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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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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최근연재일 :
2022.01.30 09:00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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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55,524

작성
21.10.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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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2쪽

2-158. 협력자 (4)

DUMMY

시리온과 코모두스.


은화장군의 오른팔과 왼팔 격인 두 사령관이 밖으로 나가자 거대한 천막에는 은화장군과 르로안만이 남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르로안은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해야 마땅하지만, 어째서인지 입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용건이 있어 무리하게 왔음에도 말이다.


그만큼 르로안에게 있어 드루이드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녹색땅 동부 동기라기아족이 공화국의 침략에 맞서 싸울 때, 서라기아족의 배신에 동라기아족이 신음할 때도 침묵하던 드루이드가 고작 이따위 상황에 움직이다니.


르로안은 이제 분노를 넘어 어이없음을 느꼈다.


도대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잊을 만큼 말이다.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르로안은 자신의 세상을 지탱하는 머릿속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바닥이 한쪽으로 기울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울렁증을 맛봤다.


아주.... 아주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르로안이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어 갈 때쯤 은화장군이 르로안을 불러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 줬다.


그는 특유의 정중한 조롱 대신 평소보다 더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르로안 공.....”


부드러운 그의 부름에 르로안은 막 잠에서 깬 듯 한참을 있다 입을 열었다.


“......예, 각하.”


“무슨 일이 있어, 다레온을 통해 여기로 온 거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 아니오?”


그 말에 르로안 머릿쪽으로 쏠렸던 피가 한꺼번에 빠지는 감각을 느끼며 세상이 핑 도는 현기증을 느꼈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러나 르로안은 정신을 다잡아 피곤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일단,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그, 그렇습니다. 각하......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소. 비록, 내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릴 비웠다고 하나 아직 다급한 상황이 아니니.... 무엇보다 그대가 그냥 왔다고 생각하지 않소. 용무를 이야기해보시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태도에 르로안은 그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여기 온 것은 르로안이 즉석에서 멋대로 행동한 일.


은화장군이 이와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해 그런 보고를 하게 한 것은 너무 억지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드루이드가 정말 서라기아족에 붙었다는 건가?’


젠장..... 르로안은 고개를 있는 힘껏 저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 생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부정적이고 정신을 갉아먹는 생각만 하게 됐다.


그래선 안 됐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르로안은 현재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집중. 집중.


“......각하의 말씀대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호..... 무엇이오? 다레온에게 부탁해 찾아와야 할 말이면 제법 중요한 이야기 일 듯한데. 솔직히 기대되는구려.”


르로안은 드루이드 건을 잊기 위해 은화장군을 더욱 자세히 살펴봤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속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르로안.....?”


“....말씀드리기에 앞서, 현재 공사 상황이 어떤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공사 상황? 음...... 중요 공사는 거의 완성되어 가오. 적의 주요 침입로인 길목과 공성 준비는 말이오. 그대의 입에서 나온 것 치고는 의외의 질문이구려. 아,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오.”


“무슨 뜻인지 압니다.... 원래 공사 일정에 비해 조금 늦어지는군요.”


“꼭 그렇지도 않소. 공사 진행 상항이 좀 느려지긴 했지만, 완성이 끝나는 대로 다른 곳에 투입하면 얼추 맞출 수 있소.”


“그렇다면 병사가 너무 지치지 않겠습니까? 각하께서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해도 계속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병사들의 사기가 빨리 떨어질 텐데요.”


르로안은 그동안 은화장군과의 대화를 되뇌며 최대한 합리적으로 말해봤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는지 은화장군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음에도 화를 내긴커녕 즐거워했다.


“실로 맞는 말이오. 르로안 공..... 가축조차 제대로 된 여울과 휴식을 주지 않으면 주저앉는 법인데,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 사실, 나도 그 부분에 관해 고민하고 있소. 인력은 한정되는데 일이 너무 많으니.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할 수 없고.... 다음 할 말이 무엇이오? 단순히 그런 지적만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 생각되는데.”


르로안은 심호흡했다. 다행히 지금의 이야기에 정신이 몰리자 드루이드 이야기는 점차 희미해졌다.


“......저희 뼈화살 부족은 각하와 부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담을 나누고 싶다라..... 미안하지만, 좀 더 쉽게 풀어 이야기해줄 수 있겠소. 나이가 먹으면 이해력도 무뎌지는 터라.”


뻔뻔한 헛소리. 허나, 르로안은 시키는 대로 했다.


“저희 부족원을 공사 노동력으로 제공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각하.”


은화장군은 불쾌해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흥미로운 듯 두 손을 모으곤 르로안을 빤히 바라봤다.


르로안은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피하지 않고 똑같이 바라봤다. 피해선 안 됐다. 말 자체는 진심이었으니.


“......공사 노동력으로 제공하겠다고 하셨소?”


“예,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에게 공화국과 같은 공병기술은 없지만, 단순 노동력 정도는 제공할 수 있습니다.......”


르로안이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본론이었다.


“물론, 각하께서 공병기술을 조금씩 가르쳐주신다면 저희가 더 많은 부분을 도와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르로안이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며 말했다.


목표는 사실 이거였다.


공화국의 공병기술을 전수받는 것.


2, 3년 전 르로안이라면 이런 생각 따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공병기술을 익히며 뼈화살 부족은 단순 전투원을 넘어 공화국 군단병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싸울 자들은 많은 데 반해, 진지를 구축하고, 요새를 만들며, 공성장비를 구축할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었으니,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부족에 비해 안전한 임무를 맡을 수 있고.


‘무엇보다 그 기술은 우리 뼈화살부족을 강하게 해줄 거야.’


르로안이 속으로 확신했다.


옆에서 공화국의 공병기술의 위력을 실감했으니. 특히, 궁술이 특기인 우리 뼈화살 부족이 익히면 그 보탬이 얼마나 클지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문제는 은화장군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거였다. 은화장군이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뼈화살 부족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은근히 경계하는 그가 순순히 르로안의 뜻대로 움직여줄지 의문이었다.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생각은 있지만....’


“나쁜 생각 같지 않구려. 오히려 아주 훌륭한 생각 같소.”


그러나 르로안의 걱정이 헛수고라는 듯이 은화장군이 흔쾌히 입을 열었다.


르로안이 동요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그렇소. 병사들을 독촉하는 것도 하루 이틀만 먹히지 몇 주, 몇 달 동안은 불가능하오. 오히려 태업을 유발하지. 길스 장교 시절에 몇 번 봤는데, 그럼 정말 답도 없소. 그런 의미에서 그대 제안은 아주 고마운 제안이오. 인력 확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니. 다만, 걱정스러운 게 하니 있소.”


“무엇입니까?”


“그대 전사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이오. 우리 공화국은 애당초 공사 같은 작업을 병사들이 병행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지만, 그대들은 아니지 않소? 체력소모뿐 아니라, 심리적 반발도 있을 텐데. 괜찮겠소.”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제가 설득할 수 있습니다.”


르로안이 속으로 안도하며 대답했다. 은화장군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공께서는 부족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계시니, 충분히 그럴 것이오. 맨몸으로 싸워 부족민뿐 아니라 다른 부족민도 구한 라기아족의 영웅이니.”


라기아족의 영웅이라.... 참으로 마음을 참으로 복잡하게 하는 단어였다.


“좋소, 르로안 공. 그럼, 그대의 제안, 내 기쁘게 받아들이겠소. 지금은 작업이 끝나는 중이니 투입하기 어렵고 다음부터 도움을 받고 싶소. 도와줄 수 있는 인력을 규격에 맞춰 준비해줄 수 있겠소? 자세한 내용은 장교를 통해 전하겠소.”


“예, 각하.”


짝! 은화장군이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을 부딪쳤다. 방심한 것인지, 자신이 넘치는 것인지 르로안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얹어주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고맙소.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해결돼 머리가 가볍기까지 하오.”


“아닙니다.”


“아니오. 아니오. 정말 고맙소..... 그러고 보니 공병기술도 전수받고 싶다고 하셨소?”


“... 네, 각하.”


“공병기술은 꽤 어려운 편이오. 내 머리로도. 이건 전문가가 가르쳐줘야 하는 영역인데, 공의 전사 중 영특한 자로 한 서른 명 정도 추려 따로 편성해주시오. 그렇다면 내 공병 장교들을 둘, 셋 추려 가르치도록 명하겠소.”


흔쾌한 은화장군의 대답에 르로안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설마 이 정도로 순순히 허락해주다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기는군.”


“예?”


“내가 알기로 우리 쪽 공병장교 중 라기아어를 아는 자가 없소. 뼈화살 부족에 공용어를 아는 자가 좀 있소?”


“......약간은 구사할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오. 그리고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도면을 그리는 법이나, 글자도 알아야 하오. 라기아족에는 글자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맞소?”


르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라기아족은 글자 따위 없었다. 비슷한 거라고 해봐야 드루이드만이 사용하는 비밀의 언어 룬 문자뿐이었다.


그 문자는 드루이드만이 온전히 썼다.


“그렇다면 공화국 문자를 배워야겠구려.”


“그거라면 제가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저희 전사 중 아는 자를 시켜.....”


“미안하지만, 왕께서 그런 것을 하긴 힘들지 않겠소?”


맞는 말이었다. 뼈화살 부족을 이끄는 지금의 르로안이 하기에는 부적절한 일이었다. 뭣보다 르로안은 읽고 말할 수 있다 뿐 누굴 가르칠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걱정마시오. 때마침 우리 쪽에 적절한 인력이 있으니.”


“.....혹시, 다레온 경입니까?”


“오, 어떻게 알았소?”


르로안도 그 사실은 알 수 없었다. 그냥 다레온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시키면 뭐든지 잘하는 친구이니, 아마, 그 일도 잘할 것이오. 다레온 경을 통역 및 말과 문자 공부에 투입시키도록 하겠소.”


르로안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 문제는 얼추 결정이 났구려. 다시 한번 고맙소. 르로안 공. 덕분에 내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됐소. 우리의 우정이 한층 단단해진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각하.”


평소의 은화장군이라면 몇 마디 더해 사람 마음을 흔들어놨을 테지만, 그는 이쯤에서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마치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렇다면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시오. 마음 같아선 같이 식사를 해며 기쁨을 나누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내가 이미 식사를 한 터라 말이오.”


르로안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곧바로 사령관 막사를 나왔다.


날은 상당히 저물어 어두웠으며, 밖에는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병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레온 빼고 말이다.


“전하. 말씀은 다 나누셨습니까?”


“다레온 경.... 날 기다린 건가?”


“예, 돌아가시는 길을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할 거라 생각돼서요.”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근방이 공화국 군대의 통제권에 있다 해도 숲에는 어떤 위협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법이었으니.


다레온 그는 지금껏 일했음에도 조금의 피로나 싫은 기색 없이 물었다.


“허락해주신다면 전하를 보조하게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르로안은 왔던 길 탔던 말 위에 뛰어올라 단숨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그럼, 부탁하지.”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worgen8198님 응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마음 감사히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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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2-149. 대비하는 자 (3) +13 21.07.25 773 59 12쪽
163 2-148. 대비하는 자 (2) +21 21.07.18 806 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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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2-143. 성공한 사업가 (1) +11 21.06.13 916 62 16쪽
157 2-142. 올라서는 자 (3) +14 21.06.06 816 6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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