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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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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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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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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8.1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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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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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강해지기 위한 수업

DUMMY

멀리 날아갔다. 땅에 떨어지고, 구르고, 드러누웠다.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고, 검을 주웠다.


“스물일곱.”


검의 무게가 무거웠다. 손잡이를 쥔 두 손이 따갑게 저려왔다.

호흡은 거칠고, 바짝 마른 입안에서는 피 맛이 느껴졌다. 다친 곳은 없었다. 얻어맞은 것도 아니다. 폐가 터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입으로 들이마시지 마라.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마시는 건 코로, 뱉는 건 입으로 해라.”


대답할 여력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질식으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긋난 호흡은 박자를 되찾지 못하고 갈수록 거칠어져갔다.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었다.

확실히 입으로만 호흡할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식도까지 메마르는 통증을 느끼지 않아도 됐으니까.

호흡의 박자를 유지하는 것도 비교적 쉬워졌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쉬워졌을 뿐이지, 결코 쉬워지진 않았다. 흐트러진 호흡은 자세조차 흐트러뜨렸다.


“모든 동작의 기본은 호흡이다. 준비됐다면 다시 덤벼라.”


앞꿈치에 힘을 실었다. 몸을 기울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단테는 움직이지 않고 서있다. 그를 한 발자국이라도 밀어낸다면 나의 승리다.

앞으로 세 걸음. 칼날이 다가온다. 견제공격에 두 번씩이나 당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다. 숙이고 있던 상체를 들어올리며, 발을 미끄러뜨린다.

한 번 휘둘러진 검을 다시 휘두르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휘두른 검을 끝까지 나아가게 한 다음, 허리를 비틀고 등을 돌리며 반대로 휘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휘둘러진 검의 관성을 이겨내는 근력까지 필요로 하니 상식적으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

견제공격을 흘려보낸 다음 접근한다면 공격의 사이에 생기는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

손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휘두른다. 검을 휘두를 때의 기본은 날의 방향과 힘의 방향이 일치하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베어낼 수 없다. 이번 공격은 확실하게 일치하고 있다. 좋다. 제대로 들어갔다.


푹.

카각.

퍽.


하늘이 보였다. 쥐고 있던 검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바짝 마른 흙이 등과 목을 아프게 쓸었다. 복부에 떠나지 않은 갑주의 한기가 머무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자신의 검을 바라보면, 상대의 움직임을 볼 수 없지. 오로지 상대에게만 집중해라. 그러면 무기는 알아서 따라온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얻어맞았는데도 아프지 않았다. 단순히 힘을 뺐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흑기사 단테는 힘조절이 거칠다고 들었는데, 이토록 섬세하고 부드럽게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역시 소문은 믿을만한 게 아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칭찬을 들려오지 않았다. 그야 그렇겠지. 세계를 구하는 대영웅에 비하면 나 같은 초짜는 보잘것없는 조연에조차 들지 못하니까. 이렇게 1대1로 검술 과외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에 넘치는 행운이라고들 하겠으나, 행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전까지 불행으로 가득했으니까. 이것은 불행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단테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의 존재가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역시 영웅은 영웅이구나.’


검을 놓친 손끝을 움직여보았다. 아직 움직인다. 내가 나약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증거였다.

팔에 힘을 주었다. 힘을 준다고는 하지만 힘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팔이 저릿하다는 감각마저 사라져서 이게 정녕 내 팔이 맞는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일어나는 게 몇 번째더라.


“스물여덟.”


아아, 그래. 스물여덟 번이나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일어나려고 하는 내가 대단했다.

온몸이 흐물거려서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힘겹게 일어서서, 스러지듯 검을 붙잡았다. 붙잡은 검을 지지대로 삼지 않으면 서있을 수 없었다.

적어도 서른은 채우자고 생각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몸에 힘을 주어 묵직하게 끌고 나아갔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어도, 몸은 움직였다. 스러질 것 같아도, 앞을 향해 내딛는 내가 있었다.


칼날이 시야의 한구석을 치고 들어왔다. 굳게 움켜쥔 검을 휘둘렀고, 검과 검이 부딪혔다.


캉.


그런 소리가 났다. 맞닿은 검이 튕겨지며, 반동을 버티지 못한 나의 몸은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이번에도 검을 놓쳤다면 포기했을 텐데.

나의 손가락들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검으로 땅을 짚고, 굽혀진 무릎을 폈다.


“아아아아아악!”


악을 써가며 간신히 일어났다.


“검과 검의 싸움은 검을 맞대어야만 일어난다. 맞대지 못한다면, 그 앞에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떨어져나가지 마라.”


그의 가르침은 이제 나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고, 이명이 들려왔다. 유일하게 전해지는 것은, 새까만 갑주를 입고 새까만 검을 든 흑기사의 모습.

자세를 잡았다. 검끝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달려가기를 포기하고, 천천히 한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다시 한발. 또 한발. 정신은 이미 아득함의 저편으로 날아간 지가 오래여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네 걸음.

세 걸음.

칼날이 다가온다.

검을 휘두른다.

검과 검이 부딪힌다.

검이 검을 타고 미끄러진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몸을 비틀며 상대의 칼날을 피한다.

검을 길게 내지른다.

어디를 노리는 건지, 정해놓지 않았다.

벨 수 있는 곳을 벤다.

단지 그뿐이다.

검의 소리가 손을 타고, 뼈를 타고, 뇌를 울렸다.


스르릉.

캉.


오늘따라 맑은 하늘이 보였다.


...


스푼을 쥔 손이 방정맞다 싶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스푼 안에 들어차있던 스튜는 한 방울만을 남기고 그릇으로 돌아가버렸다. 힘들게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퍼올려도, 결과는 똑같았다.

이내 포기하고 그릇째로 벌컥벌컥 마셨다. 건더기는 손이 떨려도 포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으나, 국물없이 먹는 건더기는 질척질척하다는 감상밖에 주지 않았다.

눅눅한 빵을 뜯어먹었다. 눅눅한데다가 오로지 빵 그 자체여서 밋밋한 맛이었다. 살기 위해서 먹는다, 라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곳은 알텐하르크. 인간족의 전초기지인 사르티아와 긴밀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드워프의 전초기지.

마차를 탄다면 하루만에 사르티아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하루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사용해 강해진다. 강해져서, 거대한 범죄조직에게 노려져도 문제없도록 한다.

그것은 꿈만 같은 소리였다. 고작 하루이틀만에 그토록 강해질 수 있었더라면, 이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산을 가르고 바다를 말렸겠지.

아무런 재능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검을 배운다고 해봤자, 검을 휘두를 줄 아는 일반인이 될 뿐. 누군가를 지킨다거나 악으로부터 맞서싸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교육자가 영웅이라 불리는 흑기사 단테일지라도, 나의 재능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영웅이기에 그 사실은 확정되는 것이다. 천재는 일반인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 보면 이해하고, 한 번 하면 터득하니까.

본래 영웅이란 자는 천재라 불릴 재능을 지닌 자가 피를 토해가며 노력한 끝에 완성되는 존재.

그런 존재가 나 같은 범인(凡人)을 가르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생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전부 허사가 되어버리는 거다.


"힘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체에서 나오는 힘, 다른 하나는 마나를 연소하여 발생시키는 마력, 마지막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이용하는 기(氣)."


낮에는 몸을 움직이며 실전훈련.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이론수업이라는 형태로 쉴틈없이 몸과 머리에 경험과 지식을 때려박히고는 있으나, 터득하기 전에 넘어가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다며 핀잔을 놓겠지만, 지금의 억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불만을 억누르느라 한계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툭, 하고 검을 던져줘놓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로


『덤벼라.』


라고 말해서 쭈뼛쭈뼛 덤비고 덤볐다. 필사적으로 일어서서, 달리고, 휘두르고, 부딪히고, 날아갔다. 무려 서른 번이나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날아온 한 마디는 수고했다던가, 잘했다던가 하는 위로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

바로 '재능이 없군.'이었다.


'그런 재능따윈 없어도 되는 삶이었다고···'


테이블 밑으로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왔다. 아프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주먹이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검의 손잡이를 타고 전해지던 강렬한 충격이 현저하게 남아있었다.


"이 세 가지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어마무시한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우지."


어디론가 향하는 단테가 사라지자, 정신을 놓는 순간 뒤로 쓰러지며 잠에 빠져들듯한 상체를 애써 세운 채로 쥐어지지 않는 주먹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점점 불안정해지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반복했다. 원망해도, 책망해도 쓸데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거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지금을 바꿔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운명으로 정해진 길일지라도.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나를 진정시키자,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검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짧은 날붙이였다.


"단검···?"

"총칭으로는 대거라고 불리지. 너에게 주마."


단테는 테이블 위의 대거를 나의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었다. 그것은 받아든 나는 칼집에서 뽑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차가운 날은 만져보기도 했다.


"이걸 왜 저에게 주시는 거죠?"


나는 겁이 많다. 힘도 약하다. 이런 짧은 날붙이로 길고 커다란 검을 받아낼 자신이라곤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이것을 찔러넣을 만큼 가까이 갈 자신은 더더욱 없다.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그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건네준게 분명했다.


"앞으론 그것도 써라."


그것도.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순 있었으나,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했던 말과는 상반되었다.


『무기를 여럿 다루는 건 비효율적이다. 어중간한 수준으론 한계가 있지. 하나만 단련해도 너의 삶은 짧다.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검을 들었다면, 검의 극치에 오르고. 창을 들었다면, 창의 극치에 올라라.』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친 입은 생각을 가로막지 않고 흘려보냈다.

단테는 나의 의문을 짐작한 것인지 곧바로 답해주었다.


"너는 검에 소질이 없다. 아무리 단련해봤자, 어중간한 수준이 한계겠지. 무얼 단련해도, 어중간한 수준에 머물기만 할 거다. 재능이라곤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냉혹한 험담에 감정이 쏟아질 뻔했으나,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니, 어중간한 것들을 모아라. 모으고, 모아서, 쌓아올려라. 쌓고, 쌓다보면, 찾을 수 있겠지. 너만의 강함을."


그의 말은 이해할 순 있었지만, 실현할 순 없는 이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비구름을 찌를지도···"


나지막이 흘러가는 단테의 말이, 정적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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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목적 20.09.12 11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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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7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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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9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5 4 12쪽
5 간병 +1 20.08.07 415 5 11쪽
4 만남 20.08.05 49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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