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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09,597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6.15 06:00
조회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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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2쪽

만주로의 진군.

DUMMY

만주의 어느 마을. 그곳에서는 난데없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배신자 같으니! 네놈이 그러고도 만주족이더냐!"


"크흐흐... 어르신. 제가 배신자라고요? 제가? 그저 조선인 아내를 들였다는 것만으로 말입니까?!"


잔뜩 성이 난 늙은 노인과 그 반대로 바닥에 엎어져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는 젊은 사내. 대관절 무슨 연유로 싸움이 난 것일까.


"그렇다! 어찌 하찮은 동이를 아내로 들여 천하의 주인인 만주족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느냔 말이다!"


"어르신!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연탄도. 먹고 있는 쌀도. 입고 있는 옷이 어디서 온 건지는 아십니까? 전부 압록강 이남의 조선에서 온 거란 말입니다!"


"이 놈이 그래도...!"


조선과 만주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은 단순히 왕래나 국경이 희미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경계가 흐려진 것은 민족의 경계로. 만주족과 조선인들 사이에서 점차 통혼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야 그다지 이상할 점은 없었다. 원래 사이가 가까워지면 남녀상열지사가 일어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주족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만주족이 아닌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주족 아비나 어미를 두었음에도 만주어는 할 줄도 모르고. 조선말로 이리저리 쏘아대며. 말 하나 제대로 탈 줄 모르는 혼혈아들은 보수적인 만주족의 중노년 세대에게 큰 혐오감과 함께 위기감을 주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만주족은 저 오랑캐와 똑같은 피를 지니게 될 것이야. 그렇게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해!"


"앞으로 조선인 아내나 남편을 둔 이는 족보에서 파버릴 줄 알아라! 같은 피를 잇는 사람들끼리 아이를 낳아야지. 어찌 동이 오랑캐와 혼인을 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나 이러한 중노년들의 강압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이 조선인과 혼인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났으며. 1854년에 이르러서는 만주에서 사는 만주족 중 20%가 조선인 아내나 남편을 두었다는 통계 결과가 발표되면서 만주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태평천국군이 북진과 서정을 하면서 청의 내부 사정이 영 메롱인 이때. 수구적인 만주족 중 일부가 '자경단'을 결성해 민족의 혼을 더럽히는 배신자들을 손수 '처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


창덕궁의 편전. 그곳에서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철종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신하들이 만주족을 성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슨 수를 내어야 합니다 전하! 우리의 백성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영의정 이하응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주상께 고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편전 내의 분위기는 유래없이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의 백성들이 맞아 죽는데 차분한 관리들은 이 궁 내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영의정의 말이 옳다! 만주와 인접한 의주부, 강계부, 갑산부, 경성부의 진위대들을 차출하여 결사대를 결성하여 만주의 조선인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하오나 전하. 만주는 아직까지는 청의 영토이옵니다. 아무리 청이 병든 용이라지만 아직도 용의 기개를 가지고 있사온데. 청의 영토 내로 군사를 들이민다면 아무리 함풍제라고 해도 조선을 비호할 명분이 없사옵니다."


"이제 명분은 필요없다. 저들이 명분을 주고 있지 않느냐. 이제 우리도 조선이 다시 만주를 탈환할 때가 되었다."


"그..그 말씀은..!"


"조선 23부에 공문을 보내거라! 조선인을 해하는 간악한 만주족들을 벌하러. 조선의 정병들이 만주로 나아간다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철종의 기세는 마치 산을 뽑을 듯하여. 편전 내에 앉아있는 그 누구도 주상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였다. 그러나 무지한 자들도 깨어있는 자들도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이제 청과의 전쟁이 막을 올렸다는 것이다.


"결사대의 지휘관에게는 만주의 지형도를 나눠주고. 병사들도 최정예를 가려 뽑도록 하라! 이제 소중화의 기치는 내다버릴 시간이 왔다! 이제는 청도. 명도 없는 시대다! 이제 우리가 황제국이 될지며. 이 조선반도와 저 드넓은 만주를 손에 넣어 제국을 이룩할 시기가 왔노라!"


철종이 옥좌에서 일어나서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단정하게 자른 수염은 마치 정복자를 뜻하는 듯 했고. 한때 조선의 최고존엄을 의미했던 곤룡포는 그 의미를 잃은 듯 했다.


이제. 더 몸에 맞는 왕관과 의복을 맞출 때가 된 것이다.


*


청의 자금성.


"폐하! 폐하! 큰일..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더냐?!"


"조선왕.. 조선왕 이변이.."


"조선왕이 어쨌다는 말이냐! 바르게 고하라!"


"폐하. 이것을.."


다급하게 달려온 전령이 가슴을 두드리며 함풍제에게 서신을 건네었다. 돌돌 말린 서신을 펼친 함풍제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였다.


"만주가... 공격받고 있다고?"


"?!"


"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만주가 공격받고 있다니요? 감히 우리 대청이 발호한 성지를 침공한 오랑캐가 누구란 말입니까?"


"조선군...조선군이 지금 만주를 공격하고 있다.."


"?!"


다름아닌 함풍제의 말이 편전에 자그마한. 아니.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이 드디어 미쳤단 말인가? 지금 만주의 만주족들이 조선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주고 있는데. 어째서 그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침공하고 있는 것인가?


웅성웅성, 술렁술렁.


자금성의 편전은 순식간에 아우성으로 가득찼다. 지금 태평천국군이 북경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태평천국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투력과 쪽수를 가진 조선군을 상대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청'에게는 말이다. 이미 함풍제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대청유신회는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폐하! 신 병부상서 아뢰옵나이다!"


"..오오! 그래. 무언가 계책이 있는가?"


"지금 천하의 기치가 참으로 어지러워 조선왕 이변이 무슨 목적으로 성지를 침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감히 동이 오랑캐들이 성지를 침범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능히 군사를 내어 동이를 정벌하는 것이 옳습니다!"


"병부상서의 말이 옳습니다 폐하. 무릇 천하의 질서는 정해져 있는 것이온데. 일개 번국이 함부로 질서를 어그러뜨리고 있으니. 마땅히 징벌해야 하옵니다!"


이미 대청유신회의 회원으로 가득찬 편전에서 병부상서와 예부상서가 분위기를 잡자 지금 흘러가는 공기를 깨달은 중신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폐하! 조선을 징벌해야 하옵니다!"""


"폐하! 부디 윤허를 내려주소서!"


"조선왕 이변이 이럴리가 없다.. 이럴리가 없는데.."


"폐하! 동이의 역적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성지를 불태우고 약탈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부디 칙서를 내려 천병을 모으고. 조선왕 이변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칙서를 내리소서! 폐하!"""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중신들의 외침. 함풍제는 서신의 내용과 아우성을 치는 중신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


그리고 칙서가 내려지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패닉에 빠진 함풍제는 조선왕에게 서신을 보내겠다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고. 그 짧은 순간에 병부상서의 말대로 조선군은 만주족 강경파들을 척살하며 만주 전체를 휘어잡았다.


"빌어먹을 동이 오랑캐놈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제 빌어도 소용없다! 대국의 천병이 너희들을 쓸어담을 것이야!"


"죽여."


탕!


털썩!


총성이 울려퍼지고. 또 다른 만주족 강경파가 죽었다. 팔기군이 참으로 용맹하게 맞섰지만. 이미 근대식 무기와 훈련으로 전투력이 한 500배는 오른 조선군은 구식 전술과 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조선군은 가장 먼저 남만주. 그 다음에 연해주. 그 다음에 북만주에 들이쳐 현지 관료들을 포섭하거나 숙청했고. 그 빈자리는 조선에 빌붙기로 결정한 친조파가 들어섰다.


"네 충성이 참으로 갸륵한 바. 이 현령의 자리를 네게 하사하노라. 주상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라."


"주상 전하 천세! 주상 전하 천세! 저희는 저희의 구원자이자 해방자이신 조선군을 환영합니다! 평생토록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함풍제가 우물쭈물하며 서신에 쓸 내용을 끄적이고 있는 1개월 동안. 만주에 주둔하던 청군은 몰살당했고. 다른 곳에 있는 청군은 명령을 받지 못해 강 너머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도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장군! 내보내주십시오! 만주는 제 고향입니다. 제 가족들과 친우들이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내 고향도 만주다 이것들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군을 움직이면 반역이란 말이다! 목이 저잣거리에 내걸리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병영으로 돌아가라!"


"장군!"


"시끄럽다!"


청 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실제로도 아무것도 안 하는) 함풍제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를 달렸고. 함풍제가 고심해서 쓴 서신도 대청유신회에 의해 유실되면서 결국 함풍제는 눈물을 머금고(?) 조선에 대한 토벌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덜덜덜덜..


만주의 으슥한 숲 속. 나무에 묶인 두 사람이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는 총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총구 뒤에 있는 것은 동이 오랑캐. 즉 조선의 군사들이었다. 총을 들지 않은 장교로 보이는 자는 연초를 빨아들이고 연기를 뱉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말하리다. 지는 해인 청을 버리고 뜨는 해인 조선으로 오시오. 후하게 대접해드리다."


"...멍청한 것들.. 우리보다도 더 유교를 신봉하는 것이 너희들 아니었나? 헌데 선비로서한 생에 두 주군을 섬기려 하다니.. 죽여라."


탕!


"후우... 그쪽은 어떻소? 조건은 전과 같소만."


"뭐..뭐든지 하겠소! 조선 왕..아니아니! 주상 전하께 충성을 바치리라!"


"드디어 말이 맞는 동지를 만났구려. 풀어드려라."


"예!"


만주족 온건파라고 해서 숙청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거의 몰살 수준으로 죽은 강경파에 비하면야 적기는 했지만. 조선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온건파들 또한 숙청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조선과 친하다고 해도 정복자를 흔쾌히 받아들일 인사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온건파 또한 수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경파와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곤. 조선의 짧은 치세에 대한 평가는 대외적으로는 좋은 편에 속했다. 도적떼(팔기군)이 소탕되면서 치안도 안정되었고. 연탄도 각 가정에 배급을 실시함으로서 적어도 얼어죽을 걱정은 없었으며. 각 마을의 유력 인사들은 형식적인 충성 맹세만 받고 건들지 않아 지방의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주족들이 조선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청군과 팔기군을 압도적으로 털어버린 조선의 군사력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총을 쏘면 전열이 무너지고. 대포를 쏘면 장군들이 날아간다... 두렵구나! 우리는 결코 저 정병들에게 맞설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고개를 꺾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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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5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798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59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79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7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7 20 12쪽
»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0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2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6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69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0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3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7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1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899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4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1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1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2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3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5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49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4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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