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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09,605
추천수 :
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6.02 06:00
조회
1,890
추천
24
글자
12쪽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DUMMY

만주의 어딘가. 북방의 추위를 등지고 등짐 가득히 봇짐을 지고 6명의 일가족이 하염없이 남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 가장 앞서있는 가장인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는. 자신들이 이렇게 남쪽으로 걷게 된 이유를 회상하고 있었다.


때는 약 일주일 전.


"게 누구 있느냐!"


"예에. 나갑니다."


별안간 자기 집 대문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자가 있길래 나가보았더니. 이게 웬걸. 왠 팔기군 복장을 입은 대여섯 명의 남정네들이 술을 마신 듯 비틀대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꼴이 퍽 우스워 뵈기는 했다만은. 이곳은 사는 사람이라고는 자신들 외에는 없는 산간벽지.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뉘..뉘신지요?"


대낮부터 남의 집 앞에서 비틀대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 심히 보기에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 군복은 하오팔기도 아니고 상삼팔기중 하나인 양황기의 제복 아닌가!


도대체 황제의 직속부대가 이 외진 곳에 왜 왔는지는 모르겠다만은. 한 손에 술 병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결코 선한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뉘신지요오~?"


가장 많이 비틀대던 양황기중 하나가 비꼬듯이 대답을 돌렸다. 무언가 아니꼬운 듯. 그는 들고 있던 술병의 술을 단숨에 비운 채. 바닥에 내려쳐 깨뜨렸다.


쨍그랑!


"이런... 불충한 놈을 보았나? 우리 양황기들이 문 앞에까지 왔으면 납작 엎드릴 것이지. 어디서 고개를 바짝 높이고 대답을 해 대답을!"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기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은 대문을 연 남자였다. 분명 양황기가 황제의 직속부대인 상삼팔기 중 하나이기는 했다만은. 자고로 황제의 직속부대라는 작자들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면서 신민들을 마음대로 문초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내는 구태여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팔기들이 차고 있는 검이 뽑힐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죄...죄송합니다 나으리. 제 집에는 무슨 용무로?"


"옳지. 이제야 고개를 숙이는구만..! 뭐.. 별 건 아니고. 우리 양황기들이 나라를 지키느라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데. 조정에서 주는 녹봉은 소금 한 홉도 못 살 정도니 먹고 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예에..."


"그러니까아! 너어! 너어가! 돈을 좀 바치라는 얘기지."


"네에?"


이쯤되면 희극이 따로 없었다. 여기가 인적이 드문 곳이기 마련이지. 만약 여기가 북경이었다면 당장 상관들에게 끌려가 옥살이를 해야 할 발언 아닌가?


무슨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다짜고짜 돈을 내놓으라니. 당장 먹고 죽을 쌀도 없는 사내와 그의 가족에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그리고 그가 거부하자 팔기군은 그를 폭행하고 집을 약탈하였고. 곧 집마저 불태울 것이라는 협박을 받은 사내는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정든 집을 버리고. 이미 군대로서 본질을 잃고 국영 도적떼로 전락해버린 팔기군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남자는 자신의 일가족을 이끌고 남쪽에 있는 조선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주에 있다면 팔기군은 기어코 그들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런 것에 있어서만큼은 팔기군의 명성이 허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보나마나 어이없는 죄목들을 이어붙여 자신들을 조리돌림하고 죽일 것이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팔기군이 찾지 못하는 곳. 조선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정말 가야 되겠니? 여기서 농사만 지어도 돈은 벌 수 있잖아.."


"엄마. 난 더 이상 흙 캐먹으면서 살기 싫어. 1년 동안 뼈빠지게 고생해도 얻는 거라고는 고작 돈 몇 푼과 1년을 간신히 날 쌀뿐이잖아. 저 만주로 가서 공장에서 일하면. 이 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하지만... 기계라고는 한 치도 모르잖니."


"배우면 되지. 기술자들도 날 때부터 기술자는 아니었잖아?"


"그래도.."


"걱정 마 엄마. 1달에 한 번씩 편지 보낼테니까."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오는 이유가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희망을 잃거나 죽고 싶지 않아서 오는 생존형 이민이었다면. 조선인들이 만주로 향하는 이유는 대부분 더 나은 일감을 찾아오는 경제형 이민이었다.


철종의 신법들과 유신학교. 그리고 다양한 농업 진흥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된 조선반도와는 달리. 만주는 민둥산이 계속해서 늘어만가고.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청의 행정력으로 인해 사실상 농민들은 자력갱생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


물론 중국의 역사상 한 통일 황조의 말기에는 항상 농민들이 고통받았지만. 문제는 지금이 19세기라는 점이다. 기원전 9세기도. 기원 후 9세기도 아닌. 서세동점이 서서히 급물살을 탈 시기에 망조가 든 제국이라... 참으로 먹음직스런 먹잇감 아닌가?


"어이. 어디서 새치기야? 뒤로 안 가?"


"뭐야? 동이 오랑캐 주제에... 꺼져!"


"이 자식이? 여기가 청나라인줄 아나!"


그러나 중국인들의 특징인 낮은 시민의식과. 살기 위해 조선에 왔다는 절박함은 나쁜 쪽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중국과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의주부, 강계부, 갑산부,경성부에서는 매일같이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더 나은 삶을 바라기 위해 왔다는 놈들이 검계를 결성해 치안을 어지럽히고. 자기들의 친지들을 조선으로 불러와 조직의 덩치를 불린다던가.


연탄 공장에 숨어들어서 하룻밤에도 수백장의 연탄을 훔치는 일이 빈번하자. 결국 조선인들의 인내심은 폭발하고야 말았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여기가 조선이지 중국이냐?!"


"옳소! 저 한족 거렁뱅이들을 모조리 쳐죽입시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주자고! 갑시다!"


한 번 조선인들이 폭발하자. 아직 한창 성장하고 있던 중국인들의 검계들은 말 그대로 싸그리 정리되었다.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벼르고 벼르고 있던 각 부의 진위대들까지 중국인들에게 총칼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중국인들은 말 그대로 전리품이 되어 저잣거리에 목이 매달리는 꼴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철종이 조선의 군대를 총 60만명으로 계획하고 국민개병제를 실시하자. 그렇잖아도 반중국인 정서로 뜨거운 조선의 23부에서는 들불같이 징병 서류 서명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조선이 제국주의에 물드는 주춧돌이자. 또한 동아시아의 패권국인 중국이 더 이상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방증이기도 하였다.


바로 옆에 있는 속방인 조선이 대대적인 군 증강과 근대화를 추진하며. 서역 열강과 여러가지 조약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의 조정에서는 '그런 일이 있나?' 하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이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뭔가 수를 써야 합니다! 저 조선천자가 옥좌에 앉아있는 한! 우리 청나라에 미래는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를 가진 노년의 남성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주위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청나라 고위 관료들과 군부의 일부 인사들이 모여 만든 '대청유신회'라는 이름의 비밀결사는. 함풍제의 폐위와 청나라의 개혁. 그리고 다시 한 번 청을 동아시아의 비상하는 용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품고 결성된 단체였다.


"회주의 말씀은 옳지만. 대체 어떻게 황제를 끌어내리실 겁니까?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저희 모두 저잣거리에 목이 매달릴 것이고. 저희의 가족들은 노예살이를 해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명분이 없습니다. 황제가 실정을 하고 있기는 하나. 저희의 입장은 그런 황제를 보좌하는 것 아닙니까. 섣불리 군을 움직였다가는 말 그대로 벌집이 되고 말 겁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세상사가 원래 그런 것 아니오?"


회원들의 회의적인 발언에 회주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명분이란 것은 만들어내려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장 황제가 조선에 필요 이상으로 과잉 혜택을 퍼주고 있었으니. 굶주린 백성들에게 약간 과장에서 그 사실을 들려준다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현재 함풍제가 사치와 향락을 위해 쓰는 돈은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쌀을 빈민들에게 풀고. 군대를 강화해야 할 막대한 재정이 고작 여자들의 치맛자락을 들추는 것에 사용된다니. 이것도 좋은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군주를 몰아내려면. 그것만으로는 한참이나 명분이 모자란 것이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해서 호적에서 파내지는 않잖는가.


뭔가 결정적인. 그러면서도 관민의 동의를 모두 얻어낼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모두가 고심하던 중. 한 회원의 입에서 드디어 소리가 나왔다.


"요즈음 조선에서 우리 대국인들과 충돌이 잦던데.. 그걸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바로 그거야.."


회주가 동감을 표하며 웃음을 지었다. 자고로 군주의 자격을 시험하는 것은 백성의 안전을 지킬 수 없느냐 있느냐로 결정지어지는 법. 과연 함풍제가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


"전하. 괜찮겠사옵니까?"


"무엇이 말인가?"


"북방에서 청나라의 신민들을 죽이신 일 말입니다. 괜히 대국에서 꼬투리를 잡지 않을까. 신들은 그것이 염려되옵나이다."


"걱정마라. 과인이 다 생각이 있어 그리 생각한 것이니."


"생각이라 하시면...?"


"경들에게 묻겠다. 지난 날 청과 영길리가 전쟁을 하여 청이 패했다. 그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가?"


"그야.. 마약. 아편 때문이 아닙니까?"


"맞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킨 중국인들이 무엇을 갖고 있었는지 아는가?"


"...설마!"


"그렇다. 바로 아편이지. 청에서 과연 마약사범들을 죽인 것을 문책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편으로 크게 골치를 앓았으니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총과 대포. 그리고 말로서 맞서 싸워야 한다."


꿀꺽.


단호한 철종의 말에 대신들 모두 침음을 삼켰다. 그들도 모르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청과 병기를 맞대고 싸워야 할 때가 온다고 말이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근대화를 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근대화를 마친 것도 아닌 조선과. 낙후되었다고는 하지만 수백만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청. 전면전으로 간다면 압살당할 것이 분명했다.


...


하지만 왜일까. 전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의 청이라면. 지금의 조선이라면. 대등한 전쟁을 넘어. 압도하는 전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근! 두근!


대신들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맥동했다. 두려움? 아니다. 이건 설렘이었다. 조선이 동방의 해동성국으로서 다시 날아오를 이 기회에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과. 자신이 모시고 있는 자가 그 기회를 움켜쥘 것이라는 설렘이 신하들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모든 것을 얻느냐. 모든 것을 잃느냐이다. 그리고 난 모든 것을 얻고 싶다. 그대들은 어떠한가."


왕이 물었다. 거부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모든 것을.. 얻고 싶사옵니다."


대답을 하자 왕이 옅게 웃었다. 아아. 그 웃음이야말로 이 동아를 평정할 군주의 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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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0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5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799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59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79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7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7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0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2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6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69 23 12쪽
»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1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4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1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2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3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49 28 12쪽
3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5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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