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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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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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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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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0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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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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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불효자의 귀환

DUMMY

주먹만한 돌멩이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떨어져버린 턱을 들어서 범인을 찾아냈다.


다섯 걸음만 가도 손이 닿을 법한 울타리의 너머.


한 아이가 원망이라는 감정을 나에게로 휘두르고 있었다.


못 보던 아이였다.



"너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괜찮았다.


영웅을 동경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 싶을 나이니까.


시셀란은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작으면 사람이 적고, 사람이 적으면 작은 일이라도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옆집 아저씨가 지붕을 고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던가. 동네 꼬마아이가 망가진 울타리에 걸려 넘어졌다던가.


사소하고, 알 필요조차 없을듯한 일들이 하루아침이면 모두가 아는 소문이 되어있다.


그런 마을에서 살인범이 나왔다고 한다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퍼져나갔겠지.


동네 꼬마아이조차 포스터에 그려진 나의 얼굴을 알고 있을 거다.


당돌한 아이다.


올바르게 자란다면 멋진 어른이 되어줄 거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었다.


악감정은 없었다.


나는 저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니까.


나도 저 나이였던 때가 있었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점이겠지.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저 아이는 멋드러지게 해냈다.



"라이시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어머니인듯했다.


달려와서 아이를 끌어안고는 나를 바라봤다.


나는 후드를 깊게 눌러썼지만, 무릎을 꿇고 아이를 끌어안은 그녀에게는 보여버린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그녀의 표정도, 앞으로 이어질 상황도 알고 싶지 않았다.



"결혼 축하해. 클라리아."


언짢은 미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 말고는 지어주지 못했다.


발걸음을 서둘렀고, 아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얼굴을 가렸는데도 그들은 나를 알아봤다.


여전히 눈썰미 하나는 좋은 사람들이다.



"누, 누가! 기사님을!"

"빨리 들어가!"


내가 있는 곳에 평온은 없었다.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것쯤은.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억울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보다도 심한 거짓말을 없겠지.


사실은 울고 싶었다.


화도 내고 싶었다.


왜 아무도 안 믿어주냐고.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싶었다.


그래도 나의 같잖은 감정들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었기에, 참고 걸어나갈 수 있었다.


나의 감정들을 외면한 끝에 도달한 그곳은 3년이란 세월동안에도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두 번 노크를 하고, 녹슨 손잡이를 돌렸다. 끼릭 하고 잠기지 않은 문고리가 열렸다.


자라왔던 추억들이 따가웠다.


하도 찔러대서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눈을 감고서 잠시 멈춰섰다.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얌전히 서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불안했다.


아니, 불안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간 부정의 감정을 떠안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은 작은 다락방이었고, 우리 가족들의 침실이었다.


침대는 작은 것 두 개를 이어붙인 것이어서, 내가 이곳을 떠나는 그날까지도 옹기종기 붙어자고는 했다.


사춘기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큰 일이었다.


나만의 방, 나만의 침대를 원하고는 했었다.


사적인 공간이 필요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짜증을 부렸을까.


이제와서 생각해도 곤란할 뿐이었다.



"엄마, 나 왔어."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문고리를 돌렸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허공을 걷고 있었다.


자칫 방심하면 추락해버릴 것만 같아서, 가슴을 부여잡았다.


무릎을 꿇으면 두 번 다신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침대 위의 이불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고, 반듯하게 접힌 종잇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차마 열어볼 자신이 없어서 주머니에 간직하기만 했다.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묘지로 발을 옮기지는 않았을 테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끝없는 현실부정만 반복하다가 무너질 것 같았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어차피 무너질 거라면 지금이 좋았다.


무릎을 꿇었다.


저녁의 찬 바람에 차갑게 식은 묘비를 어루만졌다.


그곳에 적힌 글자를 하나하나 손으로 따라그렸다.


라시아.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고개를 돌려서 옆자리를 차지한 묘비를 바라봤다.



"아빠, 미안해···"


내가 조금이라도 잘난 아들이었더라면 뭐라도 바뀌었을까.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었더라면.


그렇게 후회했다.


자랑거리가 되어주진 못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보람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아서 다행이라고. 너를 키워서 행복했다고.


그렇게 말해주었으면 해서.


있는 힘껏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너무, 늦었어···'


때로는 꾸며지지 않은 간단한 단어만이 심정을 대변해주고는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겉치레 따윈 알지 못하는 평면적인 감정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슬프다.


슬펐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아마, 우는 법을 까먹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슬퍼하고 싶었다.


슬퍼서 슬퍼하고 싶었는데.


그 증거인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철면피 아들이라니, 질이 나빠도 정도가 있어야지 원.


붙들고 있던 이성은 왜 눈물이 흐르지 않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여정을 떠났다.


그 여정은 머지않아 끝을 맞이했고, 짧다는 표현이 가능하리만치 짧았던 여정에 걸맞게.


보잘 것 없었다.


지금 울어버리면,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게 아니니까.


그게 이유였고, 변명이었다.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읽지 못한 편지를 손에 쥔 채로.


언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의 행복에 평생을 받쳤던 당신을 위해 울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때야말로 비로소 목놓아 울어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다.


"왕실기사단 열하나. 크리스티안 란슬롯. 죄인을 처단하러왔다."


목에 칼날이 맞닿았다.


다가온 위기를 깨닫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저희 어머니, 제가 살인자인 줄 알고 계셨겠죠···?"


울적함이 흘러갔다.



"뵐 낯이 없습니다··· 하하···"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었다.



"마을의 치안을 위해 따라와줘야겠···"


손목으로 목에 맞닿은 칼날을 쳐냈다.


몸을 기울이고, 옆으로 굴렀다.



서걱.



손목을 베였다.

스친 정도다. 지장은 없다.


몸을 일으키려하자, 목을 겨냥한 칼날이 공중을 달려왔다.


뽑아둔 대거를 두 손으로 쥐어 막아냈다.



칵.



대거를 쥔 손이 꺾였다.


각도가 기울어진다.


빠르게 드러누우며 칼날을 흘려보냈다.


칼끝이 목젖에 생채기를 만들었다.


위험하다.


창을 뽑아서 내질렀다.


노리는 건 갑주의 틈새.


눈을 찌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콱.



그러나 내지른 창은 곧바로 붙잡혔다.


도끼를 뽑으며 다시 눈을 노렸다.


세로로 던져봤자 갑주에 막힌다.


가로로 비스듬히 투척했다.



캉.



도끼는 갑주에 닿지도 못하고 기사의 검에 막혀 부서졌다.


기사는 날아오는 도끼의 손잡이를 일격에 양단했다.


직감했다.


이길 수 없다.


도망칠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을 해주겠다.


창과 도끼를 희생해서 일어날 시간을 벌었다.


검과 검으로 싸워봤자 이기지 못한다.


등을 돌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갑주를 입고 있다.


순전히 달리기만 한다면 내가 더 빠를 것이다.


거리도 상당히 벌렸다.


도망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잘못된 판단이었다.


노을의 빛이 그림자를 물감삼아 칼날을 그려주었다.


그 칼날은 나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후웅.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일부로 넘어지기를 택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겠지.


뒷통수가 따끔거렸다.


이번에도 베였다.


검을 뽑았다.


몸을 뒤집음과 동시에 검을 부딪혔다.



캉.



내가 가진 검의 무게는 들고 있기만 해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그런 검으로 왕실기사의 검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불가능이라는 경지를 넘어선 자살행위였다.


팔이 나가떨어졌다.


기사의 칼끝이 나의 목을 향해 다가왔다.



콱.



손을 들어 막았다.



"끄윽···!"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래도 움직여야만 한다.


피에 젖은 칼날이 나의 손 너머로 목까지 관통하려들었다.


한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투둑.



근육이 끊어졌다.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아악!!!"


그래도 휘두르기는 했다.


위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발악하며 휘둘렀다.



카각.



붙잡혔다.


검을 붙잡혔다.


마음이 흔들렸다.


안 그래도 가득 들어차있었는데.


터질듯했는데.


마모되고 마비되서 사라질듯했는데.


팔이 끊어지면서까지 휘두른 검이 이토록 허무하게 막혀버리면.


아아, 죽는다.


이건 죽는다.


죽어버리고 만다.


살해당한다.


기회라곤 남아있지 않다.


이대로 끝이다.


전부 포기할 거다.


포기하고 죽을 거다.


용서받지 못해도 괜찮다.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느끼고 싶지 않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다.'


모순처럼 눈을 감았다.


흐릿한 광경이 보였다.


눈을 감았는데도.


점차 선명해졌다.


진흙에 물들고, 짓밟혀 구겨진 꽃잎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손 안에 들어있었다.


몇 잎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가 불타 사라졌다.



《포기하고 싶어도 싸워야만 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니다.


이건 들리는게 아니다.


새겨지는 거다.


나의 머릿속에 새기는 거다.


흉측한 몰골이었던 갑주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그가 나에게 새기는 목소리는.


나의 목을 꿰뚫는 검의 모습보다도 선명했다.



스걱.



기사의 검이 목을 관통했다.


숨을 쉴 수 없다.


그래도 아프지는 않다.


그저 나의 몸이 그렇게 죽었다는 감각만이 전해져왔다.


보이는 것은 나를 죽인 기사의 갑주와 그 갑주를 밀쳐내려던 나의 손. 버둥거리던 발과 힘없이 떨어진 팔, 놓칠 수 없었던 녹슨 검이었다.



"이건···!"


동요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목에서 검을 빼고, 뒤로 크게 뛰어 물러났다.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끝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꿰뚫린 목도 타들어갔다.


생채기가 난 곳부터 시작해, 서서히 불타올랐다.


한껏 타오른 신체는 이내 새하얀 재가 되어 바람을 따라 높이 날아올랐다.


마지막으로 시야가 불타고, 재가 되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눈앞에는 공허를 채운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래도 혹시, 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열었다.



"···어?"


햇살이 보였다.


햇살을 가리는 잎사귀들도 보였다.


따스하고, 그러면서도 시원하고, 포근하다.


한때는 천국이라고 오해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알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


뚜렷하게.


스러져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같은 풍경을 세 번째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아름답다는 감상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볕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호수. 그곳을 둘러싼 형형색색의 꽃들은 바람에 살랑이며, 자그마한 참새 한 쌍은 소리없이 노닐다가 날아올랐다.



"돌아,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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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100 4 12쪽
24 목적 20.09.12 110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5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8 4 12쪽
»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3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7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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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전(連戰) 20.08.28 155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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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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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9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1 7 11쪽
6 이별 20.08.10 29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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