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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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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최근연재일 :
2022.01.30 09:00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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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5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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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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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148. 대비하는 자 (2)

DUMMY

다레온이 대답을 하자마자 길스식 와상에서 일어난 안토니아는 율리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마치 친자매를 대하듯 율리아와 친밀하게 팔짱을 꼈는데, 율리아도 이제는 익숙한지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의 남편인 방크스와 다레온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고.


묘한 침묵이 자리 잡았는데, 그때, 다레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방크스 경.”


“무엇이 말이오?”


방크스는 노예에게 포도주를 가져올 것을 지시하며 물어싸.


“우즈리스 부인께서 제 아내와 친하게 지내줘서 감사합니다.”


“미안하지만 나와는 상관없소. 귀찮은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오. 내 아내가 원해서 그대 부인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오....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소. 모욕할 의도는 아니지만, 그대 가문은....”


“우즈리스 가문에 비하면 한미하지요.”


“.... 모욕할 의도는 아니었소. 그래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소.”


방크스가 다레온을 지그시 관찰하며 말했다.


겉으로는 다들 괜찮은 척하지만, 표정과 미묘한 억양, 손발의 제스처는 다들 다른 말을 하는 법.


그러나 놀랍게도 다레온이란 이 남자는 전부 일치하는 대답을 했다.


“저도 정말 괜찮습니다. 방크스 경. 우즈리스 가문에 비하면 아피투스 가문은 역사, 재산, 조상 등 내세울 것이 없는 게 엄연한 사실인걸요. 한밭 모닥불이 어찌 태양과 비견되겠습니까?”


방크스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은 당혹스러웠다. 본인 말대로 하찮은 가문의 수장이자, 반의 반쪽짜리 귀족이... 심지어 아들과 비슷한 나잇대의 이 청년의 속이 도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말을 하려는 찰나 다레온이 반 박자 더 빠르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뭐라 하였소?”


“아, 제가 건방진 소리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맛 좋은 음식을 먹어 과하게 혀를 놀렸습니다.”


“아니요. 불쾌해 물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 묻는 거요. 뭐라 말했소?”


다레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자는 자신이 가난한 걸 알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고, 힘없는 자는 자신이 힘이 없다는 걸 알아야 힘을 기를 수 있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겠죠.”


“허..... 길스인이라고 하시더니, 꽤나 철학적인 말을 하시는구려.”


다레온이 하하하 밝게 웃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 철학자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예, 농부, 대장장이, 장사꾼, 상인, 군인, 장군, 정치인 모두 자신이 살아가는 규칙을 정하죠. 그 와중에 궁금증이 생기고 저마다의 답을 내놓고요.... 이 정도면 철학자 아니겠습니까?”


“..... 재밌군. 그럼, 다레온 경. 그대의 철학은 무엇이오?”


“열심히 살아 제 가족과 친구들을 부양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거고요.”


이번에는 방크스는 하하 웃었다.


철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헛소리. 그럼에도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는 참으로 모범적인 대답이었다.


무릇 진정한 남자란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책무를 다해, 현재 자신이 맡은 가문을 최대한 키워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물론, 그 후손도 자신의 후손을 위해 그래야 하고....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가 무서워 따로 잠잔다는 소문이 있는 남자가 이리 말하다니. 이상하게 웃겼다.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오. 무릇 남자란 그래야지.”


“감사합니다. 제 아버지에게 배운 것입니다.”


“아버지?”


“예. 그렇습니다.”


노예가 포도주를 가져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포도주 창고 깊숙이 둔 거라 찾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습니다.”


“뭐, 난 괜찮다. 어떤 걸 드시겠소? 블랙, 블러드?”


“블러드 와인을 먹고 싶습니다.”


“하... 그렇소?”


“예. 블랙 와인은 과거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어, 괜찮으시다면 블러드를 마시고 싶습니다.”


방크스는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담긴 건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음미했는데, 제법 모양새가 잡혀 있었다.


“맛은 어떻소? 아내의 친구분이라시기에 특별히 아끼는 포도주를 가져왔는데?”


“아주 훌륭한 포도주입니다.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렇소?”


방크스는 그리 되물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아내에게 잡혀 살고 하던데.


그러다 문득 방크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는 페로스와 시리온에 대해 캐묻기 위해 부른 것인데, 어느새 다레온 본인에게 더 관심이 가는 거였다.


“.........”


“괜찮으십니까? 방크스 경?”


“.... 그래, 괜찮소. 그대처럼 재밌는 친구는 오랜만이라 그렇소.”


“칭찬 감사합니다. 원로원 의원이신 경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빈말이 아니오. 늙은이의 흔해 빠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뭐랄까....?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거든. 다들 기운이 없다고 할까. 너무 넘친다고 할까. 그래서 젊은 친구와 같이 식사를 가져도 썩 유쾌하지 않소.”


“과찬이십니다.”


“그 재주를 인정받아 공화국 귀족이 된 것이겠지?.... 시리온 경 말이오.”


“..... 예, 정확히는 페로스 각하의 유품인 반지를 가져다드린 선물로 받은 거지만요.”


“아... 유품.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 그러는데, 단어의 뜻이 헷갈리는구려. 유품이란 분명 고인이 남긴 물건인데, 페로스 경은 지금 살아있지 않소? 미안하지만, 어찌 반지를 시리온 경에게 가져다줬는지 알려줄 수 있겠소?”


방크스는 다레온을 관찰하며 물었다. 그는 식사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동요가 없었다.


“예, 얼마든지요.”


다레온은 그와 함께 한편의 대서사시를 읊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공화국 군대가 함정에 빠졌는지, 전투가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지 실감나고 세세하게 설명했다.


꽤 재밌었는데, 방심하면 이야기에 매료될 거 같았다.


“..... 그렇게 반지를 가져다주고 시리온 각하의 후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렇구려..... 미안한데,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라 그런데 다시 한번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


“예, 물론입니다.”


다레온은 다시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 번째 설명인 것처럼 상세히 이야기해 줬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끝났다.


“미안한데, 다시 한번 설명해줄 수 있겠소?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라 한 번 더 듣고 싶소.”


다레온은 싫은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세 번째 설명을 시작했다.


워낙 긴 이야기라, 약간의 순서가 바뀌거나, 단어, 문장이 변하곤 하였지만, 놀랍게도 이야기 자체는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중요한 부분은 늘 일치했다.


오죽하면 중간중간 끼어들어 일부러 잘못된 질문을 해도 다레온은 어물쩍 넘기지 않고 정확히 짚어 넘어가 줬는데, 이는 생각보다 대단한 재주였다.


같은 내용도 수차례 이야기하다 보면 바뀌기 마련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소했다.


가벼운 건망증, 기억의 왜곡, 과장, 허풍. 그렇기에 같은 이야기도 입에서 입으로 거치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변하곤 했다.


마치 신화 속 영웅들의 모험극처럼.


그런데, 다레온이란 이 남자는 같은 이야기를 별다른 오차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방크스가 입을 열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요. 같은 이야기를 세 번이나 하는 거 곤욕이었을 텐데, 참으로 고맙소.”


“아닙니다. 원로원 의원님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맛있는 식사도 대접받았고요... 원하신다면 다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음...... 아니요. 괜찮소. 어쨌건 대단하시오. 모든 걸 잃은 그 순간 그런 기회를 엿보다니. 참으로 엄청난 용기요.”


“아닙니다. 용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그토록 노력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두려움요. 그 덕분에 다들 제 정신 나간 의견에 따라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해도 대단하오. 이야기를 보아하니 그대 역시 식견이 좀 있는 거 같은데, 질문하나 해도 되겠소? 혹시 대답하기 곤란한 거라면 하지 않아도 되오.”


“식견은 없지만,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대가 보기에 어떻소? 신의 선택으로 부활한 페로스 경이 녹색땅을 정복할 거 같소? 한 명의 공화국 시민으로 이 위대한 전쟁이 어찌 끝날지 몹시도 궁금하오.”


잠깐의 침묵. 다레온이 입을 열었다.


“..... 예, 전 각하가 이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역시 그렇구려.... 이유에 대해 물어 볼 수 있겠소? 페로스 경께서 아프로디테 여신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오?”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은 몹시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아무리 똑똑하고, 힘이 강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몰락하고 말 테니까요”


“신앙심이 깊구려.”


“예, 신들의 보살핌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렇다 해도 그 드넓고 험한 녹색 땅을 정복하는 게 말처럼 쉽겠소? 그곳은 야만 신들의 땅. 감히 불경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들도 그곳에선 힘을 쓰기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땅은 크지만 그만큼 분열되어 있고, 험한 만큼 그들은 안전과 안락함을 원할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호..... 그렇소?”


“예, 전사들이란 분명 강한 존재는 맞지만, 그들 역시 결국 사람입니다. 제아무리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다진다 해도 결국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 짧은 고통과 죽음을 견딜지언정 장기간 이어지는 전투와 고단함에 결국 의지는 마모될 것입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모든 게 지겨워질 거고 그럼 안정을 원할 겁니다.”


“마치, 페로스 경이 그 안정인 것처럼 들리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방크스 경. 비록, 외지인이긴 하지만, 페로스 각하는 녹색 땅에서 유일하게 안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신용을 유지하고 있고, 다들 전쟁에서 이길 생각만 할 때, 이긴 후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죠. 비록, 있으나마나한 작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는 아주 큰 요인으로 작용할 거 같습니다.”


“.... 그렇소?”


“예, 무릇 노를 세게 젓는 것보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젓는 게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 질문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허락해주신다면 마링죠.”


“.... 말해 보시오.”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르스 평원에 주둔한 군단병을 봤습니다.”


“그렇소. 혼란스러운 시국이라 수도를 지키기 위해서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위협인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 구체적이라니?”


“그들은 훈련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적을 상대로 훈련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서 말입니다.”


“..... 여럿 있소. 혼란스러운 시국이지 않소? 조각난 땅이라던가....”


“아.... 그렇군요. 그럼, 다행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니. 목표란 중요한 법이지요. 목표가 불분명한 무력은 오히려 자신의 목을 옥죌 수 있거든요, 물론, 제 얄팍한 식견일 뿐이지만요.... 이런 주제넘게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 초대해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방크스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minby123님 응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마음 늘 기억하며 글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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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2-149. 대비하는 자 (3) +13 21.07.25 772 5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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