있겠으나, 그건 말도 안 된다.


잭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던 것은 감옥 안에서였다.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개인적인 사정은 넣지 않았다.


했다고 한다면 정처없이 떠돌다가 들린 암시장에서 마약상이 시비를 걸어 폭력을 행사했다는 거짓말이 전부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의 현상금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택한 수단이었지만, 덕분에 가능성의 유무를 추려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의문의 결론이 붙잡혔다.


내가 잭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다.


그가 무슨 일에 이용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존재하는 이용가치는 하나밖에 없다.


범죄조직이 벌인 내장사냥꾼 사태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것.


남들이 보기에는 사람 셋을 죽인 살인자나 사냥하기 좋은 10골드로 보이겠지만, 잭은 자신을 정보상이라고 말했었다.


거짓이나 허세가 아니었다면, 나에 대한 진실을 꿰뚫어보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두 번째로 가져야할 의문이 정해졌다.



'잭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단테의 말을 떠올렸다.



『마수가 밖으로 풀려났다.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 판단한 조직은 목격자들을 찾아 없앴다.』


나는 조직의 실수를 눈에 담은 목격자다.

나의 존재는 그들의 약점이다.


하지만 이름조차 알아내지 못한 그 조직은 모험가협회를 이용해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살인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살인자가 하는 목격담 따위를 누가 믿을까.


목을 쳐서 현상금 10골드를 얻어내기는커녕 진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은 없다.


그 말인 즉슨 나는 현재 약점으로서의 가치를 반 이상, 혹은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거다.


잭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발상을 전환했다.

잭이 나를 약점으로 삼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조직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무언가, 혹은 누군가.


마지막 남은 목격자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 누군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시에 신경쓰지 않고 있던 잭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불현듯이 두통을 휩쓸어간 당연했던 한 마디.


마디라고 하기조차 짧았던 굵직한 외침.



『숙여!』


숙여.


그리고서 잭은 나의 머리를 찍어눌렀다.


마치, '그녀'가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마치가 아니다.


잭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목을 노릴거란 사실을.


시계장인에게 초를 세도록 하고, 반복적으로 물어보며 초조해했던 이유란 '그녀'가 들어오는 시간을 재기 위해서는 아닐까.


홍일점이 떠난 시점부터 초를 세도록 한 것은 내가 해답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설치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억지스럽기는 하다만, 억지스러움을 무릎쓰고 연달아 생각했다.


잭은 '그녀'가 언제 들어올지. 어디를 공격할지를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잭은 '그녀'와 한 패였다는 소리가 된다.



'둘이서 누굴 노리는 거지···?'


눈 깜짝할 사이에 열이 넘는 사람의 목을 베어내는 '그녀'와 그런 일격을 받아내는 잭이다.


단신으로도 어지간한 인물들은 암살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면,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이겨내지 못할 적이 존재할 때겠지.



'설마···'


압도적인 힘을 지닌 누군가. 뒷골목의 정보상과 하루만에 수십명을 죽여대는 암살자가 처치해야할 대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앞길을 방해하는 인물이며, 어둠에 물들지 않고 악을 처단하는.


범죄자들의 악당이자, 선량한 시민들의 영웅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영웅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흑기사 단테.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영웅이라는 칭호에 도달한 유일무이한 인간.


인간족의 존망을 그 혼자 떠안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암살자들이 그의 목을 노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역시 과언이 아니다.


나는 잭과 '그녀'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해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애매했다.


잭은 '그녀'와 전투를 벌였다.


도망치라고 외치며 어깨를 떠밀어주었다.


순전히 인질로 삼을 셈이었다면 치열한 연극을 벌일 필요도 없이 그때 그 자리에서 붙잡으면 그만이었다.


나에게는 저항할 힘조차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


맞물리지 않는 한 조각의 퍼즐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흐트러진 조각들은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이내 공백만을 남겨놓고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봤자, 결국에는 하나의 선택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잭의 계획이었던 것처럼.


잭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내가 있었다.



...



잭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계해놓은 건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밤은 지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몸의 컨디션은 최고조에 가까웠다.


반대로 석연치 않은 기분은 최하조였다.


대충 보이는 나물들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 마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다시금 잭의 말을 떠올렸다.



『특수상업지구로 가라.』


상업지구. 한 나라나 한 지방에서, 상업이 집중적으로 발달한 지대를 이르는 말이다.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고, 그렇기에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을 법한 흔하고 널린 단어이다.


그러나, 그 앞에 특수가 붙는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게 된다.


단어가 나타내는 지역의 범위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어느 정도냐면, 커다란 수박이 점 하나로 바뀌는 수준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차가 멈춰서고, 마부가 경계했다.


악의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골드를 먼저 꺼내보였다.



"아젤 집상국으로 가시는 거죠? 그곳에 급한 용무가 있습니다."

"아아, 모험가이십니까. 요리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환영하지요."


남은 건 7골드인가.


눈에 띄게 줄어든 금화의 수에 씁쓸함을 삼켰다.


아무래도 기사에게 쫓기다 넘어졌을 때에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7골드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니 당분간은 괜찮을 테지만.



'아젤 집상국인가··· 직접 가보는 건 처음이네···'


아젤 집상국.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상업지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대 국가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상인들의 상인들에 의한 상인들을 위한 국가라고 할 수도 있다.


집상국인만큼 어디를 가건 상업지구이기 때문에 중요한 상업지구에 특수를 붙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은 이정도지만,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잭의 말이 가진 의미를 알아내는데에 지장은 없었으니까.



'무사히 도착하면 좋으련만···'


나지막이 바라며 눈을 감았다.


그 뒤로 지나간 시간을 나는 굳이 헤아리지 않았다.


어느새 마부가 준비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면 다시 잠이 쏟아졌다.


언제든지 잘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 걸까.


아니면 잠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에 중독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던 찰나였다.



"모, 모험가님!"


다급한 마부의 목소리가 천막을 뒤흔들었다.


눈을 뜨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숲을 지나가고 있었고, 마차가 흔들리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부의 얼굴은 창백해져있었다.



"고, 고블린입니다! 고블린! 어떻게좀 해주세요!"


덜그럭.



마차가 멈춰섰다.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블린···?'


숨쉬기가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심장을 움켜쥐고, 뾰족한 손톱으로 긁어내는 것처럼 아파왔다.


외면해왔던 과거가 그 손의 주인이었다.


환각이 보였다.


작고 가녀린 손이 다가온다.


푸른빛의 눈동자는 구원을 바라며 바라본다.


도와달라며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등을 돌린다.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멈출 수가 없어서.


보고 싶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다.


그렇게 살아서 돌아왔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왔다.


남은 것은,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쟁이였다.


가녀린 손을 내치고 도망친 비겁자였다.



"나는···! 아니야,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야!"


몸을 말았다.


머리를 움켜쥐고 마구 저었다.



덥석.



누군가가 나의 명치를 붙잡았다.


고개가 삐걱삐걱 위아래로 흔들렸다.



"뭐라도 해보라구요오오오!"


절실함에 젖은 마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까드득.



제정신을 차린 나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검자루를 쥐었다.


그대로 들어올려 헐거운 검집에서 뽑아냈다.


활기를 되찾은 마부가 옷깃을 놓으며 응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힘내세요!"


마차에서 내린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야아아악!"

"캭! 캭!"


열셋.


열세 마리의 고블린들이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반복했음에도 잦아들지 않았다.


숨결이 떨릴 정도로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적은, 내 삶의 행적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의말

몸살이... 났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어설픈 입발림 20.09.26 89 3 11쪽
32 보이지 않는 한 가지 +1 20.09.21 95 5 11쪽
31 가호 +1 20.09.20 100 3 13쪽
30 외면했던 과거 20.09.18 129 3 12쪽
29 각성의 탑 +1 20.09.18 101 5 12쪽
28 채점 +1 20.09.16 90 4 12쪽
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26 악역등장 20.09.15 98 2 12쪽
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24 목적 20.09.12 110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 독백 +2 20.09.10 128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7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7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5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5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6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9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5 4 12쪽
5 간병 +1 20.08.07 415 5 11쪽
4 만남 20.08.05 495 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