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최근연재일 :
2022.01.30 09:00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499,995
추천수 :
23,924
글자수 :
1,255,524

작성
21.10.10 09:00
조회
610
추천
49
글자
10쪽

2-156. 협력자 (2)

DUMMY

“전하.”


여우의 부름에 르로안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르로안이 반응했음에도 여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긴장한 듯 주변의 전투 귀족을 살펴봤다.


그 순간 르로안은 깨달았다. 여우가 단순히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님을.


그는 지금 다른 전투귀족들을 대신해 민감한 질문을 하려 했다. 그리고 그게 뭔지도 대충 알 거 같았다.


르로안은 포도주를 한 모금 크게 마시곤 말했다.


“....편하게 이야기해. 지금은 우리끼리니까.”


여우가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찌 되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이 전쟁이 말이죠. 끝까지 공화국의 편에서 싸우실 겁니까?”


질문은 여우가 했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것은 전투 귀족들이었다.


하긴, 당연했다.


공화국과 다시 손잡아 배신자 서라기아족을 물리치고, 부족을 다시 부흥하며 녹색 땅을 정복하는 것은 좋은 이야기였지만, 그 과정에서 녹색땅의 대왕이 공화국 침략자가 되는 건 약간.... 아니, 아주 다른 문제였다.


녹색땅의 대왕은 녹색땅의 왕 중의 왕이자, 모든 라기아족을 통치하는 최강자.


첫 번째 대왕은 당연하게도 모든 라기아족의 아버지인 영웅신 라기아.


이후, 각 부족의 왕들 중 가장 뛰어난 왕을 투표로 혹은 결투로 뽑았다.


그 와중에 많이 잡음이 일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왕이 존재하는 동안 라기아족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세상의 강자로 존재할 수 있었다.


비록 잘못된 선택과 세월의 흐름 앞에 사라지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반쯤 전설 같은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대왕 자리를 라기아와 그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외국인 침략자가 차지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왕들은 모두 무릎 꿇었지. 나를 포함해.’


르로안은 그때를 떠올렸다.


모두가 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라기아족의 대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은화장군 페로스를.


늘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전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친 짓. 미친 짓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뻔뻔하고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어느새 그의 넝쿨에 걸려든 왕들과 그 넝쿨 아래에서 자라난 왕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첫 번째로 무릎을 꿇은 것은 맨손 부족의 왕 놀프.


르로안 덕분에 새로운 부족을 세운 사실상 이방인에 불과한 용병이었지만, 르로안과 맞먹을 만큼 큰 세력을 보유하게 된 그는 누구보다 먼저 또 당당히 그에게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와 함께 무릎 꿇은 놀프의 부하들.....’


한무리의 전사들이 뒤이어 무릎을 꿇었고, 이후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투랜은 자신의 처지 역시 놀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듯 무릎을 꿇었고, 그 뒤를 이어 르로안 자신과 아버지 리가르, 처남인 라벤이 연달아 무릎을 꿇었다.


그다음은 긴 창 부족, 민물고기, 녹색사슴, 얼룩돼지, 엄니멧돼지, 돌주먹 등등 한때 은화장군을 배신한 모두가 무릎을 꿇고 그 아래에 들어갔다.


르로안는 문득 생각해봤다.


왜 자신이 은화장군에게 대항도 못 하고 무릎 꿇었는지.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않았다.


분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은화장군과의 권력 싸움에도 일방적으로 패하고 말았으니.


아니, 패한 것을 넘어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배우고 싶었다.


비록, 현재는 약세이긴 하나 왕들 모두는 제 나름대로 강인하고 용맹한 자들.


그런 자들이 페로스에게 꼼짝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한 그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부족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르로안이 대답을 기다리는 전투 부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들을 진정시켜야 다음에 르로안이 선택할 때 제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


“·····큰 문제가 없는 한은 그렇다.”


르로안이 나직이 말했다. 혹여, 나무조차 귀가 있을지 모르니.


그러나 선봉에 서서 혈기왕성한 전투귀족 중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그렇지만 전하 그는-”


“-입을 조심해.”


르로안이 단호히 또 나직이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면도칼만큼 날카롭고 서늘해 전투귀족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은화장군은 단순히 찍어 누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훨씬 더 잘 갈무리했다.


르로안은 전투 귀족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뒤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곳곳에 귀가 있으니, 다들 함부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마. 특히, 그대들은 전투에서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을 지휘하는 전투귀족. 더더욱 혀를 조심해야 해..... 기억해. 당장 상황이 나아졌다곤 하나 우린 전쟁 중이고, 그 기반이 약하다는 걸. 재작년 겨울의 참극을 결코 잊지마.”


르로안의 말에 전투귀족들의 모습은 살짝 변했다.


단순히 힘과 권위로 찍힌 겁먹고 자신감 없는 모습이 아닌, 자신들의 잘못을 이해하고 반성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는 좋은 징조였다. 르로안이 은화장군의 흉내를 제대로 냈다는 거였으니.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그의 장점을 보고 배울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그나마 격차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휘둘릴 수만은 없어.’


깨달은 바가 있는지 전투귀족들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권위에 눌린 형식적인 사과가 아닌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사과를.


“죄, 죄송합니다. 전하....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마음이 답답한 나머지.... 죄송합니다.”


르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했다.


“....그리고 너무 초조할 필요 없어. 모두들.”


그 말에 전투귀족들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했다.


“페로스 경께서 라기아족의 대왕이 된다고 해도, 실제로 대왕이 된다는 뜻은 아니야.”


전투귀족들이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지었다.


1, 2년 전만 해도 르로안 역시 저들과 같은 표정을 지었겠지.


“그는 이 땅을 직접 통치할 생각이 없어. 창과 칼로 침략하고, 우리를 규합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공화국. 그는 그저 공화국에 자랑할 전공이 필요한 것뿐이야.

본인이 말했다시피 그는 녹색땅을 정복하고 왕관을 머리 위에 쓰겠지만, 이내 벗어 버리곤 공화국에 바칠 거야. 즉, 실질적으로는 그가 왕이 되는 게 아니야.”


“그렇다 해도....”


“맞아, 그렇다 해도 문제가 없어지느냐면 그건 아니지.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둘러봐. 단순히 자긍심 문제로 현재 상황을 판단하는 게 옳은 건지.”


전투 귀족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부족은 기아와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그건 공화국이 구축해놓은 울타리에 둘러싸인 덕분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서라기아족의 침략과 다른 동라기아 부족 간의 소모전인 경쟁에서 해방된 것은 페로스가 이끄는 공화국 군대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구속하는 틀인 동시에 보호하는 울타리였으니.


그 순간 르로안의 눈이 커졌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기분이었다.


통제와 보호. 이 두 가지가 가지는 교묘한 상관관계에서 가지는 힘을 이해할 거 같았다.


“그, 그렇다면....”


한 전투 귀족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예상됐다.


계속해 공화국을 위해 싸워야 하냐는 거겠지.


르로안이 대답했다. 한순간 두개골이 열리며 공기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다들 문제 하나만을 보고 핵심을 헷갈리지 마.”


“네?”


“우리가 공화국의 도움을 받아, 공화국을 위해 싸우고 있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목숨과 안전. 그리고 후세에 물려줄 재산과 힘. 이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어찌할지 다들 이해할 거야. 그러니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당장 눈앞의 임무와 상황에 집중해.”


그러자 여우가 바톤을 건네받아 상황을 정리했다.


르로안이 충분히 대답했다고 대신 이야기하며, 그만 다들 돌아가라고 했다.


실제로 다레온에게서 받은 소시지와 포도주도 딱 적당한 타이밍에 떨어졌고.


배와 목을 축이고, 대답까지 충분히 들었는지 전투 귀족들은 머뭇거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정중히 숙이며 물러났다.


그러나 오히려 르로안은 머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복잡해졌다.


이대로는 안 됐다. 공화국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심듯 르로안도 공화국에 영향력을 심어야 했다. 그들이 허락해준 영향력 이상으로 말이다.


자신을 따르는 전사와 부족민을 위해서라도..... 세상에 설마 자신이 철가면을 쓴 놈과 같은 생각을 하다니.


여우가 저벅저벅 다가와 말했다.


“쓸데없는 질문드려 죄송합니다. 전하. 용서해주십시오.”


“아냐, 네 뜻이 아닌 다른 전투 귀족들을 대변해 준 거 알고 있어, 무엇보다 질문 자체가 나쁘지 않았어.”


“그렇습니까?”


“그래, 봄이 오고 다시 주사위가 굴러가고 있어. 우리가 원했든 원치 않았던, 주사위는 굴러가고 있지..... 우리에게 유리한 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발버둥 쳐야해.”


르로안의 그 모습에 여우는 물론 발마와 다른 전사들까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의 일이 아닌 그 이상을 해야 했다.


“공사가 얼마나 진행 중인지 알 수 있나?”


르로안이 물었다.


“공사 진행 상황 말씀입니까?”


“그래.”


“이쪽은 척 봐도 잘 진행 중입니다. 아무래도 예정된 기간보다 빠르게 끝날 것 같습니다.”


그렇다라..... 르로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쪽 공사는 어떻지? 다른 곳의 은신 요새나 ‘강철 모루(도끼 부족의 성)’ 공성 준비 상황은?”


여우가 주변을 둘러보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곳은 파악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전사들을 파견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냐, 괜찮아. 오늘 다레온이 한 번 더 나타날 테니, 그 녀석에게 물어보면 돼.”


여우는 르로안을 바라보다 물었다.


“.....물어본 다음에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대답에 따라 은화장군을 만나야지. 그리고 우리만의 영향력을 심을 거야.”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다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십시오!


나무젓가락 님, dukan88 님. 응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마음 늘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과 먼지의 왕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강과 먼지의 왕자 장기 휴재 공지 사항입니다. +9 22.02.06 2,540 0 -
공지 강과 먼지의 왕자 휴재 공지 사항입니다.(8월 22일 ~ 9월 12일) +15 21.08.21 981 0 -
공지 녹색땅 동부 지도 입니다. +2 20.12.25 2,183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에 관련된 공지사항 입니다.(금요일 에서 일요일로.) 20.08.14 1,889 0 -
177 2-162. 공화국의 장군 (3) +6 22.01.30 1,001 44 10쪽
176 2-161. 공화국의 장군 (2) +3 22.01.23 514 36 13쪽
175 2-160. 공화국의 장군 (1) +6 22.01.16 535 42 12쪽
174 2-159. 협력자 (5) +14 22.01.09 537 43 12쪽
173 2-158. 협력자 (4) +11 21.10.31 716 45 12쪽
172 2-157. 협력자 (3) +7 21.10.17 685 47 14쪽
» 2-156. 협력자 (2) +5 21.10.10 611 49 10쪽
170 2-155. 협력자 (1) +9 21.10.03 694 48 12쪽
169 2-154. 침략자 (2) +5 21.09.26 670 46 13쪽
168 2-153. 침략자 (1) +5 21.09.19 730 47 14쪽
167 2-152. 증명하는 자 (2) +12 21.08.15 837 55 14쪽
166 2-151. 증명하는 자 (1) +10 21.08.08 788 59 12쪽
165 2-150. 대비하는 자 (4) +13 21.08.01 758 51 19쪽
164 2-149. 대비하는 자 (3) +13 21.07.25 773 59 12쪽
163 2-148. 대비하는 자 (2) +21 21.07.18 806 68 12쪽
162 2-147. 대비하는 자 (1) +10 21.07.11 907 65 12쪽
161 2-146. 성공한 사업가 (4) +10 21.07.04 906 68 19쪽
160 2-145. 성공한 사업가 (3) +10 21.06.27 908 60 14쪽
159 2-144. 성공한 사업가 (2) +14 21.06.20 853 61 19쪽
158 2-143. 성공한 사업가 (1) +11 21.06.13 916 62 16쪽
157 2-142. 올라서는 자 (3) +14 21.06.06 816 64 15쪽
156 2-141. 올라서는 자 (2) +6 21.05.30 800 49 13쪽
155 2-140. 올라서는 자 (1) +6 21.05.23 908 56 14쪽
154 2-139. 여인 (4) +28 21.05.16 972 73 16쪽
153 2-138. 여인 (3) +9 21.05.09 909 55 16쪽
152 2-137. 여인 (2) +11 21.05.02 946 6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