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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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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6.09.24 16:04
최근연재일 :
2022.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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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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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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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150. 대비하는 자 (4)

DUMMY

우즈리스 가문의 안주인이자 여신의 안토니아의 말대로 방크스와 그 아들들은 각각 지정된 좌석에 몸을 누우며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때라 그런지 다들 딱 좋게 배가 고픈 상태였는데, 능숙한 노예들은 주인 일가를 위해 맛 좋은 음식을 가져왔다.


만약 격식을 갖춘 식사 자리였다면 적절한 순서에 맞춰 차례대로 가져오라 시켰겠지만, 오랜만의 가족 식사라 그런 예의는 잠시 한쪽에 밀어두고 음식을 한꺼번에 가져오게 했다.


노예들이 제각기 커다란 접시와 그릇에 음식을 담아 가져왔다.


우선 처음 내온 것은 하얀 빵으로 인근에서 가장 좋은 제빵소에게 오늘 주문한 거였다.


아직 신선했는데, 빵과 곁들어 먹을 올리브 기름은 물론 신전에서 기른 채소와 치즈도 뒤이어 나왔다.


입맛을 돋우기 딱 좋았는데, 허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꿀에 버무린 콩요리와 뼈도 씹어먹을 수 있는 새끼새 요리, 속을 채워 양념에 끓인 양 창자 요리가 나왔다.


그 외에도 양갈비와 붉은 방패에서 직접 주문한 고급 소시지와 햄, 거대한 강꼬치고기 요리도 기다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왕실에서 일하던 주방장의 솜씨 덕분인지 맛있는 음식은 더욱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코와 눈을 즐겁게 했는데, 두 아들 모두 감탄을 자아냈다.


“하나같이 훌륭한 음식이네요. 아버지.”


“예, 일단 바다 건너온 보람은 있는 거 같습니다.”


아들들의 예의 섞인 칭찬에 방크스는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에 들었다니 기쁘구나.”


“너희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부터 준비한 거란다. 감사히 먹으렴.”


둘째인 세쿠디우스가 촉촉한 양 내장 요리를 한 입 베어 물며 대답했다. 입가로 육즙이 기름과 함께 흘렀다.


“당연히 감사히 먹어야죠.... 음! 진짜 맛있네요. 이 요리사가 밀로였던가? 어쨌건 조각난 땅 왕실 요리사라고 했죠?”


“그래, 채무 관계로 찾아갔을 때 데려왔지..... 지금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이야기 들었을 때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네요. 아주 훌륭한 음식입니다.”


솔직한 둘째의 말에 방크스는 소리 내며 웃었다. 방크스보다 어미를 더 닮아 솔직한 아이였는데, 웃기게도 그런 점 때문인지 이 아이랑 이야기하면 더욱 즐거웠다.


물론, 이 때문에 어린 시절 무례를 곧잘 저지르곤 했지만.... 뭐, 지금은 교육의 힘으로 그 점을 고쳤으니 상관없었다.


둘째 세쿠디우스가 양념이 묻은 손을 닦은 뒤 빵과 치즈를 버무린 샐러드를 먹었다.


형과 달리 먹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들들 중 누구보다 음식을 즐겁게 먹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안토니아가 물었다.


“잘 먹는구나? 혹시 거기 음식이 입맛에 안 맞니?”


“그냥 오랜만의 고향 음식을 먹어 반가운 거뿐입니다. 히드라 반도 쪽 음식은..... 뭐, 익숙해졌습니다.”


“대단하네.... 난 저번에 갔는데 음식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던데.”


장남 프리미스가 끼어들며 말했다. 차분하게 먹어 티가 나지 않을 뿐 동생 못지않게 음식을 많이 먹고 있었다.


“뭐, 히드라 반도 음식이 지나치게 맵고 달긴 하지.... 그래도 몇 년 사니까 익숙해지더라고.”


“다행이네.”


“또 외삼촌이랑 사촌들도 잘 챙겨줘서 괜찮아.”


“외삼촌이랑 사촌들?”


이번엔 안토니아가 끼어들었다.


“예,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서 챙겨줍니다. 몇 년이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절 지나치게 챙겨주더라고요.”


“좋게 말하면 그리 볼 수도 있지. 조금의 예의를 빼고, 약간의 솔직함을 더하면 아니지만.”


안토니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부분 이해한 아들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내의 친가인 밀라누스 가문은 한때 잘나갔지만, 몰락해가는 가문.


오죽하면 본국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해 히드라 반도로 이주하기까지 했는데, 그곳에서 역시 적응하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안토니아가 방크스와 결혼해 우즈리스 가문의 은행 업무 일부를 할당받은 지금에야 어느 정도 공화국 귀족이라는 모양새를 되찾았지만, 그럼에도 그 밑 받침대가 허약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본인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방크스 대리인 세쿠디우스에게 엉겨 붙는 거였다. 조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토니아는 그런 친가의 성향을 안다는 듯 그녀답지 않게 진중하게 조언했다.


“외삼촌들과 사촌들과 어울리는 건 고맙지만, 너무 깊게 친해지진마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아내의 예민한 모습에 방크스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 죽어가는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그녀를 이용했으니 충분히 이해는 갔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자신이나 아내에게나 좋은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때의 상처를 못 푼 듯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저도 이제 아이가 아니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아시지 않습니까? 세디스(세쿠디우스의 애칭)가 히드라 반도로 간 이후 리브라 은행 지점의 자산이 크게 증가한 거. 정말 대단하죠.”


방크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쿠디우스는 제 형과 달리 조심성은 부족했지만, 특유의 과감성 덕분에 약세를 보이던 히드라 반도에서 리브라 은행을 크게 성장시켰다.


물론. 몇 번의 위기도 겪긴 했지만, 세쿠디우스는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벗어났고, 수많은 고리대금업 가문이 있는 히드라 반도에서 ‘리브라 은행-히드라 반도 지부’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은행으로 키워냈다.


이는 방크스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었다.


아들의 업적을 듣자 안토니아는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적이고, 자비로우며, 여유가 넘치는 여신의 모습으로.


“이런..... 미안하구나. 엄마가 또 주책맞게.”


“아, 괜찮습니다. 어머니. 저 주책맞은 어머니도 좋아하거든요.”


세쿠디우스가 그리 말하며 양갈비를 뜯었다. 형은 프리미스는 치즈와 샐러드를 함께 먹으며 물어봤다.


“이 기세면 히드라 반도에서 리브라 은행을 최대 은행으로도 만들 수 있지 않겠어?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세쿠디우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힘들어. 히드라 반도의 최대 은행은 누가 뭐래도 거미 여왕.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년이라고. 줄린코나 아소리우스 보다.”


“세디스. 예쁜 말.”


안토니아의 말에 세쿠디우스가 사과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어쨌건 거미 여왕을 상대로는 힘들지. 보유가 자본도 많은 데다, 그 자본을 잘 굴릴 줄 알고, 거기다 그 외에도 황금을 낳는 거위가 많잖아? 못 이기지.”


어찌 보면 패기 없는 말일 수 있었지만, 방크스는 아들의 말에 적극 공감했다.


조상들이 대대로 쌓은 리브라 은행에 대한 자긍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방크스였지만, 그 은행조차 거미여왕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었으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미 여왕을 그저 돈 많은 수많은 군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은행업에 대대로 종사한 방크스는 이것이 심각한 오류임을 알고 있었다.


공화국을 포함해 거미 여왕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일 터였다.


그것은 그녀가 단순히 나라를 소유한 여왕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여왕인 것과 별개로 그녀의 개인 자산은 천문학적이었다.


광산업으로 부를 쌓은 아소리우스, 정복 전쟁과 무역으로 부를 쌓은 줄린코, 포도주로 부를 쌓은 비노,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우즈리스 보다도 더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상업과 금융업이 성행하는 히드라 반도에서 거미 여왕의 거미 왕조는 대대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해 엄청난 재산을 긁어모았으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것 외에도 동방의 비단과 비견되는 거미줄 비단 또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기도 했고..... 그런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이러한 사실을 안 몇몇 남자들은 크게 분노할 수도 있었겠지만, 방크스는 그러려니 받아들였는데, 다행히 아들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 그리고 난 솔직히 가장 부유한 은행이라는 칭호에도 관심이 없거든.”


“그래?”


“아..... 왜 그래. 형? 다 알면서. 히드라 반도에서 리브란 은행은 엄연한 외국의 은행. 그런 은행이 히드라 반도에서 가장 거대해지면 좋은 꼴을 보겠어? 이곳 정치가 소란스러울 때마다 접근해 우리 은행을 같이 집어삼키자고 할 게 뻔한데. 난 딱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표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 그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이게 딱 좋아. 안전과 수익 면에서.”


프리미스도 이에 동의하는지 그 이상은 묻지 않았는데, 방크스와 안토니아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참으로 훌륭하게 크지 않았냐고.


“그리고 난 오히려 내 이야기보다는 형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어때? 좀 해줄 수 있어?”


세쿠디우스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프리미스에게 꽂혔다. 프리미스는 탐블스 반도와 조각난 땅 사이에서 업무를 봤는데, 방크스의 보조성 역할이 더 크긴 했지만, 조각난 땅 업무도 수행했다.


그리고 조각난 땅은 현재 넘치기 전 냄비와 같은 상황이었고.


프리미스가 입을 열었다.


“근래 들어 꽤 조용해진 편이야. 최소한 겉보기에는.”


“아, 그래?”


“어. 붉은방패에서 승전보가 다시 울리고, 수도에도 군대가 생기며, 장벽에서도 크나큰 활약이 들리자 조각난 땅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야.”


방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방패와 장벽의 정복 전쟁은 최초의 도시뿐 아니라 조각난 땅도 두렵게 했는데, 덕분에 한동안 말썽을 부리던 그들은 군대의 증강을 멈추고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아직까지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감옥에 가둔 정치인을 해방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오... 다행이네. 겉보기에는..... 그럼, 그 아래는 어떤데.”


동생의 날카로운 질문에 프리미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더 위험해졌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반(反)공화국 인사들이 검투사와 암살단, 주먹들을 이용해 친 공화국 인사를 위협하고 있어. 사고로 위장해 죽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조용해졌지만, 뒤로는 계속 칼을 갈고 있어....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이에 대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프리미스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듯 말했지만, 방크스는 결코 아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각난 땅에서의 피해가 이 정도로 끝난 것은 장남의 평소 관리력과 대비 덕분이었다.


만약, 없었다면, 안두라 왕이 우즈리스 가문의 자산을 빼앗았을 때 리브라 은행 자체가 기울 수도 있는 손해가 났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프리미스 덕분에 치명적인 손해가 큰 손해 정도로 끝난 거였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났다.


“역시 형이 고생 많네.”


“아내랑 아이 덕분이지.”


“허허, 부러워라. 좀 아깝긴 하네. 형수님이랑 조카님 좀 보고 싶었는데..... 아, 나도 조금만 더 즐기다가 결혼해야겠다.”


“어머, 네가 결혼하고 싶다고?”


“네, 어머니. 즐기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저도 나이가 있으니 슬슬 정착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외삼촌들이 좋은 여자 계속 소개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거절하고 있는데, 수락해볼까 싶습니다.”


“여자?”


“예, 히드라 반도 쪽 귀족 아가씨라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니! 넌 엄연히 공화국의 귀족 자제인데. 네 삼촌들도 참.....”


“에이.... 히드라 반도 여자도 꽤 괜찮습니다. 제 취향이기도 하고요.”


“그 말 진심이더냐?”


갑자기 끼어든 방크스의 발언에 공기가 변하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세쿠디우스가 긴장하며 되물었다.


“.... 어떤 게 말씀입니까? 아버지.”


“..... 히드라 반도 여자들이 괜찮다는 거?”


세쿠디우스와 프리미스, 안토니아가 서로의 눈을 말없이 바라봤다. 보통 상황이 아님을 눈치챈 거 같았다.


공기에는 긴장감이 깃들었고, 다들 자세를 고쳐앉았다.


“뭐..... 제 취향인 건 사실입니다. 거기 음식처럼 달콤하고 화끈한 여자들이 많거든요.”


“마음에 둔 여자는 있더냐?”


“마음까지는 아니고.... 눈에 들어온 여자는 몇 있습니다. 연회에서 잠시 마주했는데, 꽤 말이 통해서요. 예쁘기도 하고.”


“히드라 반도는 여자에게도 사업을 맡기니 그리 이상한 이야기 같지는 않구나.”


안토니아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물었다.


“여보... 그런 건 왜 질문하세요.”


아내의 태도에 방크스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오늘 부른 이유는 이거 때문이었다.


“..... 급할 건 없지만, 올해 안에 히드라 반도 쪽의 가문과 결혼할 수 있겠느냐?”


갑자기 바위라도 떨어진 듯 식사 자리에 충격이 퍼져나갔다. 당황하지 않은 것은 말을 꺼낸 방크스와 당사자인 세쿠디우스 뿐이었다.


“여보?”


“부인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아들과 대화하고 있소.”


방크스의 말에 안토니아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세쿠디우스가 입을 열었다.


“뭐.... 올해 안이라면 넉넉하긴 한 데.....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물론.... 당연히 너희들은 들을 자격이 있지. 허나, 대답에 앞서 질문하나 하자꾸나. 현재 공화국의 상황이 어떤지 다들 알고 있느냐?”


프리미스와 세쿠디우스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조금....”


“.... 혼란스럽죠.”


그 말 그대로였다. 붉은방패와 장벽에서의 연전연승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는 결코 원로원의 승인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각 지휘관의 재량에 따른 엄밀히 말하면 범죄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은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서로 싸울 뿐이었는데, 공화국의 영토와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었지만, 결코 이게 좋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방크스의 아들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어쩌면 지금 공화국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혼란을 구가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너희 말대로다. 애당초 수도 근처에 군대가 머물고 있는 시점에서 평화로운 상태라 할 수 없지. 그리고 평화와 거리가 먼 혼란은 우리 같은 은행가에게는 아주 위험한 시기다.”


방크스는 온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혼란 중에는 부유한 이들은 웃기게도 먹이가 되곤 했다. 심지어 그것이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라면.


“그럼.....?”


“우리 가문의 주요 자산 중 일부를 히드라 반도로 옮긴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장남인 프리미스는 물론, 어쩌면 수혜자일지도 모를 세쿠디우스까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채권과 같은 우리 가문의 중요 자산 중 일부를 히드라 반도로 옮길 계획이다. 한꺼번은 말고, 시간을 두고 차분히. 세쿠디우스 넌 그사이 우리 가문의 자산을 지킬 수 있는 영향력을 히드라 반도에 다지도록 해라.”


“상황이 많이 심각한 겁니까?”


프리미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세쿠디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 저도.... 좀 당황스럽네요.”


“미안하구나. 갑자기 이런 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다니.”


“아뇨,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아버지. 어차피 결혼이야 아버지께서 정하시는 문제니 불만 따위 없습니다. 하지만 히드라 반도로 거점을 옮기면 가문의 사업 규모는 축소하고 말 겁니다.”


“옮기는 게 아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자산을 분산해 두는 거뿐이다.”


“그게 그겁니다. 공화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나간 덕분에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 거고, 그 덕분에 가문이 성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러면 사업에 안 좋습니다.”


“그건 네 말이 맞지만,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국이고, 약간의 효율을 포기해서라도 안전을 높여야 한다. 이건 단순한 아버지로서의 결정이 아닌 우즈리스 가문의 가주로서 내리는 결정이다.”


가주로서의 결정. 그 단어에 더 이상 따지는 자가 없었다.


겉으로는 대담한 척했지만, 방크스 역시 속이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둘째 역시 첫째처럼 고심의 고심 끝에 아내를 찾아주고 싶었는데.... 허나, 상황이 허락지 않아 본인에게 떠넘기고 말았다. 아비의 의무를 자식에게. 수치스러웠다.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시니 따르겠습니다. 이런.... 돌아가자마자 바쁘겠네? 형. 자산을 넘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어?”


“빠르면 3개월? 6개월? 그런데 그럼 눈치채거나, 수상쩍게 볼 사람들이 있을 거야. 최소한 1년은 두고 일을 진행해야 자연스러워.”


“1년..... 그럼, 난 가자마자 받을 준비를 하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겠네.”


“.... 미안하구나.”


“아뇨. 아버지. 저도 어차피 제가 고르고 싶었습니다. 제가 데리고 살 아내인데..... 아마, 외삼촌들과 사촌들이 도와줄 겁니다.”


“너무 믿지는 말고 참고만 해두렴. 특히, 이번 일은 그들에게 비밀로 하고, 헛바람이 들지도 모르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보다 아버지. 이런 질문하기 싫긴 하지만, 그만큼 여기 상황이 안 좋은 겁니까? 설마 내전이라도-”


“-동생아. 말을 가려 해라.”


프리미스가 동생의 말실수를 바로 잡았다. 내전이라니. 큰일 날 소리.


“미안.... 하지만 아버지 대답을 꼭 듣고 싶습니다.”


세쿠디우스가 방크스를 바라봤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할 자격도 있었기에 방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알 수 없다.”


“.... 예?”


“공화국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도 많은 인과관계가 얽혀있고, 욕망이 뒤섞여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몸을 웅크려 혹시 모를 폭풍을 대비하는 것뿐이다. 살아남기만 하면 언제든 기회가 생기니까 말이다. 그러니 한동안 너희들이 고생 좀 해 다오. 미안하다, 이런 부탁을 해서.”


방크스의 말을 들은 두 아들이 침묵하다 대답했다.


“........ 그런 말씀 마시죠. 아버지. 어찌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과합니까?”


“예, 신성한 공화국의 법도에 따르면 아버지가 명하면 아들은 따를 뿐인데. 부탁이라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시죠. 뭣보다 전 이 상황이 꽤 재밌거든요.”


세쿠디우스가 그리 말을 마치며 포도주를 마셨다.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일요일 다들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무젓가락 님.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 주신 마음 기억하며 성실히 쓰도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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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50. 대비하는 자 (4) +13 21.08.01 758 51 19쪽
164 2-149. 대비하는 자 (3) +13 21.07.25 773 59 12쪽
163 2-148. 대비하는 자 (2) +21 21.07.18 806 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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