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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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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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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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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9.18 15:15
조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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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외면했던 과거

DUMMY

어린 시절, 엘리스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황금의 색을 일깨워주었고, 그 아이의 눈동자는 수평선 너머로 떨어진 바다의 색을 조곤조곤 속삭여주었다.


태양처럼 빛나고, 햇살처럼 따스한 아이였다.


그리고.



『리시스는 특별해.』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낱말들로 칭찬해주었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 기뻤다.


특별하다는 말이 존재했다는 것. 나에게도 그런 말이 사용된다는 것.


처음으로 알아서.


처음으로 알려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는 일곱 살 언저리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서투른 나이였다.


그래서 깨닫지도 못하고 세월만이 지나갔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숲으로 놀러갔다.


그때 당시에는 성벽의 증축이 한창이어서, 우리 고향은 성벽 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놀던 숲에서 벗어나 다른 숲을 탐험하자고 계획했고, 어른들 몰래 밑준비를 갖추어갔다.


자그마한 모험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고 싶었던 어린아이들의 변덕이었다.


그리고 철없던 어린아이들은 그 날, 일상만을 추구하도록 변질되었다.



"리시스! 빨리와!"


앞서가던 레이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번 모험이 달갑지 않았다.


그야 그렇다. 보호자의 동반도 없에 일곱살 언저리의 어린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는 고블린이라는 마물이 살고 있고, 그것들은 어른이라면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천적이었다.


물론 어린아이가 식칼을 들고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위협하면 쫓아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하나가 넘는 숫자로 달려들면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짜내다가 이가 빠진 단검들에 난도질 당해 죽을 것이다.


여자아이라면 역겨운 짓을 당하고, 똥개에게 물려준 장난감보다 처참히 망가져죽을 것이다.


남자아이 넷에 여자아이 둘로 이루어진 이 파티는 고블린을 만나는 순간 파탄날 것이다.


어린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리지만 해서는 안 될 일과 위험한 일들만은 기똥차게 구별해내는 것이 나의 특기였다.


그러나 위험천만하고 천진난만한 나이의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이고 음침하다는 인식이었다.


톡톡.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그곳에는 푸른 바다의 눈동자가 걱정스런 눈초리로 나를 담아내고 있었다.



"역시 가고 싶지 않은 거지···?"


엘리스였다. 그녀는 '나중에 크면 리시스한테 시집갈 거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는 소녀로 마을에서 유명했다.


부정적이고 음침한 찌질이의 어디가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만 들으면 어깨를 펴고 기세등등하게 허세를 부려대는 내가 있었다.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걱정하는 엘리스의 앞에서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남자니까 괜찮아! 무섭지 않아!"

"또 그런다···"


어째서인지 엘리스에게만은 허세가 통하지 않았다. 거짓말도, 꾸며낸 웃음도 그녀의 앞에서는 투명한 유리판에 불과했다.



"사실은, 응··· 가고 싶지 않아. 위험하니까··· 엘리스가 위험한 곳에 가는 건 원치 않으니까···"


헤헤. 엘리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베시시 웃었다.



"리시스의 그런 점이 좋아."


남들 보기에 부끄러운 대화들을 스스럼없이 이어나가는 엘리스를 대단하다고 느끼며 달아오르는 두 볼을 어루만졌다.


만일, 정말로 만일이지만.


이 회상이 미래에까지 이어진다면.


이 아이의 행복한 결말을 바라보고 싶다.


이 아이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다.


작은 집을 마련해서 아침에는 꼬옥 마주잡은 두 손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 점심에는 만개한 꽃발을 거닐다가, 저녁에는 지붕 위에서 별들을 올려다보며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복겨운 나날들을 보내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우러나왔던 어린시절이.


꿈을 가지고, 낭만을 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을 위해 살아갔던 나날들이 나에게도 존재했다.


그 가증스러운 것들과 조우하기 전까진.


깊은 숲속.


사르티아에서 깊은 숲속이라고 한다면 사리나 숲이 있다. 그곳은 종종 나물을 따러 간 성인 여성조차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당시의 시셀란은 벽의 증축이 이루어지지 않아, 성벽의 바깥에 위치해있었다. 사리나 숲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뜻을 품고서 작은 다리로 걸어가면 수 시간만에 도착할 거리였다.


그래서 아이들의 숲으로 모험을 떠나자는 어리석은 발상을 저지할 존재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있었다고 보더라도 무방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한 번 부정했다.


있었다.


어리석은 발상을 저지할 수 있었던 내가 있었다.


속닥이며 주고받던 비밀작전을 알고있던 내가.


고블린이라는 마물의 위험성을 알고있던 내가.


미움받는 한이 있더라도 뜯어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고블린보다도 또래 아이들에게 미움받기를 두려워했다.


숲으로 떠난다며 기뻐하던 엘리스의 기대를 져버리기를 무서워했다.


나에게 타인의 악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용기라곤 없었다.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확실한 비난을 받을 배짱이 없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깊은 숲속.


커다란 동굴을 발견한 우리들은 심상치 않다고 직감했다.


동굴의 앞에는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떨어져있었고, 피로 그려진 선들은 동굴의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히, 히익···!"


엘리스의 곁에 있던 클라리아가 몸을 덜덜 떨며 레이의 뒤로 숨어들었다.


레이와 엘리스는 그녀를 다독이며 도망치자고 제안했으나,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 두 명이 반대했다.



"까짓거 고블린이겠지!"

"맞아맞아, 식칼도 챙겨왔으니까 들어가보자!"


나는 이때 침착하게 두 녀석을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너무 위험해. 되돌아가자는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야. 4대2잖아. 우리가 과반수야. 돌아가자."


돌아오는 것은 겁쟁이라는 비난뿐이었다.



"흥, 도망칠거면 너희나 도망쳐! 그래가지고 모험가가 될 수 있겠냐?"


모험가. 남자아이라면 한 번쯤은 간직하는 장래희망.


그때 당시의 나도 다를 바 없었다. 모험을 동경했고, 특별한 삶을 희망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은 이러한 녀석들로 인해 발생한다.


자신이 잘난 줄 아는 이기적인 소수에 의하여.



"저 안에 들어있는게 곰이라면? 아니면 그보다 위험한 무언가라면? 너희는 뼈도 못추리고 죽을 거야."


이것이 마지막 경고였다.


일곱살짜리 꼬마아이가 이성을 유지하고 말로 풀어가려 노력한 마지막.


그러나 그마저도 개념없는 꼬맹이들은 걷어찼다.



"찌질이가 뭘 알겠냐. 엘리스가 좋아해준다고 우쭐한가보지?"


퍽.



주먹을 날렸다. 강하게 움켜쥔 주먹으로 턱을 얻어맞은 세스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리시스! 정신차려!"


레이가 나를 붙잡으며 싸움을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찌질이에게 얻어맞은 것이 분했는지 세스는 벌떡 일어나 레이에게 붙들린 나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커헉···!"

"까불지마!"


바닥에 엎어져서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린아이가 맞는 어린아이의 주먹은 성인들의 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명치다.


힘이 풀리고 엎어져서 날아드는 발차기를 피하지 못했다.


몸이 기울고, 몸을 지탱하던 팔꿈치가 무너지며 땅을 굴렀다.


옳은 말을 했다. 옳은 일을 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꼴이다.



텁.



두 번째로 날아오는 발을 붙잡았다.


놓으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찌질이라 불러도 상관없어. 하지만, 엘리스도, 레이도, 클라리아도, 그리고 너희도.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아."


싸움에서 이긴 쪽의 말을 듣는다.


이긴 놈이 정의다.


라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건 어린시절이다.


특히나 남자아이들의 경우.


주먹을 날리고, 맞을 때마다 사무치게 실감한다.


무시당해도 줄곧 참아왔다.


목숨과는 연결되지 않으니까.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영웅을 동경하는 소년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영웅의 등줄기를 따라갔다.


세스의 발을 끌어당기며 몸을 일으켰다.


중심이 무너진 세스는 주춤했고, 나는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한쪽 발을 들린 채로 얼굴을 얻어맞은 그는 뒤로 넘어졌다.


위로 올라타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어, 어이···!"

"리시스!"


들리지 않았다. 땅에서부터 날아드는 주먹이 의식을 뒤흔드는 탓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얘들아!"


닿지 않았다. 주먹을 휘둘러서 녀석의 뜻을 굽혀야한다는 일념에 취해, 어떤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리시스!!!"


이윽고 처음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주먹을 멈추고, 나의 뒷면을 뒤덮은 따스한 온기에 정신을 차렸다.



"엘, 리스···?"

"···이제, 정신이 들어?"

"응··· 미안해···"

"그럼 도망치자."


그녀의 청천벽력 같은 제안을 검토할 시간이라곤 없었다. 엘리스가 나의 손을 붙잡았고, 레이가 등을 떠밀었다.



"도망쳐!"


어째선지 동굴에 들어가자고 말하던 사레일까지.


이성을 되찾고, 빠르게 눈동자와 두뇌를 회전시켰다.


상황을 파악했다.


고블린.


고블린이 가득했다. 주위를 온통 고블린들이 메우고 있었다. 녹색의 피부. 찢어진 입과 삐뚤빼뚤하고 날카로운 이빨들, 몇몇 개체들은 나보다도 키가 컸다.


"엘리스! 식칼!"


앞서가던 그녀에게서 챙겨온 무기를 건네받았다.


남자아이가 식칼을 쥔다고 해서 고블린 무리를 이길 가능성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기지 못한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늘어난다면 시도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고블린들의 달리기는 우리들보다 조금 느렸다. 신발도 옷도 갖추지 않은 고블린들은 방해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괜찮다. 살 수 있다. 전원 무사히 생환할 수 있다. 빠져나가서 어머니에게 안겨서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어른이 된 나중에 옹기종기 모여 고블린으로부터의 도주극을 안주로 삼는 것도.


가능성이 충만한 미래다.


애석하게도 그리 생각했다.


아직 숲을 빠져나간 것도 아닌데.


보장된 안전이라곤 어디에도 없는데.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안도했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으나, 하지 않을 실수가 아니었다.


필연적인 실수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촤락.



그런 소리가 났다.


앞서 달려가던 엘리스가 넘어졌다.


그녀의 몸은 나의 앞에서 마지막으로 달려오던 세스의 뒤까지 끌려갔다.


까진 무릎에서 흘러나온 피가 흙 위로 일직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고블린은 어리석지만 멍청하지는 않다고 말했던 고블린 슬레이어의 명언을 이 순간 알고 있었더라면 무언가가 달라지긴 했을까.


설령 알고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덫을 만들어 유인하는 작전을 고안해낼 수 있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엘리스가 끌려간 걸까.


나의 삶에서 누구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던 그녀가 끌려간 이유는.


대체 뭘까.


운명의 장난이라고 한다면 짖궂음을 넘어서 살인충동마저 느껴버릴 처형이었다.



"꺄아악!!!"


고블린들에게 발목을 붙잡힌 엘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나의 다짐은 열이 넘는 고블린을 상대로 맞설 힘을 부여하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졌다.


의지가 꺾이고,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는 그 찰나까지도.



작고 가녀린 손이 다가온다.



푸른빛의 눈동자는 구원을 바라며 바라본다.



도와달라며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등을 돌린다.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멈출 수가 없어서.



보고 싶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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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가호 +1 20.09.20 99 3 13쪽
» 외면했던 과거 20.09.18 129 3 12쪽
29 각성의 탑 +1 20.09.18 101 5 12쪽
28 채점 +1 20.09.16 89 4 12쪽
27 맞닿은 손 +1 20.09.15 94 1 11쪽
26 악역등장 20.09.15 98 2 12쪽
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24 목적 20.09.12 109 3 11쪽
23 고블린 +1 20.09.11 114 7 13쪽
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18 부패 20.09.05 143 2 12쪽
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0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14 암시장 20.08.30 146 7 12쪽
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12 호의와 적의 20.08.25 165 5 12쪽
11 선택지 +1 20.08.22 174 7 11쪽
10 무의미와 희망 +1 20.08.21 192 4 11쪽
9 결심의 뒤에 오는 것 +1 20.08.19 215 7 10쪽
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6 이별 20.08.10 294 4 12쪽
5 간병 +1 20.08.07 413 5 11쪽
4 만남 20.08.05 49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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