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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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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67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8.10 00:51
조회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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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이별

DUMMY

초조한 밤이 지났다.



아루아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내가 눈을 떼자마자 휘청일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괜찮다며 다시 일어서려는 아루아를 침대 위로 앉혀두고, 긴 설득을 한 끝에야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아침식사는 내가 움직이고, 그녀가 지시하는 형태로 준비를 마쳤다. 나 또한 오랜 시간 먹지 못했기에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다. 5일 동안이나 굶었는데도 움직일 수 있다니,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닐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날려버렸다. 나는 평범하다.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는 건 아마도 아루아가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먹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의 가능성은 없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수천년을 산다던가 하는 일이 불가능한 세상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아침을 먹었다. 대화는 오고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음식을 입안으로 가져가는 동작만을 반복했다. 서투르고 어색한 대화를 두런두런 이어나갈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루아는 그야말로 위태로웠다. 그녀의 상체는 서서히 기울어지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되풀이하였다. 또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맛은 어땠나요?"라고 물어와서 맛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반쯤 허울로 찬 칭찬이었지만, 미약하게 입안을 맴도는 식재료의 맛으로 되짚어본 식사는 맛있었던 같았다.



허울뿐인 칭찬이었는데도, 꿰뚫어보지 못한 그녀는 지친 입가에 아련한 미소를 띄웠다.


"이제, 떠나시는 건가요···?"


아루아가 두 손을 조심스럽게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처음 그대로 바뀌지 않고 떨리는 두 손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왜 불안해하는 건지, 끝내 헤아리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한데 뒤섞여서 쓴웃음만을 자아냈다. 그녀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텐데. 자꾸만 쓴웃음을 짓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프시거든. 혼자서는 밥도 못 차려드실 정도로. 아무런 보답도 못해줘서 미안해."

"괜찮아요, 이런 저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주셨다는 게 무엇보다 큰 보답이었는 걸요."


그 말은 드물게도 진심을 담고 있었다. 처음으로 전해져온 진심은 그녀가 무얼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지레짐작하도록 도와주었다.




"다음에 올 때에는, 선물을 잔뜩 준비해서 올게."


혼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그녀에게는 다음을 기약해줄 인연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흘동안이나 정성껏 보살펴준게 아닐까. 나였더라도, 기나긴 외로움의 끝에 찾아온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겠지.



엘프의 수명은 길다.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 숲에서 적적하게 보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일지도 모르고, 나의 조상이 태어나기 전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동안 앞도 보지 못하고 혼자서 지내왔던 거겠지.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에 날붙이를 목에 대고 있던 것도, 죽음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



주제넘게 헤아려보았다.




"약속, 인가요···?"

"그래, 약속할게."


어린아이처럼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대자, 아루아의 떨림이 조금은 잦아든 것처럼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




숲속을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빠른 시간. 채워지지 않은 허기를 달래보고자, 말린 나물을 질겅질겅 씹다가 삼켰다. 쓰고 억세다. 그것은 자연의 맛이라기보다는 죄책감의 맛이었다.




『비축분이 많지 않아서 죄송해요.』


말린 나물과 육포, 붕대와 물병과 주머니칼을 챙겨주며 배웅하는 아루아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죄송해요'는 겉치레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짊어진 가방이 묵직했다.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가방끈을 강하게 쥐었다.


반드시 보답하자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숲을 빠져나가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돌아가서, 어머니를 돌보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그녀를 만나러 갈 시간이 생길 거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내가 아저씨라 불려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살짝 슬프겠는걸···'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이란 캔버스의 위로 곰곰이 그려보다가 이내 붓을 내려놓았다. 어디까지나 범인에 속하는 내게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정교하게 그려낼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면 된다. 내가 무얼해야 하고, 무얼 하고 싶은지만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그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평범이란 틀에 나를 다시 집어넣으며, 생각을 전환했다.



어떻게 하면 이 숲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일단은 아루아가 알려준대로 나아가고 있다. 커다란 버섯이 자라난 나무를 기준으로 오른쪽, 이끼가 돋지 않은 큰 바위를 넘어서 직진, 다람쥐들이 물을 마시는 옹달샘을 지나고, 쓰러진 나무에 올라타서 따라 걷는다.



그러자, 아루아와 만났던 호수가 나타났다. 한결같이 아름다운 장소였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여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어렴풋한 기억을 되짚어서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있다.



정말 이대로 나가도 되는 걸까.



이 숲의 밖에는 '그것'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도망칠 수 있겠지. 그게 가능했으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거니까.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들이 숲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아루아가 위험해진다.


"어떡할까···."


이끼가 잔뜩 돋은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며 고심한 끝에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계획을 세웠다.



우선 숲의 변두리까지 간다. 그 다음 변두리를 따라서 이동.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이보다 효율적인 계획을 떠올릴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다.



그래도 특출나지 않아서 그렇지, 제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남들보다 조금은 뛰어난 능력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걸어온 길을 비교적 잘 기억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딱히 헤매지 않고도 숲의 변두리까지 나올 수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흙길이 보였다. 이제 옆으로 걸어가다가 밖으로 나가면 된다.

계획대로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희망을 품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충고하며, 주위를 살폈다. 보이는 것은 낮게 자란 수풀과 깊은 곳에 비하면 키가 작은 나무들. 가까운 곳에서 새가 지저귀고 있다.



조심하자는 생각을 하자, 좋지 않은 기억이 연쇄적으로 되살아났다. 등골이 싸해졌다. 뇌리에 새겨진 장면들이 하나씩 스쳐지나갔다.


"우욱···!"


구역질이 나왔지만 억지로 입을 막고 참았다.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뒤를 돌아봤다.




"어···?"


믿음은 깨져버렸다. '그것'들은 없었으나, 처음 보는 기이한 생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그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손톱의 때만큼도 들지 않았다.



거리는 조금 멀다. 개처럼 생겼다. 하지만 털이 없어서 그런지 붉은 피부가 눈에 띈다. 눈도 없다. 코와 입만이 달려있다. 생김새는 개에 가깝지만, 덩치는 늑대 같았다.


그 기이한 생김새는 가까이 올수록 생리적인 혐오감을 키워나갔다.



달려오는 방향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으,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달릴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직감이 말하고 있다. 저건 위험하다고. 붙잡히는 순간 끝장이라고.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린다고 해서 한낮 인간이 짐승보다 빠를 리가 없었다.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턱.




앞만 보고 달린 탓일까.



발치에 무언가가 걸렸다.



몸이 앞으로 기운다.



시야가 땅으로 떨어진다.




"윽···!"


턱을 박으며 넘어졌다.



으드득 하고 이빨이 울리며 턱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덮쳐왔다.



뒤에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뒤집었다.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보였다.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왼팔을 들어서 목을 가렸다.




콰드득.




"끄으윽···!"


아프다. 아파서 소리조차 나오질 않는다. 감자마자 뜨인 눈은 새어나온 눈물로 가득차서 앞을 가렸다.



손목을 물어뜯기고 있다.



짐승이 고개를 사정없이 뒤튼다. 날카로운 이빨이 손목을 파고들고, 뼈를 긁어낸다. 주르륵 흘러나온 피가 얼굴을 적신다. 눈에 들어가서 시야를 붉게 물들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따갑다. 팔이 뽑힐 것 같다. 아니, 이건 뽑힌다. 뼈가 빠져나간다.



손으로 밀쳐내려고 해도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칼로 찔러보지만, 칼집에서 꺼내지 않은 칼은 박히지 않았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보지만 닿질 않는다. 닿는다고 해도 때리는 느낌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



팔을 뜯긴 다음에는 목을 뜯길 거다.



죽는다. 이거, 진짜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숨이 멎었다. 심장박동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마치 뇌가 심장이 된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몸을 지배했다.



뽑히지 않은 칼로 찔렀다. 찌르고, 찌르고, 찌르고, 찔렀다. 찌르고찌르고찌르고찌르고찌르고찌른다.



통각이 마비된 걸까.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아득하게 전해져왔다.



똑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중에 때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촉이 전해졌다.



깊이 파고든다. 들어가고 들어가다가, 딱딱한 무언가에 가로막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게 된 것은 손목을 물어뜯던 짐승의 움직임이 멈추고 나서였다.



흘러나온 눈물이 피를 닦아내자,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칼이 목에 박힌 짐승의 시체가 보였다. 내가 찔러넣은 칼은 손잡이까지 깊숙이 박혀있었다. 완전히 숨을 거뒀는데도 짐승은 나의 팔을 놓지 않았다. 팔은 피부가 찢어지고, 혈관이 끊어지고, 뼈가 으스러진 채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픔은 없었다. 단지 이 팔을 움직일 날은 더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이미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처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들고 있던 고개가 뒤로 떨어졌다.



온몸에서 힘이 풀려나갔다.



죽는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할 겨를이 남아있다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정상이었다.



아아, 괜찮다. 나는 평범하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하다.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의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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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깨져버린 기대 20.09.14 99 4 12쪽
24 목적 20.09.12 11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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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독백 +2 20.09.10 127 4 12쪽
21 불효자의 귀환 +1 20.09.09 132 5 12쪽
20 집으로 20.09.08 116 4 14쪽
19 학살 20.09.06 11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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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목적에 묻혀진 죄책감 20.09.04 118 4 14쪽
16 대비 20.09.02 121 5 12쪽
15 이기심 20.09.01 13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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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전(連戰) 20.08.28 15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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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해지기 위한 수업 +1 20.08.16 258 8 12쪽
7 영웅, 그리고 결심 20.08.14 270 7 11쪽
» 이별 20.08.10 295 4 12쪽
5 간병 +1 20.08.07 41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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