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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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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60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11 08:13
조회
114
추천
7
글자
13쪽

고블린

DUMMY

눈동자를 빠르게 휘둘렀다.


제각기의 위치들을 모두 확인했다.


기억력에 자신은 없으나, 대략적으로 새겨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야를 가리는 후드를 벗었다.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움직인다면 지금이 제격이다.


고블린들이 나를 경계하며 빈틈을 살피는 와중이다.


왼쪽의 언덕 위에 셋, 오른쪽에 넷, 정면에 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나머지는 마차의 앞길을 막고 있다.


머릿수만 본다면 정면돌파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랬다가는 포위당하기 쉽상일 테지.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고블린은 어리석지만 멍청하진 않다.'였던가.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유명한 모험가가 남긴 말이었다.


저 녀석들은 마부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곧바로 덮쳐들지 않는 것은 나의 실력을 가늠하지 못했다는 것과 마부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의 위협이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툭툭.



발끝으로 땅을 두드렸다.

흙은 축축했지만 뭉쳐있지는 않았다.


소량의 흙이 후두둑 떨어져내리는 것을 확인한 다음, 정면으로 돌격했다.


위험한 도박이어서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지만, 떠오른 발상을 시험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키야아악!"


내가 다가가자 두 마리의 고블린이 무기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아직 덤벼들지 않는 건가.


휘두르는 검을 피하고 역습하려는 거겠지.


내가 든 검은 길이가 길고 무겁다.


반대로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대거는 날이 짧고 가볍다.


나의 공격을 피하자마자 달려들면 검에 맞을 일도 없거니와 상대를 손쉽게 사살할 수 있다.



'무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그들의 지능은 거기까지였나보다.


내가 생각없이 달려와서 검을 휘둘러줄 거라고 판단했나보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오판이었다.


앞으로 약 세 걸음.



콱.



달려가던 발을 멈추며 신발의 앞부리를 강하게 차올렸다.


축축하고 말랑한 흙이 공중으로 퍼졌다.


인간이었으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고블린은 인간보다 키가 작다.

크다고 해봤자 성인 남성의 복부 정도가 한계다.


그런 고블린의 앞에서 있는 힘껏 흙을 차올린다면, 그 흙가루들이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캬악?!"


눈이다.


이물질이 들어왔음을 감지한 눈꺼풀은 저절로 닫히게 되고, 시야를 차단한다.


눈을 억지로 다시 뜬다고 해도 씻겨나가지 않은 흙들이 눈물을 유발하고, 앞을 흐리겠지.



"스읍···"


호흡을 멈추고 전신에 힘을 가했다.


발을 내딛으며 검을 내려찍었다.



퍽.



둔탁한 울림이 검을 타고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고블린은 찌그러졌다.


정수리는 함몰되었고, 목뼈는 꺾였으며, 척추가 휘어버렸다.



'이걸로 하나.'


내려찍은 검을 곧바로 비스듬히 올려치며 휘둘렀다.



"으긱?!"


왼쪽에서 달려들던 고블린은 예상치 못한 견제에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졌다.


전투에서 방심은 죽음과 직결된다.


자빠진 고블린의 무기 든 손을 짓밟았다.


검을 놓고, 대거를 꺼내어 목에 쑤셔넣었다.


핏물이 튀기며 손을 더럽혔다.



'둘.'


대거를 찔러넣기 위해서는 무릎을 굽혀야만 했다.


이러한 자세의 경우, 뒤에서부터 날아드는 공격에는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지금이 빈틈이라고 판단했겠지.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그곳에 있을거라는 예상만으로 검을 휘두르기에는 충분하다.


죽는 것보다 허투루 휘두르는 편이 나을 테니까.


숨을 거둔 고블린의 손에서 단검을 빼앗아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그 허공에는 고블린 한 마리가 떠있었고, 나의 등 뒤로 올라탈 속셈을 가지고 있었던 고블린의 복부를 갈랐다.



후두둑.



고블린의 내장이 떨어져내렸다.


날아오던 고블린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에게 부딪혔으나, 녀석이 들고 있는 나이프는 휘둘러지지 못했다.


녀석의 내장이 튀어나온 신체는 나의 발등 위에서 잠들었다.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럽다고 여겨졌다.


쏟아지는 피로 신발을 더럽히려 드는 고블린의 사체를 발로 차냈다.



'셋.'


세 마리를 처리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던 걸까.


눈에 흙이 들어간 채로 살아남은 한 마리의 고블린은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었다.



"캬악! 캭! 캭! 캬아악!"


소리치며 마구 대거를 휘두르고 있었다.


쓸데없는 저항이었다.


나에게는 검이 있었고, 검을 내려찍을 힘도 남아있었다.


녀석이 달려들지 않는 이상은 사거리의 차이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발을 크게 내딛으며 검을 내려찍었다.



'넷.'


끝내 흙을 털어내지 못한 고블린은 첫 번째와 똑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마차를 포위하고 있다가는 각개격파 당하리라 판단한 것인지 고블린들이 포위를 포기하고 벌떼처럼 달려왔다.


괜찮다. 퇴로는 뚫어놨다.


내가 강한 건지, 고블린이 약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순조롭게 네 마리나 처리했다.


둘러싸이면 저항하지 못한다. 각개격파도 할 수 없다.


그걸로 끝이다. 수많은 고블린들에게 덮쳐져서 고통스럽게 살해당한다.


가만히 서있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달려야한다.



"모, 모험가님!"


마부가 가지말라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마차에 남은 고블린은 한 마리인가.


한 마리만이라면 마을의 어린 아이도 쉽게 쫓아낼 수 있는 정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다면 남은 수는 일곱인가.


솔직히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벅차다.



"캭!"

"캬아악!"

"키약!"


고블린들이 달려오며 울부짖었다.


아아, 역시 어리석은 녀석들이다.


덕분에 위치를 확인했다.


목소리가 크거나 작았다.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거리가 다르다는 것.


마차를 둘러쌌던 진영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충분히 존재한다.


달리는 속도를 늦추었다.


이 정도면 따라잡히겠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녀석들 중에서 활 같은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녀석이 없다는 것이다.


있었다면 진작에 죽었다.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시작한 거였지만.



툭툭툭툭.



뒤를 따라잡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틀었다.


춤을 춰본 적은 없으나, 춤을 춘다는 느낌으로 왼발을 내딛고 뒷꿈치를 들어올렸다. 오른발을 뒤로 빼며 반 바퀴 회전했다.



스릉.



무거운 탓에 바닥에 끌고 다녔던 검끝이 고블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을 향해 몸의 중심을 기울였다.


놀고 있던 손을 가세하여 검을 짓눌렀다.


나의 뒤를 곧장 달려오던 고블린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만들어진 셈이다.



"킥?!"


이번 개체는 반응속도가 빨랐다.


아니면 내 예비동작을 보고 속셈을 눈치챌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건가.


하지만 딱히 신경쓸 요소는 아니다.


녀석은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검에 부딪히기를 거부했고, 중심 잃어버리기를 택했다.


바로서려는 고블린의 몸통을 발로 밀쳐냈다.



털썩.



넘어진 녀석이 일어나려고 땅을 짚었다.


나의 발은 반사적으로 무기 든 손을 짓밟았다.


대거로 목을 찔렀다.


숨을 거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어서 관심을 거두고 다음을 준비했다.


이번이 다섯.


하지만 그 다음이 있을까.


한 마리를 처리하는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미 포위를 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키야야야야!"


그러나 정작 나의 시야에 남은 고블린이라곤 한 마리가 고작이었다.


열심히 위협을 가하고는 있었으나, 그 등 뒤로 보이는 동료들은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려 하자, 마지막 녀석까지도 도망치기를 선택했다.



'방금이 우두머리였던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두머리는 눈에 띄는 치장품이나 품질이 좋은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지휘가 잡혀있지 않은 탓에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고블린을 과대평가 하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순조로움이 지나쳐서 불길한 느낌까지 들었다.


검을 검집에 돌려놓고, 대거에 묻은 피를 이끼로 닦아냈다.


후드를 다시 뒤집어쓴 다음, 마차로 돌아가기를 서둘렀다.


저곳에는 마부가 고블린 한 마리와 대치하고 있을 테니 빠르게 지원해주어야만 한다.



'무사했으면···'


허리에 검을 찬 성인 남성이 고블린 한 마리에게 살해당할 일은 없겠으나, 우두머리가 없던 것도 그렇고 활 같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고블린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포위할 수 있었음에도 포기하고 도망치기를 선택했다는 것도 미심쩍다.


심히 불길했다.


온갖 좋지 못한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제발···'


간절히 바라며 마차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래,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마치 세상이 그렇게 짜여져있기라도 한듯이.


나의 바람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마차의 천막을 찢어놓은 화살들이 보였다.


몸뚱이를 잃고 떨어진 말들의 머리가.


쓸곳이 없어서 손조차도 대지 않은 마부의 사체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씨발···!"


고블린들은 어리석지만, 멍청하지는 않다.


실력을 판가름할 수 없는 호위를 유도하여, 무방비해진 마차를 습격하는 작전을 세우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잖아···!"


열세 마리나 있었다. 혼자서 열셋이나 상대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포위를 당한다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허술해보이는 포위망을 뚫고서 주의를 끌었다.


그게 최선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있어봤자 바뀌는 건 없었을 거야···'


단언컨대 내가 이곳에 남아있었을지라도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둔 사체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블린들이 나를 과대평가해서 다행이라고.


혼자서 다니는 모험가. 혼자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온 모험가처럼 보였을 테지.


녀석들은 어리석었다.


나는 그저 후드를 쓰고 녹슨 검을 든게 전부인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고블린의 어리석음에 목숨을 부지했다.


차마 이성의 끈을 놓아선 안 됐던 나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이것은 제대로된 호위도 고용하지 못한 가난한 상인의 잘못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끝도 없이 뻔뻔해져갔다.


나는 상인의 주머니에서 골드를 회수했다.


마차에 남은 물건은 없었다.



"후우···"


심호흡으로 감정들을 잊어갔다.


이보다 편리한 망각은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고블린들의 사체를 되짚어가며 무기를 수집했다.


마지막으로 처리한 녀석의 것까지 깡그리 긁어모았다.


녀석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전부 대거였다.


하나는 이가 빠지고 금이 간 탓에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부러져가는 대거 하나를 버리면 남은 대거의 수는 내 것을 포함하여 다섯 개.


그리고 녹슨 검이 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우러나오는 무능함을 떨쳐내기 위해.


정면의 나무를 향해 대거를 투척했다.



팍.



대거는 짐작한대로 꽂히지도, 생채기도 입히지 못하고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강했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소설책에 나오는 서브 캐릭터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싸웠더라면.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고, 수십에 달하는 고블린들을 한꺼번에 물리칠 정도로 강했더라면.


저 마부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 전에 이르러서, 어머니와 재회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의 아들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며 아무리 납득을 해도.


후회만은 남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아직, 지켜내야할 사람이 남아있다.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도, 지켜주지 못한 사람에게 속죄하는 것도.


나의 시답잖은 감정들에 몸과 사고를 맡기는 것까지도.


전부 끝매듭을 지은 이후에나 용서받을 일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강해지는 것.

강해져서 아루아를 구해내는 것.


그렇기에 감정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죽여두자.



탁.



날아간 대거가 나무의 껍질을 할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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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외면했던 과거 20.09.18 12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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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채점 +1 20.09.16 89 4 12쪽
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26 악역등장 20.09.15 98 2 12쪽
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24 목적 20.09.12 109 3 11쪽
»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6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4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4 4 12쪽
5 간병 +1 20.08.07 413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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