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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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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25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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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8 06:00
조회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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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가깝고도 먼 사이

DUMMY

원교근공. 먼 나라와는 교리를 맺으며. 가까운 나라는 공격한다는 사자성어에 맞게 이웃나라인 조선과 일본은 오랫동안 그르렁거리는 험악한 사이는 아닐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깔보고 무시하는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일본이 많은 인구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인구가 적은 조선을 무시했다면. 조선은 정교하게 발전한 유교 문화와 극도로 체계적인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일본을 섬나라 야인들이라고 무시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수백년 동안 무시해오고. 왕래도 제한적으로만 해오던 두 나라가 이렇게 선뜻 손을 잡으려 노력한 것은 일견 뜻밖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으나. 두 나라는 오랜 원한을 청산하고 서로 손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왜냐고? 이게 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국가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으로서는 근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서구의 관심을 대신 맞아줄 방패가 필요했고. 일본으로서는 장차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나갈 교두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비록 각자 다른 꿈을 꾸고 있었지만. 한 가지만은 절대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또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천황도 다이묘도 쇼군도 전부 엿 먹으라고 해. 내가 굶을 때 쌀 한톨이라도 대줬어? 하지만 저들을 따르지 않으면... 일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은 누구든 변화를 두려워했다. 특히 그것이 낯선 세력에 의한 급격한 변화라면 더더욱 말이다.


두 무장 세력이 있다면 그 중 자신들에게 더 가까운 무장 세력의 편을 들어주는 게 인간이었으니. 두 국가의 백성들은 체제에 불만이 많던 적던 외세에 맞서려면 일단 서로 뭉쳐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당장 집안의 대들보가 기우는데 남의 집 창고를 기웃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부를 단결시키는 것에는 외부의 적이 특효약이듯.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부터 다가오는 거대한 시대의 파도에서 살아남으려면 거북하더라도 서로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大朝鮮国万歳! あなたの王に神々の祝福を!"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조선 통신사는 계획대로 100만석의 쌀을 민중에게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왠 낯선 복식을 입은 자들이 쌀을 나누어주니 관은 물론이고 민간도 수상히 여겼지만. 그들이 조선에서 온 귀인들이라는 것을 알자 일본의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통신사가 나누어주는 쌀을 들고 나르기 시작했다.


"대감. 이제 충분히 나누어 준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이동하시죠."


"음. 그러세나."


통신사의 수장인 박규수는 조선의 백성들과는 다르게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일본의 백성들을 보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들여온 쌀과 저수지와 보의 대대적인 보수와 신규 공사. 그리고 산림의 보존 사업을 실시해 농업 생산량이 느리기는 하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던 데 반해. 텐포 대기근과 지방 분권의 한계로 인해 농업이 반쯤 붕괴된 현재의 일본의 식량 사정은 정말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분명 이국의 백성들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아군과 적이 갈릴 자들이라고는 하나. 군자된 자로서 어찌 굶주린 자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주상 전하께서 300만 석 중의 100만 석은 재량에 따라 푸는 것을 허하셨으니 이는 곧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신 것이 틀림없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300만 석이라는 엄청난 양의 쌀의 양을 일본에다 가져다 바치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는데. 저들이 주상 전하께 만세를 부르니 그런 마음을 가졌던 제가 다 부끄러워 질 지경입니다."


"머지않아 우리 조선도 만세 소리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외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박규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의 수행원들도 옅게 웃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 철종의 즉위 이래로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조선이 장차 일본의 인구도. 경제력도 추월할 수 있을 거란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 통신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에도 성.


"백성들에게 쌀을 풀고 있다고?"


"예! 게다가 잡곡이나 현미도 아닌 백미를 300만석이나 가져와서 백성들에게 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허어.. 300만 석의 백미를!"


늙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도 그냥 좋은 일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과 농업을 지탱하는 노동력을 보존하는 동시에 정권의 지지도를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일.


그런데 문제는 그 구휼을 외국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조선인들이.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저들이 어떤 태도로 쌀을 나누어주더냐?"


"강압적인 태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실. 관청에도 적지 않은 양의 쌀을 내려놓았다고 하는군요."


"흐음..."


그렇다면 더욱 더 골치가 아팠다. 굶어죽는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주었다고 외국의 사신을 홀대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방법이었고. 관청에도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쌀을 나누어주었다.


이에요시의 왜소한 이마에 서서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곤란했다 정말. 이렇게 백성들의 지지가 막부가 아닌 조선에 기울게 되면 막부가 무슨 일을 하려 하든 백성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하늘께서는 도와주시지 않는 겐가.."


"쇼군!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저 때가 좋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 일본은 신이 지켜주시는 나라. 쇼군께서 살아계시는 한 막부는 영원할 것입니다!"


사무라이가 눈물을 흘리며 항변했지만 이에요시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의 건강은 조금씩 조금씩 악화되어가고 있었고. 지방의 다이묘들은 일어날 명분을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막부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일본의 번들이 점점 막부의 통제에 반항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반해. 이에요시는 늙고 병든 정이대장군에 그나마 있는 친아들인 도쿠가와 이에사다는 너무나 떨어지는 지능과 정치력 때문에 방계 후손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후계로 삼으려 했던 것은 지금 일본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쿨럭! 쿨럭! 크어어억..!"


"쇼군! 누구 없는가! 쇼군께서 피를 토하셨다!"


이에요시가 갑작스레 각혈하자. 그의 곁에 있던 사무라이는 대경실색을 하면서 의원을 찾았다. 급히 의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급한 고비는 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 누가 보아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에요시의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


"우리보다 더 인구도 많고. 영토도 넓다고 해서 더 잘 살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군."


"대기근이 덮쳤답니다. 아국도 경신 대기근같은 때에는 비참하게 생존할 수밖에 없었잖습니까?"


"하기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아무리 먹을 것을 준다 해도 이렇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두 팔 벌려 환영하다니. 일본인들이란 참..."


조선 통신사들은 어느새 야마구치까지 이동한 뒤 마찬가지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며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 통신사들은 외국의 사신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숙이는 도시의 상인들과 자기네 나라도 아닌 조선에게 '만세' 소리를 하는 일본인들을 반쯤은 신기하게. 반쯤은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몇백년 전부터 중앙집권을 시작해 나라의 모든 것이 조정에 묶여있는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막부라는 느슨한 형태의 봉건제 국가였던 탓이 컸다.


당장 조선인들은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에 친근감과 소속감을 느꼈다면. 지역간의 독립성이 강한 일본인들은 '고향'이라는 지역에 친근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그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한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문화의 차이는 쌓이고 쌓여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장차 우리가 더 발전하고.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언젠가는 저들도 쌀을 풀지 않아도 조선에게 만세 삼창을 부를 것이네."


"그렇게만 된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저희 한민족 역사상 만세 소리를 들은지도 500년이 훌쩍 넘었으니까요."


과겨였다면 경을 칠 소리였겠지만. 이미 조정의 관리들은 철종의 철저한 사상검증과 중국에서 일어난 엄청난 양의 민란들. 그리고 홍콩에서 보여준 청 관리들이 부패한 모습들을 보고는 더 이상 청을 상국으로 받들어 모시는 자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폐하. 감히 아뢰옵나이다. 조선왕 이변이 제 멋대로 서역의 오랑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기물을 들이고 있사오니. 이는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할 사항이옵니다. 부디 조선왕을 북경으로 들여 엄히 문초하소서."


자금성의 편전에서는 한 젊은 관료가 함풍제에게 머리를 숙이며 조선의 동향을 아뢰고 있었다. 청나라가 열강들에게 뜯어먹히고 내부적으로 무너져가는 지금. 청이 가지고 있는 조공-책봉 체제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제1번국인 조선이 이탈하는 것은 곧 청이 더 이상 천자국으로 남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선왕의 충심이 지극하여 짐에게 백년삼을 보내고. 또 지금도 보내고 있으며. 서역 오랑캐들이 넘쳐나는 홍콩에서도 아무런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있지 않느냐?"


"폐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옵니다. 국경에는 조선의 병사들이 계속해서 더 많이 배치되고 있으며. 저들은 심지어 복식마저 서역 오랑캐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국경에 군사를 더 배치하는 것은 조선왕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이고. 서역의 복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이 무슨 총알을 막아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대는 허황된 소리를 하여 조선왕을 음해하지 말라!"


"폐하!"


"그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조선왕의 충심이 지극하여 짐의 건강을 챙기려 귀한 삼들을 보내고. 심지어 매달 문안을 알리는 편지를 써 보내며. 직접 가서 용안을 뵈지 못해 송구하다고까지 적었는데. 어찌 짐이 조선왕의 충심을 의심하겠는가?"


그동안 철종이 있는 돈 없는 돈을 써가며 함풍제에게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보낸 것이 드디어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나라의 안과 밖이 모두 뒤숭숭하니 점점 지쳐가고 있던 함풍제에게 조선왕이 보내오는 백년삼과 매달 보내오는 문안 편지는 함풍제에게 그나마 버틸만한 기력을 불어넣고 있었기에. 함풍제는 조선왕이 사실상 청조에 대한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직언을 하는 것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함풍제가 노골적으로 그만하라는 뜻을 언뜻 비췄음에도. 편전에 무릎을 꿇은 대신들은 점점 조선왕의 불충을 성토하고 있었다. 어느덧 그 소리는 너무나 커져. 함풍제는 두 귀를 틀어막고 꽥 소리를 질렀다.


"그만! 더 이상 이런 얘기는 하지 않겠다! 더 이상 이변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면 기군망상의 죄로 다스리리라!"


그렇게 말하자 대신의 입이 일제히 다물어졌다. 그것을 본 함풍제는. 분노한 얼굴로 편전을 두 발로 걸어나가고야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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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4 ya****
    작성일
    20.05.20 07:20
    No. 1

    정쟁하는게 그렇게 안좋다고 생각하면 남의 나라 내전에 끼어들어 만주 달라고 한다라 대도 안는 조건을 들어줄 청나라가 아닐텐데요
    청의 발원지를 줄까요
    철종에게 내전 종식시켜 줄테니 한양을 달라거나 경상남도를 달라거나 함경북도를 달라고 하면 철종이 네 그러세요 너무 힘들어서 그땅줄테니 내전 종식시켜주세요
    이거랑 뭐가 다른거죠?2천만이면 삼십만대군은 유지할수 있습니다.
    만주땅 국토회복 전쟁으로 충분히 가져올수 있죠 화승총도 아니고 탄피쓰는 총이면 대승할꺼고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34 ya****
    작성일
    20.05.20 07:23
    No. 2

    전국민이 세금도 4할이나 네는데 그보다 인구수가 작았던 세종대왕때도 30만 대군이 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0.09.23 22:43
    No. 3
  • 작성자
    Lv.69 몸통
    작성일
    20.09.24 08:17
    No. 4

    아니 이리 재미진데 왜이리 관심들이적을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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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1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6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800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60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79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8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70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5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2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7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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