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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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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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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02 20:48
조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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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대비

DUMMY

오도독오도독.


사료를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사료조차 맛있게 느껴졌다.


주위의 사람들은 당황이 묻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해가 안 된다는듯한 반응들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람이 개사료를 복스럽게 먹어치우는 광경을 본다면 복잡한 심정이겠지.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극도로 배고프고, 눈앞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먹는게 당연한 거다. 이상할 건 없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먹지 않은 사료들도 가져와서 먹기 시작하자, 빚쟁이가 말을 걸었다.



"그거, 맛있습니까···?"


개가 되었다는 자기최면과 살기 위해 먹는다는 심정을 가지면 먹을 만했다.


나는 그렇게 설명했고, 빚쟁이는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한 번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가 부르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홍일점의 선봉대가 출발한지 26분이 경과했다.


식당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끌어와 바리케이트를 칠 준비를 마치고, 대기를 하던 도중 문득 하층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자유를 원한다. 그렇기에 가둬두면 탈출을 꾀한다.

그건 누구나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리면 깨닫는 이치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걸 아는 이상은 우리를 가둬두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바로 최하층.


탈출을 시도할지라도 긴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제압하기도 쉽도록 최하층에 가둬두는게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곳의 계단은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최하층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저 아래에는 뭐가 있는 걸까.


고개를 돌려서 지나친 마력 소비로 녹초가 된 마법사에게 물었다.



"저 아래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곳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윗쪽을 보고 온 것만으로도 벅찼거든요."


바퀴벌레를 조종하는 데에는 상당한 마력이 든다는 모양이다. 애초에 다룰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적었기에, 마법사가 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었다.



"인기척은 나지 않으니 사람은 없을 겁니다."


좀도둑의 말에 나는 발을 옮기기로 정했다.


터벅터벅 걸어서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소매치기가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 어디가려고?"

"아래쪽이요. 정보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잖습니까?"

"좋아, 나도 가지. 혼자보단 둘이 나을 걸세."


따라오는 소매치기를 확인하고, 발소리를 죽였다.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제법 깊은 계단을 끝까지 내려오자, 수많은 포대들이 보였다. 드문드문 커다란 고기를 매달아놓기도 했다. 아마도 소나 돼지 같은 거겠지.


벽에 걸린 횃불의 수가 적어서 으스스한 분위기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포대 안에 든 것은 사료였다.


우리가 먹었던 것과 같았다.



"한 층 더 내려갈 수 있겠구만."


소매치기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내려온 계단의 건너편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가볼텐가?"

"까짓거 가보죠."


가능하면 무기고를 찾고 싶다. 무기를 모두에게 보급할 수만 있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상층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배제하는 편이 좋겠지.


마법사의 바퀴벌레가 상층에서 무기고를 발견했다.


한 건물에 무기고가 하나여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희박한 가능성을 쥐고 있을 바에는 놓아버리고 확실한 가능성을 쥐는 편이 낫다.


확실한 가능성을 쥐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 건물을 탐색해야만 한다.


적어도 최하층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왜 우리들을 최하층에 가둬놓지 않았는가, 를 알아내야만 한다.


한 층 더 내려가자, 그곳에는 죽은 소들을 거꾸로 매달아놓은 살풍경이 펼쳐졌다.


스물은 넘어보이는듯한 숫자의 소들이 피를 흘리며 매달린 광경.


식도가 짓눌렸다.


무언가 올라오려 했으나, 기껏 먹은 것들을 토해내고 싶지 않아서 심호흡을 반복했다.


속이 좀 나아졌다.


저 시체들이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쿠구구.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왔다.


한 층 더 아래.


그곳에서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도 들었나?"

"들었습니다. 인간의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쇠사슬의 소리가 둔탁했다.


철그럭이 아니라 쿠구구구였다.


한낮 인간을 쓸리는 것만으로 바닥이 울리도록 하는 쇠사슬로 묶어두지는 않는다.


즉, 저 아래에 있는 것은 한낮 인간이 아닌 존재.


그리고 결코 풀려나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직감했다.



"계속 갈 텐가?"

"어쩌면, 저 녀석이 가능성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한 층을 더 내려갔다.


그곳에는 나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은 익숙한 마수가 가둬져있었다.


털이 없는 붉은 피부. 하지만 털만이 없는 게 아니다. 눈도 없다. 오로지 코와 입만이 달려있다. 생김새는 개에 가깝지만, 덩치는 늑대 같은.


나의 팔을 찢어발겼던 마수.


이름은 분명.



"블러드 하운드."


그래, 그거다.



"저 마수를 아십니까?"

"이쪽 세계에선 흔한 마물이지."

"당신이 단순한 소매치기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군요."

"둘만 있으니 말해주지. 난 사실 정보상이야."


무엇이 웃긴 건지, 그는 킥킥 웃었다.


그 웃음이 의미하는 바가 뭘지 헤아려보려 했으나,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그럴 거라는 결론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밖의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잭일세."

"리시스입니다."

"음, 좋아, 마음에 들어."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횃불을 들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 아래에는 횃불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함인가.


아니면···

보고 싶지 않은 존재를 보지 않기 위함인가.


발을 조금 내딛었다. 그러자, 사람의 몸통만한 두께를 가진 철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은 높지 않았다.


일부로 그렇게 설계를 한 것 같았다.


압도적인 무언가를 억제하기 위해.



"이건 위험하군."


그가 말하기 전부터 나는 도망치듯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저건 마주쳐선 안 될 존재다.


그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멎어버릴 괴물이다.


세상에 풀려나서는 안 된다.


규격 외의 존재이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공포와 압박감이 그렇게 때려박았다.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같은 공기를 마신 것만으로 이정도다.


마주치게 된다면 심장마비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저긴 가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래. 좋은 판단이야."


잭이 동의했다.


"하지만 저 멍멍이들은 써먹을 수 있겠어."


여유롭게 계단을 따라올라온 잭이 곤히 잠든 블러드 하운드들을 가리켰다.



"길들여지진 않았을까요?"

"하! 길들일 수 있었으면, 저건 마수가 아니라 애완동물이라고 불렸을 테지!"


묘한 논리였으나, 잭이 말하니 그럴듯했다.


묘한 논리가 가진 묘한 설득력이 나에게 작전을 세우게 만들었다.


저것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것들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잭, 아는대로 말해보시죠."

"우선 저 녀석들은 멍청하지 않아. 그리고 지금은 상당히 굶주린 상태야. 보통은 후각으로 피 냄새를 쫓아, 빈사상태인 사냥감을 노리지만. 배가 고프면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 들지."


골똘히 생각했다.


정보는 충분하다. 이제 작전을 세워야만 한다.


우선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


돌아가서, 사람들을 데려오자.


먼저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뭐가 있었습니까?"

"블러드 하운드. 그리고 범접해선 안 될 무언가."


사람들은 범접해선 안 될 무언가에 대해 호기심을 품었지만, 잭이 알아서 좋은 건 없다고 설명하자 모두 입을 닫았다.

그러자 잭은 끌끌 웃으며 "우리에 갇혀있으니 괜찮아,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라고 덧붙였다.



"홍일점은 돌아왔나?"

"아뇨, 아직 안 돌아왔습니다."

"너무 늦는군. 뭔가 이상해."


잭과 좀도둑의 대화에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설마, 들켜버린 건가.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떨쳐내지 못했다.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최악까지 흘러간다면, 저들은 우리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제압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된다면 끝장이다.


사료로 식량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으나, 물이 없다.


설령 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죽음이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사료만으로 버티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마음이 무너지고, 서서히 미쳐가겠지.


그 전에 대책을 세워둬야만 한다.


그들이 들켜서 죽거나 붙잡혔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새로운 작전을 짜야만 한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방금의 나는 생각해냈다.


검지를 펴서, 힘이 세보이는 사람들을 골랐다.



"당신, 당신, 그리고 당신. 아래로 따라오시죠."

"뭘 할 생각입니까?"


좀도둑이 물었다.


답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목소리를.


그들을 설득하고 꼬드길 한 마디를.


박력있게.



"마수를 풀겠습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 잠깐만! 그럼 홍일점네는 어떻게 되는거야!"

"그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그들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게 뻔하다.


밑준비가 필요하다.


치밀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작업의 반복이다.


대신 그 작업에 목숨을 맡겨야만 한다는 걸 제외하면.


하지만 이 사실을 말했을 때에 동참할 인원은 없겠지.


최하층에 자리잡은 괴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은폐해야만 한다.



"간단합니다. 저 아래에 있는 소의 시체들을 최하층으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왜 소의 시체들이 있는 거죠?"


날아온 질문에 나는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했다.



"소고기 파티라도 하려나 보죠, 뭐."


잭 못지 않은 재미 없는 농담에 싸늘함이 흘러갔다.


여기까지 계획대로였다.


나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고 말을 정정했다.



"아마, 블러드 하운드의 먹이일 겁니다. 그리고 그게 남아있는 한, 저희의 2차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겁니다."

"저 녀석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공격하지. 저 소가 남아있으면 저 소를 먹을 거고, 윗층의 망할 놈들을 먹지 않을 거란 소리야."


잭의 추가적인 설명이 나의 말에 설득력을 부가했다.


일개 팀원의 말에 비하면, 팀원의 말에 동의하는 리더의 말이 더욱 설득력이 강하다.


우리는 그들을 현명하다고 판단했기에 리더를 맡겼고, 보다 뛰어난 사람이 하려는 일에는 가치가 있다고 믿으니까.


잭이 나의 말에 힘을 보탰다는 걸 알아챈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협력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가는 블러드 하운드를 깨울 수도 있고, '괴물'과 조우했을 때에 집단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힘이 강해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을 뽑아서 조를 편성한 다음, 내 지시에 따라 소의 사체들을 운반했다.


첫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를 먹기 위해 운반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냥 바닥에 질질 끌면 됐다.


그렇게 두 마리, 세 마리 소의 시체들을 쌓아올렸다.


최하층의 계단에 내리깔린 어둠은 '괴물'을 철저하게 감춰주고 있었다.


앞으로 약 14마리인가.


힘들기는 하겠으나, 사람들의 안색으로 보아하니 무리는 아닐듯하다.


이제 13마리.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쿵.



바닥과 부딪힌 소의 머리가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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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목적 20.09.12 109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4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6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4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3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4 4 12쪽
5 간병 +1 20.08.07 413 5 11쪽
4 만남 20.08.05 49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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