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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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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최근연재일 :
20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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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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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162. 공화국의 장군 (3)

DUMMY

렘두스 하이포.


그는 현재 시리온 대신해 붉은 방패의 임시 총독으로 있는 자였다.


공화국에서 나름 알아주는 명문가인 하이포 가문의 가주인 그는 한때, 시리온처럼 귀족파 소속이었지만, 시리온의 권유로 민중파로 전향한 인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배짱이 꽤 좋은 자라고 할 수 있었다.


공화국의 복잡한 정치 체계에서 당파를 바꾼다는 것은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기에.


“그런데, 귀족파의 편지를 받았다고?”


페로스는 포도주가 담긴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되물었다. 요즘은 어려운 시기였기에, 사소한 것에도 신경 써야 했다.


심지어 시리온이 따로 말을 꺼냈다면 그냥 사소한 게 아닐 확률이 더 높았다.


시리온의 말과 행동이 경박스러워도 아직 그 위세를 유지하는 것이 실력의 반증이었으니.


“예, 물론. 편지하나 받았다고 뒤에서 수군대면 안 되는 법이죠. 저도 민중파가 되고 나서 귀족파 애인들하고 편지 주고받았는데요.”


“침대도 같이 썼지.”


원로원 회의 도중 열애편지를 주고받은 일화나 귀족파 의원의 딸과 그 마누라와 동침한 사실을 떠올리며 페로스가 말했다.


어찌나 그런 일이 잦았는지, 과장을 보태면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됐다.


“후회는 없습니다. 사랑에는 장벽이 없으니까요.”


“그런가? 그럼, 여자 이름 한 명만 대보게.”


시리온이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난 자넬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자네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네.”


“별거 없습니다. 저보다 강한 놈이 없으면 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페로스가 잠시 옆길로 샌 이야기를 다시 가져왔다.


“자네가 이리 따로 말한 정도면 단순히 편지를 받은 것 이상일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지 말해주게.”


시리온은 노예에게 시켜 포도주를 한잔 더 받은 다음 입을 열었다.


“편지의 내용은 렘두스 녀석을 회유하는 내용이라 합니다. 옆에 붙은 감시자가 창녀라 전부는 기억 못 하고 맥락만 기억해서요.”


“창녀?”


“예, 그놈도 저만큼 젊고, 저만큼 여자를 좋아하니까요. 비록, 더 변태이지만요.”


페로스는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가문의 구성원과 영향력, 재산, 정치 성향, 성격, 경력뿐 아니라 성적 취향, 여자관계 혹은 남자관계 역시 정치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였다.


그걸 기반으로 매수할 수도 있고, 협박할 수도 있었으니.


사람이란 신기해 때때로 하찮은 이조차 고결하고 위대할 수 있었지만, 위대한 자 역시 속물적이고 비천해질 수 있었다.


“편지 내용의 맥락은 어떻나?”


“원론적 이야기로 채워져 있답니다. 구두로 전달된 거라 확실하지 않지만요.”


“그래도 듣고 싶네.”


페로스는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대답을 요구했고, 시리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요청대로 해줬다.


“렘두스에 대한 안부 인사와 고생을 위로하는 말과 렘두스가 귀족파 시절에 있었던 쓸데없는 과거 이야기를 들먹이며, 공화국이 어떻고, 진정한 애국이 뭐라뭐라 했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보상이나, 지휘는 약속하지 않았군.’


페로스가 생각했다. 아마, 공짜로 렘두스를 부리려는 것은 아닐 터였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관심을 끈 다음 초조하게 애간장을 태운 뒤 그제야 구체적인 보상을 제시할 터였다.


요즘은 매수와 뇌물 역시 연출이 필요한 시대였으니 말이다.


“반응은 어떤가?”


“창녀가 편지 내용을 엿볼 정도면 대충 예상되지 않습니까?”


“흔들리고 있다는 거군.”


“뭘 그리 실망하고 그러십니까? 그런 놈인 줄 알지 않았습니까? 그 점을 좋아했던 거고요.”


페로스는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애당초 귀족파였던 그가 시리온을 따라 민중파로 온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기울어져 가는 가문의 부채를 시리온이 일부 탕감해주고, 귀족파보다 더 중하게 대우해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였다.


특별한 정치적 이념이나, 혹은 야심에 의한 것이 아닌 하찮은 이유에서 말이다.


시리온이 장담하듯 말했다.


“뭐, 당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각하께서도 알겠지만. 가벼운 유혹에도 곧잘 흔들리는 얄팍한 놈이긴 해도 나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기도 하니.... 귀족파에서 손 한번 내밀었다고 덥석 붙잡진 않을 겁니다.”


“동의하네. 아마, 상황을 지켜보며 자기 몸값을 높일 방법을 찾아보겠지. 자신의 처우와 구체적인 보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을 테니.”


“바로, 그겁니다. 아마, 구체적인 보상은 우리가 녹색땅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올 텐데, 렘두스 그놈도 그걸 알 테니, 소극적인 척하며, 이리저리 간을 볼 겁니다. 즉, 그동안은 크게 걱정할 거 없다는 거죠.”


시리온이 명확히 맥을 짚으며 말했다. 겉보기에는 공화국의 음험한 정쟁과 거리가 멀어 보이나, 어린 시절부터 받은 수준 높은 교육과 특유의 감각으로 그는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으며, 단순하지만 명쾌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물론, 중간중간 감시를 해야겠지만, 그건 제 정보통이 해줄 겁니다. 렘두스 녀석이 허술한 것도 있고요.”


“그렇군. 그럼 그 부분을 자네에게 맡겨도 되나?”


“물론이죠. 개인적으로 이런 일 좋아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놈을 내려다보는 것요.”


“이런, 내가 다 뜨끔하구만.”


페로스가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했다. 그러나 비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공화국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는 겸손함이었으니. 이정도 농담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했다. 공화국은 위대한 자를 원하는 거지 독재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음..... 그런데, 소식통이 누군지 물어봐도 되나?”


“에이.... 그런 걸 묻는다고 냉큼 알려드릴 수 없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바투인가?”


시리온이 마시던 포도주를 멈칫 세웠다. 정답이라 시인한 거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느낌이라네. 그리고 창녀라고 자네가 이야기했잖나? 붉은방패에서 창녀 하면은 바투 밖에 없지.”


실로 명쾌한 추측이었지만, 동시에 하기 어려운 추측.


시리온은 못 당하겠다는 페로스를 양해 양손을 뻗어 물건을 바치듯 손바닥을 보인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장난기가 섞였지만, 나름대로의 존경의 표시였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떠나는 건 마음에 걸려서요. 때마침 적당한 놈이 있어 매수했습니다.”


“바투.... 그 친구를 좀 알지. 성질이 더러운 개와 같아. 어떻게 길들였나?”


“성질이 더러워 봤자 개는 개죠. 누가 더 힘이 센지 보여주고 먹이만 던져주면 배를 보이는 법입니다.”


“아, 누구 덕분에 그리 부자가 됐나 했더니, 역시 자네의 입김이 닿았군.”


“꼭 만나 보신 것처럼 말씀합니다.”


“저번에 붉은방패로 갔을 때 잠시 만나봤네. 뭐가 됐건, 내가 부활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라서, 뭐 이래저래 이야기도 들리고.”


시리온이 웃었다.


“그럼, 녀석이 운영 중인 가게도 가봤겠군요. 어떻습니까?”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네. 아름다운 여자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비합리적여 보이기도 하고.”


페로스는 사슬에 묶인 채 서로 싸우는 여성들과 늑대가죽을 뒤집어쓴 채 흉측한 난쟁이와 싸우던 여성을 기억하며 대답했다.


모두 고통받았으며, 비참했다.


단순히 몸을 파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 최소한의 존엄마저 정육점 고기처럼 썰려 주화로 바뀌었다.


같은 동포인 여성을 때려 패던 여자의 고함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난쟁이에게 강간당하던 여성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녀들을 보고 기뻐하는 공화국의 아들들의 웃음소리도 말이다. 한때, 초창기 공화국의 정신을 계승해 절제와 검소함을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도시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훨씬 더 많이 돈을 벌고 있죠. 저도 놈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봐서 압니다. 인간의 밑바닥에 깔린 탐욕과 광기를 부추기고 그걸 돈으로 바꿀 줄 알지요. 상상력도 풍부했습니다.”


“그건 동감이네. 너무 풍부하더군.”


“각하 취향에 맞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러려니 하십시오. 덕분에 렘두스가 그놈과 계속해 접촉하는 거니.”


페로스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한 법이었다. 목표가 크면 클수록 인내심 역시 더 많이 필요했고.


페로스가 그 점을 고려하며 입을 열었다.


“.... 렘두스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는 서신을 쓰고, 선물을 보내야겠군.”


“..... 나쁜 생각 아니군요. 그럼, 우리가 자기를 믿고 의지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렇지. 그 친구가 방심할수록 우린 수월해지지.”


“지금 바로 쓰실 건가요?”


“아니, 이왕이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소식과 함께 보내는 게 좋지. 강철 모루를 무너트린 후 쓰도록 하겠네.”


페로스가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번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처럼 강철 모루를 무너트릴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척후를 파견해 저멀리서 온 구원군의 동태를 파악해, 시리온의 말처럼 더 이상 방해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후, 강철 모루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각 진입로에 배치한 매복 병력 일부를 가져와 돌팔매질과 화살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적들의 잠을 빼앗았으며, 재조립을 마친 오나거와 스콜피온 등 공성무기를 전면에 배치해 성벽 모서리를 깎아냈다.


상대는 라기아족치고는 보기 드물게 성벽에 공성무기를 배치했으나, 성능은 공화국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어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다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성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립된 자들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


특히, 믿었던 구원군에게 배신당하고, 며칠에 걸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자들에게는......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구원군은 맥없이 물러났으며, 그와 동시에 고지대에 세워진 강철모루에서 백기를 든 사신이 나왔다.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새해 인사 미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무젓가락 님. ygmayg 님. 폴피리 님.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결 힘내서 쓸 수 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마음 늘 기억하겠습니다.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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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2. 공화국의 장군 (3) +6 22.01.30 1,002 44 10쪽
176 2-161. 공화국의 장군 (2) +3 22.01.23 514 36 13쪽
175 2-160. 공화국의 장군 (1) +6 22.01.16 535 42 12쪽
174 2-159. 협력자 (5) +14 22.01.09 537 43 12쪽
173 2-158. 협력자 (4) +11 21.10.31 716 45 12쪽
172 2-157. 협력자 (3) +7 21.10.17 685 47 14쪽
171 2-156. 협력자 (2) +5 21.10.10 611 49 10쪽
170 2-155. 협력자 (1) +9 21.10.03 694 48 12쪽
169 2-154. 침략자 (2) +5 21.09.26 670 46 13쪽
168 2-153. 침략자 (1) +5 21.09.19 730 47 14쪽
167 2-152. 증명하는 자 (2) +12 21.08.15 837 55 14쪽
166 2-151. 증명하는 자 (1) +10 21.08.08 788 59 12쪽
165 2-150. 대비하는 자 (4) +13 21.08.01 758 51 19쪽
164 2-149. 대비하는 자 (3) +13 21.07.25 773 59 12쪽
163 2-148. 대비하는 자 (2) +21 21.07.18 806 68 12쪽
162 2-147. 대비하는 자 (1) +10 21.07.11 907 65 12쪽
161 2-146. 성공한 사업가 (4) +10 21.07.04 906 68 19쪽
160 2-145. 성공한 사업가 (3) +10 21.06.27 908 60 14쪽
159 2-144. 성공한 사업가 (2) +14 21.06.20 853 61 19쪽
158 2-143. 성공한 사업가 (1) +11 21.06.13 916 62 16쪽
157 2-142. 올라서는 자 (3) +14 21.06.06 816 64 15쪽
156 2-141. 올라서는 자 (2) +6 21.05.30 800 49 13쪽
155 2-140. 올라서는 자 (1) +6 21.05.23 908 56 14쪽
154 2-139. 여인 (4) +28 21.05.16 972 73 16쪽
153 2-138. 여인 (3) +9 21.05.09 909 55 16쪽
152 2-137. 여인 (2) +11 21.05.02 946 6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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