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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뇌검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수정: 요계의 침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완결

제마뇌검
작품등록일 :
2021.05.29 21:07
최근연재일 :
2022.04.18 19:00
연재수 :
2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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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6,688

작성
21.09.2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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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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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8쪽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6)

DUMMY

“으아! 이 거북이 새끼들이 정말!”


요계 제4군단장 두클랴닌은 통신을 끊고 탁자를 부서져라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상황은 이랬다.


인간계 침공 둘째 날에 두 개의 라오스 수정을 이용해서 인간계로 통하는 차원문을 동시에 두 개를 열었으나, 어처구니없게도 한 개의 차원문이 또다시 갑자기 닫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요계 본궁에서 어제 잡혔던 인간이 감옥에서 탈출 했다는 보고와 함께 그 인간의 체포 또는 추살을 위한 협조 요청이 4군단장실로 날아왔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또 다른 인간으로 파악되는 존재가 4군단이 수비하는 미르덴 재배 농장 근처에서 발견되었지만, 요계 본궁에서 탈출한 인간과 조우하여 함께 도주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두클랴닌에게 요계 번궁의 게르만 경호대장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거북이족 요괴 세 명의 보좌를 받으며 들려오는 게르만의 목소리는 요계왕 드마케르 님은 인간계로 통하는 차원문 하나가 또다시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화가 몹시 나셔서 직접 현장 방문을 하고 계신다며, 대신 명을 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클랴닌은 귀에는 그 명이 드마케르 님에게 온 명령이 전혀 아닌 것으로 들렸다. 오히려 그 옆에 재수없는 거북이들이 원하는 내용들임에 틀림없었다.


아침에는 탈출한 인간을 죽여도 된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도대체 또 뭔 조사를 한다고 탈출한 포로들을 사로잡으라는 말인가? 아무튼 통신상에서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통신을 끊고 나서는 두클랴닌은 재수없는 거북이족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아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현재 바로 붉은 산 지역으로 이동 가능한 부대는 얼마나 되나?”


두클랴닌은 그의 부관인 즈두하치를 보며 온갖 인상을 쓰며 거칠게 말했다.


“네. 그게...현재 대부분 인간계 침공에 필요한 물자 수송과, 새로 맡게된 다른 군단 수비지역으로 이미 이동한 부대들이 많아서...”

“짧게 말해! 얼마나 돼?!”

“네. 죄송합니다. 대략 오백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 외에 이미 요계 본궁 수비대를 도와 그들을 이미 추격하고 있는 저희 군단 숫자가 대략 사백 정도 됩니다.”


두클랴닌은 지도를 보며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였다. 지도에는 미르덴 재배 농장에서 붉은 산으로 가는 다양한 길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백 정도로 모든 앞길을 가로 막고 미리 진을 치고 있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이 움직이는 경로에 작동 가능한 이동진은 몇 개가 남았나?”

“네...아시다시피 동력석들을 그쪽에서 많이 빼오는 바람에...그리고 그들의 이동 속도를 고려했을 때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이렇게 대략 3개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즈두하치는 지도에서 이동진이 새겨진 세 개의 점을 차례로 짚으며 대답했다.


“빠르군...즈메이 이놈...”


두클랴닌은 요계궁에서 탈출한 인간이 시간 감옥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즈메이에게 황룡족의 무공을 전수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게르만에게서 들었다. 즉 즈메이가 배신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바드득 갈며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창밖을 내다보던 두클랴닌은 돌아서며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즈두하치에게 말했다.


“코셰이 대대장 남아있지?”


코셰이는 미르덴 농장의 수비를 맡고 있는 책임자였다.


“네.”

“그럼 코셰이에게 남은 병력 중 반만 줘서 탈출한 놈들 앞을 대충 막으라고 해.”

“네?! 대충이요? 그것도 절반으로 말입니까?”


부관인 즈두하치가 그의 상관의 말에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아까 통신에서 탈출한 인간들을 반드시 사로잡으라는,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크게 물을 것이라는 게르만 경호대장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대충! 요계궁 외곽 수비대의 보는 눈이 있으니까 일단은 인간 놈들 잡는 시늉은 해야 돼.”


그리고 두클랴닌은 갑자기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나머지 병력은 붉은 산 주위에 황룡족들이 눈치 못채게 대형 이동진들을 새로 만드라고 해. 가능한 빠르게.”


즈두하치는 갑자기 뭔 대형 이동진이냐고 물음표에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상관을 바라봤다.


“흘흘흘. 일망타진 한다. 전부다!”


두클랴닌은 주먹을 허공에 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인간들도, 황룡족도 전부다. 거북이 놈들 생각은 불을 보듯 뻔해. 어제 그 멍청한 남자 인간처럼, 오늘 나타난 여자 인간이 라오스 수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 생포해서 조사해 보겠다 이거 아냐? 그리고 어제처럼 진짜 찾기라도 하면 또 자기들 업적인 것 마냥 떠들어 대겠지.”


그는 술잔에 술을 벌컥 들으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 기회에 얼마 남지 않은 황룡족도 쓸어버리겠어. 그리고 붉은 산을 다시 찾아서 그 엄청난 양의 카넬리안 수정들도 다시 우리 요계의 것으로 만들겠어. 생각해봐 엄청난 업적이지 않아? 라오스 수정도 찾고, 붉은 산도 찾고, 골치거리인 황룡족도 쓸어버리고. 그걸 우리 4군단이 다 해내는거야!”


카넬리안 수정의 숨겨진 효과는 놀랍게도 요괴족이 아닌 황룡족들에 의해 밝혀졌었다. 요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뒷마당에 보물이 파묻혀 있음에도 몰랐다가 강도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난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꼴이었다.


물론 요계에서 카넬리안 수정이 쓰일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어찌됐든 남에게 주기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황룡족이 그 붉은 산을 차지하고 들어선 뒤 요괴들은 카넬리안 수정의 대량 채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황룡족을 계속 살려두고 있는 점에 대한 불만을 가진자도 의외로 많았다. 요계왕 드마케르가 그들의 힘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들은 천년이 다 가도록 항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계속 살려두는건 요계의 자존심 문제였다. 더욱이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드마케르의 황룡족에 대한 관심도 많이 사그라들어 있다는 점도 이제 황룡족을 몰아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두클랴닌은 여자 인간이 지녔을지도 모르는 라오스 수정을 찾는다는 목적 아래에 붉은 산 안쪽으로 쳐들어가서 반항하는 황룡족을 몰살 시키고, 카넬리안 수정의 해방을 요계의 품에 가져다 주는 제 4군단의 당당한 모습이 그려지는 이 작전은 꽤나 멋지고 설득력 있는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군단이 인간계 침공에서 제외되어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기회를 박탈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속은 좁은데 야심만 많은 두클랴닌의 머리 속에서는 그 계략이 점점 더 매력적인 확신으로 다가왔다.


“괜찮겠습니까?”


조심성 많은 즈두하치는 상관의 눈치를 살폈다. 요계왕의 허락없이 황룡족을 선제 공격해서 붉은 산으로 치고 들어가도 괜찮겠냐는 질문이었다.


“상관없어. 오히려 이번이 기회야. 우리의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붉은 산 근처의 이동진들이 준비되는 대로 요계 본궁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가능한 많은 부대들을 그쪽으로 집합시켜. 한꺼번에 한 번에 밀고 들어간다!”


두클랴닌의 눈빛이 야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헉..헉···”


용기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옆에 있는 나무를 한 손으로 짚으며 기댔다. 온몸은 땀과 피의 범벅이 되어 끈적거리고 있었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누가 수도꼭지를 그곳에 틀어놓은 마냥 땀방울이 아닌 땀줄기가 쉴새없이 흘러내려 그의 눈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그의 눈은 일몰로 땅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석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 나무에 기대고 있는 연화가 왜 앉아서 쉬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대답할 힘도 없어 그냥 ‘괜찮다’ 라고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의 다리가 근육경련을 일으키며 심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는데, 한 번 앉으면 왠지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일부러 서있는 중이었다.


용기 눈에 연화 손에 있는 카넬리안 수정이 들어왔다. 그 수정이 그들의 기를 숨겨주기에 그는 연화쪽으로 좀 더 다가섰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그 수정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 수정으로 인해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카넬리안 수정이 기의 흐름을 막는다 또는 끊는다’ 라는 정확한 의미를 알게된 것은 연화를 업고 도주하다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대략 스무 명 정도 되는 늑대족과 거미족 요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였다.


용기는 이미 수차례 그러한 요괴들의 진형을 뚫어왔기 때문에 빠져 나가는 방법에 대한 공식이 어느 정도 잡혀있는 상태였고, 자신도 있었다.


물론 연화를 업고 있어서 몸이 조금 불편해진 점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했으나, 그 당시만 해도 그의 몸 상태가 아직 괜찮은 상태로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용기의 계획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황룡뇌공파의 부재였다. 황룡뇌공파를 써서 도주할 활로를 요괴들이 서있는 진형 한쪽에 뚫어야 했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계속 움직이면서 시전할 방향을 조준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카넬리안 수정이 밖으로 향하는 용기의 기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임기응변으로 검강(劒罡)을 사용하여 도주로를 만들어 도망치기는 했지만, 용기 연화 모두 곳곳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 포위망을 빠져 나온 후 용기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카넬리안 수정은 몸속의 기를 운공하거나 그 기가 신체와 닿아 있는 가까운 곳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고, 신체와 대기 사이에 있는 공간의 기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황룡뇌공파 시전 위치 확보를 위해 용기가 밖으로 내보낸 기는 그의 몸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카넬리안 수정의 방해를 받아 흐려지게 되는 것이었다.


즉 같은 이론을 투카르스가 말한, 모습과 기를 전부 감출 수 있다는 그러나 카넬리안 수정 근처에서는 모습을 들어낸다는 흑표범족에 적용시켜 해석하면, 흑표범족 요괴들이 모습과 기를 감추는 기술은 어떤 특별한 기술을 그들의 몸에 직접 시전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대기 중에 시전하는 방식임이 틀림없다고 용기는 추측해 보았다.


황룡뇌공파를 사용할 수 없다는 큰 악재를 만난 용기는 카넬리안 수정을 그 포위망을 뚫은 후 버리려고 했다가 생각을 바꿔 다음에 만나게 되는 요괴들의 포위망까지 계속 지니고 도망가기로 했다.


하지만 용기와 연화가 앞쪽에서 튀어나오는 요괴들을 또다시 만났을 때는 상황이 약간 오묘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대략 스무 명 되는 늑대족과 거미족의 혼합 부대는 마침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는데, 그 이동 행렬의 꼬리쪽에 있는 거미족 요괴들과 용기와 연화는 맞닥뜨렸다.


용기는 카넬리안 수정을 ‘이제는 정말 버릴까’ 하다가 다시 한 번 생각을 바꿔, 앞선 격렬한 전투로 안 그래도 이곳저곳이 느슨해진 그와 연화를 칭칭감고 있는 넝쿨들을 잽싸게 잘라버린 후 연화에게 카넬리안 수정을 주며 먼저 그 요괴들과 반대 방향으로 뛰라고 말한 뒤, 황룡뇌공파를 거의 연달아 두 번이나 시전하는 엄청난 기의 소비를 하면서 시간을 벌어 그 요괴 부대의 추격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소중히 간직한 카넬리안 수정은, 그 후 요괴들이 보이지 않는 은밀한 장소에 숨어 잠시 숨을 돌리거나 미리 진을 치고 있는 요괴들을 조용히 우회하는 데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중이었다.


연화는 첫번째 늑대족과 거미족 요괴들이 쳐놓은 포위망을 만나기 얼마전에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연화는 속사포처럼 수없이 많은 불평, 불만, 질문들을 용기 등 뒤에 쏟아 부었다.


너무 많아 용기는 이제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여기는 어디냐?’, ‘당신은 누구냐?’,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거냐?’, ‘내려달라. 묶어서 납치하는거냐?’, ‘당신 옷과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당신 몸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너무 덥다’ 등등 이었다.


그때 용기가 깨달은 것은 연화의 독특한 말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처음 말을 건넬 때 상대방의 주위를 자신으로 돌리기 위한 방식으로 ‘저기요’, ‘실례지만’, ‘죄송하지만' 등등의 문구를 쓰게 마련인데, 연화는 전혀 그러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부터 먼저 내뱉고 그 뒤에 필요하면 추가적인 설명을 붙이는 방식의 말투였다. 용기는 그러한 그녀의 말투로 인해 연화가 마치 전주가 없는 노래들만 모아서 틀어주는 주크박스와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러한 연화도 늑대족과 거미족 요괴들을 만나 부상을 입으며 겨우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자 불평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다만 간혹 그녀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만 용기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경공을 펼치랴, 주변을 살피랴, 힘에 겨워 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단답형으로만 답을 했다.


가끔 숨을 돌릴 때면 용기도 그녀에게 몇 개의 짧은 질문을 하고는 했는데, 역시 연화도 단답형으로 답을 하다보니, 그들의 대화는 마치 맞선 나온 남녀가 서로에게 못마땅한 채로 단지 적당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단답형의 호구 조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들은 그 어색하고 딱딱한 대화속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는 동의하게 되어, 연화는 용기를 ‘아저씨’ 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존대어는 생략하기로 했다. 중국어가 한국어처럼 존대어에 잘 발달된 언어도 아니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급한 김에 반말로 먼저 대화를 시작한게 원인이 되어, 이제와서 서로 존대어를 쓰는게 더 어색해졌기 때문이었다.


“털 보여. 좀 앉던가 아니면 몸을 돌리던가.”


연화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털? 내몸에는 털이 많아.”


용기는 일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아저씨 미니 스커트 아래에 아랫도리를 감춰주는 부분에 털이 삐져 나와있어.”


용기가 황급히 몸을 돌려 아래를 쳐다보니 실제로 아랫도리 털 한 개가 비집고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는 그가 입고 있는 요괴 여성용 전투복에 다시 한 번 저주를 퍼부으며 그 털을 뽑아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드니 마침 일몰이 끝을 이루며 땅속으로 사라지기 바로 일보 직전이었다. 이제 세상은 어둠으로 물들려고 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사라져가는 일몰이 자신의 생명 불꽃이 꺼져가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았다.


- 투카르스: 반드시 해가 사라지기 전까지 붉은 산에 도착해야 돼.

- 용기: 못하면?

- 투카르스: 흑표범족 요괴들에게 죽는거지. 니 실력으로는 그들을 상대하지 못해.


‘여기까지인가? 내 생명도 저 사라져가는 태양과 함께 같이 사라지는 것인가?’


용기는 침울했다. 붉은 산을 코앞에 두고 흑표범족 요괴들을 묶어두던 태양이라는 쇠사슬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건너편에 작은 산 뒤로 보이는 어둠에 묻혀버린 거대한 그림자를 쳐다봤다. 그가 현재 있는 산에서 내려가 앞에 있는 작은 산만 넘으면 붉은 산에 드디어 도착하는데 안타깝게도 태양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털 들고 뭐해?”


연화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용기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직도 아랫도리 털 하나를 손가락 두 개로 쥐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아니 손오공처럼 털을 불어 분신술을 하면 도망가기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

“손오공? 서유기에 나오는?”

“응. 너 서유기 알아?”

“당연하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고전 중에 하나인데. 나 그 책 아주 좋아해.”


연화는 이제 어둠이 깔려버린 산 정상에서 살짝 이빨을 들어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렇지. 너 중국인이였지. 하하.”

“아저씨도 서유기 좋아해?”

“좋아는 해. 하지만 나는 너네 나라 책 중에 더 좋아하는 책이 있어.”


그때 연화가 응시하고 있는 뒤쪽에 주홍색 불빛들이 나무들 사이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저기 불빛들 좀 봐!”


‘야명주!’ 용기는 갑자기 몸이 떨며 긴장을 했다. 자신의 감옥 천장에 달려 있던 야명주의 불빛들이 수백에서 수천을 이루며 뒤쪽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많은 요괴족들에게 쫓기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 용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연화에게 말했다.


“일어서. 가자!”


용기는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면서 어둠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 연화를 잡아주며 이끌었다. 몇 번을 그렇게 그녀가 튀어나와 있는 나무줄기에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다가, 순간 한 기억이 머리속을 스치고 갔다.


다름 아닌 그가 대한민국 육군 장병으로 군복무를 하던 졸병 시절에 부사수로써 사수와 같이 야밤 경계 근무를 나가는 기억의 조각이었다.


그가 군복무를 하던 부대는 강원도 춘천에 있었는데 그가 속한 중대가 서는 경계 근무 장소는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꽤나 먼 거리였다.


야밤에 경계 근무를 하러 갈 때에는 행정반에서 손전등 하나를 보급 받는데, 부사수가 사수가 가는 앞길을 비춰 줘야 했었다. 만약 잘못 비춰 사수가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발을 헛딛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날벼락이 떨어지므로 나름 굉장히 긴장되는 업무였는데, 하필 그 장면이 그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젠장! 그러고보니 군대 이후로 야밤에 산길을 걸어보는건 처음이네.’


그가 똥씹은 표정을 어둠속에서 지으며 자신의 군대 생활의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순간, 또 다른 장면이 떠오르며 그를 소리 지르게 만들었다.


“그래! 군복! 어쩐지 요괴 놈들의 녹색 옷을 보자마자 기분이 더럽다더니 그거였어! 난 세상에서 녹색이 제일 싫어!”


연화는 미친 놈처럼 갑자기 녹색을 저주를 하며 허공에 주먹을 내질러 부르르 떠는 용기를 보며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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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종합선물세트 (5) 21.10.23 33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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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종합선물세트 (3) 21.10.21 347 13 14쪽
49 종합선물세트 (2) 21.10.20 341 13 12쪽
48 종합선물세트 (1) 21.10.19 341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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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그곳에는 전설들이 살고 있었다 (6) 21.10.17 355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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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곳에는 전설들이 살고 있었다 (4) 21.10.15 345 12 13쪽
43 그곳에는 전설들이 살고 있었다 (3) 21.10.14 356 13 15쪽
42 그곳에는 전설들이 살고 있었다 (2) 21.10.13 360 14 14쪽
41 그곳에는 전설들이 살고 있었다 (1) 21.10.12 363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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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들의 선택 (1) 21.10.08 392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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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신계의 세 가지 규율 (4) 21.10.06 407 15 12쪽
34 신계의 세 가지 규율 (3) 21.10.05 409 17 16쪽
33 신계의 세 가지 규율 (2) 21.10.04 399 16 14쪽
32 신계의 세 가지 규율 (1) 21.10.04 404 15 15쪽
31 황룡족. 그 위대한 종족을 위해서 (5) 21.10.03 406 16 18쪽
30 황룡족. 그 위대한 종족을 위해서 (4) 21.10.02 417 15 19쪽
29 황룡족. 그 위대한 종족을 위해서 (3) 21.10.01 413 15 12쪽
28 황룡족. 그 위대한 종족을 위해서 (2) 21.09.30 415 16 19쪽
27 황룡족. 그 위대한 종족을 위해서 (1) 21.09.29 427 15 17쪽
26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8) 21.09.28 411 15 15쪽
25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7) 21.09.27 433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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