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09,630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5.04 06:00
조회
2,616
추천
28
글자
12쪽

도로망 정비

DUMMY

경복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한산 중턱에 있는 왕실 직속 공방에서는. 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증기기관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서양 열강이 사용하고 있는 그것과 비교하면 그 만듦새가 조잡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철종이 최소한의 증기기관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내탕금을 아낌없이 들이부어 만들고 있는 조선제 증기기관은. 어느새 제13차 성능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기대하는 눈빛을 하며 증기기관을 가동시키는 순간...


덜컥!


쿠릉! 쿠르르릉!


"오오오! 돌아간다 돌아가!"


"드디어!"


이게 웬걸? 모두의 예상 외로 13번째의 증기기관은 움직임이 약간 뒤쳐지고. 증기가 불안정하게 뿜어져나오긴 했지만. 무려 5분 째 가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조선의 기술자들이 집념으로 이루어진 승리를 자축하기 시작했을 때 즈음...


콰아아아앙!


"불이야! 누가 물 좀 가지고 와!"


"사람이 쓰러졌다!"


조선이 서둘러 근대화의 길을 걷기를 원하는 철종은 장인들에게 증기기관을 개발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증기기관은 '나는 나보다 미개한 자들의 손길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듯이 계속해서 실패를 이어갔다.


근본적으로 조선이 증기기관이라는 물품을 접해본적도. 다뤄본적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무엇보다 증기기관을 이루는데에 필요한 집약적인 기술의 총합의 부재가 너무나도 뼈아팠다.


서양이 그 유구한 시간동안 발전시켜온 야금학과 수학. 기체학. 다양한 이론들이 만들어낸 지식의 총합체인 증기기관을 오랫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조선의 기술자들이 단기간 내에 제작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철종은 사고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5분은 분명히 작동했다는 소리구나! 지난 번에는 겨우 1분만에 폭발을 하였으니. 참으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해줄테니. 그대들은 아무런 걱정 말고 증기기관의 제작에 전념하라."


누가 세종대왕의 피를 이은 자 아니랄까봐. 철종은 오늘도 수많은 공돌이를 갈아넣으며 증기기관 상용화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


그러나 증기기관의 연구와 실증에 필요한 기간이 점차 길어지자. 철종은 자신이 생각한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철도망 구축이 훨씬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철도망을 대신할 도로망의 정비에 착수했다.


어차피 철도망이 증기기관이 개발되고 난 뒤 미리 깔아놓은 도로망을 기반으로 깔아야 되니. 도로망을 지금 정비하고 구축한다고 해도 그다지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던 것이다.


전 국토를 X자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로는. 비록 흙을 다진 다음 자갈을 깔고. 그 옆에 돌로 담을 쌓은 수준에 불과하였지만. 지금 조선의 형편으로 보자면 참으로 근사한 도로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상업의 발달이 극히 미진했던 이유가 각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인 도로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생각한다면. 장차 서양 열강의 경제 침탈에서 저항할 수 있는 내수 경제를 갖추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도로망 정비에 착수해야 했다.


"도로망 정비 사업은 공조에서 담당하며. 매일 조회 시간 때마다 작업의 진척도를 적은 장계를 올리도록 하여라. 과인이 직접 도로를 시찰할 것이니. 혹여나 거짓 장계를 올릴 생각은 말도록 하라."


"신이 어찌 그리 망측한 짓을 하겠나이까. 신으로서는 그저 주상께서 이 미천한 자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겨주신 것만 하여도 가문의 광영이옵나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자들의 원할한 통제와 감시를 위해. 과인이 이하응을 감찰관의 자격으로 보낼 것이다. 둘이 잘 협력하여 조선을 더 부강케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렇게 해서. 조선의 도로망 정비 사업은 어명이라는 명목으로 지방의 백성들을 대거 동원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왕인 철종의 강력한 명령으로 인해. 작업에 참여한 자들은 보상으로 상평통보 10냥을 지급받았다.


상평통보 1냥은 쌀 한 되와 교환할 수 있었는데. 이 전무후무한 쌀본위제는 지금 조선의 금은 생산량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입된 본위제였다.


그러나 예상 외로 새롭게 발행한 상평통보의 교환 가치에 백성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는 아직까지 조선에서 돈을 가지고 살만한 매력적인 상품이 없기도 했거니와. 대부분의 국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특성상 금 몇개 은 몇개 하는 것보다 쌀 한 되 한 섬 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역의 대가로 돈을 준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한양이나 그 근처에서는 화폐가 돌았던 것을 혁파하고 지방에까지 화폐경제가 뿌리내리게 만들려는 철종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었다.


*


경성부.


이 조선 23부 중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곳이자. 가장 추운 곳에서는 삼남지방을 비롯한 남부 지방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가 부역에 동참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북부에는 인구가 원체 적었으니 결과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부역자 수는 비슷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이 농사철이기는 했으나. 어차피 이 추운 북부에서는 벼도 잘 자라지 못하니 대부분의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부역에 동참해 상평통보를 얻고. 그것을 쌀로 교환해 먹을 것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수 아범. 당신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농사지어야 한다고 몸서리를 치더니 오늘은 삽을 들고 나왔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아이고 말도 마라. 마누라 그년이 얼마나 등쌀을 떠미는지. 농사짓는 것보다 나가서 일하고 돈 받아오라고 밤마다 지랄을 하니까 어쩔 수가 있는감..."


"끌끌... 그렇게 젠 체는 다 하더니만. 결국 다 같이 흙이나 나르는 처지구만."


"시끄러워 임마!"


"..! 어이! 거기! 작업 중에는 집중하도록!"


"아 예에~ 죄송합니다 나리!"


서민들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점차 조선의 국민들은 차츰차츰 화폐 경제와 상업에 대한 이해를 키워가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따뜻하고 풍요로운 남부가 아닌 척박하고 추운 북부에서 조선의 상업 혁명이 일어날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


"나으리. 정말 이 소문만 퍼트리면 되는 겁니까?"


"그러하다. 이 나라의 온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산 속 깊은 곳까지 너희들의 발이 닿아야 할 것이야."


"아이고 그러문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희 보부상만큼 조선 팔.. 아니. 23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엽전을 주며 이 일을 맡기려 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발에 피딱찌가 앉도록 일하겠습니다."


한편. 영의정으로 승진해 완전한 철종의 측근이 된 이하응은 보부상들을 불러모아 조선의 여론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교통이 발달해있지 않은 조선에서는 직접 발로 뛰어 물품을 파는 보부상들의 입김이 거셌는데. 이들을 국가의 아래에서 통제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조선의 모든 정보와 여론이 왕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해안가부터 시작하도록 하라. 이양선이 출몰하면서 불안해하고 있을테니. 이제부터 주상께서 색목인들과 교류하려 한다는 소문만 흘려도 가할 것이다."


"예에. 그럼 부하들을 풀어놓겠습니다."


"음. 정기 보고는 절대 잊지 말아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보부상들이 떠나가고. 이하응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지도. 정확히 말하자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보았다.


지도는 부정확하고. 비정상적으로 축약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이 지도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저 동쪽 끝에 찌그러져 있는 자그마한 소국에 불과했다. 벌써 400년이나 지난 지도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하응은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지도를 구겨 던져버리고서는. 다른 지도를 꺼냈다. 조선의 21대 국왕 영조 시기에 만들어진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였다.


동쪽 나라의 큰 지도란 뜻의 동국대지도는. 중국 대륙도 아라비아 반도도 없이 오롯이 조선 반도만을 나타낸 지도였다. 물론 만주 일부와 일본의 일부를 지도에 담았기는 하지만. 지도의 중심에는 조선이 우뚝 서 있었다.


이하응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는 다르게 동국대지도를 곱게 접어서 다시 서랍에 넣고. 그 서랍에 있는 마지막 지도를 꺼내들었다.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순조 시기에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근대식 지도였다.


이 지도에 중심은 없었다. 저 드넓은 대양과 대륙들과 비교하면 천하의 중국조차 너무나도 작아보였다.


하다못해 그 중국보다도 한참이나 작은 조선은 어떠한가.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세계는 넓었고. 조선은 작았다.


이하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에 지구전후도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멀찍이서 그 지도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작구나.. 참으로 작아... 우리 조선이 이렇게나 작은 나라였단 말인가.."


여지껏. 이 조선은 쉬이 꺾이지 않을 나라라고 믿고 있던 이하응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가? 고작 종이 하나가 한 인간의 심성을 뒤틀어놓았건만. 저 머나먼 서역의 책자들과 기물. 그리고 무기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삶을 비틀리게 만들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이하응은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았다. 조선은 약했다. 중국보다도. 일본보다도. 아마 세계 국가들간에 순위를 매긴다면 틀림없이 최하위권에 들 나라가 조선이리라.


이하응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생각해야 했다. 이 조선을 강대하게 만드려면. 이 동방의 진주로 만들려면 대체 무엇을 해야하는가.


변해야 했다. 지금까지의 인습과 작별하고. 새롭고 시대에 맞는 정신과 문화를 이 조선에 다시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차근차근. 욕심을 부리지 말고. 곧 몰려올 새하얀 악귀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 그들의 것을 취하자. 그리한다면 조선은 더욱 더 성장할 것이니. 인내란 성장통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그 고통을 참아낸다면 밝은 미래라는 달콤한 과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


...


이하응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일국의 대신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려움에 빠진 일개 필부의 눈빛이 초롱볼에 드러났다.


'이 조선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 우리는 500년의 세월동안 나라를 이끌어왔다. 그렇다면 600년도. 700년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피식.


그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나갔다. 어째서 변해야 하느냐고? 뻔하지 않은가. 모든 고인 것들은 썩고. 이 나라는 500년이나 한 자리에 고여 있었다. 이 조선의 성군들이 펼친 정책들도 결국에는 연못 안의 파동이었을 뿐.


이제 연못과 강을 이어. 커다란 강줄기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강줄기와 하나되어 고인 것들을 뱉어내고. 깨끗한 물을 받아 다시 물고기들이 활개치고. 짐승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강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교훈: 공돌이를 갈아넣었을 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더 많이 갈아넣어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철의 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1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7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800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60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80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8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70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5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5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4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2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7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7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