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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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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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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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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업 개시

DUMMY

"황제 폐하. 조선 국왕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오오. 이리 가져오거라. 마침 목을 축일 것이 필요하니. 따뜻하게 우린 녹차도 가져오도록 하라."


"분부 받들겠나이다."


자금성에 있는 황제의 처소. 한 때는 화려하기 그지없던 그곳이 이제는 쇠락해가는 청의 모습을 보여주듯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온갖 기물들도 퇴폐적인 미를 뽐내고 있었다.


'조선왕의 충심이 참으로 지극하다. 나라의 대신이라는 것들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거늘... 번왕이 이리 충심을 다하니 참으로 청의 미래는 밝도다'


물론 철종이 함풍제의 마음 속 말을 듣는다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겠지만. 그런 것을 알리가 없는 함풍제는 이제 인생에서 몇 남지 않은 즐거움을 맞이하고 있었다.


-삼가 대청 황제 폐하께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벌써 한 해의 1월과 2월이 지나 3월이 되니. 농부들은 논밭으로. 아이들은 들판으로. 아낙네들은 강가로 향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조선이 이리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황제 폐하의 덕임을 조선의 만백성이 알며. 그들을 다스리는 군주인 제가 가장 체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백년간 이 천하를 통치해왔고. 또 앞으로도 통치할 청의 은덕은 하늘을 가리며 땅을 탄복하게 하니 조선의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이 이리 풍족했을 때가 천하에 다시 없으니. 마땅히 이 공을 황제 폐하께 돌리고자 합니다.


끄덕끄덕.


함풍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잘 읽어보면 사실 함풍제가 한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원래 자기합리화는 훌륭한 군주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니었나.


-사실 이리 편지를 올린 것에는 황상께 하나의 청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근래 들어 이 조선반도에는 2000만이 넘는 백성들이 살게 되었는데. 나라에 비해 백성들이 너무 많으니 집을 지을 땅도. 벼를 심을 땅도 부족하여 시름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지는 어언 수십년이 지났으니. 조선의 군왕으로서 응당 부끄러운 일이나. 이미 백성들 중 북방에 사는 이들은 사사로이 만주를 드나들며 생계를 유지하니. 이미 그것이 관례로 굳어버린 터라 조정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여 염치없는 청을 드리자면. 조선의 백성들이 만주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도록 칙명을 내려주소서. 물론 백성들을 엄히 다스려 감히 황실의 근간이 되는 땅에는 그림자조차 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니. 그것에 대한 염려는 놓으셔도 됩니다.


또한 국경을 여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이에 대한 보답은 이 조선왕 이변의 이름을 걸고 결코 작게 보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대신들과 이 일을 조정에서 의논하여 주신다면. 폐하의 충실한 신하인 저는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아! 조선의 왕이 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구나! 너 이변아. 걱정하지 마라! 어찌 황제된 이로서 번국의 백성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하겠는가! 너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함풍제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만력제가 고려천자가 불렸다면. 아마도 함풍제는 조선천자로 불릴 것만 같은 함풍제의 눈물은. 밤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대마도를 넘긴다고! 이런 부끄러울 데가 있나..! 나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할복을 했을 게다!"


막부에서 날아든 서신을 붙잡고 분노에 찬 일갈을 터트린 것은 이제 막 번주가 된 사츠마 번의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였다.


"주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쓰시마는 엄연히 저희 일본의 영토! 헌데 막부가 조선의 협박에 굴해 이런 굴욕적인 할양을 하다니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어찌 천황의 명을 받들어 일본을 다스린다는 작자들이 이런 결정을 내려! 이에요시 그 자가 결국에는 노망이 난 것인가!"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비롯한 반 막부파 다이묘들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전체의 다이묘가 막부가 내린 결정에 반발했고. 그 반발 중 가장 첨단을 달리는 것은 당연히 하루 아침에 조선인이 되어버린 쓰시마 도주. 소 요시노리였다.


"뭐! 우리가 조선의 영토가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우리는 조선의 말도. 복식도. 문화도 모르는데 어찌 조선왕의 명에 따르라는 것이야! 이건 잘못되었다! 분명 막부가 미쳐서 이런 명을 내린 것이야!"


요시노리가 막부에서 도착한 서신을 보며 당혹감을 터트리려는 찰나.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에게 달려와 엎드렸다.


"무슨 일이냐!"


"도주! 하..항구에 조선의 해군이 당도했습니다! 조..조키센(증기선을 일본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뭐!"


마치 짜고 치는 각본처럼(사실 그게 맞았지만) 당도한 조선의 해군과 해병대. 이제 조선의 영토가 된 쓰시마.. 아니. 대마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식을 들은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이 집결했고. 개 중의 대장이 소 요시노리에게 군례를 올리며 호승심 가득한 발언을 내뱉었다.


"도주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감히 대마도를 침범한 저 조센징들에게 저희 사무라이의 위용을 보여주겠습니다!"


"네 놈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느냐? 이제 이 쓰시마는 조선의 땅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덤빈다면 그건 이제 반역의 죄란 말이다!"


"하지만 도주! 이대로 이 쓰시마를 조선에 넘긴다면...저희는..!"


"조용히 하거라! 결정은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 알겠느냐?"


"예! 도주!"


*


"작은 섬이구나. 우리의 제주도.. 아니. 울릉도보다도 훨씬 작은 것 같은데."


"그래서 여기가 왜구들의 거점으로 사용된 것 아니겠습니까? 크기가 작으니 발을 들이기도 쉬우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 조선의 영토다. 이곳을 지배하는 소 씨 가문의 당주는 아직도 오지 않았느냐?"


"워낙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이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것입니다.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큰 욕심입니다."


조선의 한성에서 온 관리들은 해병대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해변가에 서서 소 씨 가문의 당주. 소 요시노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동아시아의 그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완전한 서양식의 복식과 무장. 그리고 훈련을 갖춘 해병대 수백명이 해변에서 서 있는 모습은 대마도의 백성들에게 큰 위압감을 주었고. 평소에도 흔히 와키자시라고 부르는 단검쯤은 흔히 가지고 다니는 일본인들도 감히 조선의 군대에 칼을 휘두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1시간 즈음 지났을까. 복식을 갖춰입은 요시노리가 화려한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해변가에 나타났다.


"그대가 소 씨 가문의 당주인가?"


"그렇습니다. 이름은 요시노리라고 하옵니다."


"일본의 이름은 이제 버리도록 하라. 주상 전하께서 그대에게 '남주'라는 이름을 하사였으니. 이제부터는 소남주라는 이름 석자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이 주상 전하의 교지시다."


"미천한 저에게 친히 이름까지 하사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네 옆에 있는 무사들은 일본의 갑사들인가?"


"갑사가 아니라 사무라이지만.. 아무튼 비슷한 존재입니다."


"흠.. 아무튼 주상 전하께서 그 사무라이들의 특권을 특별히 1대에 한하여 허가해주셨다. 지금 사무라이 직을 맡고 있는 자라면 그 신분의 특권을 1대에 한하여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그 다음 대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특권은 회수될 것이다. 이 섬이 작아 부를 맡기에는 작으니. 가장 가까운 동래부의 진위대에 편입되어 사무라이의 자식들이 군문에 종사하게 되겠지."


사무라이를 비롯한 대마도의 기득권층의 특권을 단 1대에 한하여 허용한 것은 철종의 고육지책이었다.


빠른 동화를 원한다면 사무라이의 특권도 모조리 회수해야 했으나. 가뜩이나 무리한 할양과 합병으로 인해 불만과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그런다면 정말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래서 철종이 택한 방법은 한 발 물러나 단 1대에 한정한. 이른 바 단승작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특권층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저들도 이제 자신의 특권이 자식에게 가지 않음을 알 테니. 기존에 누리던 것을 누리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행정 상으로 이 대마도는 동래부 산하의 대마군이 될 것이고. 네 직책은 군수가 될 것이다. 혹시 이의가 있느냐?"


"어..없습니다. 이제야 주상 전하와 조선의 품에 안기게 되어 꿈만 같사옵니다."


"흠. 네 말을 그대로 믿어주고는 싶으나 이 섬이 오랫동안 조선이 아닌 일본과 가까웠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우리 조정에서는 이 대마도에 감찰관과 감시관을 파견하여. 조선에서 이루어지는 신식 체제를 대마도에 이식하도록 할 것이다.


너는 군수로서 그들을 마땅히 도와야 할 의무가 있으니. 만약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다른 군수를 찾아보는 수밖엔 없을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주상 전하를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도주... 이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말 조선인이 되는 수밖엔 없는 겁니까?"


"어허! 도주가 아니라 군수라고 했잖느냐! 조선의 국왕께서 우리의 특권을 1대에 한하여 인정해준 것만 하더라도 엎드려 절을 해야 할 일이다.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조선말이라도 익히는 것이 어떠냐?"


"하지만.. 집에 가봤자 조선말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크흠.."


그랬다. 대마도가 아무리 이중 군신 관계를 맺어왔다고 해도 대마도 사람들이 본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언어도. 복식도. 문화도 전부 일본의 그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란 동물은 한 번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생물. 지금껏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자아를 조선인으로 자아포밍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발적으로 하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하다못해 고향이라고 여겼던 조국에게서 반쯤 버림받아 반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니 더더욱.


하지만 어쩌랴? 대마도는 작은 섬이었고. 조선은 거대한 반도였다. 비록 그 반도가 22만 제곱킬로미터밖엔 되지 않는다고는 해도. 대마도의 그것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크기였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는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 좋든 싫든. 그게 우리 쓰시마가. 대마도를 위한 위한 길이다. 다들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이 곳은 우리의 땅이자 고향이다. 제아무리 조선이 강하다 한들 그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어. 일본이든 조선이든 우리의 땅에서 우리를 떨어트려 놓으려 한다면. 우리는 저항할 것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현명하게도 조선인들은 우리를 대마도의 지박령으로 대했지.. 참으로 고마운 일이야. 우리가 조선의 복식과... 문화와.. 말.. 그리고 제도를 따라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가문에서 조선의 왕이 나올 수도 있을 거다."


허황된 말을 하는 요시노리였지만. 뭐라 하는 자는 없었다. 정신적 자위라고 해도 좋았다. 지금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이묘들을. 조선의 왕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쓰시마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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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59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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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강철비 +2 20.06.17 1,877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7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0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2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6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69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0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3 23 12쪽
»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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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4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1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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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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