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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09,631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5.12 06:00
조회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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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2쪽

열강들과의 접촉.

DUMMY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새뮤얼 헤이든. 영국의 상인입니다."


"환영합니다 새뮤얼 씨. 서양의 중심인 대영제국의 일원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칭찬이 과하십니다. 저는 일개 상인일 뿐이니. 마음 놓고 대하십시오."


"하하! 설마요. 새뮤얼 씨가 알고 지내는 의원들만 두 자릿수가 넘는데 고작 저 같은 사람이 말을 놓아서야 되겠습니까?"


"....이거이거.. 벌써 다 알고 계셨군요. 인맥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티가 났나 봅니다."


"뭐 살다보면 모두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인천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인천항에 계시는 한. 새뮤얼 씨는 영국법에 의해서만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를 익힌 조선인 관료가 넉살좋게 웃으며 인천항을 소개했다. 조선인의 눈에는 꽤나 번화한 항구도시로 보이겠지만. 산업혁명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온 새뮤얼에는 그저 더럽고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다.


그가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한 것은.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자신이 영국에서 얼마나 큰 손인지를 알고 있는 조선의 정보력이었다.


물론 홍콩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다녔으니 알아낼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었겠지만. 그래도 수백년간 외부와의 접촉을 하지 않는 동방의 소국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그로서도 꽤나 이외의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정보력은 뛰어난 것 같군.. 정보를 전담하는 조직이 따로 있는건가..? 사업을 벌일 때 주의하지 않으면 당할 수 있겠어.'


새뮤얼은 자신이 생각했던 조선의 평가를 C-에서 C+로 바꾸었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결국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상인인 새뮤얼 헤이든은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이제 한 3주 후에 제 조국에서 대사가 도착할 겁니다. 영국의 여왕 폐하께서는 조선과의 우호적 관계를 바라고 계시니. 서둘러 조선의 국왕을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반가운 소식이로군요. 그럼 이제 인천항을 자유롭게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죄송하지만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이거. 바쁜 사람을 너무 붙잡은 것 같군요. 조심히 가시기 바랍니다."


조선인 관료가 떠나가자. 새뮤얼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인천항을 둘러보았다. 분명 저 관료는 인천항에서는 영국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지. 다른 곳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말인즉슨 인천에서 조선의 수도인 한성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그가 사회 진화론에 찌든 영국인이라 해도.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이었다. 그로서는 이가 갈리도록 느꼈던 영국 정치계의 은근하고도 노골적인 무시에 비하면야. 거의 무구할 정도의 순수함을 간직한 동방의 사람들이야말로 그의 마음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보자.. 시간이.. 12시 43분.. 그러보니 밥 짓는 냄새가 나는군."


화려한 은 도금이 되어있는 고급진 회중 시계는 정확하게 12시 43분을 가리켰다. 어느새 인천항 곳곳에서는 새하얀 김과 함께 밥 짓는 소리와 아이들이 보채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홍콩에 있을 때는 입에 물리도록 차와 빵을 먹었으니.. 이곳에서는 밥을 한번 먹어봐야겠군."


영국인이 차에 미친 인종이라고 해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하루에 10번도 넘게 정계 인사들과 만나서 홍차를 먹고. 사업 대상과 만나면서 홍차를 먹고. 청국 관료들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홍차를 먹으니 아무리 영국인이라 해도 홍차에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맛이라도 좋았다면 모를까. 19세기 중반 보존기술력의 한계로 인도나 영국에서 실어오는 찻잎은 대개 질이 좋지 않았다.


우유를 넣는다거나 설탕을 더 넣는다거나 하는 어레인지도 가끔씩의 별미였지. 하루에 화장실을 20번도 더 넘게 갈 정도로 홍차를 마셔댄 그에게는 이제 홍차란 진절머리가 나는 무언가에 불과했다.


'근데 조선말은 하나도 모르는데 어쩌지..'


중국어는 조금 할 줄 알지만 인천항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어는 절대로 아니었다. 중국의 속방이라기에 언어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이것은 엄연한 새뮤얼의 실수였다.


'영어로 길을 물어볼 수도 없고.. 배는 채워야겠는데..'


새뮤얼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너무 호기심이 앞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인천항에 들어온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보통 그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은 미리 하인을 보내 지리를 익혀놓거나. 아니면 미리 준비해 둔 서양식 저택에 머물렀으니 말이다.


고심하던 새뮤얼은 이내 자신이 막 잉글랜드에 들러온 아일랜드 출신 노동자였을 때를 생각해냈다. 지금은 점심시간. 조선인들도 점심을 먹으러 집이나 식당에 들를 것 아닌가.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하나를 따라가면 분명 집이나 식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오.. 이곳이 한성인가."


솔레유는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평생동안 한적한 시골 항구마을에 갇혀있는 게 싫어서 상선의 선원으로 지원하였는데. 설마 머나던 동방의 수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늘 생각하던 야만인의 부락같은 수도를 생각하던 솔레유는 내심 자신이 오만했다고 생각하며 군관들의 안내를 받아 한성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유명한 주막부터 조선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 그리고 실질적으로 왕과 신하들이 나랏일을 보는 창덕궁과 창경궁. 북한산을 포함한 한성의 모든 것이 서양인인 솔레유에게는 마냥 신기하게 보였다.


"안타깝지만 이제 자네와 동행하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겠군. 이제부터는 수도의 시위대가 자네의 신분을 맡을 거네."


"시위대? 그게 뭡니까?"


"왕을 경호하는 군대지. 자네의 나라에는 없나?"


"아. 근위대 말이군요. 생소한 단어라..게다가 저희 나라에는 왕이 없습니다."


"왕이 없는 나라도 다 있나?"


1850년인 지금.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2공화국의 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2년만 지나면 나폴레옹 3세.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 직접 일으킨 친위 쿠데타로 인해 제2제국이 탄생할 테지만. 지금 솔레유가 그런 것을 알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잘 모르는 조선의 군관들도. 왕이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솔레유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한성까지 군관들과 같이 동행하느라 조선말도 많이 늘고. 조선에 대한 인식도 많이 나아진 솔레유는 비록 시골 항구 마을 출신이라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성심 성의껏 대답을 들려주었고. 군관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불란서의 수도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는 거군.. 쯔쯔.. 정치를 얼마나 못했으면 백성들의 손에 군주가 쫓겨날까?"


"투표권? 허 참. 서역에는 신기한 관습도 다 있군 그래."


루이필리프가 쫓겨난 것은 시대의 한계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군주로서는 대범하게도 반역자들과 혁명 세력을 끌어안으려 노력했던 왕이었으며. 사생활도 깨끗했고. 알제리를 병합하여 국가의 강토를 늘리기도 하였다.


하다못해 왕을 퇴위시킨 민중들도 '루이필리프여! 당신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백년만 빨리 프랑스의 군주로 태어났다면 프랑스는 18세기의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못가 '제국은 곧 평화다'라는 주옥같은 말을 남긴 160cm도 안 되는 난쟁이 황제가 즉위하여 프랑스에 씻지 못할 치욕을 안길 것을 생각하면. 루이필리프 1세의 치세는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그렇게 진위대가 인사를 하고 떠나가고. 더 짙은 색의 군복을 입고 있는 시위대가 솔레유의 신분을 인계받았다. 벌써 점심 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로 근처의 주막에 가던 도중. 솔레유는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나으리들. 저게 뭡니까?"


"음? 아. 통신사의 행렬이군."


"통신사가 뭡니까?"


"흐음... 사신들이 무리지어서 이동하는 걸세. 불란서에도 같은 관습이 있나?"


"글쎄요... 제가 도시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사신을 호위할 병력을 따로 배치해놓기는 할 테지만요."


솔레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프랑스 중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에서 자란 그가 도시의 화려한 풍경이나 사신들의 출정을 볼 수 있었을 턱이 없었다.


군관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럴 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는 몰라도. 질문이 끝나자 솔레유는 한성을 지나 어느새 인천항에 다다랐다.


"으으.. 바다 냄새."


"익숙한 냄새 아닌가?"


"파도에 휩쓸려보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뭐. 아무튼 이제부턴 이 여관에서 지내도록 하게. 조정에서 직접 운영하는 여관이니 눈치 볼 것 없어."


군관의 말에 솔레유는 젊은이의 눈으로 여관을 바라보았다. 조선에는 흔치 않는 5층 건물이었는데. 이는 조정에서 서양인들에게 낮잡아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쓴 덕택이었다.


그 덕에 평범한 주막 10개를 지을 예산과 자원이 여관 하나에 들어갔지만. 그것을 차치한다면 객관적으로도 잘 만든 여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네의 방은 2층 3호네. 좋은 시간 보내게.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 말에 솔레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 그는 고작 입고 있는 옷 한 벌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조선의 외지인 아니던가.


조선에서 삼을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양과의 접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아무런 값도 받지 않고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여관의 침대에 누워 어떻게 돈을 벌까 생각을 하던 솔레유의 눈이 번쩍 뜨였다.


"Écrivons un livre!"


책을 쓰자!


하멜 표류기도 밀린 월급 타내려고 작성했으니. 돈 벌려고 조선을 팔아먹는 게 뭐가 나쁘겠는가. 자신이 이곳에서 지내면서 경험한 조선의 풍습이나 문화. 사람들에 관한 것을 책으로 집필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수천권은 팔리지 않겠는가?


솔레유는 자신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기뻐 당장 종이와 잉크를 사러 바깥으로 나갔고. 이내 땅을 치고 후회하였다.


그에게는 종이와 잉크를 살 돈조차 없었던 것이다.


*


"Oh belle fille ~ Serre-moi dans tes bras. J'habite dans la même maison. Allonçons-nous dans le même lit et chuchotons l'amour. Oh mon amour. Oh mon amoureux."


프랑스어로 된 서정적인 노래를 중얼거리며. 프랑스가 조선에 파견한 대사인 레오 로헝은 느긋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즐기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낯선 항구를 바라보았다.


이제 저곳이 그가 부임할 낯선 동방의 소국. 조선이었다.


"여보. 바람이 찹니다. 들어가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런.. 당신은 너무 낭만이 없다니까? 이리 와 비비엔느. 저기가 우리가 이제부터 살 곳이야."


"하아.. 이제 막 파리의 빵 냄새에 적응해가고 있는 참이었는데.."


"껄껄! 이제부턴 밥 짓는 냄새에 익숙해져야 할거야!"


레오는 털털하게 웃으면서 게슴츠레 뜬 눈으로 동래항을 바라보았다. 저 조선의 땅이야말로 레오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줄 동방의 진주였다.


작가의말

보험사: 아니 그냥 돌아와도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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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60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80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8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70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5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5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4 27 12쪽
»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2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2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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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7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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