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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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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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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신붓감 고르기

DUMMY

칭제건원의 뜻은 간단하다.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정한다. 그것이 칭제건원의 뜻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힘이 있는 나라만이 그 간단한 문구의 뜻을 짊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지금의 조선에 누가 힘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드넓은 만주와 연해주를 재점령해 한민족의 옛 고토 전역을 수복하고. 조선민족의 숫자도 크게 늘린 철종의 치세에 나날히 발전하고 있는 조선은 이미 청이나 일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체급을 넘어섰고. 충분히 칭제건원을 할 명분과 힘을 갖추고 있었다.


1855년 1월 3일. 조선반도. 남만주. 북만주. 연해주에 각각 철종이 직접 교시한 전문이 붙여졌고. 그것을 본 조선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옳다! 우리가 어째서 번국의 자리에 만족해야 하는가! 천병을 물리친 것은 이미 청의 국운이 쇠했음을 알리는 효시! 이제 우리 조선도 천자국이 되어 이 아주를 통치할 때가 되었다!"


"만세를 불러라 형제들이여! 오늘은 참으로 영광된 날! 더 이상 천세가 아닌 만세를 부를 날이 왔노라! 만세! 만세!"


조선반도의 인민들이 중국 대륙의 압제에 시달린지도 벌써 1000년이 훌쩍 넘어간지 오래. 조선반도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드디어 자주적인 독립국으로서. 번국이 아닌 상국으로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였다.


그에 반하여.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만이 관측될 뿐이었다.


"황제라... 천하에 두 명의 천자가 서다니.. 말세로세.."


"이건 말도 안 돼! 어찌 조선 따위가 칭제건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진정들하게. 우리로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야."


흥분한 젊은이를 한 노인이 다잡았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주어와 한글로 쓰여진 전문을 더듬으며 읽어나갔다.


하지만 젊은이는 노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의 손을 뿌리치며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조선에 대한 적개심이 깊이 서려 있었다.


"아니 어르신! 어떻게 그런 말씀을..! 조선인들에게 아들이 죽었다면서요! 저 오만방자한 조선놈들을 그냥 놔둘 셈입니까!?"


제아무리 조선인이 온건하게 통치한다고 해도. 침략자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 만주에서 살아가는 만주인들은 대부분 가족에서 하나 둘 쯤은 조선군에게 죽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를 보게."


그러나 노인은 그저 한숨만을 쉰 채 전문의 한 구문을 짚었다. 바로 '재색을 겸비한 만주족 여인을 황후로 추대할 것'이란 구문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이건 기회일세.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자를 우리를 통치하는 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을 수 있는 기회 말이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셈인가?"


노인의 말은 단호하였다. 그도 상실의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조선군의 총에 맞아 절명했던 기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선의 지배에 저항했다가는 죽을 것이 자명한 일. 만주족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를 황후로 고르느냐 하는 것뿐임을..


*


만주에서 재색을 겸비한 만주족의 젊은 여인들은 차고 넘쳤다. 당장 이 만주에만 1400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그 중 절반이 여자니 여자만 해도 700만이 넘었으며. 그 중에서 젊은 축이라 할 수 있는 15~30세 여자만 따져도 대충 200만이 넘는 숫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모나 지식만으로 제국의 황후를 고를 수는 없는 법. 참으로 간악하게도 어떻게 뽑으라는 말도 없이 달랑 '추대할 것'이라는 말만 써놓은 철종의 말을 충실히(?) 따른 만주족의 유력한 대가문들은. 자신들의 여식을 황후로 추대하기 위해 가문들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다.


어디어디네 가문의 처자는 사실 애까지 낳은 여자라던가. 말하기 부끄러운 곳에 부스럼이 있다더라 하는 음해공작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고. 대부분의 경우는 유혈이 낭자하는 소규모 전쟁의 형태를 띄었다.


"잘 들어라. 네년과 네년의 가문이 황후 자리를 꿰차려고 수작질을 하던데.. 자꾸만 우리 가문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네 형제자매들은 물론 네년을 낳은 애미아비까지 싸그리 죽여주마. 알겠냐?"


"아.아..아..알겠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하룻밤 사이에 일가가 싸그리 전멸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지방의 유력자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여식들의 외모를 추켜세우기 위해 소문을 흘리거나. 이미 머리가 굳은 처자들에게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공부를 시키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슬슬 돌아가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만주족들은 과열되다 못해 미친듯이 열을 뿜어내고 있는 황후 추대를 위한 학살극을 멈추려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러다간 황후는 커녕 만주족 여자들의 씨가 마를 판이야! 무기를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해결합시다!"


"다들 진정하시오! 만주족 동포의 피로 물든 황후를 황제가 원하겠소? 우리 모두 이성을 되찾고 냉정하게 황후를 가려냅시다!"


"죽은 사람만 벌써 1만명이 넘었소이다! 이게 황후를 뽑는 과정이오? 우리끼리 내전을 벌이는 것이지! 정신차리시오 다들! 죽은 동포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싶소이까!"


깨어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묻히기 일쑤였지만.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밤중에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한 만주족들의 서민 계층이 목소리를 내고. 심각한 피해를 입고 붕괴된 지방의 호족들이나 귀족들도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만주에서의 총성은 줄어들어갔다.


그러나 줄어든 것은 총성뿐이었지. 오히려 비명소리는 늘어나고만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인 만주의 유력자와 대지주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사사건건 대립하였고. 황후 추대라는 원래의 목적은 망각한 채 그저 서로의 꼬투리만을 잡기 시작했다.


"웃기는군! 네 집 막내딸이 양치기하고 놀아난 사실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그 때 내 딸은 고작 12살이었소! 내 딸의 정조를 의심할 셈인가!"


"그야 당연히 의심해야지! 만약 자네 딸이 황후가 되었는데 사실은 비처녀라면. 그 책임은 누가 질 셈인가?"


"이이익..!"


2020년에 들어선 지금에 들어서는 여성이 처녀건 비처녀건 딱히 상관하지 않았지만. 1850년대인 이 시기에 여성의 정절이란 말 그대로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였다.


하다못해 일반 가정집에서도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결혼조차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야하는 시기인 이 때. 일국의 황후가 처녀가 아니다? 그것은 곧 황실의 정통성 그 자체를 나락으로 처박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할 말이 있지! 네놈이 용병을 고용해서 다른 가문의 여식들을 죽인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뭐..뭐야?"


"하! 따지고보면 정조보다 이게 더 심각한 문제 아닌가?! 누가 살인자의 여식을 황후로 삼겠는가 말이야!"


만주 귀족들이 서로를 이렇게까지 불신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일어난 살인극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였는데 어떻게 서로를 믿고 신뢰한단 말인가?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사람이 여럿 모이면 항상 쓰레기가 있기 마련.


아무리 한 사람의 인성이 좋아봤자. 결국 여럿이 모인 모임은 결국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하여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본다면 빠른 시일 내에 황상의 반려를 뽑기에는 문제가 많사옵니다. 역시 같은 한민족들 사이에서 황후를 뽑는 것이..."


"그것은 아니 된다."


평양의 별궁에서는 황후 간택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만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단합은 커녕 같은 민족끼리도 분열하는 만주족들의 행태는 한민족 관료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주었고. 그렇게 생각한 관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한민족 황후를 세워야 한다는 공동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전부 대한에서 나고 자랐다보니. 대한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만주족들의 행동에 너그러운 이해와 관용보다는 이질감과 혐오감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황제가 된 철종의 생각은 달랐다. 황후를 한민족으로 뽑게 되면 대한제국은 만주족과 한민족의 제국이 아닌 온전히 한민족들의 제국만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점령한 만주의 만주족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짐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더냐? 만주족 황후를 들여 후계자를 생산한다면 짐의 아이는 대한과 만주를 이을 중재자가 될 수 있다. 아직 불안정한 제국의 든든한 기반이자 대들보가 될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한민족 황후를 들인다면 짐이 세운 제국은 그저 우리 한민족들의 제국이 되고 만다.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만주족들은 머지 않아 큰 반란을 일으킬 터. 물론 진압할 수야 있겠지만 결국 제 살을 깎아먹는 것에 불과하다."


"황상의 말씀은 지극히 옳사오나. 적지 않은 관료들이 만주족들의 행태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동포들끼리 서로 죽이고 음해하는 것은 옛 성현들이 무엇보다 금기시 하였던 것이오니. 행여나 우리 조선..아니. 한민족에게까지 그런 음습한 문화가 전해질 지 걱정되옵니다."


"짐도 그것의 해악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서로 죽이는 것보다는 음해하는 것이 나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지금 북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회의란 것의 실제 진행이 파천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그대들의 불안 또한 가하다.


정사년(1857년)까지 황후로서 적합한 여식을 고르지 못한다면. 한민족 황후를 들이도록 하겠노라."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결국 아침의 회의는 2년 후까지 황후 간택을 만주족들의 손에 맡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차라리 이렇게 최후통첩을 날리는 것이 만주족들에게는 더 나을지도 몰랐다.


기약없는 내전을 벌이느니. 차라리 끝날 기한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만 지지고 볶고 한다면 뭔가 그럴듯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황제의 의사를 적은 전문은 다시 머나먼 길을 거쳐서 만주의 방방곳곳에 전파되었고. 이를 본 만주족들은 안도감과 함께 위기감을 느끼며 더욱 더 가열차게 다른 대가문들과의 정치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자신들의 딸들이 청의 황실이 아닌 대한의 황실로 시집을 간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청의 원정이 실패하고. 태평천국으로 인해 거의 완전하게 박살한 청의 행정력으로 인해 청나라의 사람들은 꾸역꾸역 살길을 찾아 만주로 몰려들었고.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만주족들은 이들을 가엾이 여기면서 하나의 공통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멸망해가는 청에서 사는 것보다. 떠오르는 신성인 대한제국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


이렇게 차츰차츰 바뀌어가고 있는 민족의 의식 앞에서. 민족 의식을 수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귀족들은 다름아닌 대체 누가 대한황제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며 열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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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1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7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800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60 24 12쪽
»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80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8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70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5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4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2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7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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