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09,616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5.05 06:00
조회
2,433
추천
28
글자
12쪽

첫 접촉

DUMMY

쿠릉! 쿠르르르릉!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변덕스러운 태평양의 날씨는. 가엽게도 한 프랑스의 상선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솔레유! 어디 있나!"


가장 좋은 옷과 가장 높은 모자를 쓴 선장이 하층 선실의 책임자인 솔레유를 불렀다. 그러자 아랫쪽에서 쪽문을 열고. 홀딱 젖은 솔레유가 간신히 입을 열어 보고했다.


"선장님! 하층부에 물이 차오릅니다! 펌프를 가동시키긴 했지만 물이 너무 빨리 차오르고 있어요! 보일러실까지 해수가 차오르면 저희는 끝장입니다!"


"Merde! 최대한 물을 빼내고 뚫린 부분을 막아!"


"못합니다! 아예 하층부가 뚫려벼렸어요! 겨우 못과 망치가지고는 안 됩니다!"


프랑스의 상선인 Déesse du soleil(태양의 여신) 호는 폭풍우를 만나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풍랑이 거세지면서 파도가 높아져 선체에 무리가 갔고. 무리가 간 선체에 딱딱한 돌이 부딫히면서 배의 하층부가 완전히 갈려나간 것이다.


게다가 풍랑으로 인해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이 상황속에서 터져버린 배의 하층부를 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하층 화물실에 있던 화물도 전부 바닷속으로 빠져버린 상태. 이대로 기적이 일어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한들 비싼 위자료를 물어내야 할 것이다.


"선장님! 저길 보십시오!"


"젠장! 또 뭐야!"


선장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보고한 선원의 말을 따라 왼쪽을 보았다. 배를 집어삼키고도 한참은 남을 정도로 큰 파도가. 그들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Dieu. Protégez-nous.."


쿠아아앙!


파도가 배를 덮쳤다. 그리고 이내 태평양은 언제 태풍이 몰아쳤냐는 듯. 다시 아름답고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


개항장 중 하나인 동래는 철종이 경술개혁을 선포한 후 급속도로 바뀌었다. 기존에 쓰던 낡고 좁던 항구는 넓고 깨끗한 신식 항구로 바뀌었고. 부두의 끝자락에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로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거대한 간판이 세워졌다.


한 마디로 국가적으로 거하게 가오를 잡은 것이었다. 저 4국의 언어로 간판을 적은 것도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야 했으니 말이다.


아직 서양과 적극적으로 교류를 시작하지 못한 탓에 항구의 기능도 많은 것이 떨어졌고. 확장을 했다지만 서역의 열강들이 본다면 코웃음을 칠만한 규모였다.


그나마 한성과 가까운 인천의 항구는 서양인들이 봐도 꽤나 잘 만들어진 항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동래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항구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상선이나 화물선은 이미 큰 시장이란 것이 알려진 중국이나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야금야금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으로 갔지. 아직까지 중국 옆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소국인 조선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양 열강들의 무관심은. 한 사건을 통해 크게 격변하게 된다.


*


"..... 쿨럭! 쿨럭!"


태양의 여신 호의 하층 갑판장이었던 솔레유. 그는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물론 그 대신 반쯤 조각나버린 배에 묶여 있는 신세였지만 말이다.


"허억..! 허억...!"


솔레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양의 여신호는 암초에 걸려 있는지 뒤쪽이 반쯤 바다에 잠겨 있었고. 앞쪽은 완전히 박살나 암초에 간신히 그 비대한 몸뚱이를 걸치고 있었다.


생존자는 찾아볼 수 없었고. 사방에는 물에 젖어 뒤틀린 목재와 폭발해버린 보일러의 파편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솔레유는 혹시 몸에 파편이 박혔을까 생각하며 제 몸을 더듬거렸다. 다행히도 그의 몸은 멀쩡했고. 단지 충분한 영양공급과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다.


"여기가 어디지? 부디 해적 소굴만은 아니어야 하는데..."


19세기에도 해적은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국제법은 유명무실했으며. 해적들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선량한 상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두려움에 다리를 떠는 솔레유가 간신히 몸을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자. 다행히도 서쪽에 큰 항구가 보이는 것 아닌가!


"Sauve moi! Une personne est piégée ici!"


여기가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솔레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어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흐릿하게 보이는 저 서쪽 항구의 간판에 프랑스어로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적힌 것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N'importe qui?! Quelqu'un est-il ici!"


그러나 안타깝게도 항구와의 거리는 꽤나 먼 데다가 안개까지 끼어있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리. 솔레유가 아무리 소리쳐도 바닷가는 원체 소음이 많은 곳이니 묻히기 십상이었다.


"Pas question ... je meurs ici ... je ne me suis pas encore marié ..."


"거 괜찮나?"


"Je suis surpris! Qui es-tu?!"


"보아하니 색목인 같은데. 아마도 배가 난파된 모양이군. 타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


"그래. 저 색목인이 어디에 있었다고?"


"거 동래에서 동쪽으로 한 3시간만 가면 큰 암초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 왠 이양선 하나가 완전히 망가진 채 꽃혀 있고. 그 안에 색목인 한 명이 갇혀있더군요."


"흐음. 풍랑을 만난 모양이군. 다른 생존자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저 사내 혼자만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쯔쯔.. 젊은 것 같은데. 안타깝기도 하지."


조선 후기에 이양선을 모는 서양인들과 조선인들이 험악한 사이었다고는 하나. 다 같은 뱃사람들끼리는 공통된 코드가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과 친지들. 그것만큼 뱃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어디 있겠는가.


"조정에 장계는 올렸는가?"


"동래항에 도착하고 난 뒤 바로 올렸습니다. 지금쯤 색목인은 전하께서 내려주신 교지대로 식사를 하는 중입니다."


"흐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사람이 밥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니."


"책을 읽어보니 저들은 어떻게 사람이 빵을 안 먹고 살 수 있는가를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아도 전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안내하게. 그와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으니."


"통역관을 준비하겠습니다."


중국에서 돈을 주고 들여온 통역관을 대동하고. 동래부 진위대의 참위 정송욱은 정체불명의 색목인이 머물고 있는 왜관으로 향했다.


*


우물우물.


솔레유는 정신없이 빵과 베이컨. 그리고 우유를 들이키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흔치 않은 음식이지만. 철종의 지시대로 색목인인 이런 것을 식사로 여긴다고 말해 준비한 것들이 빛을 발한 것이다.


"저 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게나."


"Salut. Envie d'en acheter maintenant?"


프랑스어가 들려오자. 솔레유는 눈을 댕그랗게 뜨고 손에 쥐었던 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선 아직 입 안에 남아있던 것을 꿀떡 삼키고서 말했다.


"Oui Merci à toi. Merci beaucoup."


"Comment était ton repas?"


"C'était bien. Franchement, c'est du pain en Asie. Bacon. Je ne savais pas si je pouvais manger du ragoût."


프랑스어로 솔레유가 통역관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정송욱 참위는 결국 통역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보게. 일던 저 자의 이름을 물어봐주게. 어떻게 이 조선의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는지도 말일세."


"Quel est ton nom. Comment avez-vous dérivé vers la mer?"


"Je m'appelle «Soleille». Je suis allé en Chine sur un navire marchand et j'ai rencontré une tempête."


"자신의 이름은 솔레유고. 중국으로 가는 상선에서 폭풍우를 만나서 이리 되었다고 합니다."


"솔레유라. 색목인의 이름은 요상하기 짝이 없구나."


"Que vient-il de dire?"


"Il a dit que les noms des occidentaux étaient incroyables."


그 후로 많은 대화들이 오갔다. 솔레유는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신을 본국. 즉 프랑스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본국과 대화를 하여 이 조선이 서양의 국가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송욱 참위를 비롯한 동래부 진위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한성으로 이송시켜주겠다고 말하였다.


*


"허어. 색목인이 한성으로 온단 말인가. 그렇다면 필시 한강을 통해 산둥 반도를 거쳐 홍콩으로 가겠구나."


동래부장관이 올린 장계를 본 철종은 순식간에 솔레유가 갈 길을 짐작해내었다. 사실은 이 시대에 그것 말고 딱히 다른 길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지금 청의 조정도 색목인에 관한 것은 대부분 손을 놓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아편전쟁이 청의 패전으로 끝나고. 홍콩 섬을 빼앗긴 지금. 홍콩은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신성과도 같았다.


"그나저나 안타깝구나. 2년만 더 후에 왔더라면 완전히 달라진 한성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철종은 내심 색목인이 한성부를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 재정의 20%를 소모하면서까지. 한성부에서만큼은 근대적인 상수도 시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나머지 22부에도 상수도 시설을 설치하고 싶었지만. 지금 한성부만 해도 왕궁. 그러니까 창덕궁을 부근으로 한 육조거리 인근에만 상수도 시설이 완전히 설치되어 있는 상태.


한성부 전체에 상수도 시설을 깔려면 2년은 족히 걸린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철종은 내심 실망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선원이 한성을 방문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신들도 그것을 아쉬워 하는 중입니다. 색목인들의 도시는 조선의 도시와는 다르게 매우 번화하고 화려하다고 하니. 조선의 도시를 보고 내심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우려되옵나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를 구해주었는데 그런 배은망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경들은 이제 그에 대한 관심을 끄고 자금 마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보시오."


철종이 선을 긋자. 선정전에 모인 신하들이 제각기 자금 마련에 대한 논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오늘 모인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조선이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하엿지만. 아직도 조선은 가난한 국가였다. 그리고 근대화의 조건 중 하나는 풍부한 재정. 수취 제도를 개혁하고 민생을 챙긴다고 한들. 수백년을 내리 이어져 온 전통 아닌 전통은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지지부진한 토의가 이대로 끝나려뎐 찰나. 영의정인 이하응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래. 영의정. 그대는 무엇인가 계책이 있는가?"


"예. 전하. 중국이 도자기와 차를 판다면. 저희는 인삼을 팔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45 세계최강천
    작성일
    20.05.08 18:48
    No. 1

    인삼은 서양쪽한테는 안먹힘요. 지금에도 건강식품이다 뭐다해서 조금 팔리지만...... 아쉽게도 조선에서 서양에 팔아먹을 제품이 안보이네요. 화장품이나 사치품 개발해서 팔아먹어야 할듯 싶네요...지금은 서양제품 수입하고, 일본이나 중국에다 수출해야 할듯 보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geno
    작성일
    20.09.01 15:16
    No. 2

    딱딱한 돌이 부딪치면서... 암초에 부딪치면서. 암초에 걸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0.09.23 22:43
    No.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철의 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1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5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799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59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79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7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69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4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1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6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