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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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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64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12 19:56
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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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목적

DUMMY

손끝이 미약하게 저려왔다.


하나의 실이 있고, 그 실이 나의 손톱을 강하게 당기는듯한 감각.


느낌이 좋다.



탁.



대거가 경쾌한 소리를 울리며 자신의 몸을 절반 이상 밀어넣었다.


기껏해봐야 칼끝이 박히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며 대거를 뽑았다.


몇 시간밖에 연습하지 않았는데 정확도도 위력도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수직상승했다.


하나를 집중해서 던지면 제법 먼 거리일지라도 노린 곳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정확도를 포기하면 5개의 대거를 연달아 투척하는 것도 가능하다.


갑주를 입은 기사에게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겠지만, 한낮 조직원들이 갑주를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을 테지.


마음만 먹으면 암살도 가능하지 않을까.


중거리에서라면 3명까진 동시에 상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경험한 바로는 검을 맞추지 못했을 경우 대거로 거리를 좁혀 처리해야만하므로 던지는 건 4개가 최대겠지.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를 고려하여 양쪽에 2개씩 장착했다.


무기의 재정비를 마친 다음, 양지 바른 곳에 마부의 시체를 묻어주었다.


맨손으로 흙을 파내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언데드 때문이다.


가끔씩 소문으로 들려오는 마물의 일종이었다.


곱게 죽지 못하고 심지어는 묻히지도 못한 시체에 저주가 달라붙어 생명활동을 지속해나가는 것.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에게는 감정도 의식도 없다.


불타 죽는 순간까지 차오르는 폭력성만이 남는다.


언데드는 생전 연이 있던 사람들에게 이끌린다 하니, 아직 이름조차 듣지 못한 이 사람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매장해주어야만 했다.



"후우···"


감정을 죽이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고, 지나간 일을 생각해선 안 됐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 착실해 거듭해나가니 어중간하게나마 형태가 갖춰져있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죽은 말 두 마리의 머리로부터 남은 고기를 떼어냈다.


눈에 담기에는 잔인한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잔인하다는 생각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생물이 죽는 것, 그리고 죽은 생물을 이용하는 것.


익숙해진 나머지 무감각해졌다.


말의 목살과 혓바닥을 꼬챙이에 꿰어서 모닥불에 구웠다.


맛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삼키다시피 먹어치웠다.


배는 그럭저럭 채워졌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오른 달이 새까만 구름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숲의 나뭇잎들은 그닥 울창한 편이 아니어서 달빛만으로도 발치를 가로막은 나무뿌리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마차에서 오랜 잠을 반복한 탓에 잠에 드는데에 필요한 피로가 축적되어있지 않았다.


기왕 잘 수 없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나아가는 편이 나을 테지.


숲의 위험한 마수들은 거의 깊은 밤에 활동을 시작한다. 때문에 오두막이나 몸을 보호할 벽이 없으면 위험에 처하기 쉽상이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깨어있으면 주위를 경계할 수 있으니 마수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최대한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쫓기는 입장으로서 사람의 눈에 들지 않는 밤이 오히려 활동하기 제격이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단점을 고려해도 현재로선 장점이 훨씬 많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모닥불의 불길이 서서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다음, 이동을 시작했다.


길을 따라 걷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무슨 경유에서 길을 반지하에 가깝게 만들어놨는지는 의문이지만.


옆으로 슬며시 빠져나와 언덕의 위로 올라가면 문제는 해결된다.


여기서라면 길을 보면서 나아가는 방향을 찾을 수도 있고, 시야의 사각도 줄어들어 위험부담도 줄어든다.


단점이 있다면, 어둠을 뚫는 눈을 지닌 짐승이나 마수에게는 쉽게 보이게 된다는 것이겠지.


그런 마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하면 기습을 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


녹슨 쇠의 짙은 향기가 코 끝을 상처없이 베어냈다.


나의 검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다.


걷기 시작한지 약 30분.


두리번거리다가 터지듯 피를 흝뿌리며 죽은 초록색의 가죽을 발견했다.


'끔찍하군···'


사방이 검붉었다.


손톱만한 녹색이 엿보이는 질척한 가죽들이 널려있었다.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것과, 동그랗거나 길쭉하거나 콩처럼 생긴 것들이 널려있었다.


다가가고 싶지 않은 꺼림칙함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늘러붙은 검붉은 액체의 위로 발을 올리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아냈다.


유난히 거칠게 다뤄진 덩어리가 하나 보였다.


몸을 굽혀서 자세히 조사했다.


대거로 굴리고, 들추면서 관찰한 결과.


심장이었다.


사람의 손톱자국과 지문을 목격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공들여서 하나하나 뜯어낸 내장들과 쓰다듬어진듯한 핏자국들로 보아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가급적 조우하고 싶지 않다.


고블린은 죽여두는 편이 좋다, 라는 말은 단어들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꼬마아이도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


집착과 광기로도 표현되지 못할.


그 이상의 무언가다.


고블린을 증오하는 나일지라도 이렇게까지 만들어놓을 자신은 없다.



'그래도···'


고블린을 죽여주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참상을 만들어낸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이걸로 당분간 녀석들은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습격을 받을 작은 마을도, 납치당해 자아를 살해당했을지 모르는 여성들도.


이 자에게 구원받은 셈이 된다.



'우리 마을에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블린이라는 종족에 암컷이란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천 년이 넘는 세월간 종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이종교배라는 토악질 나오는 생식방법에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


고개를 떨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야하는 건 이게 아니다.


고블린따위 알게 뭐냐.


아루아를 구하는데에는 아무런 기여도 악영향도 끼치지 않는 방해꾼들이다.


덤벼오지 않는 이상은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후우···"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끈적한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나아갔다.



...



숲을 빠져나온 시간은 밤이었다.


꼬박 하루가 걸렸으나, 반대로 말하면 고작 하루만 걸린 셈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고블린 습격 이외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빠져나온 숲을 뒤로하고 벽 안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드넓은 농가들을 지나 관문에 도달했다.


보통 관문은 낮에만 열고 밤에는 위험한 마물이나 범죄자를 막기 위해서 닫아두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활짝 열려 있었다.


드나드는 마차도 행인도 없었다.


고위 귀족의 급한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본래 닫혀있어야만 했는데.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서라는듯이 활짝 열린 관문이었다.


검문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은근슬쩍 지나쳤다.


숨어들어갈 방법을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편리했지만, 어쩌면 그보다도 골치아픈 일이 벌어졌다.


관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몇 걸음 뒤로 인기척이 따라붙었다.


숨기려는 의지조차 엿보이지 않는 그 모습을 흘깃 쳐다보고는 멈춰섰다.


검과 대거에 손을 올리고 등을 돌려 마주보았다.


그곳에는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남자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목적이 뭐지?"

"대강 추측은 하지 않았나?"

"그 추측이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온 거야."



뭐가 우스운 건지, 잭은 쿡쿡 웃었다.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내 목적은 아니지만."

"단테를 붙잡아서 뭘 하려는 거지?"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단테를 붙잡는다, 라는 전제가 틀린 건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다.


이에 관해서는 내가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알아내지 못한다.


정보가 없다.


반대로 상대는 정보의 집합체다.


내가 무얼 알고 있는지, 무얼 모르고 있는지, 무얼 알아낼 수 있는지.


전부 알아채고 있으며, 조종할 수 있다.


그가 알려주지 않겠다고 단언한 정보는 내가 애를 써도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이다.


머리를 써서 알아내려고 하면 그것은 사고력의 낭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하는 말은 단정되어 있다.



"뭘하면 돼?"

"대화가 빨라서 좋군. 이걸 받아."


잭은 여러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펼쳤다.


지도인가. 특수상업지구의 커다란 건물 한 채에 표시가 되어있었다.


주위에는 단숨에 읽지 못할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내가 알아야하는 정보들이겠지.


대강 눈으로 훑어봤다.



"이 일을 하지 않았을 때에 내가 잃는 건 뭐지?"

"목적."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잭은 골목길의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러고나서 지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그의 말이 담고 있는 정보가 얼핏 풀려난 순간.


한기가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잭은 목적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목적이라고 말해줘봤자, 나는 그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드는 생각이지만, 설명조차 해주지 않은 일거리를 알아서 척척 해결할 능력이 있었다면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었겠지.


그걸 잭이 간과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잭은 어째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려고 하는가.


나는 어째서 잭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목적을 잃어버리는가.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으나, 두 번째 의문은 떠올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정답은 곧 첫 번째의 정답이기도 했다.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잭은 나의 목적을 알고 있으며, 나의 목적은 잭의 목적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을.


나는 내게 남은 유일한 목적을 입으로 되새겨보았다.



"아루아를, 구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고의 흐름이 끊기며 시야가 먹먹해졌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장시간 긴장을 유지하며 사고를 하기에는 집중력의 한계가 확실히 존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지도를 펼쳤다.


그곳에는 날짜가 적혀있었다.


'이틀 뒤···'


앞으로 이틀 뒤에 '경매장'이라고 불리는 조직의 행사가 열린다는 모양이다.


아루아는 이곳에 있겠지.


준비를 하라는 뜻인가.


적의 본거지로 쳐들어간다는 건 확실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단신으론 벅차다.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강해져야만 한다.


이틀이란 시간은 촉박하지만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우선 여관을 잡아야겠다.


그리고 무기도 사야하고, 근력과 체력도 키워야만 한다.


전부는 무리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자.


이제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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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채점 +1 20.09.16 89 4 12쪽
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26 악역등장 20.09.15 98 2 12쪽
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 목적 20.09.12 110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7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4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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