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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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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1,201

작성
20.04.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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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씨의 나라.

DUMMY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김좌근이 눈을 댕그랗게 떴다. 삼정의 문란이라니. 여기서 그것이 대관절 왜 나온단 말인가?


"삼정의 문란...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다. 경은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아니옵니다! 크흠.. 삼정의 문란이라 하는 것은.."


세도 가문에게 있어 삼정의 문란은 건드리면 안 되는 무언가와 같은 취급이었다. 그들도 삼정의 문란이 국가와 백성에 있어서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존재임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잘 교육받았기에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것을 방치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고통받고. 나라가 쇠약해질수록 자신들의 가문은 강성해지니 말이다.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사온데. 첫 째가 전정. 즉 토지의 세를 말하는 것이옵고. 둘 째가 군정. 즉 군역을 말하는 것이옵고. 마지막인 셋 째가 바로 환곡.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 가을이 되갚게 하는 것을 뜻하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를 유지케 하는 그 삼정이 어찌하여 이리 문란케 되었는가."


"위로는 덕이 부족하여 임금의 은혜가 조선 팔도에 미치지 못한 탓이고. 아래로는 무지한 수령이나 아전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데에 맛이 들려 이리 되었나이다."


정말 비열한 대답이었다. 삼정의 문란을 방조한 것이 자신들이건만. 정작 책임은 왕과 지방관들에게 돌리고 있지 않은가.


"경이 이렇게 청산유수처럼 그 원인을 읊을 수 있다면 삼정의 문란의 해결책 또한 알고 있을 터. 그 해결 방법을 논하라."


김좌근은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어린 왕과의 대화에서 밀려서가 아니었다. 단지 철종과의 대화에서 아무리 잘 대답을 해보았자. 왕이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것 같다는 무언의 의심이 싹 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상께서 수신하시어 덕을 닦으시고. 아랫것들의 일탈을 엄히 꾸짖으신다면 삼정의 문란은 금세 해결될 줄 아뢰옵니다."


너무나 상투적인 대답이지만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는다면 어째서 그리하지 않느냐는 꾸중을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오물 같은 놈. 해결 방안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백성들이 군역을 지다 못해 스스로 성기를 자르는 것도. 산 속으로 도망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속에 열불이 나는 듯 해.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어 열기를 바깥으로 방출해야만 했다.


"전하께서 삼정의 문란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계신 듯 하니. 이는 곧 우리 조선의 홍복과도 같나이다. 조선의 주인께서 조선을 좀먹고 있는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시니. 저희들은 그저 전하의 지혜에 갑읍할 따름입니다."


*


조회를 파한 후 철종은 비밀리에 이하응을 불러 대화를 나누었다. 이하응은 감히 왕의 얼굴을 볼 수 없다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철종은 개의치 않고 이하응에게 자신의 계책을 말해주었다.


"그것이 참말이십니까? 어찌 군을 대동하지 않고 세도 가문을 끌어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이 미욱하여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소서."


이하응은 철종이 내놓은 비책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군을 대동하지 않고 무력으로 세도 가문을 끌어내릴 수 있다니. 그게 정말로 가능하단 말인가? 그 많고 많은 벼슬 자리 중에서도 세도 가문이 병조 판서 자리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거늘.


"하응. 저들이 지금 권력을 잡고 놔주지 않는 명분이 무엇인가?"


"전하를 보좌하여 나라를 부강히 한다는 명분이옵니다."


"그래. 그것은 비단 세도 가문들 뿐만 아니라. 이 조선의 모든 벼슬아치들이 백성 아래 군림할 수 있게 하는 명분이다. 그러나 그 명분을 잃는다면. 민심이라고는 쥐뿔도 얻지 못한 세도 가문들은 과연 어떻게 되겠나."


어떻게 되냐니. 무슨 저런 질문이 다 있단 말인가.


이하응은 침을 삼켰다. 그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을 잃는다면 백성들의 분노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분노한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저들의 가옥을 불태우고. 제물을 약탈하고. 저들의 여식을 겁탈하겠지. 그러나 동정하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하응은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는. 철종의 계책이 정말로 신빙성은 물론 현실성이 있다고 믿었다.


"잘 듣게나 이하응. 과인은 다시 한 번 죽을 것이야."


그러나 이어진 금상의 말에. 이하응은 다시 한 번 주상에게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었다.


*


"주상께서 나랏일에 관심이 많으신 듯 하더구나."


안동 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이 따뜻하게 우린 녹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일국의 임금이 나랏일에 관심을 두는 것을 특이한 듯 말한다는 점에서. 그가 평범한 권력자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삼정의 문란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말하라고 하시지를 않나. 조회 시간 내내 대신들을 꾸짖으시지 않나.. 허어.. 병을 앓고 나신 뒤 귀신이라도 들린 것인가."


"듣는 귀가 많습니다. 대감. 주상께서 나랏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뭘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무얼 그리 걱정하느냐고? 허어..! 너는 정녕 주상의 눈빛을 읽지 못하였더냐? 나는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어. 잃을 것이 없는 자의 눈빛 말이야. 자신의 일개 사상이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이 도성도 불태울 수 있는 자의 눈빛을 주상께서 가지고 계시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우리가 양보를 해야 할 듯 하구나."


"양보라니.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삼정의 문란에 대해 물어보신 것을 보니 이제 곧 삼정의 문란을 다잡을 기구를 만드실 것 같은데.. 거기에 개입하지 말자는 소리다.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해먹었지 않으냐?"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그것을 안다면 사대부라면 스스로 목을 멜 것이오. 관원이라면 스스로 의금부로 찾아갈 것인데. 감히 왕이 결정할 것에 양보를 운운하는 것에서 안동 김씨라는 세도 가문의 위세가 참으로 대단하는 것을 증명하였다.


"혹여나 주상의 눈에 잘못 든 것은 아니겠지요?"


"설마. 주상께선 아직 어리시다. 이제 약관의 나이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강화도에서 5년 즈음 농삿일을 하며 체력은 자신있으신 모양이다만.. 어디 용상의 자리가 편한 자리인가."


어느새 녹차가 아닌 술잔을 들고 있는 김좌근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곧 풍비박산날 자신의 가문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김좌근은 술잔에 따라진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차가운 소주의 촉감이. 마치 목에 들이대진 비수와도 같았다.


*


"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무슨 소식 말이야?"


"글쎄 주상께서 그 김가 놈들의 수장인 김좌근을 아침 조회에서 엄히 꾸짖었다는 소식 말이네."


"아니. 전하께서 정말 그러셨단 말이야? 그럼 이제 우리도 기 좀 펴고 살 수 있는 건가?"


이하응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식은 어느새 도성을 넘어 조선 팔도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건의 진실이야 어찌되었건. 사사건건 상전 노릇을 하며 자신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자가 왕의 호통에 절절매야 했다는 게 백성들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신이 난 이하응이 이제 곧 주상께서 세도 가문들에게 엄정한 처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소문까지 흘리자. 도성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세도 가문들의 위세를 성탄하는 항소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서원이 세도 가문의 수족으로 전락하고. 세도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한들.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들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고. 그들은 대개 몰락한 양반들인 잔반들과 연합하여 세도 가문들을 몰아내려 하였다.


도성의 중심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 그저 부추김만 받았을 뿐이데 이만큼이나 불타오른 것이다.


"전하! 감히 용상의 눈을 가리고 조선의 국운을 뒤흔드는 저 척신들을 사사하옵소서!"


"사사하시옵소서!"


급기야 지방에서 상경한 유림들이 저잣거리에 걸터앉자 만인소를 벌이는 지경이 되자. 안동 김씨를 위시한 세도 가문들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짓밟을 수 있는 세력이라 한들. 짓밟아 없앨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하! 감히 조정의 중신들을 모함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엄벌하여 주시옵소서!"


"감히 사대부의 후손들을 모함하는 작자들은 역모의 씨앗인 줄 아뢰옵나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철종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림들을 궁으로 불러 중신들 몰래 이야기를 나누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국사에서는 거의 9대 1의 비율로 세도 가문들을 성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흔들릴 가문들이었다면 세도 가문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니 김좌근을 비롯한 척신들은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드디어 왕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의 대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철종이 금군별장을 갈아치운 것이다.


*


"새로 벼슬자리를 주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보니 어떠한가?"


"전하의 은혜가 하해와도 같사옵니다. 현재 조선에 저 김가 놈들의 촉수가 닿지 않는 곳이 없사온데. 이리 가까이서 전하를 지켜드릴 수 있게 되니 가문의 광영이옵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장차 저 세도 가문들을 총칼로 꾸짖어 몰아내려는 대업을 실행할 예전이니 네 역할이 막중한 바. 고작 700명의 병사들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5만명의 정병들을 부릴 권한을 너에게 줄 터이니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과인의 뜻을 받는 자들을 모으도록 하라."


김좌근을 비롯한 척신들이 들으면 몸에 경기를 일으킬만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실제로 조례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발표되자. 그동안 서로 견제를 거듭해오던 중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철종에게 뜻을 거두어달라 요청하였다.


"전하!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옵나이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인데 어찌 무인들에게 대군을 일으킬 권한을 사사로이 수여하실 수 있겠습니까!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싫다."


"전하!"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 하였느냐? 그렇다면 너희들은 모두 반역자들이구나. 이 조선은 전주 이씨의 나라다! 나의 나라란 말이다! 내가 이루려는 바가 있어 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데 어찌 조정의 충신들이라는 작자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반대만을 외치는 것이야!"


"전하! 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논한다면 그 자의 삼족을 멸하리라!"


일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신하들은 말할 수가 없었다. 왕의 권한은 절대적. 법 아래서 통치하는 왕이 아닌 법을 이용해 통치하는 왕의 위용을 대체 얼마만에 보는 것이던가.


썩어들어가는 영의정의 표정을 본 철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닌 해로운 해충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조회가 파해지자.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들은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 했다. 일단 일족의 뜻을 모아야 대응이라도 할 것 아닌가. 왕의 뜻이 확고한 이상. 신하들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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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후가 될 자. +2 20.07.07 1,711 18 12쪽
30 양보할 수 없는 이유. +2 20.07.06 1,676 22 12쪽
29 강철의 시대 +4 20.07.01 1,800 21 12쪽
28 제국의 사정 +3 20.06.30 1,759 24 12쪽
27 신붓감 고르기 +1 20.06.29 1,779 26 12쪽
26 강철비 +2 20.06.17 1,878 22 12쪽
25 토벌군을 토벌하는 방법. +2 20.06.16 1,758 20 12쪽
24 만주로의 진군. +1 20.06.15 1,765 26 12쪽
23 천도 +5 20.06.10 1,831 26 12쪽
22 북벌론과 서정론 +5 20.06.09 1,813 21 12쪽
21 전쟁이냐. 내전이냐 +2 20.06.08 1,827 22 12쪽
20 전쟁의 명분 +4 20.06.03 1,869 23 12쪽
19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2 20.06.02 1,891 24 12쪽
18 만주를 손에 넣어라. +4 20.06.01 1,944 23 12쪽
17 작업 개시 +4 20.05.27 1,918 23 12쪽
16 에도 성에서의 조약 +2 20.05.26 1,912 21 12쪽
15 무너져가는 천하. +2 20.05.25 1,900 20 12쪽
14 가깝고도 먼 사이 +4 20.05.18 1,944 24 12쪽
13 태평천국의 난. +5 20.05.15 2,032 20 12쪽
12 검은 보석 +4 20.05.14 2,074 24 12쪽
11 신민학교 +5 20.05.13 2,113 27 12쪽
10 열강들과의 접촉. +2 20.05.12 2,121 24 12쪽
9 조선 통신사. +4 20.05.11 2,212 28 12쪽
8 몸에 참 좋은데. +3 20.05.06 2,333 26 12쪽
7 첫 접촉 +3 20.05.05 2,434 28 12쪽
6 도로망 정비 +1 20.05.04 2,616 28 12쪽
5 경술개혁 +6 20.04.30 2,956 27 12쪽
4 암흑기의 끝 +7 20.04.30 3,250 28 12쪽
» 이씨의 나라. +3 20.04.29 3,677 25 12쪽
2 다시 돌아오다. +3 20.04.28 4,388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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